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유은혜는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낀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처음 봤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여자는 분명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유은혜의 입에서는 이런 의문이 튀어나왔다.
“서준이?”
이서준일 리가 없다.
긴 속눈썹과 연분홍색의 입술.
좁은 어깨와 몸의 굴곡으로 볼 때, 분명 여자였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 분위기가 이서준과 너무도 유사했다.
분명히 닮았는데, 어디가 닮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이 비슷한 걸까.
“아.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이랑 비슷해서.”
사람이 하루아침에 여자가 됐을 리는 없었다.
신체적 차이라는 것이 있기에, 여장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애초에 이서준은 그다지 여성스러운 체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그 옷.”
분명 본 적 있는 옷이다.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 이서준이 종종 입는 옷이다.
바지도 그랬고, 슬리퍼까지 모두 이서준의 것이었다.
유은혜는 슥 눈을 돌려 현관을 확인했다.
이서준의 슬리퍼는 없었다.
즉, 아주 우연히도 같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이서준의 옷을 입고 있는 게 맞았다.
‘누구지?’
유은혜는 혼란스러워졌다.
할 얘기가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는데.
이서준의 옷을 입은 낯선 여자가 집에 찾아온 상황이었다.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연녀?’
엄밀히 말하면 이서준과 유은혜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바람 상대였다.
한번 이런 생각이 들자,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뭐 어때. 애 딸린 남자라도 사람만 괜찮으면 됐지. 매력적이잖아. 능력도 있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하이람의 한마디였다.
유은혜는 이 말을 쉽게 부정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유은혜는 이서준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에 대해서는 거론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한테 손을 안 댄 게.’
이서준은 유은혜에게 좀처럼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그야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사정이 있어 동거하는 거라지만.
젊은 남녀가 몇 달씩이나 함께 살았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만약 이서준에게 내연녀가 있다면, 모든 것이 설명됐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밤에 들어왔고.’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당황한 유은혜를 빤히 바라보던 여자의 눈에 장난기가 스쳐 지나갔다.
평소라면 그 시점에서 알아봤겠지만, 혼란에 빠진 유은혜는 장난스러운 눈을 보지 못했다.
“이런. 들켜 버렸네.”
“저, 누구세요?”
“상상하시는 그거 맞아요.”
당돌한 대답에, 유은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발칙할 수 있단 말인가.
집까지 드나드는 걸 보면, 설아와 유은혜의 존재도 필시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여자의 눈에 죄책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유은혜는 한숨을 내쉬며 속을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서준이는 그럴 애가 아니야.’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한다.
“정말이요……?”
“네. 모르셨어요?”
“네, 모, 몰랐죠.”
“그렇구나. 전 알 거라고 생각했죠. 서준 오빠가 말 안 했어요?”
유은혜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졌다.
집 안에서는 지금 설아가 자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정말, 서준이…….”
“네. 여동생이에요.”
“내연…… 네?”
믿기지 않는 현실을 겨우 받아들이려 했던 유은혜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이서윤이예요.”
“유은혜입니다…….”
유은혜는 이서윤을 방에 들였다.
설아가 잠들어 있던 탓에 조용히 얘기를 나눠야 했다.
그래도 설아는 한번 잠들면 좀처럼 깨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얘기해도 괜찮았다.
유은혜는 차를 내오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서준이한테 여동생이 있었나?’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것 같았다.
적어도 이서준의 입에서 이서윤에 대한 말이 나온 적은 없었다.
‘아버님도 말씀하신 적 없는데.’
유은혜는 이서윤을 몰래 흘겨봤다.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돌린 이서윤과 눈이 마주쳤다.
이서윤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고, 유은혜는 어색한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차를 내온 유은혜는 이서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동생……이시라고요?”
“네. 유학 다녀와서 뵐 기회가 없었네요.”
“유학이요. 어디요?”
“미국이요. 워싱턴 D.C.에 있었어요.”
“아…… 거기가 어느 주에 있었죠?”
“메릴랜드랑 버지니아 사이에 있죠. 연방 직할지로 분류돼서, 어느 주도 아니에요.”
이서윤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원래의 유은혜라면 거짓말이라고 확신하진 못하더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고유 스킬, 기만자의 효과 덕에 거짓말에 한 치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은혜가 의심을 지운 것은 아니었다.
“서준이한테는 들은 게 없는데.”
“정말요? 어우. 그 웬수. 어떻게 말 한마디를 안 했지? 아, 죄송해요.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죠.”
하이람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탓일까.
이서준은 가상의 인물 이서윤과 거의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였다.
투덜대는 목소리의 높낮이, 어조와 말에 담겨 있는 감정까지 완벽했다.
스킬의 보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이건 완전히 ‘혼이 담긴 구라’였다.
유은혜도 야무진 면이 있었지만, 알아채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괜찮아요. 근데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말 편하게 해요. 시동생인데.”
“시, 시동생이요?”
이런 부분은 일단 아버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던 이재환과 닮았다.
