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 유은혜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인형놀이를 하고 있어야 할 설아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있던 자리에는 아빠 곰과 엄마 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유은혜는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숨은 건가? 애도 참.’
은근히 장난기가 있는 설아라, 이따금 이런다.
갑작스레 시작된 숨바꼭질.
“설아가 어딨을까.”
유은혜는 펑퍼짐한 이불을 들춰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설아 대신, 설아 곰이 엎어져 있었다.
커튼 뒤에도 없었고, 식탁 아래에도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여기 있나?”
그렇다면 남은 건, 장롱뿐이다.
집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이제 숨을 곳은 여기밖에 없다.
유은혜는 설아를 놀래 주려는 듯 벌컥 장롱 문을 열었다.
“어?”
그런데, 장롱에는 옷가지와 이불만 가지런히 개어져 있을 뿐.
들켰다면서 안겨 들어야 할 설아는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유은혜의 고개가 돌아갔다.
유은혜가 확인한 것은, 신발이 놓인 현관.
오늘 신고 나갔다 왔을 터라 꺼내져 있어야 할 설아 신발 한 켤레가 보이지 않았다.
“설아야?”
유은혜는 거칠어지는 숨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집중하면, 수십 미터 밖에 숨어 있는 괴물의 기척도 느낄 수 있는 유은혜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유은혜 자신의 기척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설아의 기척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색이 된 유은혜는 신발도 신지 않고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설아야!”
* * *
“후우.”
나는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장 본다는 구실로 가족끼리 단란하게 외출하는 것도 포기하고, 훈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도통 개인 시스템의 직업은 성장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의 나는 아직 회귀 전보다 약하다.
‘시간이 문제네.’
훈련의 강도를 높인다고 해도, 사람의 신체 능력이 향상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근육은 미세하게 찢어지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사냥꾼이니만큼 회복력이 강해, 근육의 성장도 빠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아니면, 단순한 신체 능력 향상과 관계가 없는 건가?’
직업의 성장에 관해서는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다.
직업에 따라 성장하는 조건이 다르다고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신체적인 성장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훈련량을 늘렸다.
조금 무식하게 보이지만, 오버 트레이닝이 되지 않도록 적정선에서 조절하고 있었다.
“읏챠.”
그래도 중간중간 휴식은 필요했다.
나는 모더를 돌려놓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며 물을 나눠 마셨다.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떨어트릴까, 따로 뒀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 양반은 왜 연락이 없어?’
다시 전화하겠다던 오승훈은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이쪽에서 전화를 걸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 갤러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삭막하던 갤러리는 근 한 달 사이 설아로 가득 찼다.
‘하아. 이게 힐링이지.’
직접 받는 것보다는 효과가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밝게 웃고 있는 설아 사진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났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는데, 흐릿했던 일상이 전부 기억이 났다.
민속촌에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나, 서울대공원에서 찍은 사진도 보였다.
“후우.”
호흡도 안정됐고, 휴식도 충분히 했다.
괜히 어깨를 돌려 가며 다시 훈련할 준비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엎어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
오승훈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 서준아.
은혜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평소와는 목소리가 달랐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야?”
-설아가, 설아가.
“설아가 왜?”
-설아가, 없어졌어.
* * *
“……아저씨, 어디 가는 거예요?”
“병원으로 가는 중이란다.”
“그렇구나.”
오승훈은 대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웅크리고 있어야 할 만큼 공간이 협소하다는 것, 그리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
‘차 안이다.’
오승훈은 자신이 자동차 트렁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교육을 받긴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차 내부에서는 정철수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서준의 딸, 이설아인 것 같았다.
‘개폐 장치부터 찾자.’
오승훈은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자동차 트렁크 안쪽에는, 탈출할 수 있도록 개폐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자동차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개폐 장치가 있어야 할 곳은 납땜되어 있었다.
트렁크에 실린 사람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부순 것 같았다.
“읍!”
입에 테이프가 붙어 있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탈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
핸드폰도 보이지 않았다.
오승훈은 혀를 찼다.
자신을 살려 둔 이유는 빤했다.
‘쉽게 죽이지 않겠다는 건가.’
정철수는 잔인한 성격이다.
특히 배신자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는 잔혹한 모습을 보여 준다.
아마도 일을 끝내고 고문하며 천천히 죽일 심산인 것 같았다.
정보를 캐내려는 목적도 있을 거다.
하지만.
‘아니. 반대로, 기회가 있다는 뜻이야.’
정기 보고가 없으면 하이람도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핸드폰은 당연히 빼앗긴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강구한다.
‘애를 인질로 잡힌 게 조금 그렇지만.’
