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은혜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가 재밌다는 거죠?”
“아. 죄송해요.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요.”
고희연은 결백하다는 듯 양손을 보였다.
그런데 그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거기 남자분이 재밌다는 거였어요.”
“……이서준이라고 합니다.”
“이서준. 기억해 둘게요. 저는 고희연이에요.”
고희연이라는 이름에, 성수현이 흥미를 보였다.
검을 쓰는 사냥꾼이라면 검성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여 그 손녀인 고희연이라는 이름도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저기, 진짜 지망생 맞아요?”
“맞습니다만.”
“그래요? 그럼 난놈인가?”
“난놈이라니. 어감이 좀 그러네요.”
“아. 죄송해요. 할아버지 말버릇이 입에 붙어서.”
고희연은 땅거미에게 당한 여자의 환부를 살폈다.
눈에서 잠깐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판단이 끝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쪽으로 붙을게요.”
“검성의 손녀.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이보세요. 성수현 씨. 혹시 저 알아요?”
고희연은 성수현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같이 던전을 공략했다기에 면식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고희연의 눈동자에는 벌레라도 보는 듯한 혐오감이 서려 있었다.
“그쪽이야말로 설치지 마세요. 인지도 말고 실력으로만 보면, 이쪽이 나으니까.”
“시력이 안 좋은가 봐. 설마 저 지망생이 나보다 낫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거든요. 그냥 라이선스 넘기지 그래요, 그따위로 쓸 거면.”
성수현을 쏘아붙인 고희연은 총총 걸어와 내 쪽으로 합류했다.
성수현은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찰 뿐, 반론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는 고희연과 그렇게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도 성수현보다는 이쪽이 백번 나았다.
은혜는 다가온 고희연에게 먼저 사과했다.
“유은혜예요. 아까 날카롭게 말해서 죄송했어요.”
“아니에요. 제 쪽이 먼저 잘못했으니까요. 몇 살이세요?”
“스물여섯이요. 여기 서준이도 똑같아요.”
“어머. 언니 오빠였구나. 동안이라 몰랐어요. 전 스물둘이니까,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고희연은 은혜에게 말을 붙이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은혜는 고희연을 살짝 경계하는 듯했지만, 마냥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매섭게 성수현에게 면박을 준 것과 달리 고희연은 사근사근 말을 잘했다.
“언니랑 오빠는 던전 공략이 처음이겠네요?”
“응. 오늘 초보자용 던전에 가려고 했어.”
“흐응. 정말요? 둘 다 실력이 지망생 같진 않은데.”
고희연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우리를 살폈다.
그러다가 땅거미에게 물린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여자분, 얼마 정도 버틸 수 있을까요?”
“베노미터로 억제하고 있긴 하지만, 2시간 이후에는 독이 퍼져 치료가 어려워질 겁니다.”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 그러면, 2시간 안에 공략해야 하는 거네요. 해 보죠, 까짓거.”
고희연은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제 어깨에 검을 얹었다.
내게 앞장서라는 듯 턱짓을 한다.
은혜도 회수한 화살의 개수를 세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창을 들고 로비 쪽으로 걸어갔다.
은혜와 고희연이 내 뒤를 따랐다.
“그럼…….”
그곳에는 땅거미들이 튀어나온 큼직한 구멍이 있었다.
안쪽은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손목의 마나 라이트가 경고등처럼 깜빡였다.
“던전, 붕괴한 백화점, 공략 시작하겠습니다.”
* * *
고희연은 눈이 좋다.
성수현에게 공격적으로 대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민간인을 교묘하게 방패로 이용하는 걸 본 건, 이서준 한 명이 아니었다.
‘이서준, 분명 뭔가 있는데.’
백화점 지하에 생성된 땅굴.
선두에 선 이서준은 마나 라이트로 앞을 비추며 나아가고 있었다.
비록 직접 본 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고희연은 이서준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다.
