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강철이는 살갗을 찌르는 한기에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의자에 결박된 자신의 몸이었다.
팔은 팔걸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는 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다.
움직이려고 해도 여간 단단히 묶여 있는 게 아니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을 부르르 떤 강철이가 주변을 살펴봤다.
‘여긴?’
어두운 창고였다.
주변에는 푸른색의 주괴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대장장이인 만큼, 강철이는 주괴의 정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냉기를 띠고 있는 푸른색의 주괴.
강철이가 찾아 헤매던 플리른이었다.
“끄윽.”
강철이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무언가 돌 같은 걸로 후두부를 내리찍은 것 같았다.
의식을 잠깐 잃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 상태다.
‘역시 그건.’
백상명이 아니라, 백상명의 가죽을 뒤집어쓴 무언가다.
강철이는 새어 나오는 입김을 보며 주변을 살폈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그르르륵.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가득 쌓인 주괴 너머에서 백상명이 나타났다.
의자 하나를 끌고 오더니, 강철이의 맞은편에 둔다.
“몇 가지 질문에 앞서, 미리 말해 두겠네.”
“……뭐를?”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오른팔을 부술 걸세.”
목소리에는 일말의 고저도 없었다.
협박이라기보다는 선고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마도 대답하지 않는다면, 정말 거리낌 없이 팔을 부술 거다.
적어도 백상명 앞에 앉아 있는 강철이는 저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상명이 의자에 앉았다.
“마녀를 아는가?”
“……마녀?”
강철이는 인상을 썼다.
생뚱맞은 이야기였다.
“동화에 나오는 마녀 말인가?”
“본 적 없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진실인 것 같군. 그렇다면, 플리른을 주문한 의뢰인은 누구지?”
강철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플리른을 소재로 무기를 제작해 달라고 주문한 것은 이서준.
그러나, 이에 대해서 말하면.
‘분명 해코지할 터.’
당장 강철이 자신만 해도 뒤통수를 얻어맞고 감금된 상태다.
이서준의 이름을 말하면 분명 해코지당할 게 빤했다.
“모르겠는데. 익명으로 주문한 거거든.”
“이상한 일이군. 아까는 분명 아는 투였는데.”
“안다고 하면, 어쩔 건가?”
“죽여야지. 주변인들까지 모두.”
강철이는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백상명의 대답은 너무 담담했다.
죽인다는 게 꼭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처럼 말한다.
“답할 수 없네.”
“분명 경고했을 텐데.”
백상명의 손끝이 강철이의 오른쪽 팔뚝을 스쳤다.
개미가 살갗을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에, 강철이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내 백상명이 강철이의 팔을 콱 움켜쥐었다.
“단순히 부러트리는 게 아니라, 부술 걸세. 다시는 망치를 잡지 못하겠지.”
손아귀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뱀이 서서히 먹이를 졸라 죽이는 것 같았다.
그래 봤자 다 늙은 노인의 악력이 얼마나 되겠나 싶었지만.
이내 강철이는 기함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억!”
엄청난 악력이 팔뚝을 부술 듯 조여 왔다.
피가 통하지 않는지, 손가락 끝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팔을 지나가는 혈관이 터질 것 같았다.
고통에 얼굴을 구긴 강철이는 이를 꽉 깨물었다.
“끄으으윽!”
조이는 힘은 점진적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정말 악력만으로 팔을 부술 생각인 것 같았다.
실제로 백상명은 아직 힘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듯, 여유로웠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네.”
힘이 풀렸다.
갑자기 피가 통하는 듯한 느낌에, 팔이 덜덜 떨려 왔다.
팔뚝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백상명은 정말 강철이의 팔뚝을 으스러트렸을 것이다.
정작 팔뚝이 두껍고 힘도 좋아 보이는 건 강철이였고, 백상명은 호리호리한 편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정말 말할 생각 없나?”
강철이는 입을 달싹였다.
백상명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강철이를 봤다.
다른 사람을 지켜 주려는 알량한 정의감이나 신념은, 결국 폭력 앞에 굴복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곳 사람들은 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다.
“똑바로 대답하게.”
강철이는 고개를 들고 똑바로 백상명과 눈을 마주쳤다.
올곧은 눈동자.
“자네가 언젠가 그랬지.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라고.”
“내가 그랬던가?”
“그랬지. 그런데, 지금 나보고 가족을 팔아먹으라는 얘긴가?”
강철이는 그럴 수 없었다.
이서준의 딸, 이설아는 이제 고작 다섯 살이다.
그런 조그마한 아이를 위협에 노출시키느니.
차라리 제 팔 하나가 부러지는 쪽이 나았다.
“그렇군. 잘 알겠네.”
백상명은 강철이의 오른쪽 팔뚝을 잡았다.
강철이의 눈에 옅은 공포가 스쳤다.
“조금 아플 걸세.”
“끄아아아아악!”
* * *
설아 납치 사건으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다행히 설아는 씩씩했고, 이내 평소대로 돌아왔다.
“설아야. Cow가 뭐예요?”
“음매소!”
은혜와 공부하는 걸 보면,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혹시 몰라 아동 심리 상담사에게도 한 번 찾아갔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설아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한다.
트라우마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하긴, 자기보다 한참 약해 보였을지도.’
난생처음 악의를 마주한 탓에, 조금 놀란 듯 보이긴 했다.
그러나 설아에게 있어서 정철수라는 인물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집을 무너트리고 거대한 산골렘도 쓰러트릴 수 있다.
정철수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었겠지.
아직 어린아이고, 워낙 천성이 착해 사람을 공격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긴 한데.’
