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유은혜와 하이람은 편의점 바깥에 배치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날씨는 선선한 편이었다.
하이람은 편의점에서 사 온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유은혜는 그런 하이람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언니도 그런 거 마시는구나.”
“왜. 이상해?”
“막 고급, 핸드 드립 커피, 그런 거 마실 줄 알았어요.”
“난 쓴 거 별로 안 좋아해. 달달한 게 입에 맞더라.”
“귀엽다.”
하이람은 귀를 의심했다.
이내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질색했다.
“으.”
“왜요?”
“나는 귀여운 거랑은 연이 없는 사람이야.”
“그래요? 아닌데.”
“말을 말자.”
다리를 꼬고 앉은 하이람은 캔 커피만 홀짝였다.
유은혜는 음료수를 입에 대지도 않고 한참 머뭇거렸다.
하이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서준이 때문인데요.”
“이상하다고 했지? 병원에서 퇴원해도 괜찮다고 한 거 아니야?”
“그건 그런데, 실은…….”
유은혜는 하이람에게 이서준의 현 상태를 전달했다.
왕의 반지를 사용한 탓에 인간성을 잃어버렸다는 것.
차츰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감정은 옅은 상태라는 것까지.
하이람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긴 한데. 진짜예요.”
“믿어. 꼬맹이가 마법 쓰는 것까지 봤는데 뭐.”
“아. 설아는…….”
“떠벌리고 다닐 생각 없어. 걱정하지 마.”
유은혜와 하이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자누스 사냥 건에 대해서도 숨겨 주고 있는 하이람이다.
유은혜는 하이람을 신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언니.”
“감사 인사받자고 이러는 거 아니야. 사람 된 도리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이가 위험하다.
하이람은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아이에게 악의를 가질 리 없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성수현이 떠오른 유은혜는 잠깐 인상을 찡그렸다.
“사랑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했지?”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럼 까짓거, 사랑 좀 해 주면 되는 거 아니야?”
하이람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유은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너무 생각이 많나 봐요.”
“뭐 걸리는 게 있어? 이서준이 너한테 청혼까지 했다고 알고 있는데.”
“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쩌다 보니.”
하이람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서준이 고자인지 아닌지 물어보다가 알게 됐다고 할 수는 없었다.
유은혜는 복잡하다는 듯 눈을 꾹 감고 생각했다.
“받았어요. 받았는데…….”
“뭐가 문젠데?”
“서준이가 저를 정말 좋아해서 그런 걸까요?”
“무슨 소리야?”
“저랑 서준이 사이에는 설아가 있잖아요. 그래서, 책임지려는 생각에 그런 건 아닐까…….”
하이람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이서준은 하이람 앞에서 유은혜가 좋다고 몇 번이나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심지어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선을 긋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유은혜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서준이 너 좋다고 안 하디?”
“……어, 모르겠어요. 가끔 장난식으로 말하긴 했는데.”
“어이없네. 걔는 또 왜 그런담.”
하이람은 상당히 답답해 보였다.
유은혜는 조금 주눅이 들었다.
“자. 들어 봐. 객관적으로 말해 줄게.”
“네? 네.”
“너희 사이에 딸 있지.”
“있죠.”
“같이 키우고 있지?”
“그렇죠?”
“거기에, 동거 중이지?”
“……그렇죠.”
“우리는 그걸 두고 사실혼이라고 부르기로 했거든?”
사실상 부부의 관계에 있으나, 혼인신고만 안 한 상태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서준과 유은혜는 멀리서 볼 때 단란한 부부 그 자체였다.
설아까지 키우고 있어서, 더 나아가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하이람은 왜 이서준과 유은혜가 진즉 맺어지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설아 낳았다는 거, 서준이는 5년 동안 몰랐어요.”
유은혜는 조금 힘겹게 말을 꺼냈다.
캔 커피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저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친척도 없거든요. 그런데 집이 무너지니까, 갈 곳이 진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수소문해서, 연락도 없이 대뜸 설아 데리고 서준이를 찾아간 거고요. 염치없긴 해도, 그래도 애아빠니까, 잠시 머무르게 해 주진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 불안했어요. 가면서도 솔직히, 문전박대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준이는 저랑 설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 주더라고요. 무슨 바보처럼.”
유은혜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애가 생기면 당황할 법도 한데, 서준이는 설아를 너무 예뻐라 해 주고, 게다가 제가 사냥꾼 되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어요.”
하이람은 유은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서준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들은 것만 두고 보면 조금 호구 같은 면이 다분한 것 같기도 했지만.
이서준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아를 책임지려는 생각에 청혼한 거라면, 그걸 제가 답삭 받아 버린다면,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닐까요?”
“만약에 이서준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쳐 봐. 너한테는 감정이 없고, 정말 책임지려는 생각에 청혼했어.”
하이람의 말에, 유은혜는 조금 울상이 됐다.
드러낼 생각은 없었지만, 얼굴에 서운한 게 드러났다.
당황한 하이람이 말을 덧붙였다.
“만약이야. 만약. 그렇다는 게 아니야. 울지 마.”