‘얼굴은 반반해도, 성격이 내 취향은 아니란 말이야. 이상하다.’
이건 이성 간의 끌림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냥꾼으로서의 끌림이었다.
이서준은 뭔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 때 보인 힘은 그렇게 탁월하지 않았다.
물론 사냥꾼 지망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길드에서 데려가려고 혈안이 되겠지만.
살짝 불안정한 감이 있긴 했어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 건 유은혜도 마찬가지였다.
‘뭐랄까. 그냥 평범한 사냥꾼 지망생이라기보다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침착하고 깔끔한 대처.
그 모습은 온갖 악전고투를 겪어 온, 베테랑 사냥꾼 같았다.
전투 내내, 이서준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휘했다.
성수현도 그렇지 않은 척했지만, 어느 정도 그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타고난 오더(Order).
지휘관 체질이었다.
“저기.”
“아. 네?”
고희연은 화들짝 놀랐다.
너무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가, 이서준이 말을 거는 것도 몰랐다.
유은혜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고희연을 살폈다.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저 멀쩡해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보다, 왜 부르셨어요?”
“아, 희연이 네가 오더를 맡아 줬으면 해서.”
“제가요?”
“응.”
이서준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서준과 유은혜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더라도 사냥꾼 지망생.
고희연과 비교하면 실전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여기서는 사냥꾼으로서 제일 경력이 많은 고희연이 오더를 맡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죄송해요, 저는 영 오더 체질은 아니라.”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차라리 은혜 언니가 하시는 건 어때요? 오더는 보통 리어…… 후방이 맡거든요.”
“내가? 나, 난 조금 부담스러운데. 제대로 못할 것 같아.”
유은혜의 완곡한 거절은 고희연이 예상한 바였다.
오더의 말 한마디로, 전원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다.
중요한 역할인 만큼 초보, 그것도 라이선스가 없는 지망생이 맡는 경우는 전무했다.
고희연은 은근히 이서준 쪽을 살폈다.
“그럼, 서준 오빠가 해 보시는 건 어때요?”
“나?”
“네. 아까 보니까, 잘하시던데요.”
이서준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고희연은 지금 이서준을 시험하고 있었다.
‘보통 지망생이 덜컥 오더를 맡는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어.’
초보자 던전도 아니고, 아직 뭐가 있는지 밝혀지지도 않은 신규 던전.
그 오더를 맡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게 고희연의 착각이고, 그냥 좀 실력이 뛰어난 루키인 거라면 거절할 테고.
예상대로 뭔가 있는 ‘난놈’이라면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자, 어떻게 나올까?’
* * *
‘요놈 봐라.’
나는 고희연을 바라봤다.
이 앙큼한 녀석은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고희연이 눈이 좋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마 내게서 뭔가 특별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상대가 땅거미였던 만큼, 전력은 쓰지 않았는데.’
내가 드러낸 실력은 딱 은혜와 비슷한 수준.
하긴 그것도 지망생 중 특출하게 뛰어난 상위 1% 정도다.
당연히 눈이 갈 수도 있지만, 고희연의 눈을 무시할 수는 없다.
“둘 다 안 한다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겠네.”
일단 고희연의 의도대로 오더 역할을 맡는다.
그와 동시에 영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치 부담된다는 듯한 한숨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관찰하던 고희연의 눈이 복잡해졌다.
‘애매하지?’
아마 지금쯤 생각이 더 많아질 것이다.
적당히 실력을 보일 생각은 있었지만, 너무 깊게 파고들면 곤란하다.
더 생각할 틈도 주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한편으로는 이 어두컴컴한 통로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미터 조금 못 되는 높이에, 좁은 넓이.
전투가 벌어진다면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이 이후에, 어땠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순간,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
마나 라이트 이외의 광원이 나타난 것이다.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이끼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와. 서준아. 이건 뭐야?”
“발광 이끼. 빛이 들지 않는 던전에 자라는 식물이야.”
