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아빠, 일어나세요.”
설아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한 감각에 눈을 뜨니, 설아가 배 위에 올라와 있었다.
내가 일어난 것을 본 설아가 배시시 웃었다.
눈을 뜨자마자 행복했다.
“혹시 제가 죽은 건가요?”
“응? 아빠 안 죽었어요.”
“근데 왜 눈앞에 천사가 있죠?”
“천사요?”
“앗, 잘 보니까 천사가 아니라 설아 같기도 하고.”
“헤헤. 천사님 아니고, 설아예요.”
나는 설아를 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안고 있으니 잠이 솔솔 온다.
설아도 기분 좋게 내 품속으로 파고들더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한다.
“어이구. 얼른들 일어나세요.”
창가에 있던 은혜가 기다렸다는 듯 커튼을 걷었다.
햇빛이 방을 비추자, 나는 반사적으로 이불을 끌어 올렸다.
설아와 함께 이불 속에 숨었다.
빛은 위험하다.
졸음이 달아난다.
“이게 진짜. 얼른 안 일어나?”
은혜는 이불을 뺏어 가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패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배 위에 엎드려 있던 설아를 내 얼굴 위로 끌어 올렸다.
말랑말랑한 배가 얼굴을 누른다.
은혜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뭐 해?”
“설아 안대.”
“풉, 우리 설아 안대 아니거든? 얼른 일어나.”
은혜는 결국 설아마저 내게서 뺏어 가고 말았다.
천국을 빼앗긴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벌써 대낮이었다.
“나 얼마나 잤어?”
“글쎄. 한 9시간 정도?”
“어쩐지. 오래도 잤네.”
이렇게 푹 잔 건 오랜만이었다.
스물여섯 살의 내 몸 상태는 엉망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라이선스 시험 전까지는 평범한 수준으로 돌려놔야 했다.
요즘은 잠을 줄여 가면서 창술 연습과 체력 단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너는 좀 푹 쉬어야 해.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은혜는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단순히 창술 연습과 체력 단련이라면, 힘들지 않았다.
회귀 전에 십수 년 동안 해 온 걸 생각하면, 아직 몸풀기 수준이었으니까.
“가끔 설아를 보면 심장에 무리가 오긴 하지.”
농담으로 말을 받아넘겼다.
은혜가 정확히 맥을 짚어서 뜨끔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걱정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나비효과.’
또 한 번 미래가 바뀌었다.
성수현이 공략했어야 할 던전을, 나와 은혜가 공략했다.
더군다나 몇 년 후에나 만나게 될 고희연까지 만났다.
그에 따라 찾아올 나비효과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진짜 있긴 한 걸까?’
나비효과는 내 가설일 뿐이었다.
여태껏 발생한 나비효과는 단 한 번.
미전조 균열에서 크리튼 불이 튀어나왔을 때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미래를 바꾼 탓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능성은 고려해야겠지.’
다른 무엇도 아닌 설아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었다.
어느 정도 감각을 되찾긴 했지만, 아직 이 시대 기준으로도 그저 그런 사냥꾼 정도.
설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힘일지도 모른다.
퀘스트가 말한 설아의 불행이 뭔지 모르는 만큼, 더욱 그랬다.
퀘스트 창을 열었다.
이설아의 다섯 가지 불행을 막으십시오. (0/5)
설아의 불행은 아직 하나도 찾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 불안한 감이 있었다.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관계 개선이 아주 순조롭다는 것이었다.
“설아야.”
“네.”
“아빠 좋아?”
“네! 아빠 조아요!”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동시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럼,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엄마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
하지만 예상했던 바인 만큼, 타격은 적었다.
역시 아직 은혜에게는 이기지 못한다.
은혜는 나를 바라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어림도 없지.”
“후. 설아야. 그럼 아빠랑 아이스크림 중에는 어느 쪽이 좋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뭐라도 이겨야겠다.
설아는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음…… 아슈크림!”
설아의 대답이 들리기 무섭게, 은혜는 홱 고개를 돌렸다.
숨죽이고 있지만, 큭큭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패배감에 말을 잃었다.
은혜는 몰라도, 설마 아이스크림에 질 줄은 몰랐다.
설아는 나를 보며 마냥 해맑게 웃었다.
“아슈크림은 맛있어요!”
“됐어. 아빠 삐졌어.”
이미 내 마음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불도 없이 초라하게 몸을 쪼그렸다.
은혜는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서준아. 진짜 없어 보인다.”
“은혜 넌 몰라. 아이스크림한테 지는 내 마음.”
이 집 안에서 설아에게 사랑받는 것은 셋이 있다.
유은혜가 제일이고, 두 번째는 아이스크림.
이서준은 최하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설아야.”
“응!”
고독을 씹고 있자, 설아가 살금살금 침대로 올라왔다.
은혜와 말을 주고받는 걸 보니 뭔가 작당 모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모른 척 우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설아가 내 머리 옆으로 왔다.
쪽.
볼에 말랑한 입술이 잠깐 닿았다.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헉. 설아야. 아빠 뽀뽀해 준 거야?”
“네!”
설아는 종종 은혜에게 뽀뽀를 해 줬다.