문제는 이설아였다.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혔다.
그동안 지켜봐 온 정철수의 기질로 볼 때, 수틀리면 정말 아이를 해코지할 거다.
아이인 만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애를 통해서 빠져나가야 한다.’
우선 아이, 설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먼저였다.
평화롭게 정철수와 대화를 나누는 걸로 보아, 설아는 행동이 비교적 자유로울 거다.
물론 다섯 살배기인 만큼 기대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오승훈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설아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접촉하지?’
너무 소란을 피우면 정철수에게 들킬 거다.
입도 막혀 있으니, 의사를 전달할 방법은 모스부호 정도인데.
아이가 모스부호를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오승훈이 그렇게 궁리하고 있는 사이.
-아저씨. 누구세요?
설아가 오승훈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머릿속으로.
* * *
설아는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차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설아는 트렁크 쪽에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기분에 마나를 흘려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트렁크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정장 차림의 남자였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손발이 묶여 있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설아는 가급적이면 마법을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설아는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비상시이니만큼,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특하게도 정철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정철수는 지금도 백미러를 통해 수시로 설아를 확인하고 있었다.
똑.
트렁크의 남자, 오승훈이 살짝 바닥을 두드렸다.
그제야 설아는 상대가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스승님과 머릿속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스승님이 마법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맞으면 한 번, 틀리면 두 번 두드려 주세요! 설아 말 들려요?
설아가 다시 말을 걸었다.
조금 기다리자, 반응이 돌아왔다.
똑.
설아는 고민했다.
일단 말을 걸긴 했는데.
뭘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에요?
다시 한번 질문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똑.
설아는 갈등했다.
일단 트렁크에 사람을 태운 게 나쁜 사람 같긴 했지만.
무작정 또 오승훈을 믿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지금 설아 근처에는 이서준도, 유은혜도 없었다.
거리나 위치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텔레파시도 불가능한 상황.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때, 정철수가 말을 걸어왔다.
묘안이 떠오른 설아는 정철수 모르게 마법을 걸었다.
스승님에게 배운 마법 중 하나, 거짓말 탐지(Lie Detect).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마나의 파동을 통해 그 진위를 구별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아저씨.”
“응. 왜 그러니?”
“아빠, 얼마나 다쳤어요?”
“정말 많이 다쳤어. 위험한 상태야.”
정철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평온하던 마나가, 거짓말을 알리듯 요란하게 움직였다.
설아는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정철수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시됐다.
설아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서준의 얼굴이었다.
* * *
유은혜는 설아가 갈 만한 곳을 모조리 확인했다.
근처 놀이터, 시장, 아이스크림 가게, 함께 갔던 식당까지.
하지만 설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와, 이서준과 만났다.
이서준은 사방으로 뛰어다녔는지, 땀으로 범벅이었다.
“설아는? 찾았어?”
“허억. 아니. 없었어.”
“어떡해? 납치된 거 아니야?”
“윌리엄 테일러는 기억을 확실히 지웠을 텐데.”
이서준은 인상을 찡그렸다.
다섯 살배기 아이고, 돈을 가지고 나간 것도 아니다.
아무리 똑똑하다지만 혼자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탄 경험은 없을 터.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근처를 아무리 뒤져 봐도 보이지 않았다.
유은혜가 초조한 듯 핸드폰을 매만졌다.
“경찰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
“괜찮을까? 설아, 마법 사용하는 거 들키기라도 하면.”
“그래도 일단 찾는 게 먼저잖아. 그거 말고는 찾을 방법이 없어.”
설아를 찾을 방법이 없다.
이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들었다.
설아가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데리러 가면 그만이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다.
이서준은 잠깐 갈등했다.
그리고 이내,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그래. 브라더. 나야.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이서준은 인상을 찡그렸다.
잘못 건 전화를 받고 있을 정도로 한가롭진 않았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정철수가 말을 이었다.
-어, 지금 설아 데리고 가고 있어.
“너 씨발, 누구야.”
유은혜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서준은 웬만하면 욕설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토록 낮고 차가운 목소리는, 유은혜에게 너무 낯설었다.
이서준은 금방이라도 전화기 너머의 정철수를 죽일 듯한 눈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얼굴 좀 볼까?
“대답해.”
-대답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지. 안 그래?
모르는 척 대답하던 정철수가 이서준에게 대답했다.
이서준은 차분히 심호흡했다.
“애는 무사하겠지?”
-당연하지. 근데, 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장담은 못 하겠네.
정철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이서준은 어떤 사실을 고하듯 말했다.
“설아를 건드리면, 너 내 손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