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설아가 납치됐다.
과거에 이런 일은 단 한 번 발생한 적 있다.
마탑 측에서 설아의 재능을 눈치챘을 때였다.
하지만, 마탑이 설아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그 사실을 아는 윌리엄 테일러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졌다.
암네시아로 지워진 기억이 돌아온 사례는, 내가 아는 한 없었다.
‘애초에 회귀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설아의 불행으로 작용하기 충분한 일이다.
은혜가 어떻게 대처했을지는 몰라도.
설아의 두 번째 불행으로 고유 퀘스트에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는 건.
‘나비효과.’
내가 미래를 바꿈에 따라 나타난 일이다.
하지만 마탑이 아니라면, 설아를 납치한 이유를 짐작하긴 어려웠다.
머리를 굴리려고 해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이고. 무서워 죽겠네.
“원하는 게 뭐야. 돈?”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비아냥거리며 나를 놀렸다.
설아를 인질로 잡은 만큼,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건 놈이다.
나도 더 이상 세게 나갈 수 없었다.
자칫하면 설아가 다칠 수도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놈이 대꾸했다.
-그게 목적은 아니었는데. 생각해 보니 좋네. 소소하게 현찰로 1억만 준비해 줘.
“1억 준비해 가면, 애 풀어 줄 거야?”
-에이. 쪼크지. 내가 용돈 벌자고 이러는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는 건 협상 의지가 있다는 거잖아.”
-신고는 하지 마. 짭새 모자 끝만 보여도, 콱. 알지?
“안 할 테니까, 용건을 말해.”
-성미가 급하네. 담소 좀 나누자는데. ……사람을 하나 찾고 있거든.
“사람?”
사람을 찾는 것과 설아를 납치한 게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인상을 찡그린 순간, 놈이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서울헌터옥션을 습격한 거, 너지?
* * *
“어. 그래. 그때까지 거기로 혼자 오면 돼. 늦거나, 여럿이면 재미없을 거야.”
전화를 끊은 정철수는 핸드폰을 조수석에 대충 던졌다.
패닉에 빠질 법도 한데, 이서준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침착했다.
정철수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 이설아를 확인했다.
‘무슨 애가 저래?’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일부러 돌려 말하며 통화했지만.
설아는 지나칠 정도로 얌전한 편이었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차가 멈춰 섰다.
“다 왔다.”
“아저씨. 여기, 병원 아닌데.”
설아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봤다.
도착한 곳은 버려진 공장으로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정철수는 대답하는 대신 차에서 내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시간 여유 있네. 애는 어디다 묶어서 숨겨 두고…….’
정철수는 이미 이서준을 이 장소로 불러들인 뒤였다.
이설아를 인질로 교섭하는 척, 자백을 받아 내고 기절시킨 뒤 데려갈 생각이었다.
트렁크에 둔 오승훈은 일을 끝낸 뒤 천천히 처리해도 늦지 않다.
달칵.
설아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설아는 정철수를 바라봤다.
설아는 자신의 마법이 강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스승님에게 마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공격 마법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뭐여. 왜 나와?”
설아는 아직 어린아이다.
하지만 그 힘은 결코 어린아이 수준이 아니었다.
정철수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고 해도, 집을 무너트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만 먹는다면, 설아는 정철수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으우.”
집을 무너트렸을 때, 설아는 유은혜가 죽을 뻔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철수를 공격할 수 있음에도, 공격하지 못했다.
제압하기에는 힘 조절이 미숙했다.
자칫하면 죽일 것 같았다.
설아는 정철수가 여차하면 자신을 해코지할 거라는 걸 알아도, 사람을 죽일 수 없었다.
“후우. 잠깐 들어가 있어.”
“아저씨. 아빠 어디 있어요?”
“금방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설아는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했다.
이런 종류의 마법은 배운 적 없지만.
-너무 내가 가르쳐 준 마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
-무슨 소리야?
-설아의 힘은 마법이라는 범주에 얽매이기에는 워낙 크거든.
-으응. 잘 모르겠어.
-간단하게 말하면, 설아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야. 그럴 힘이 있으니까.
설아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스승님은 마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나쁜 사람들에게 들킬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적당한 양의 마나를 끌어모은다.
설아가 발치에 있는 잡초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쩌억!
냉기가 폭발했다.
서리가 바닥을 뒤덮으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마나에 놀란 정철수가 설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쩌저적!
정철수의 발치에서 얼음벽이 솟아올라왔다.
아니, 벽이라기보다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반구형의 돔(Dome)이었다.
얼음의 돔은 정철수를 제외하고, 설아와 자동차를 보호하듯 감쌌다.
당황한 정철수가 담배를 툭 떨어트렸다.
“……씨발.”
그것은 분명 마법이었다.
그리고 정철수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는 다름 아닌, 다섯 살 어린아이.
이설아였다.
“설아야?”
정철수는 얼음벽 너머에 있는 이설아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설아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도도도 차 뒤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트렁크를 벌컥 열어젖힌다.
정철수는 트렁크에 오승훈이 실려 있다는 걸 떠올렸다.
‘설마!’
정철수의 예상대로, 설아는 조심스레 오승훈을 풀어 주고 있었다.
