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결승전은 조금 더 규모가 큰 경기장에서 진행됐다.
카메라도 예선보다 몇 배는 더 많았고, 관중도 마찬가지였다.
산중임에도 불구하고 만석을 채운 것도 모자라, 서서 구경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중에는 사냥꾼협회에서 개최하며 규모가 커지긴 하지만.
지금 시대의 대련 대회는 이 정도로 규모가 큰 경기가 아니었다.
커진 행사를 감당하기 위해 고려검가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희연이는 여태 제대로 한 적이 없었지.’
고희연과 대련은 훈련을 통해 몇 차례 해 본 적 있다.
하지만 고희연은 대련에서 진심을 내지 않았다.
특히 이상하다고 생각됐던 건, 스킬이다.
고희연은 스킬을 일절 활용하지 않았다.
나는 얻은 스킬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간파]사람에게는 처음 사용해 본다.
애초에 지금 개인 시스템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쓸 일도 없었다.
고희연의 개인 시스템이 반투명한 창이 되어 펼쳐졌다.
이름 : 고희연
직업 : 검객
직업 스킬 : 흔들림 없는 칼끝
고유 스킬 : –
고희연의 직업은 검성과 똑같은 검객.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직업 스킬이었다.
흔들림 없는 칼끝.
직업 스킬임에도 고희연 한 명만이 가졌던 스킬.
회귀 전의 고희연이 검귀라고 불렸던 이유였다.
‘좀 무섭네.’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눈이 옛날의 고희연을 떠올리게 했다.
옛날이 아니라 미래의 고희연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때의 고희연은 지금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강대호도 그렇고, 하이람도 그랬다.
지금 만난 사람들은 미래와 다소 차이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성격이 가장 많이 바뀐 사람은 단언컨대 고희연이었다.
그때의 고희연은 뭐라고 해야 할까, 잘 벼린 칼 같았다.
‘여태까지는 그런 느낌이 없었지만.’
처음 봤을 때 조금 느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뇌리에 박혔던 기억 탓이었다.
지금의 고희연은 상당히 사근사근하고 순한 편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그런 느낌이 나왔다.
날카롭고 차가운 한 자루의 검이 내 앞에 있었다.
원래 대련할 때 승부를 즐겼다면, 이번에는 전력을 부딪쳐 보겠다는 것 같았다.
‘마냥 불리하진 않지.’
‘찌르기(극한)’은 사용할 수 없다.
무기가 버티지 못할뿐더러, 대련에서 사용하기에는 살상력이 너무 강하다.
반면 저쪽은 스킬을 사용하겠다고 선전포고까지 한 상태.
어쨌든 내 쪽이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결승전이 시작됐다.
나와 고희연은 대치한 채 서로를 바라봤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먼저 달려들 수가 없었다.
발을 틀었다.
스윽.
신발 밑창에 흙바닥이 밀려남과 거의 동시에, 고희연의 어깨가 움직였다.
작은 동작에 반응해, 미리 대응하는 자세를 바꾼 것이다.
문제는 그사이에 있는 텀이었다.
사람에게는 반응 속도라는 게 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바둑에서 나온 말이지만, 실전 전투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 공격을 보고, 알맞은 방어 동작을 취해야 한다.
이 사이에는 반응 속도라는 간격이 존재한다.
그 간격보다 빠른 공격이 방어를 뚫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고희연에게는 그 간격이 없었다.
시험 삼아, 앞으로 한 발자국 크게 내디뎠다.
훅!
창대의 아래쪽을 잡고, 창을 최대한 멀리 찌른다.
간격 유지에 신경을 쓴 기습 공격.
고희연은 어깨를 살짝 트는 것으로 공격을 피했다.
최소한의 동작, 깔끔한 회피처럼 보였으나.
“허.”
숨죽이고 관람하던 고려검가의 심사 위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수준 높은 사냥꾼이라면, 봤을지도 모른다.
고희연은 내가 창을 내지르기도 전에, 공격을 미리 피했다.
‘안 통하나.’
미리 공격을 피한 덕분에, 고희연에게는 찰나의 시간이 주어졌다.
고희연은 그대로 팔을 뻗어 창대를 잡으려 했다.
내가 성수현에게 했던 것처럼 무기를 빼앗을 심산이었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 범위 내였기 때문에, 서둘러 창을 뺐다.
피할 것을 의식했기 때문에 깊게 찌르지 않았고, 덕분에 무기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창대를 잡혔을 거다.
‘진짜 말도 안 되네.’
회귀 전에 고희연과 대련해 본 적은 없지만.
직접 마주해 보니 얼마나 불합리한지 느껴졌다.
강대호가 한 마리 범 같은 느낌이었다면, 고희연은 물이었다.
어떤 공격도 무의미할 것 같은 느낌.
‘저게 스킬이냐.’
흔들림 없는 칼끝.
단순히 찌르기의 효과가 강해지는 내 스킬과는 격이 다르다.
검 끝을 겨눠 적을 지정한 후, 지정한 적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한다.
말이 예측이지, 사실상 예지에 가까운 스킬이었다.
‘이걸 어떻게 이겨?’
고희연은 지금 내가 어떻게 공격할지 미리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귀신처럼 움직이고 검을 휘두를 수 있었고, 검귀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것이다.
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강력한 스킬인 만큼, 약점도 있다.
바로 지정한 적 이외의 상대는 공격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흔들림 없는 칼끝이었다.
하지만 일대일이라면 이길 도리가 없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
필승법은 그것뿐이었다.
적이 예지에 반응하기도 전에 몰아치는 것.
검귀라 불리며 일대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던 고희연이었으나, 무패는 아니었다.
검성 같은 괴물들에게는 이기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지금 내가 검성 같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제가 갈게요.”
