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인간성을 대부분 잃어버렸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유은혜의 물음에, 에르제베트는 설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성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를 어린아이라지만, 설아는 상당히 영특하다.
말의 맥락이나 분위기를 통해서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처음 이서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도 설아였다.
에르제베트는 말을 이어 나갔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고장 난 거야.”
“고장이요?”
“그래. 감정이라는 나사가 죄다 빠져 버린 거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 듯, 유은혜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억을 되새겼다.
단순한 컨디션 난조라기엔 이서준은 너무 말이 없었다.
묻는 말에는 대답하는 것 같았으나, 말에 감정이 빠져나간 듯한 느낌.
심지어 설아의 그림은 물론, 설아 본인에게도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은혜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왜, 왜 서준이가 그렇게 돼요? 그 아티팩트 때문에요?”
“그래. 말했잖아. 억지로 힘을 끌어다 썼다고. 감정에서 끝난 게 아니라, 의지까지 잃어버렸어. 말만 들을 뿐이지, 사실상 식물인간이 된 셈이지.”
유은혜는 이서준을 바라봤다.
에르제베트가 갑작스레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서준은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람이 아닌 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나사가 죄다 빠져나갔다.
에르제베트의 말뜻이 확 와닿았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어?”
유은혜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어찼다.
말인즉슨, 이서준이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아자누스를 사냥했다는 얘긴데.
“왜요?”
“응?”
“왜, 그렇게까지 한 거예요?”
혼란스러웠는지, 유은혜의 말은 조금 두서없었다.
하지만 대충 무슨 질문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이서준에게 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에르제베트는 눈을 감고 조금 고민하다가, 진실을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유은혜, 네가 죽었을 테니까.”
이서준이 인간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자누스를 사냥한 이유는 하나.
유은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유은혜는 황망히 이서준을 응시했다.
“서준아.”
“응.”
유은혜의 부름에, 이서준이 대답했다.
에르제베트가 이서준의 상태를 확인한 탓일까.
감정이 사라졌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유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지금 저거, 다 사실이야? 나 살리려고, 인간성을 잃어버렸다는 거.”
원래의 이서준이었다면, 유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아닌 척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서준은 몇 번이고 인간성을 갉아먹혔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이서준은 달랐다.
장난이었다고 밝히지도 않았고, 아닌 척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것이 진실이었기에, 너무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응.”
유은혜는 말을 잃어버렸다.
그저 소리 없이 입만 달싹거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거운 죄책감이 어깨를 잡아 눌렀다.
늪으로 점점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르제베트는 유은혜를 진정시키듯 말했다.
“네 탓이 아니야.”
“……어떻게 제 탓이 아니에요?”
“유은혜.”
“제가 멍청하게 아자누스 사냥하겠다고 가까이 가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아니. 유은혜 네가 거기서 어떤 선택을 했든 간에, 아자누스와 너는 조우했을 거야.”
에르제베트의 말은 사실이었으나, 유은혜가 이를 납득할 리 없었다.
자신의 선택이 이서준의 선택을 낳았고, 이서준이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짙은 죄책감이 유은혜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렸다.
에르제베트는 최대한 단어를 골라서 말했다.
“운명의 분기점이 되는 건 이서준이었어. 이서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서준은 자신의 인간성과 네 목숨을 맞바꾸는 걸 선택했을 뿐.”
유은혜는 에르제베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운명이 뭔지, 왜 이서준밖에 할 수 없는지.
그리고 이서준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반지를 이서준에게 준 건 나야.”
“……네?”
“반지가 인간성을 갉아먹는다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그래야 했어.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으니까.”
“그런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를, 어떻게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죠?”
에르제베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은혜가 오롯이 죄책감을 떠안는 걸 바라진 않았다.
‘왕의 반지는 이서준에게 필요한 아티팩트였어.’
회귀 후, 언제 갑작스레 벌어질지 모르는 이서준의 고유 퀘스트.
그리고 크고 작은 나비효과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이었다.
에르제베트는 왕의 반지에 저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저주를 푸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에르제베트는 마녀니까.
‘필요악 같은 거지만, 설명하기가 좀 곤란하네.’
이는 미래의 강력한 아티팩트를 이서준에게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나비효과를 줄이려면, 결함이 있는 물품을 줘야만 했다.
강대한 아티팩트를 이서준에게 주려면,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나비효과를 감수해야 했다.
이서준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나비효과가 잇따르고 있는 와중에,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결함품을 줘서 나비효과를 최대한 줄이고, 이서준의 전력을 보강한 것이다.
실제로 이서준 왕의 반지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여태껏 위기를 몇 차례나 넘겼다.
‘……나를 원망해도 좋으니까, 죄책감을 덜면 좋을 텐데.’
그러나 유은혜는 남을 원망할 성격이 못 됐다.
에르제베트를 몰아붙인 것도 잠시뿐이었다.
결국 깨달은 것이다.
“그걸 무리해서 사용하게 만든 건 결국 저라는 건, 변하지 않네요.”