운전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눈 게 틀림없었다.
‘아니, 말소리는 안 들렸잖아.’
이서준과 통화하는 동안에도, 정철수는 설아를 주기적으로 관찰했다.
정철수에게 말을 걸 때를 제외하면 입도 벙긋하지 않은 설아다.
정철수는 혼란에 빠졌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일단 오승훈이 풀려나는 건 막아야 했다.
정철수는 주머니에서 드라이버를 꺼냈다.
단검보다는, 이게 얼음을 깨는 데 적합해 보였다.
다행히도 얼음은 그다지 두꺼워 보이지 않았다.
‘무슨 아티팩트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면적의 방어막을 펼쳤다면,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철수는 드라이에 마나를 부여해, 얼음벽을 힘껏 내리쳤다.
퍽!
얼음벽이 부서졌다.
아주 조금, 드라이버가 닿은 부분이 파였다.
정철수는 당황했다.
“어? 뭐야. 이거 왜 이래?”
분명 발로 걷어차면 부서질 것 같은 얇은 얼음이었는데.
마나로 강화한 공격에 버텼다.
당황한 정철수는 얼음벽을 걷어차고, 드라이버로 내리쳤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쩌억.
얼음벽은 부서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흠집도 복구됐다.
그사이, 설아는 오승훈의 팔다리를 풀어 줬다.
“아저씨. 괜찮아요?”
“허억, 고맙다. 얘야.”
오승훈은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기절한 사이 마취제 같은 게 투여된 것 같았다.
이 상태로 정철수를 제압하는 건 무리였다.
다행히, 정철수는 얼음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애를 인질로 교섭할 수도 없잖아?’
약속 장소를 바꿔야 한다.
정철수는 재빨리 주머니를 뒤졌으나. 핸드폰은 없었다.
뒤늦게 조수석에 핸드폰을 던져 놨다는 게 떠올랐다.
정철수는 깨달았다.
‘이거, 빨리 부숴야 한다!’
* * *
“빨리 부탁드립니다.”
이서준은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이서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와. 뭔 눈빛이 저래?’
백미러로 슬쩍 살펴본 이서준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이서준은 모더를 손에 쥐고 초조한 듯 다리를 털었다.
“최대한 빨리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너무 급하면 사고 나는 법인데요.”
“이만큼 드리겠습니다.”
“지금 밟고 있습니다.”
택시 기사는 이서준이 지정한 장소를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서준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갑에 있는 현금을 전부 꺼내 내밀었기 때문이다.
과소비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서준이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택시 기사는 내공을 발휘해 순식간에 약속 장소로 내달렸다.
도착한 곳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외진 산길이었다.
“여기 맞습니까?”
“네. 저기 세워 주시면 됩니다.”
“이, 이 돈은?”
“약속대로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이서준은 차를 다 세우기 전에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산길을 그대로 내달렸다.
훈련 직후 설아를 찾아다니느라 동네를 다 뛰어다녔다.
허벅지가 비명을 질러 댔지만, 이서준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허억.”
산길을 뛰어 올라온 이서준은 버려진 폐공장에 도착했다.
이서준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차체를 감싸고 있는 얼음 돔.
그 안에는 설아와 오승훈이 있었다.
그리고 바깥쪽에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미친 듯이 얼음 돔을 두드리고 있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목소리의 주인이 분명했다.
콰앙!
어지간히 집요하게 때려 댔는지.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돔에 금이 갔다.
정철수가 희열 섞인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장시간 돔을 유지한 설아는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으우.”
설아의 마나 총량을 생각하면, 정철수 혼자 얼음벽을 부수는 건 불가능한 일.
하지만, 설아는 정철수의 윽박과 공격으로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부서질 것이다.
이서준의 판단은 빨랐다.
적어도 당장 설아가 무사하고 안전한 것을 확인했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
안심하고, 이성을 놓을 수 있었다.
쾅!
정철수는 뒤늦게 이서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옆을 돌아본 순간, 무언가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땅을 박차고 뛴 이서준이었다.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
‘무슨 사람이 이렇게……!’
빠르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순식간에 정철수에게 달려든 이서준이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강화.
마나를 효율적으로 제어하려고 하는 평소와는 달랐다.
이서준은 정말 이성을 잃어버리고 모든 마나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부웅!
한 번이었지만, 강대호와 엇비슷한 위력의 주먹을 내지를 수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 주먹을 얼굴에 얻어맞은 정철수는 생각했다.
‘아. 죽었다.’
턱이 옆으로 뒤틀리고, 목이 부러질 듯 옆으로 꺾였다.
땅을 딛고 버티던 발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공중에 뜬다.
상반신이 뒤로 쭉 밀리고, 하반신이 앞으로 들린다.
정철수는 말 그대로, 주먹에 얻어맞고 날아갔다.
뻐어어어어억!
얼음 돔에 있는 오승훈은 생각했다.
사람이 주먹에 맞고, 몸이 돌아가며 날아갈 수 있구나.
이서준의 주먹에 얻어맞은 정철수는 그대로 십수 미터 멀리까지 날아갔다.
정철수의 압박과, 곧 얼음벽이 부서질 듯한 불안을 견디던 설아가 이서준을 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활짝 웃는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