여기에서 유은혜는 여동생이 맞구나,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까지 유전이 제대로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했다.
여유롭고 장난스러운데, 미워할 수 없는 느낌이다.
“결혼은, 그, 안 했는데.”
“안 할 거예요?”
“어, 아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에요.”
“그렇구나. 긍정적이에요?”
“그렇지 않을까요……?”
이서윤의 안색이 밝아졌다.
유은혜는 묘하게 이서윤이 고희연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서준은 고희연의 성격 일부를 생각하고 연기 중이었다.
살짝 예리하긴 했지만, 결국 유은혜는 이서윤의 정체를 간파하는 데 실패했다.
“저는 종종 언니 얘기 들었거든요.”
“아. 서준이한테 들은 거예요? 뭐라고 했어요?”
“말도 마세요. 완전 주책이에요.”
이서윤은 말을 끊으려다가 유은혜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유은혜는 더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서윤은 그런 유은혜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일부러 화제를 바꿨다.
“지금 동거 중이신 거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제 계약 기간 끝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떡하시게요?”
“서준이랑 상의해 보려고요.”
오늘 유은혜가 빨리 집에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서윤은 유은혜를 빤히 바라봤다.
“언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서준이가 괜찮다고 하면, 이대로 같이 살자고 하려고요.”
막힘없는 대답에, 이번엔 이서윤이 입을 닫았다.
긴 시간이라면 긴 시간이었고, 짧다면 짧은 시간.
유은혜는 이미 설아와 함께 따로 살 정도의 금액을 모았다.
무기를 살 때 이서준에게 진 빚도 갚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같이 살 이유라면.
“설아 때문에요?”
“그렇죠. 제일 중요한 건 애니까요.”
“그렇구나.”
“……사실은요. 제가 그러고 싶기도 해요.”
“사심?”
유은혜는 이서윤의 표현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심, 이유는 사적인 감정이었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유은혜는 순순히 수긍했다.
“조금 부끄럽긴 한데, 맞아요.”
“……그래요?”
“한참 이런 생각은 일부러 안 했거든요. 피한 거죠. 나는 민폐만 끼치고 있는데, 내 욕심까지 챙기려고 하는 게 너무……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이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설마 이렇게 진지한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걸까, 유은혜는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서준이가 없으니까, 음, 사실 없었던 건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되니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조금 솔직해지려고 하는데.”
유은혜는 자신의 볼을 양손으로 눌렀다.
기억하려고 하니까 얼굴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볼이 화끈화끈한 게 다 느껴졌다.
“너무 뻔뻔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걔가 먼저 장난을 치니까, 언제까지 질 수도 없고.”
횡설수설하는 유은혜를 두고 이서윤은 고민했다.
귀엽다, 근데 이 상황을 어떻게 무마해야 할까.
장난만 칠 속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이서윤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진짜 있다고 믿게 해야 하는 걸까.
식은땀 한 방울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 설아야.”
그때였다.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던 설아가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아직 꿈결인 듯 졸린 눈으로 두리번거린다.
여기가 어딘지 싶은 모양이었다.
유은혜는 설아를 마저 재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자요.”
“으응?”
두리번거리던 설아와 이서윤의 눈이 마주쳤다.
설아는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더니, 심히 의심스럽다는 듯 이서윤을 바라봤다.
유은혜는 이서윤을 소개했다.
“아. 참. 아빠 동생이래요.”
“아빠 동생이요?”
이서윤은 설아의 눈길을 받으며 땀을 뻘뻘 흘렸다.
유은혜는 어떻게 속여넘겼다고 하지만.
어째선지 설아에게는 스킬도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설아는 졸린 듯 하품하며, 손바닥으로 입을 두드렸다.
“하암. 아닌데?”
“응? 무슨 소리예요?”
“아빠잖아요.”
마법사라고 보자마자 마법을 간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설아는 달랐다.
마나가 눈에 보이는 급의 천재.
이서준의 몸을 두르고 있는 마나가 전부 보였다.
“아빠 아니에요. 닮아서 설아가 착각했나 보네.”
“……착각 아닌데.”
귀엽다는 듯한 유은혜의 반응에, 설아는 심통이 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서윤을 보더니, 팔찌 쪽으로 눈이 간다.
“얍.”
설아는 팔찌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서윤은 설아가 마법을 쓰진 않을까, 긴장했다.
하지만 설아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이서준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 버렸다.
“됐다. 설아 말이 맞죠?”
“응?”
유은혜는 뒤를 돌아봤다.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서준이 그곳에 있었다.
이서준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듯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놀라움과 황당함이 섞인 눈이 이서준을 향했다.
“흐암. 설아는 잘게요.”
태연하게 앙증맞은 입을 벌리고 하품한 설아는 폭 베개로 쓰러졌다.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는 얼굴로 이불을 끌어 올린 다음, 눈을 감는다.
그에 반해, 이서준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유은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사정이 있습니다.”
유은혜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그것이 이서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