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유성은 아자누스 사냥꾼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멀리서 포착된 아자누스를 향한 공격이 떨어지는 유성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이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이라도 잠잠해지겠거니 했는데, 그게 안 그러더라고.”
“왜요?”
“임팩트가 너무 컸거든.”
세계 최초로 발생한 월드 퀘스트.
사냥꾼협회 측에서 준비한 대규모 레이드를 무시하고, 단신으로 월드 보스를 사냥한 인물.
설아의 마나가 담긴 공격은 멀리서 보일 정도로 화려했고, 강렬했으며, 인상 깊었다.
거기에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신비로움이 더해져, 세간의 궁금증은 증폭됐다.
“가짜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가짜? 사칭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가 유성이라면서 나왔다니까. 실력이 허접이라 금방 들통났지만.”
인간성을 잃어버린 동안 뉴스를 확인 못 했다.
그런 소식을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유성이 되라는 건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야. 아자누스 사냥꾼, 유성이 되라는 얘기지.”
“전 가급적이면 신분을 공개하고 싶진 않은데요.”
“꼬맹이 때문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주목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설아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유명한 사냥꾼의 가족, 이를테면 고희연만 해도 꽤 유명하다.
설아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상당히 눈에 띄는 점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에르제베트에게 어느 정도 마법을 배워, 제어가 익숙해졌다지만.
마법을 쓴다는 사실만 들켜도 위험하다.
‘윌리엄은 어떻게 해결했다지만.’
마탑으로부터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탑은 아직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괴물들도 문제였다.
‘도플갱어나 팬텀처럼 사회에 녹아든 괴물이 또 있다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에르제베트의 기억 속에서 괴물들은 설아를 노리고 있었다.
만약 괴물들에 눈에 들면 위험도는 두 배로 증가한다.
어쨌든 설아를 드러내는 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전 스펙터의 이서준 정도가 좋은데요.”
“어차피 너는 눈에 띌 수밖에 없지만, 이번 건 주목도가 확연히 다르긴 하지.”
“하이람 씨에겐 정말 고맙고 죄송스럽지만, 신분은 계속 감추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글거려 죽겠네. 그러니까 그거 쓰라는 거 아니야.”
하이람은 팔찌, 체인저를 가리켰다.
나는 멍하니 체인저를 내려다보다가, 하이람의 말을 이해했다.
“이 모습을 유성이라고 하자는 얘기입니까?”
“그래. 두 번째 신분을 만드는 거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내가 수습하기에는 일이 너무 크거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신분을 감춰 준 것은 사실 하이람의 호의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가 유명해지는 것을 꺼리는 걸 안 하이람이 굳이 나서서 수습해 준 것이다.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기에, 이쪽에 한해서는 하이람의 의견에 따라야 했다.
“귀찮긴 하겠지만, 손해 보는 얘긴 아니야. 유성은 사회적 지위가 상당할 거거든.”
“제가 유명해져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힘 있는 사람과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소리야. 민호 아저씨…… 사냥꾼협회장이 나한테 전화해서 유성이 누구냐고 물어보더라니깐.”
“그 정도입니까?”
“유성은 아자누스를 조기 진압함으로써 천문학적인 피해를 막았어. 사실상 영웅이거든.”
검성이 미국과 중국에서 받는 취급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한다.
확실히 사회적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얻는 여러 이점이 있을 거다.
지금보다 한결 편하게 활동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이 모습으로, 유성하자.”
“여자로 활동하는 좀 그런데요.”
“왜?”
“저의 존엄성 같은 게 사라지는 기분이라서요.”
“그래도, 어쭙잖게 가면 하나 달랑 뒤집어쓰는 것보단 확실할걸.”
어째 아직도 가면을 벗지 않은 오승훈이 보였다.
확실히 내가 가면을 쓰든 분장을 하든,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것이다.
원래 하이람은 내게 가면을 씌우는 것으로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자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성별이 바뀐다면.”
위장이나 분장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다.
성별을 자유롭게 바꿀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거다.
두 번째 신분으로는 사실 더할 나위 없었다.
‘이점은 확실하지만.’
불카누스의 연맹장, 백상명은 팬텀에게 빙의되어 있었다.
만약 괴물 중 일부가 사회층의 수뇌부에 숨어들어 있다면.
그 괴물이 설아를 노리고, 곧 설아의 다음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면.
찾아서 제거해 마땅하다.
정보와 기회를 얻는 것도 한결 편해질 거다.
체인저를 처분할 생각이었던 나로선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다 좋은데 하필이면 성별이 바뀌는 게 문제다.
“내면까지 여자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죠. 운동 능력도 그대로더라고요. 아니지. 골격이 다른데. 좀 다른가?”
기본 신체 능력은 남자 때와 비슷했다.
신체 구조상 힘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긴 했지만, 몸이 가벼운 만큼 빨라졌다.
오히려 고유 스킬, 기만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이 몸이 더 적합했다.
“그럼 됐네. 음성 변조할 필요도 없고. 혹시 상처가 생기면 풀리거나 해?”
“아니요. 안 그래도 한번 실험차 해 봤는데,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완벽하네.”
“끙. 그래도, 없던 신분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위조 신분 하나 만들어 줄게. 이서준 동생으로. 이름은 뭐가 좋아?”
“위조 신분 만드는 게 쉽습니까? 출생신고 같은 건 어떡하고요?”
“다 방법이 있어.”
* * *
박수찬은 2년 차 루터였다.
괴물의 시체에서 코어를 적출하고, 소재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는 사람이다.
