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드넓은 들판을 빼곡히 메운 괴물의 군세.
아티팩트를 통해 만들어 낸,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광범위한 결계.
하루 이틀 안에 준비했다기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즉, 에르제베트와 설아의 위치는 진즉에 탄로 났다.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준비된 대규모 공격이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리고 들판을 살폈다.
웬만한 수준의 물량이라면 정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판을 가득 채운 괴물의 군세는 그 수가 너무도 많았다.
국가를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
현실적인 선택은, 도주였다.
‘설아.’
에르제베트는 일단 후퇴를 선택했다.
오두막에 있는 설아를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설리번은 에르제베트가 자리를 뜨는 것을 견제하듯, 발로 땅을 단단히 디뎠다.
여차하면 달려들 기색이었다.
“외통수다. 마녀.”
“그거 알아? 이 숲 앞이 원래 전쟁터였던 거.”
“뭐?”
뜬금없는 말에, 설리번은 인상을 찡그렸다.
에르제베트는 발로 땅을 두드렸다.
“얘들아. 일어나서 저것들 좀 막아 보렴.”
그 순간.
무언가 설리번의 발치에서 튀어나왔다.
불쑥 튀어나온 것은, 뼈밖에 없는 팔.
팔은 땅을 짚고 제 몸을 땅 밖으로 끌어 올렸다.
스켈레톤(Skeleton).
들판에서도 스켈레톤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수는 족히 수천은 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스켈레톤은 그다지 강하다고 할 수 없는 괴물이다.
간단한 명령에 따르는 정도의 지능밖에 없는 데다가, 힘도 약하다.
드라우그 같은 언데드보다 더 약한, 최약체라고 부를 수 있는 언데드.
설령 이것이 수천 마리가 있든 수만 마리가 있든, 설리번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물며 군세까지 있는 상황에서, 스켈레톤은 몇 초간의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
부웅!
측면에 있던 스켈레톤이 겁도 없이 설리번에게 다가왔다.
설리번은 옆을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나무도 간단하게 양단해 버리는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다.
검날은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완전히 부숴 놓을 것이다.
그러나.
쩌억!
설리번은 손에서 느껴진 묵직한 감각에 경악했다.
고개를 돌리니, 낡고 녹슨 검으로 그레이트 소드를 막아 낸 스켈레톤이 보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고블린이 오우거의 일격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스켈레톤이 아니거든. 애 좀 먹을 거야.”
설리번은 그제야 깨달았다.
에르제베트가 스켈레톤을 강화한 것이었다.
강한 마나를 버티지 못하고 머지않아 뼈가 으스러지겠지만.
그 시간에 한하여, 이것은 스켈레톤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큭. 이런 간계를!”
에르제베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갔다.
설리번은 에르제베트가 도주한 방향을 살폈다.
여러 마리의 스켈레톤이 설리번을 막아섰다.
추격은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 * *
“설아야. 일어나.”
오두막에 돌아온 에르제베트는 설아를 깨웠다.
몸을 일으킨 설아는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에르제베트를 본다.
“엄마?”
“……나야. 에르제베트.”
“아. 스승님.”
에르제베트는 끓고 있는 솥에서 코어를 건져 냈다.
마법으로 코어를 잠깐 얼려, 뜨거운 코어를 식힌다.
코어는 원래와 달리 밝은 녹색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코어를 설아의 손에 쥐여 줬다.
“마나 상태는 어때?”
“네? 괜찮아요. 평소대로예요.”
“그럼 괜찮을 거야. 코어를 부수고, 길을 따라가. 지구로 가겠다고 열망하면 돼.”
“으응? 스승님은요?”
“나는 조금 이따가 갈게.”
코어는 아직 하나만 완성된 상태였다.
솥을 확인한 설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도 스승님이랑 같이 갈래요.”
“안 돼. 먼저 가.”
“스승님. 화났어요?”
“이설아.”
에르제베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 듣는 엄한 목소리에, 설아는 몸을 움츠렸다.
아직 어른이나 사람을 무서워하는 설아였다.
못 할 짓을 했다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말 들어.”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요?”
자다 일어난 설아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답답한 듯 뭐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콰앙!
벽이 부서지며, 스켈레톤 하나가 날아왔다.
검을 손에 쥔 알버트가 벽에 부딪쳤다.
알버트는 딱딱거리며 빠질 듯한 두개골을 바로 끼웠다.
맞은편에는, 설리번이 있었다.
그르르륵.
적의가 가득한 눈동자가 알버트에게서 에르제베트로, 설아에게로 옮겨진다.
설아는 눈살을 찌푸리고 설리번에게 손을 뻗었다.
마법을 사용하려는 찰나, 에르제베트가 설아의 손목을 잡았다.
“안 돼.”
“네? 왜요?”
“알버트!”
에르제베트의 외침과 동시에, 알버트의 몸이 커졌다.
순식간에 설리번과 비슷한 크기가 된 알버트가 돌격했다.
쩌엉!
검과 검이 부딪쳤다.
설아의 눈이 흔들렸다.
설리번이 벽을 부수며, 솥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저게 없으면 지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
“이리 와.”