하지만 내게 뽀뽀해 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회귀 전을 포함해서, 난생처음으로 받는 설아의 뽀뽀.
휘몰아치는 감격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이이이, 귀여운 녀석!”
“으히히!”
설아를 낚아채듯 품에 안았다.
설아는 간지럽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기다려라, 아이스크림.’
* * *
적금을 깨고 생활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됐다.
사냥꾼 라이선스 시험만 통과하면 수입원이 생기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당장 쓸 돈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설아 덕분에 무기값은 아끼긴 했지만.’
이것저것 돈 들어갈 곳이 많았다.
한숨을 쉬며 핸드폰으로 잔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숫자를 목격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처음 보는 계좌가 백만 원을 입금한 것이다.
은혜도 습관적으로 계좌를 확인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은혜야. 너도 왔어? 100만 원?”
“어, 어. 이거 뭐야?”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은혜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희연이니?”
고희연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 같았다.
은혜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낭랑한 고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금된 거 확인하셨어요?
“희연아. 이게 무슨 돈이야?”
-무슨 돈이긴요. 루팅하고 남은 돈이죠.
“루팅?”
은혜는 이게 무슨 이야기냐는 듯 내게 고개를 돌렸다.
요즘 은혜는 모르는 게 있으면 습관적으로 나를 보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사냥꾼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선 더욱 그랬다.
“괴물의 사체에서 코어를 적출하고, 소재를 수급하는 거야.”
-아. 서준 오빠도 옆에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거기도 잘 들어갔죠?
“응. 협회 쪽에서 루팅한 거야?”
-아니요. 저희 쪽 루터들이 했어요. 괜찮죠?
“그럼. 당연히 괜찮지.”
라이선스도 없이 루터를 고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상 그라운드 스파이더, 땅거미의 루팅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센스 있게도 고희연이 처리해 준 모양이었다.
-짜바리들이라 큰돈은 안 될 거예요.
“배, 백만 원이면 큰돈이지.”
-라이선스 시험에 통과하시면 이것보다 훨씬 많이 벌어요.
은혜는 조금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여태껏 은혜는 설아를 키우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고 한다.
편의점, 과외, 식당 등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하루 8시간씩 2주는 뼈 빠지게 일해야 들어오는 금액.
그 돈이 고작 몇 분의 전투로 들어왔으니, 저럴 만도 했다.
-이번에 라이선스 시험 보시죠?
“응. 이번 달에 보기로 했어.”
-잘됐다. 일정 나오면 알려 주세요. 응원하러 갈게요.
“으, 응원?”
-네. 아. 설아랑 같이 응원하면 되겠다.
고희연은 상당히 붙임성이 좋았다.
내가 기억하던 것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고려검가로 데려가려는 건가?’
고려검가는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검을 사용하는 사냥꾼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검을 사용하는 사냥꾼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전위만 많아서는 사냥에서 한계가 생기고 만다.
그렇기에 설령 고려검가라 해도, 여러 무기를 쓰는 사냥꾼들이 소속되어 있다.
‘솔직히 혹하긴 하는데.’
고려검가는 한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길드다.
무엇보다, 그 검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훈련 강도를 생각하면 발도 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수지타산을 따져 보자면 이득은 맞았다.
나는 무심코 가슴을 매만졌다.
‘아니, 김칫국 마시지 말자.’
고희연의 속내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악의적으로 접근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렇게 챙겨 주는 걸로 보아, 오히려 호의 쪽에 가까워 보였다.
보상으로 얻은 영약도 설아에게 덜컥 넘겼을 정도니까.
“알았어. 연락 오면 알려 줄게.”
-좋아요. 그때 밥도 먹으면 되겠다. 그쵸?
“그래, 그렇게 하자. 챙겨 줘서 고마워.”
-에이. 의리가 있죠! 아, 설아 있어요?
“설아? 있지. 바꿔 줄까?”
-네!
“설아야.”
은혜의 부름에, 설아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아주 당연하게 은혜의 무릎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받아 봐.”
-안녕하세요. 설아예요.
“꺅! 설아야! 안녕.”
-으응? 누구세요?
“희연이 언니야! 기억하나 모르겠네?”
-쩰리 언니!
“기억하는구나? 어머. 똑똑하기도 하지!”
고희연은 설아와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요는 맛있는 걸 사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통화가 길어지는가 싶더니, 고희연이 말을 끊었다.
-설아랑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저, 이제 끊어야 해요.
“다음에 얼굴 보고 천천히 얘기하자.”
-네에. 죄송해요. 먼저 끊을게요. 나중에 또 통화해요!
전화기 너머로, 고희연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시간을 생각하면, 오후 수련 때문일 것이다.
고희연은 다급히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정말 고맙다. 이렇게 챙겨 주네.”
“그러게.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생활비 문제로 걱정을 안고 있어서일까?
은혜는 감동받은 것 같았다.
둘이 합치면 200만 원.
이로써 라이선스 시험까지 생활비 문제로 골머리 썩을 일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여유까지 생겨 버렸다.
“라이선스 시험 날짜를 생각하면…….”
“아마 넉넉할 거야. 그러니까 일단.”
나는 설아를 바라봤다.
은혜도 설아를 바라봤다.
아마 우리 둘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목소리가 나왔다.
“옷 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