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공방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시장의 가판들은 다 닫은 뒤였고, 사람들은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다.
오래된 가로등이 깜빡거려 사뭇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는 골목길을 지나 강철이의 공방으로 향했다.
“어?”
다른 가게와 마찬가지로 공방도 불이 꺼져 있었다.
창을 통해 실내를 들여다봤다.
어찌나 어두운지, 눈이 저절로 암순응할 정도였다.
‘아무도 없네?’
공방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확인차 강철이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신호음이 가는가 싶더니.
삐리리리릭.
안쪽에서 희미하게 핸드폰 기본 벨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된 기종인지, 듣기 싫을 정도로 높은 음이었다.
벨 소리는 계속 들려왔지만, 강철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작업 중인 것도 아닐 텐데.’
장인은 무언가를 만들 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작업에 몰두하면 주변 일에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따금 용무 때문에 전화를 걸어도 강철이는 전화를 받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작업 중이라기엔 안쪽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전화벨 소리가 들려올 만큼 말이다.
“들어가겠습니다.”
공방 문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밤눈깨비 덕분에 암순응한 눈에는 공방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빛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스산한 느낌이었다.
“어르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강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내에 들어온 덕인지, 선명한 벨 소리가 들려왔다.
삐리리리릭.
정적이 내려앉은 공방 안쪽에서 높은음이 새어 나온다.
나는 전화기를 한 손에 든 채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뭐야. 두고 가신 건가?’
핸드폰은 작업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강철이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바닥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뒤를 돌아보니, 강철이가 서 있었다.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선 강철이는 손을 높이 쳐들었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장도리였다.
부웅!
전력을 다해 내리친다.
정말 사람을 죽이려는 듯한 기세.
정확히 머리를 노리고 있다.
나는 몸을 틀어 장도리를 피했다.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어르신! 접니다!”
강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이 빗나가자, 고개를 들고 정확히 나를 직시한다.
어둠 속에서 어떻게 나를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강철이는 또다시 장도리를 휘둘렀다.
붕!
이번에는 턱을 노리고 들어온다.
상반신을 살짝 뒤로 젖혀 공격을 피했다.
공격을 이어 나가는 걸 보며 오해한 건 아닌 듯 보였다.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걸 보면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눈이 마주쳤다.
‘저건.’
흐리멍덩한, 초점 없는 눈빛.
나는 저 눈동자를 분명 본 적 있다.
서울헌터옥션 옥상에서 마주쳤던 도플갱어가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저건 강철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강철이가 아니었다.
‘일단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허리춤에 있던 모더를 잡았다.
도플갱어가 내게 장도리를 휘둘렀다.
나는 자루를 비틀어, 창의 형태로 바꿨다.
스피어 모드(Spear Mode).
퍽!
창끝으로 도플갱어의 명치를 때려 밀어냈다.
반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도플갱어는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작업대에 부딪혔다.
우당탕!
작업대가 무너지며, 물건이 쏟아졌다.
도플갱어는 빤히 나를 올려다봤다.
떨어진 장도리는 잡을 생각도 안 한다.
팔이 꿈틀거리는 게, 괴물의 형상을 드러낼 생각 같았다.
그때.
콰앙!
엄청난 존재감이 나를 향해 쇄도해 왔다.
도플갱어가 있는 정면이 아니라, 등 뒤다.
‘매복?’
기척만 느껴도 상당히 묵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뒤를 도는 동시에 창 자루를 앞세워 방어했다.
그리고, 무언가 모더를 정통으로 때렸다.
뻐어억!
순간적으로 창대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아니, 마나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진짜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몸이 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공중에 뜬다.
‘밀려난다!’
이 정도 위력은 예상하지 못했다.
발끝이 땅에서 떨어지고, 몸이 뒤로 쭉 날아갔다.
쾅!
나는 무기 진열대에 처박혔다.
등 쪽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폐에서 순간적으로 공기가 전부 빠져나간 듯한 느낌.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고, 놈이 내 앞으로 달려 들어왔다.
상당히 저돌적이다.
나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어?’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직시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강대호였다.
* * *
강대호는 감이 좋은 편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도 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만큼 강대호는 자신의 감을 믿었고, 그 감은 강대호를 몇 번이고 살렸다.
그런데 최근에 강대호는 감이 좋지 않았다.
자신보다, 주변 인물이 걱정됐다.
특히 자주 연락하지 않는 아버지가 그랬다.
“예. 아버지. 접니다. ……아니, 그냥, 잘 계신가 해서요. 어디세요? ……아.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감이 안 좋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안부를 확인했음에도, 강대호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사흘간 강대호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강대호의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감이 쌓일 대로 쌓인 강대호는 아닌 밤중에 아버지의 일터를 찾기에 이르렀다.
‘불이 꺼져 있네?’
아직 문 닫을 시간은 아닐 텐데.
아버지의 공방은 어두웠다.
밤눈깨비의 효과 덕에 안쪽이 얼핏 보이긴 했지만.
어둠 속이 훤히 보이는 이서준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형태만 확실히 알 수 있을 뿐, 글을 읽거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강대호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끼익.
문은 열려 있었다.
강대호는 주변을 살피며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큰 소리가 들려왔다.