에르제베트는 설아의 머리에 모자를 뒤집어씌우고, 뒤로 끌고 왔다.
설아는 무언가를 느꼈는지,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콰앙!
나무가 부서지며,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리번을 따라온 척후 부대로, 족히 수십 마리에 육박했다.
에르제베트가 손을 휘두르자, 나무에 불이 붙으며 괴물들의 전방을 차단했다.
설아는 얼떨떨한 눈으로 에르제베트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잘 들어. 차원을 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인간의 몸은 균열을 통과할 수 없으니까. 그 코어를 부수면 한 명이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정화된 균열을 일시적으로 열 수 있어. 공간 이동을 방해하고 있는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해야겠지만. 마법으로 온몸을 보호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마나를 낭비하면 안 돼.”
에르제베트는 상당히 다급했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괴물들의 군대가 이곳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만 많다면, 설아와 힘을 합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리번을 비롯한 간부급까지 섞여 있기에, 불가능하다.
위치를 들킨 이상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스승님은 어떡하고요? 아까 그게 있어야 이 코어도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나는 다시 만들면 돼. 혼자 도망치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거든.”
“저것들은요?”
설아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척후뿐이지만.
그 뒤에는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괴물이 있다는 것을.
재앙이나 다름없는 군세가 밀려오고 있었다.
“저도 싸울게요.”
“난 안 싸울 거야. 도망칠 거야.”
“그럼 저랑 같이 도망치면 되잖아요.”
“안 돼. 괜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원래의 설아였다면, 아무리 괴물의 군세라고 할지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아는 에르제베트를 웃도는 힘을 지닌 마녀니까.
하지만 마탑에 오래 유폐되어 있던 탓에,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
하물며 저런 군세와 싸운 경험은 아예 없었다.
에르제베트가 가세한다고 쳐도, 승률은 채 1할이 안 됐다.
‘벌써 저 수를 죽인다면, 정신이 마모될 거야.’
하물며 설아는 지금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상태였다.
에르제베트는 설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미 충분히 몰려 있는 상황이다.
‘만약에 어떻게 격퇴한다고 해도.’
괴물의 군세는 저것이 끝이 아니다.
안전한 공간을 잃어버린 데다가, 위치가 확인된 이상.
아마 최소 몇 년간 쫓기는 생활을 전전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부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스르륵.
설아의 발치로 검은 안개가 스며들었다.
에르제베트는 설아의 손을 움켜쥐었다.
“설아야. 가.”
“저는, 어, 어?”
설아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코어를 눌러 부쉈다.
설아가 자의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제 발치에 스며든 저주를 눈치챘다.
꼭두각시의 저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에 확인하지도 못했다.
이 저주에 걸리면, 일시적으로 상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서준을 찾아.”
에르제베트는 설아의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아무리 강화한 스켈레톤이라고 해도, 적은 군세다.
대대적으로 토벌을 준비한 만큼 정예로 이루어져 있다.
숲 서쪽은 이미 괴물들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상황이었다.
“싫어요! 스승님!”
코어가 부서짐과 동시에, 마나가 설아의 주변을 감쌌다.
몸이 안개가 되듯 뿌옇게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코어의 힘으로 공간을 건넌 것이다.
하지만.
‘그쪽에도 마법사가 있어.’
이 정도 결계는 아티팩트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당히 유능한 마법사가 있다.
아마 지금 이곳을 찾는다면, 남은 마나를 통해 설아가 어디로 떨어졌는지도 분석할 수 있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놈들이 균열을 통해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
노리는 것은 에르제베트가 아닌 이설아.
놈들은 곧바로 설아를 추격할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설아에게는 도망치겠다고 했지만.
에르제베트는 도망칠 수 없었다.
어린아이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짐이다.
어른이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에르제베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쿵.
그 순간, 숲 전역에 퍼져 있던 괴물들은 느꼈다.
알버트와 대치하고 있던 설리번은 전율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짙은 마나.
사람은, 하물며 괴물마저 저런 힘을 지닐 수는 없다.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마녀여.”
에르제베트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숲에 들어선 것도 모자라, 들판까지 빼곡히 채운 괴물들의 군대가 보였다.
밴시를 막던 엔트도, 스켈레톤도 이미 대부분 부서져 죽었다.
도저히 개인이 상대할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그리 원하니, 어울려 줘야겠지.”
에르제베트에게서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운 듯 몸을 움츠린 것은, 들판을 가득 메운 괴물들이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위협하듯 울음소리를 내며 에르제베트를 쳐다본다.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 했던가.”
싸늘한 눈이 괴물들의 군세를 내려다봤다.
돌연 변한 분위기에, 몇몇 괴물들이 전의를 상실한 듯 뒷걸음질 쳤다.
고작 한 명이 수천에 달하는 군대를 상대로,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광경.
설리번은 긴장한 듯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쿠어어어어어!
괴물들이 울부짖었다.
떨어지는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한 함성 같기도, 두려움에 저항하는 발악 같기도 했다.
울부짖음을 시작으로, 괴물들의 군세가 에르제베트를 향해 들이닥쳤다.
에르제베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뭐, 못할 것도 없지.”
마녀가 눈을 떴다.
세상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