“자책하지 마. 이서준이 이러려고 너를 살린 게 아닐 테니까.”
“엄마.”
설아가 유은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감정이 전달이라도 된 건지, 덩달아 울상이다.
유은혜는 설아를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자,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심호흡한 유은혜는 죄책감을 애써 억눌렀다.
에르제베트의 말마따나, 자책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럼, 치료는요?”
“응?”
“잃어버린 인간성이요. 다시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으음. 이서준은 아자누스 사냥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왕의 반지를 사용했어.”
유은혜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서준은 평소에도 정말 강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이따금 말도 안 되는 폭발력을 보여 주곤 했다.
그것이 반지의 사용으로 나온 결과라면, 어느 정도 말이 들어맞는다.
“그런데, 이서준의 인간성은 끝까지 멀쩡했거든.”
이서준이 여러 차례 왕의 반지를 사용한 여파로 인간성을 전부 잃어버렸다면.
인간성을 희생하면서 유은혜를 살린다는 선택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사용한 영혼이 지금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긴 했지만.”
“회복할 방법이 있을 거라는 얘기네요.”
“맞아. 아마 이서준 나름대로 인간성을 회복할 방법을 모색한 거겠지.”
“반지를 준 건 에르제베트 씨라고 하셨죠. 그럼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도…….”
“나도 몰라. 애초에 반지의 소유주는 내가 아니니까.”
“그럼, 서준이는 알고 있을 거라는 거죠?”
유은혜는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곧장 이서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면, 이서준은 유은혜를 보지 않았다.
유은혜는 이서준의 양쪽 뺨을 잡고, 고개를 자신에게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서준아.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이 뭐야?”
지금 이서준에게는 감정뿐만 아니라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기억은 온전했고, 묻는 말에는 전부 사실대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유은혜의 질문에, 이서준은 눈동자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설아가 있었다.
“설아.”
“설아?”
“설아 테라피.”
* * *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거야?”
“일단 서준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이서준은 인간성 회복의 방법이 설아 테라피라고 했다.
가끔 이서준이 장난식으로 말하는 단어였다.
테라피라고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것 없다.
그냥 설아를 품에 안고 예뻐해 주는 게 전부다.
“아빠 많이 아픈가 봐요.”
설아는 유은혜의 요청에 따라, 이서준의 허벅지에 올라가 있었다.
평소라면 이 시점에서 이서준은 온갖 주접을 떨어 대며 설아를 예뻐라 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제 무릎에 앉은 설아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으음. 이게 설아 테라피가 맞아?”
“설아 예뻐해 주면서 힐링하는 걸 설아 테라피라고 가끔 하긴 했는데.”
설아는 고개를 들어 이서준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애초에, 이건 얹어 놓은 것에 가까웠다.
“아빠 무서워요. 아빠가 아빠가 아닌 것 같아요.”
설아는 울상이 됐다.
아무래도 설아 테라피는 이서준에게 인간성을 회복할 의지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 같았다.
지금의 이서준은 자신이 인간성을 잃어버렸다는 자각이 있었으나, 회복하고자 하진 않았다.
감정과 함께 의지까지 함께 잃어버린 탓이었다.
“별 효과 없는 것 같네.”
“그럼, 어쩌죠?”
유은혜는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일한 희망은 너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설아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에르제베트는 유은혜를 달래듯 말했다.
“그래도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어. 전부 다 잃어버렸다면 대답도 못 했을 거야.”
“그건 다행이긴 한데, 고칠 방법이 더 없는 거 아닌가요?”
“없는 건 아니야. 인간성은 살아 있는 나무 같은 거라서, 천천히 자연 회복되긴 하거든.”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어디 보자, 사람이 자아 형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랑, 이것저것 계산해 보면…….”
에르제베트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무언가를 계산했다.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 7년쯤?”
“……7년 동안 이렇게 둘 수는 없어요.”
지금의 이서준은 꼭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된 데에는 유은혜의 책임도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유은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으음. 없진 않지……?”
에르제베트는 조금 애매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꺼져 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유은혜는 알려 달라는 듯 에르제베트를 바라봤다.
“뭔가요?”
“확실하진 않아. 어디까지나 내 이론이고.”
“그거라도 부탁드려요. 뭐라도 좋으니까.”
유은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자신 때문에 이서준이 이렇게 됐으니, 책임지고 돌려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에르제베트는 이서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설아를 안아들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안긴 설아를 유은혜에게 넘긴다.
유은혜는 얼결에 설아를 받아 들었다.
“설아를 안고 있으면, 어때?”
유은혜는 설아를 내려다봤다.
동글동글한 눈과 눈이 마주쳤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귀여워요.”
“유은혜 네가 느끼는 감정은?”
“행복하죠. 사랑스럽고.”
설아는 유은혜의 품에 파고들었다.
원래라면 이서준에게 자주 이러지만.
지금의 이서준은 설아를 받아 줄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설아는 지금의 이서준이 조금 무서운 듯했다.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가설이긴 하지만, 이서준의 인간성을 회복시키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