좋은 근무 환경을 갖춘 사람들은 여기서 일이 끝나겠지만, 혼자 활동하면 다르다.
사냥꾼의 간단한 심부름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드는 역할도 겸한다.
이따금 화풀이 상대가 되거나, 운이 나쁘면 미끼로 사용되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루터는 위험한 일이었다.
‘인식도 그리 좋지만은 않지.’
괴물 백정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루터를 멸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냥꾼들만 해도 대부분 루터를 자연스럽게 무시하곤 했다.
그런 모멸 속에서도 박수찬은 루터를 그만둘 수 없었다.
‘수빈아. 기다려.’
남동생, 박수빈의 병원비 때문이었다.
비록 인식도 취급도 좋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한 루터지만.
벌이만큼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
덕분에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런 박수찬에게 어느 날 기회가 생겼다.
‘마나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마나에 노출된 탓일까.
이유가 어떻든 간에, 박수찬은 마나 적응자가 됐다.
루터는 필드나 던전에 들어가지만, 엄연히 일반인.
사냥꾼들처럼 마나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괴물을 사냥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나도 사냥꾼이 될 수 있어.’
박수찬은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예상치 못한 지출 탓에 한동안 쪼들려야 하긴 했지만, 필요한 소비였다.
사냥꾼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돈도 잘 벌 것이고, 병원에서 쫓겨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박수찬은 고생 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공부 머리가 있던 박수찬은 단기간에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실기 시험이 찾아왔다.
“들어가셔서 환복하시고 대기해 주세요.”
박수찬은 슈트를 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몸을 살짝 조여드는 감각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이미 사냥꾼 지망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우와.’
여태까지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새삼스럽게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옷으로는 감춰지지 않는 탄탄한 몸과, 우월한 체격을 가진 사람들.
분명 저들은 어렵지 않게 시험을 통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팔에 문신이 빼곡한 사람도 있어서 조금 무서웠다.
‘말 걸지 말자.’
사냥꾼은 대부분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다.
물론 모두에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박수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워낙 많은 갑질에 시달린 탓이었다.
긴장한 박수찬은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질문 있습니까?”
설명을 마친 감독관이 지망생들을 살폈다.
긴장한 나머지 말을 듣지 못한 박수찬은 당황했다.
바람과 달리 사냥꾼 지망생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분하다는 듯, 빨리 진행하라는 듯 재촉하는 눈치였다.
분위기에 짓눌린 박수찬은 손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시험 목표는 괴물을 따라 하는 인공 괴물, 더미(Dummy)를 사냥하는 것이다.”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박수찬은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것이었다.
박수찬은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예쁘다.’
사냥꾼이랑은 연이 조금 멀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조금 차가워 보이는 미인이었다.
어디 TV에서 봐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주변에 있던 사냥꾼 몇이 그녀를 흘겨보고 있었다.
“……라고 했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박수찬이 감독관의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배려에 고마운 마음이 앞서면서도, 부끄러워진 박수찬의 얼굴이 빨개졌다.
예쁜 사람한테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인 건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꼭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닌가.’
워낙 당한 게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해 의식이 생긴 것 같았다.
스스로 부끄러워진 박수찬은 생각을 조금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머지않아, 시험이 시작됐다.
1번으로 호명된 응시생이 시험장에 들어갔다.
더미(Dummy)가 괴물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타난 괴물은, 타이탄 아나콘다(Titan Anaconda).
“헉.”
몸길이가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괴물이다.
그 일반적인 뱀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박수찬은 저 뱀에게 붙잡혀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사냥꾼을 본 적이 있었다.
힘도 강한 데다가 순간적인 속도가 빨라서 위험한 괴물이었다.
“실화냐.”
“와. 이번 시험 조졌네.”
“난이도 올린다더니, 이건 조정 실패 수준 아니야?”
다른 응시생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보통 시험 때보다 강한 괴물이 나온 건 확실했다.
긴장한 박수찬이 심호흡하고 있을 때, 1번 응시생이 탈락했다.
“하필 1번 걸려서는. 에휴.”
1번 응시생은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첫 번째로 응시한 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연이어 탈락자가 속출했고, 남은 응시생은 순식간에 반으로 줄었다.
‘괜찮을까?’
스스로 조금 마음을 가다듬자, 옆에 있는 여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몸에, 햇빛은 별로 접한 적 없는 듯 새하얀 피부.
어딜 봐도 곱게 자란 아가씨인데, 괜찮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여자는 아주 의연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차분하다 못해, 조금 따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음. A조 27번 응시생.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응시생 사이에서 환호가 일었다.
심지어는 탈락했음에도 여자의 차례가 되기까지 기다린 응시생도 있었다.
“휘익!”
“잘 보세요!”
“예쁘다!”
전에 없던 열렬한 반응에, 여자는 어색한 듯 웃어 보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무안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여자는 무기들 앞에 섰다.
“뭐 쓸까?”
“리어 아니겠어?”
“단련한 몸 같지는 않은데. 마법사 아니야?”
“저 얼굴에 마법사라고? 스타잖아. 다음 주면 TV에서 볼 수 있겠네.”
“번호 물어보면 알려 주려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사람들의 추측이 오고 갔다.
그런 와중에 여자가 선택한 무기는, 다름 아닌 창이었다.
“어어?”
“창? 실화?”
“저건 좀 힘들겠는데.”
“아이고.”
“조용히 하십시오.”
너무 소란이 일자, 감독관이 주의를 줬다.
여자는 창을 잡은 채 방에 들어서, 지정된 위치에 섰다.
더미는 이내 타이탄 아나콘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감독관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시험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