그런 애를 납치했다는 사실이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철수도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팼어야 하는데, 한 대밖에 못 때렸다.
위안이 되는 건, 하이람이 정철수의 전과 등을 전부 모아 무기징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납치, 살인 등을 저지른 인물이라 조금 힘을 쓰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건 그거고.’
문제는 불카누스의 대표, 백상명이었다.
브로커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으니 금방 족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이람이 뒤를 캐고 있긴 하지만, 거물인 만큼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Chicken은?”
“맛있겠다. 냠냠.”
“아니, 그거 말고.”
“꼬꼬닭?”
은혜는 이따금 시간을 내어 설아를 가르쳤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기에는 아직 위험성이 있기에, 집에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설아의 학습 속도였다.
‘요즘은 영어 유치원이니, 다섯 살 때부터 한글이니 영어니 배운다지만.’
설아는 배우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은혜의 말에 따르면 간단한 덧셈 뺄셈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뭔가를 외우는 것도 곧잘 해서, 가르치면 몇 시간 만에 외워 버린다.
“어쩌면 우리 애는 천재가 아닐까?”
“그렇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에헴!”
심지어 공부를 좀 좋아하는 것 같다.
칭찬을 받으니 더 받고 싶어서 그런지, 공부하자고 책 같은 걸 들고 오기도 한다.
나는 가르치는 게 영 서툴러서 은혜가 도맡아서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하긴 나 닮았으면 이렇게 예쁘진 않았겠지.
띠링.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확인해 보니, 강철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주문 제작한 무기에 대한 건으로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그런데, 공방으로 와 주겠나?
그 실력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회귀 전, 불카누스에서 주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강철이라면 대장장이인 만큼 연맹에 대해서도, 백상명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설아야. 아빠 잠깐 나갔다 올게.”
아동 심리 상담사는 당분간 아이와 같이 있으며 안정시켜 주라고 했지만.
이 사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을 잡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어디 가요?”
“강철이 어르신네 공방.”
“설아도 갈래요!”
“금방 올 거야. 집에 있어.”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설아가 동행하기에는 늦은 시간.
설아도 그걸 아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설아야. 아빠 다녀오세요, 해야지.”
“으응, 아빠. 이리 오세요.”
“다녀올게.”
“아니! 이리 오세요!”
평소처럼 다녀오라고 한 줄 알았는데.
이리 오라는 거였구나.
무슨 일인가 싶어서 설아 가까이 갔다.
“자!”
설아는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 두 손을 귀엽게 파닥거린다.
어떻게 봐도 안아 달라는 뜻이다.
“어, 이거.”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혀서 생각해 보니, 떠올랐다.
옛날에 사귈 때 은혜가 자주 하던 거다.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갈 때면 저러곤 했다.
그런데 설아가 이걸 어떻게 아는 걸까.
은혜 쪽을 흘긋 봤다.
“서, 설아야!”
은혜는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옛날이야기라도 해 준 모양이었다.
내가 잠시 옛 생각에 빠져 있자, 설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어, 이상하다. 엄마가 이러면 안아 줬댔는데.”
“으악, 으아아아각.”
은혜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지간히 부끄러웠는지, 몸을 뒤틀어 댄다.
어쩌다 나랑 사귈 때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다녀올게요.”
몸을 숙여 설아를 안아 줬다.
설아는 강아지처럼 가슴팍에 얼굴은 문댔다.
‘응?’
잠깐이지만 마나 라이트가 빛난 것 같은데.
잘못 본 것 같았다.
만족스러운 듯, 설아의 입이 샐쭉 올라갔다.
“다녀오세요!”
“응.”
나는 바로 나가지 않고, 은혜 쪽을 봤다.
은혜는 손부채질을 하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 왜.”
“안 해 줘?”
“뭘!”
“휴. 내가 해?”
“돼, 됐거든!”
간신히 제 색깔로 돌아오던 은혜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놀리는 걸 아는지, 씩씩거리는 게 귀엽다.
등짝을 맞기 전에 얼른 현관 밖으로 나갔다.
* * *
“계십니까?”
남자는 강철이의 공방을 찾았다.
주문한 검이 완성됐으니, 찾으러 오라고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공방은 열려 있었으나, 강철이는 보이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남자는 사냥꾼으로, 기껏 시간을 내서 이곳에 무기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잠깐 화장실에 갔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공방 안에 들어왔다.
호탕하게 반겨 주던 강철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이상하다. 뭐 두드리는 소리도 안 나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걸까.
남자는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지 않아, 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고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달칵.
갑작스레 들어온 밝은 불빛에,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기에, 남자는 자신의 뒤에 망치를 들고 선 강철이를 보지 못했다.
강철이는 눈을 부릅뜬 채 미동도 없이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척을 느낀 남자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우! 깜짝이야!”
강철이는 망치를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남자는 사냥꾼.
그 반응 속도는 일반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용케 몸을 빼 망치를 피하는 동시에, 강철이의 손목을 잡았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당황한 남자가 역정을 냈다.
강철이는 대답하지 않고, 망치로 남자를 내리찍으려는 듯 힘을 줬다.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고 강철이를 살펴봤다.
텅 빈 동공은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사람 같지 않은 모습에, 남자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꾸득!
돌연 강철이의 힘이 세졌다.
일반인보다 힘이 몇 배는 센 남자가 밀려날 수준.
“어, 어?”
남자가 뒤로 넘어졌다.
바닥을 굴러다니던 무기에 발이 걸린 것이다.
남자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위를 쳐다보자, 망치를 높이 쳐든 강철이가 있었다.
퍽!
남자의 의식은 거기서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