우당탕!
강철이는 황급히 안쪽으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넘어진 건 아닐까 걱정됐다.
그런데,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뒤로 넘어진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위협하듯 서 있는 누군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창, 분명한 무기였다.
‘저놈이!’
괴한이 아버지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
이성을 잃어버린 강대호는 다짜고짜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땅을 박차고, 허리와 어깨를 크게 틀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순간 강화.
강대호가 주먹을 휘둘렀다.
일격에 때려눕힐 셈이었는데.
상대는 그 짧은 순간에 뒤를 돌아 강대호의 공격을 막았다.
쾅!
그래도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상대는 그대로 날아가, 무기 진열장에 부딪혀 멈췄다.
강대호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자세가 무너진 상대를 마무리하고자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버지를 해하려 했다.
자세한 건 때려눕힌 다음 들어 봐도 괜찮지 않은가.
그 순간.
“대호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다행히 이성을 되찾았는지, 강대호가 주먹을 멈췄다.
저걸 그대로 내리쳤으면 꽤 위험했을 거다.
나는 마나 라이트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손목을 중심으로 주변이 빛났다.
“서준이냐? 네가 왜 거기 있어?”
“아니. 대호 형은 왜 여기 있어요?”
“잠깐. 아버지를 습격한 게 너야?”
“아버지요?”
나는 크게 놀랐다.
노인답지 않게 우락부락한 체격.
어딘가 호탕한 면, 같은 강씨라는 것까지.
다시 생각해 보니, 강철이와 강대호는 겹치는 점이 많았다.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부자 관계였던 모양이다.
“저거, 강철이 어르신이 아닙니다!”
“뭐?”
강대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쓰러져 있던 도플갱어가 비틀비틀 일어났다.
“대호야.”
“아버지! 괜찮으세요?”
“저놈이, 나를 죽이려 했다.”
놈은 강철이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핸드폰으로 주변인과의 관계를 확인한 건지, 강대호를 알고 있었다.
강대호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플갱어가 히죽 웃었다.
‘기만.’
상대의 모습과 목소리를 똑같이 복제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장산범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
“대호 형. 저거 거짓말입니다. 절 믿으셔야 해요!”
강대호가 오해하고 나를 공격한다면,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다.
대련이라면 이길 자신이 있지만, 지금은 솔직히 질 것 같았다.
공간 자체가 협소해 맨손 전투가 특기인 강대호 쪽이 유리하다.
아까 공격으로 꽤 타격을 받은 상태라, 2 : 1로 들어오면 답이 없다.
“뭐 하고 있어! 저게 날 죽이려고 했다니깐!”
도플갱어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은근히 나를 공격하는 것을 유도하고 있었다.
강철이를 통해 나를 제압할 생각인 것 같았다.
강대호는 혼란스러운 듯 나와 도플갱어를 번갈아 보다가, 나를 보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으랴!”
강대호는 홱 뒤를 돌아, 도플갱어를 때렸다.
꽤 힘이 실렸는지, 강철이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꺼헉!”
얼굴이 크게 뭉개졌다.
일반인이었다면 기절했을 위력.
그러나 도플갱어는 기절하지 않았다.
대신 다친 연기를 하며, 바닥에서 피를 토했다.
“대, 대호야!”
“너. 뭐야. 우리 아버지 어쨌어.”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내가 네 애비다! 이놈아!”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패드립을 치네. 내가 바보천치로 보이나.”
강대호의 목소리에서는 확신이 느껴졌다.
기만이 통하지 않을 것을 느꼈는지, 도플갱어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우리 아버지는 말이야. 그런 상황이었으면 비키라고 했을 거거든. 직접 패실 분이라.”
강대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강대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괜찮아?”
“아뇨. 좀 살살 때리시지.”
“미안. 잠깐 회까닥했다.”
“그래도, 용케 아셨네요.”
“내가 감이 좀 좋거든.”
강대호는 도플갱어를 주시하며 손목을 풀었다.
눈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저거 뭐야?”
“도플갱어라는 괴물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습니다. 족쳐서 알아보죠.”
“동생. 나랑 좀 통하네.”
도플갱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모습을 바꿨다.
강철이의 모습이 점점 무너지며, 살덩어리와 비슷한 형상이 된다.
팔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안면에는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다.
몸이 팽창하더니, 허리가 구부러진다.
‘저게 본모습이구나.’
도플갱어는 상당히 희귀한 괴물이다.
정확히는, 희귀하다기보다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괴물이다.
던전에서는 보통 같은 길드원의 모습으로 변해 사냥꾼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렸을 때 본모습을 드러낸다고 들었는데.
저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재생력이 상당히 강한 놈입니다. 골렘처럼 코어를 찾아서 부숴야 해요.”
“그러면 죽잖아.”
“그건, 그렇네요. 어떡하죠?”
어떻게 강철이의 모습으로 변했는지 추궁하려면, 죽이는 건 곤란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처치가 곤란하다.
창에 정통으로 찔려도 죽지 않던 도플갱어다.
어떻게 하면 코어를 부수지 않고 제압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강대호가 앞으로 나섰다.
주먹에서 뚜둑, 뼈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딱 죽기 직전까지만 패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