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스승님. 아빠, 많이 아파요?”
“괜찮을 거야.”
이서준의 집.
에르제베트는 평소처럼 설아를 가르치고 있었다.
고양이 모습이 아닌 본체라는 것이 조금 달랐지만.
이렇게 가르쳐 주니 직접 마법을 보여 줄 수 있어서 편했다.
하지만 설아는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도 달라진 이서준이 신경 쓰이고, 걱정도 되는 것 같았다.
“설아는요. 아빠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같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설아도 평소처럼 해 주면 돼.”
“으응.”
설아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이서준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 주고 사랑해 주던 사람이 돌연 바뀌어 버렸다.
어린 설아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른 아이였다면 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스승님.”
“응. 왜?”
“설아가 더 셌으면, 아빠는 안 아팠을까요?”
에르제베트의 교육을 통해, 설아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자각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설아는 힘을 조절할 때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따금 감정이 격화될 때 저절로 마법이 사용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스스로 최대한 마나를 제어하기에 마법이 새어 나오는 빈도가 그나마 줄어든 것이다.
더불어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설아는 이미 강해.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엄마, 아빠가 다칠 수 있다고 말했지?”
“네.”
에르제베트는 이런 식으로 힘 조절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본격적으로 마법을 가르친다기보다는, 먼저 제어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설아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엄청난 마나를 무의식적으로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게 먼저야.”
“……네.”
설아는 조금 풀이 죽었다.
설아 테라피는 이서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한 느낌에 내심 슬픈 상태였다.
에르제베트는 화제를 돌렸다.
“저번에 가르쳐 준 건 할 수 있어?”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과 유은혜가 자리를 비웠을 때나, 혼자 놀 때 이따금 연습하곤 했다.
에르제베트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설아에게 건넸다.
설아에게는 크게 느껴지는, 큰 페트병이었다.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보여 줄래?”
“약하게.”
설아는 물병을 향해 손을 뻗고 중얼거렸다.
온몸에 힘을 쭉 뺀다.
“약하게, 약하게, 엄청나게 약하게,”
말을 중얼거리면서, 힘을 약하게 사용하는 걸 의식한다.
설아의 맹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너무 강한 나머지, 힘을 조절할 수 없다.
‘가득 찬 댐에서 물을 한 컵만 방류하는 셈이니까.’
어려운 게 당연했다.
보통 어린아이라면 싫증을 내거나,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설아는 마법을 배우는 데 있어서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서준과 유은혜를 걱정시키는 만큼 도와주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머지않아, 페트병이 얼어붙었다.
쩌억!
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제베트가 설아에게 연습시킨 것은, 페트병 내부의 물만 얼리는 일이었다.
설아가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않는다면, 공기 중의 수분까지 전부 얼려 버렸을 것이다.
에르제베트는 페트병을 매만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페트병 표면에 달라붙은 수분이 얼어붙어 있었다.
얇은 얼음이 페트병을 둘러싸고 있었다.
원래 과제가 페트병 내부의 물만 얼리는 것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실패였다.
그러나.
‘개인 시스템이 업데이트된다면, 마나 제어 능력이 올라갈 테니까.’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회귀 전과 달리, 지금의 설아는 공격성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산골렘을 사냥하고, 악마를 막을 때를 제외하면, 공격적인 마법 자체를 사용한 일이 없다.
집을 무너트린 전적이 있다지만, 그건 마법을 사용했다기보다는 마법이 사용된 것에 가까우니 말이다.
‘이 정도면.’
이서준은 당장의 폭풍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비효과란 원래 점진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설아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서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언제까지 이서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진 않을 테니까.’
설아가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이서준은 아직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에르제베트는 강행하기로 했다.
물론 마법의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교육할 생각이었다.
“좋아. 설아야.”
“네.”
“조금 이르지만, 다음 단계로 가자.”
“다음 단계요? 뭔데요?”
“소환 마법.”
* * *
지금의 이서준은 반지의 부작용으로 인간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가식적으로 굴거나,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이서준은 진심으로 유은혜가 죽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유은혜를 살린 것이다.
유은혜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이서준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찹, 찹.
유은혜는 화끈거리는 양 볼을 손바닥으로 살짝 치며 정신을 차렸다.
스스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준이 인간성을 잃어버린 심각한 상황인데.
어째선지 유은혜는 이서준에게 조금 설렜다.
‘지금 상태가 이런데, 무슨.’
유은혜는 잠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금 진정되자, 울적해졌다.
‘귀신의 집도, 번지점프도 소용없었고.’
놀이공원에 간 김에, 유은혜는 이서준을 번지점프 시켰다.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미터 낙하를 시켰는데, 이서준은 멀쩡했다.
번지점프 안내원도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내려가는 순간 자동으로 찍힌 사진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는 이서준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얘 헬기에서도 뛰어내렸지 참.’
이서준은 고소공포증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공포라는 감정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서준 앞에서 죽는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구해 줬는데, 그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될 것 같았다.
“돌아가자.”
체념한 유은혜는 이서준과 택시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은 운행을 중지한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유은혜는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
지금이라면 이서준이 무슨 말이든 간에 대답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 물어보면 안 되겠지.’
이서준도 숨기고 싶은 게 있을 거다.
말하지 않았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은혜는 이서준에게 뭔가 질문하는 걸 되도록 삼가기로 했다.
이서준의 인간성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은 예외였지만 말이다.
“아으.”
유은혜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이서준은 미묘하게 유은혜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많았다.