“……저 안 울어요.”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했기에, 유은혜 본인도 말하면서 조금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이람은 유은혜가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유은혜를 달래려는 듯, 조금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아무튼,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렇다고 해 보자.”
“네.”
“그럼 이서준이 싫어?”
“아뇨.”
유은혜는 빠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기 자신도 말하고 조금 놀랄 정도였다.
하이람은 이제 좀 말이 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걔 감정이 아니라, 일단 네 감정이 어떤지가 중요한 거잖아.”
유은혜는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이서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 본 적은 많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좀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마음은 어떤데?”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럼 이서준, 내가 가져간다?”
유은혜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이람은 턱을 괴고 그런 유은혜가 귀엽다는 듯 빙글빙글 웃었다.
명백히 놀리는 투였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유은혜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안 그래도 결혼하라고 난리거든. 아빠도 이서준이면 사윗감으로 좋을 것 같다고 했어.”
“아, 안 돼요!”
“왜?”
“서준이는, 어, 애도 있고.”
“뭐 어때. 애 딸린 남자라도 사람만 괜찮으면 됐지. 매력적이잖아. 능력도 있고.”
“안 돼요. 안 되는데.”
“그러니까, 왜 안 되는 건데?”
유은혜는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하이람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걸까.
“농담이었어.”
“아? 휴. 깜짝 놀랐어요.”
“이거 봐. 은혜 너, 이서준 좋아하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럼 내가 이서준 가져간다고 했을 때, 왜 그랬어?”
“……진짜 그런 걸까요.”
자신의 마음을 좀처럼 종잡지 못하는 유은혜를 보며, 하이람은 난항을 예상했다.
아무리 봐도, 둘 중에 훨씬 능동적인 쪽은 이서준이다.
분명 옛날에 사귀었을 때도 이서준이 적극적인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서준이 인간성을 잃어버린 상황이라고 하니.
“너희 사귀었잖아. 대학교 때. 그렇지?”
“네. 맞아요.”
“그때는 이서준이 뭐가 그렇게 좋았는데?”
하이람의 질문에, 유은혜는 기시감을 느꼈다.
옛날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새내기 시절, 유은혜는 같은 학과 친구들과 모여서 비슷한 화제로 얘기했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연락도 안 하는 친구들이었다.
-우리 오빠는 직장인이라, 돈 되게 잘 벌어. 저번에는 이거 선물해 주더라니까.
-내 남자 친구는 너무 잘생겨서 탈이야. 저번에 캐스팅 제의까지 왔다니깐.
-우리 애는 성격이 지나치게 좋아. 힘들다고 하니까, 집 앞에 와 준 거 있지.
카페에 둘러앉은 친구들은 모두 은근히 남자 친구를 자랑하기 바빴다.
유은혜는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한 친구가 유은혜에게 질문했다.
-은혜 너는 뭐가 아쉬워서 이서준이랑 사귀는 거야?
-맞아. 맞아. 걔 말고도 괜찮은 사람 많잖아.
-은혜 정도면 마음에 드는 애 골라서 사귈 수 있을 텐데.
유은혜는 이서준의 장점에 대해서 고민했다.
간간이 아르바이트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라, 당연히 돈은 없다.
잘생겼냐고 묻는다면,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긴 하지만 특출하게 잘생기진 않았다.
성격이 좋다기엔 당시의 이서준은 좀 게으르고 무책임한 편이었다.
-우리 은혜가 너무 아까워.
-내가 남자였으면 노렸어.
-난 사실 지금도 노리고 있어.
친구들은 장난을 쳤지만, 유은혜는 내심 속상했다.
친구들에게 이서준이 너무 저평가받는 것 같았다.
유은혜는 문득 이서준의 특출한 장점 하나를 떠올렸다.
입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것보다는 남자 친구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심호흡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 서준이는……!
친구들은 유은혜의 말을 듣자마자 눈빛이 변했다.
그날 이후로, 이서준이 과에서 무시받는 일은 없었다.
유은혜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서준이는, 침대에서……!”
“야, 은혜야. 스탑.”
하이람이 유은혜를 만류했다.
애까지 있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 버린 느낌이었다.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았어. 멈춰.”
“네? 네.”
“……얘를 어쩜 좋니. 생각난 게 그거야?”
유은혜는 자기가 말해 놓고 부끄럽다는 듯 움츠러들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는 확실하게 끄덕인다.
하이람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설마 얌전한 유은혜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여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것도 많은데, 갑자기 떠올라서.”
“다른 사람 연애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생각해 봐.”
“무슨 생각이요?”
“이서준은 너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성을 버린 거잖아.”
“네. 그렇죠.”
하이람은 이서준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인간성을 잃어버린 이서준은 감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감정이 사라진다니, 상상하기도 싫은, 무서운 일이었다.
정신적인 죽음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서준은 자신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감수하고, 유은혜를 구했다.
하이람은 묘한 눈빛으로 유은혜를 응시하며 말했다.
“걔도 바보는 아니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서, 인간성을 포기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