“신기하다. 식물이 빛을 내다니.”
은혜는 신기하다는 듯 이끼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고희연은 그런 은혜를 보고 쿡쿡 웃었다.
“은혜 언니는 완전 초보네요. 귀엽다.”
“모, 모를 수도 있지.”
은혜는 꾸물꾸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분명 동생일 텐데, 어째 고희연이 은혜를 귀여워하고 있었다.
“조용히 해. 울린다.”
내 한마디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 고희연은 은혜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한 것이리라.
배려는 고마웠지만, 은혜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경험이었다.
오더의 말에 따라 움직이며, 철저히 던전을 공략해 나가는 경험.
“정지.”
나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바로 뒤따라오던 고희연과 그 뒤쪽에서 오던 은혜가 차례로 멈췄다.
“앞쪽 지반이 약해. 아마 무너질 거야.”
“어떻게 알아요?”
“발로 밟았을 때 감각으로.”
“그게 말이 돼요?”
“이쪽으로 와 봐,”
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반면 은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발끝으로 바닥에 쭉 선을 그었다.
“선 너머 지면에 귀를 가까이해 봐. 너무 세게 누르지는 말고. 무너진다.”
유은혜는 조심히 무릎을 꿇고 귀를 가까이 댔다.
고희연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땅을 짚고 땅에 귀를 가까이했다.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은혜였다.
“바람 소리?”
“진짜네요. 공간이 있어요.”
“잠깐만. 또 다른 소리도 들려.”
은혜의 말에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소리는, 내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꾸륵, 꾸르륵.
뭐랄까.
이물질 섞인 구정물이 좁은 배수로를 통과하는 듯한 소리였다.
은혜는 소름 돋는다는 듯 귀를 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반면 고희연은 이 소리가 뭘까 유추하는 것 같았다.
“땅거미?”
“땅거미가 도대체 뭘 하는데 이런 소리를 내?”
“몰라요. 식사 중인 거 아닐까요?”
틀렸다.
이 너머에 있는 괴물은 땅거미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 던전이 땅거미만 나오는 던전이었다면, 던전의 이름은 ‘붕괴한 백화점’이 아닌 ‘땅거미 굴’이었을 것이다.
“보스일 거야.”
“보스요? 에이. 설마요.”
나는 침묵했다.
이 던전은 일반적인 구조와 조금 달랐다.
평범한 던전의 경우, 온갖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함정이나 괴물들이 즐비해 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 했다.
그러나 이 던전에는, 달랑 보스 하나가 전부다.
‘문제는 그놈이, 지금 사냥하기에는 좀 세다는 건데.’
성수현을 필두로 한 기사단 소속 사냥꾼 다수.
거기에 고희연을 필두로 한 고려검가 소속 사냥꾼 다수.
그 많은 사냥꾼이 나서서 사냥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퀘스트는.’
던전, 붕괴한 백화점을 공략하는 것.
여기서 공략이란 던전의 주인, 즉 보스의 완전한 절명을 의미했다.
어쨌든 보스를 사냥해야만 끝낼 수 있었다.
“직접 확인하는 편이 빠르겠지.”
“네? 자, 잠깐만요!”
나는 창을 거꾸로 잡고, 지면을 찍었다.
그러자 내 말대로 땅이 무너져 내렸다.
우르릉.
내가 선을 그어 놓은 쪽은 무너지지 않았기에,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다.
고희연과 은혜는 식겁한 듯 뒤로 물러났다.
아래에 괴물이 있기에, 고희연은 섣불리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신 심장을 진정시키며 내게 속삭였다.
“예고 좀 해 주세요. 제발.”
“서준아. 아까 그런 건 좀, 자제해 줘. 휴. 나 심장 아파.”
은혜의 의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나는 둘을 조용히 시키고, 내려앉은 지면 너머를 내려다봤다.
고희연이 경악했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