이를테면 왕의 반지와 에르제베트의 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끝내 유은혜는 질문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
택시에서 내린 유은혜는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사람과 마주쳤다.
아자누스 사냥 당시, 유은혜와 함께 있었던 인물.
회귀 전후, 유은혜를 죽음으로 떠민 장본인.
성수현이 그곳에 있었다.
“아. 여기 있었군.”
공동현관 앞에 서 있던 성수현이 유은혜에게 다가왔다.
유은혜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성수현이 아자누스 앞에서 자신의 등을 떠밀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둘 다 무사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무슨 일이시죠?”
유은혜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아무리 사람을 편견 없이 보는 유은혜라고 해도, 성수현은 껄끄러웠다.
여태껏 왜 이서준이 성수현에게 적의를 드러내는지 알기 어려웠는데.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너무 경계하는 거 아닌가?”
“할 얘기 없는데요. 돌아가 주세요.”
“들어 보는 게 좋을 텐데.”
단호한 거절에도, 성수현은 여유로웠다.
불안해진 유은혜는 이서준을 잡아끌었다.
무시하고 지나갈 심산이었다.
성수현은 옆을 지나쳐 간 유은혜의 어깨를 붙잡았다.
“용건이 있다고 했을 텐데.”
“저는 할 얘기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그렇다면, 나도 일을 키우는 수가 있어.”
“무슨 말씀이시죠?”
“유은혜, 아자누스는 너를 노리고 있었다.”
유은혜는 이에 반박하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성수현은 말을 이어 나갔다.
“서울이 이렇게 된 것도 네 탓이라는 거지.”
“그게 무슨 억지죠?”
“네가 아자누스를 이곳에 불러들인 거다.”
유은혜는 진심으로 성수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자누스를 불러들인 건 유은혜가 아니었다.
“난 이 사실을 언론에 공표할 생각이다.”
“저는 아자누스를 불러들인 적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군.”
성수현은 핸드폰을 유은혜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아자누스와 미전조 균열에서 나온 악마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다룬 인터넷 기사였다.
이서준의 초기 진압으로 사상자 자체는 말도 안 되게 적었으나,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사냥꾼도 다수 사망했고, 민간인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을 거다. 여기에 더해서 아자누스로 인한 천문학적인 피해까지, 오롯이 네가 떠안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구설수가 많긴 해도, 성수현은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다.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다면 비난의 화살을 유은혜에게 돌리는 것도 간단한 일일 것이다.
마녀사냥의 제물로 삼겠다는 얘기였다.
“허위 사실 유포예요. 증거 있어요?”
“나 같은 일류 사냥꾼의 슈트에는 전투 시 녹화 기능이 있다. 난전에서 사냥한 괴물의 소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지.”
성수현은 핸드폰을 조작해, 다른 영상을 틀어 보였다.
조금 낮은 시점의 동영상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건물을 부수며 널따란 도로 밖으로 아자누스가 튀어나왔다.
동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지막지한 크기가 체감됐다.
아자누스와 마주한 다른 사냥꾼들이 주춤 물러섰다.
성수현은 앞쪽에 있던 유은혜의 등을 퍽 떠밀었다.
-어?
유은혜가 허무하게 떠밀려 나갔다.
당황한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돌아본다.
성수현은 검을 뽑아 들었다.
검 끝은 아자누스가 아니라, 유은혜를 겨누고 있었다.
-저 여자다.
-뭐?
-무슨 소립니까?
-저 여자를 쫓아온 거다. 저 괴물은.
성수현은 확인하듯 아자누스 쪽을 봤다.
아자누스는 분명히 사냥꾼 무리에서 고립된 유은혜를 보고 있었다.
다른 사냥꾼들도 성수현을 따라 유은혜에게 무기를 들었다.
‘저 영상을 증거로 제시한다면.’
유은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성수현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어쩌면 설아나 이서준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짓을 해서 성수현 씨한테 무슨 이득이 있죠?”
말려들기 싫었지만, 유은혜는 성수현의 말을 끝까지 듣는 수밖에 없었다.
성수현은 유은혜에게 붙잡혀 있던 이서준 쪽으로 슥 눈을 돌렸다.
“두 가지 제안만 받아들인다면, 입 닫고 있겠다. 먼저, 서울헌터옥션 습격 사건의 범인이 이서준임을 자백할 것.”
“서울헌터옥션 습격 사건이요?”
유은혜는 인상을 찡그렸다.
꽤 오래전에 뉴스를 통해 접한 사건이다.
용의자는 불카누스의 백상명과 엮여 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이서준이 그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해야 한단 말인가.
“두 번째, 아자누스 사냥의 보상. 즉, 전리품을 내게 넘길 것.”
“둘 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첫 번째는 모를 수 있지. 하지만 두 번째는 아닐 텐데.”
이서준은 베일에 싸인 아자누스 사냥꾼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무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아직 신인이기에 용의선상에서 살짝 벗어난 상태였지만.
하이람이 속한 길드, 스펙터의 길드장이라는 것과 창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주목을 모았다.
무엇보다, 유은혜가 엮여 있다는 사실이 성수현에게는 결정적 증거였다.
“아자누스를 사냥한 게 이서준이라는 건 알고 있다.”
성수현은 이서준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정곡이 찔렸나? 상당히 화난 것 같군.”
현재 이서준은 인간성을 잃어버린 상태다.
무표정을 화난 것이라고 착각한 걸까.
유은혜는 무심코 옆에 있던 이서준을 올려다봤다가, 눈을 의심했다.
이서준의 눈동자에는, 분명히 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