내가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자, 고희연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움직임을 볼 수 있다는 건, 회피하는 경로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아까처럼 피하고 반격하는 데에서만이 아니라, 공격에서도 엄청난 이점을 가진다.
미리 상대의 회피나 방어를 예측하고, 공격을 추가하면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는지, 고희연은 땅을 차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환장하겠네!’
피하면 피하는 대로, 막으면 막는 대로 코너에 몰린다.
나는 고희연이 검을 젖힌 방향으로 창대를 세웠다.
* * *
‘방어?’
고희연은 이서윤이 창대를 세우기도 전에, 그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이미 검을 옆으로 젖힌 고희연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방향은 하나.
이서윤은 그것을 알고 방어를 택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그만.’
방어 동작을 취하느라, 견제가 사라졌다.
그대로 파고들어 주먹으로 턱을 때리면 끝이다.
고희연은 땅을 딛고 깊숙이 이서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발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어?’
고희연은 당황했다.
어느 순간 이서윤이 창대를 낮게 휘둘러, 고희연의 발목을 때린 것이었다.
문제는 흔들림 없는 칼끝의 스킬 효과로, 이서준의 동작을 예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동전을 백 번 던져서 나오는 면을 전부 맞혔다.
스킬을 사용한 고희연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서윤이 새로 얻은 스킬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기만자.
상대를 속이는 스킬로, 일시적으로 고희연의 스킬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다!’
예상보다 빨랐다.
이서준에게 익숙해진 고희연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체인저는 이서준이 여자처럼 보이도록 덮어쓴 게 아니라, 골격 구조 자체를 바꿨다.
덕분에 이서윤은 이서준보다 민첩했다.
처음에는 이것을 활용하지 못했으나, 이서윤은 대련 대회를 거쳐 제 몸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
이 차이는 고희연에게 있어 크게 다가왔다.
딱!
하지만, 빨라진 만큼 이서윤은 힘이 떨어졌다.
견제를 위해 발목을 노렸기 때문에,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반면 고희연은 승부를 볼 수 있는 상태.
고희연은 이서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한다고?’
이서윤은 이것을 피했다.
아니, 고희연은 자신의 일격을 피하는 이서윤을 미리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반응 속도였지만, 이서윤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붙은 상황.
발목을 다친 고희연이 불리하다.
고희연은 자신이 승부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럼 잡으면……!’
고희연은 계획을 틀어, 이서윤의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건 고개를 뒤로 젖혀 피할 수도 없었고, 잡는 순간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대로 매칠 생각이었으나, 이서윤은 또다시 고희연의 예지를 꿰뚫고 움직였다.
덥석.
손목을 잡힌 것이다.
찰나의 순간, 동작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이서윤은 고희연이 자신의 동작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속여, 정말 찰나의 순간 생각과 움직임을 바꿔 버렸다.
스킬의 효과가 없었더라면, 고희연은 이마저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서윤이 마음을 바꾼 그 순간, 예지 또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예지는 정말 찰나였기에, 고희연은 반응하지 못했다.
“아.”
졌다.
고희연은 이 한 수에 승부를 걸었다.
통하지 않은 순간, 패배는 확정된 것이었다.
창을 놓아 버린 이서윤은 다른 손으로 고희연의 팔꿈치 쪽을 잡았다.
그대로 몸을 틀고, 고희연의 체중을 역이용해 땅에 엎드리도록 한다.
잡은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풀썩!
몇 초 사이에 이루어진 치열한 심리전이 섞인 공방.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몇몇 사냥꾼들은 넋을 놓았다.
그리고 심사 위원들 사이에 있던 검성은 유심히 이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료!”
* * *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네.”
-좋아. 그 말만 하고 딱 내려오면 돼. 이쪽에서 수습할 테니까.
나는 전화를 통해 하이람의 당부를 받은 뒤, 앞으로 걸어갔다.
고려검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검성이 직접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나왔다.
저번에 고려검가를 찾았을 때도 그랬지만, 검성 앞에만 서면 긴장됐다.
나를 가르쳐 준 은인이기도 했지만, 나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했으니까.
검성은 내게 검 한 자루를 넘겼다.
메달이나 상장 대신 검이라니, 참 고려검가답다고 생각했다.
“이서준 군의 동생이라고 했나?”
검성이 말을 걸었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라던 하이람의 말을 기억했다.
“네.”
“인상적이었다네. 창은 서준 군에게 배웠나 보군.”
흠칫했다.
의식적으로 다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검성의 눈에는 유사한 점이 많이 보였던 모양이다.
가족이라는 설정 덕분에 다행히 넘어갈 수 있었다.
검성과 악수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네.”
“……감사합니다.”
비록 짧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검성의 눈에 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다행인 점은, 길드가 있었기에 영입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려검가로 들어와 훈련하자고 했으면, 난 이 신분을 과감하게 버릴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훈련을 자주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니었다.
“이제 가서 우승 소감만 간단하게 말하면 된다네.”
검성은 내게 조언까지 해 준 뒤, 유유히 물러났다.
확실히 검성도 옛날보다는 배려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검성에게 받은 검을 들고 몸을 돌렸다.
찰칵!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사람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이테크의 경호원들이 막고 있었지만, 마이크를 든 손이 삐져나왔다.
수십 대의 카메라 렌즈가 나를 향했다.
“우승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인터넷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스펙터에 들어간 이유는 뭡니까? 이서준 때문입니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번잡한 목소리들이 귀를 찔렀다.
나는 하이람의 말을 기억했다.
여기서 해야 할 것은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말하려는 듯 입을 살짝 열자, 기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약간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유성입니다.”
묘하게 강철 남자가 떠오르는 대사였지만, 하이람이 이렇게 시켰다.
내 말을 들은 기자들은 잠깐 이해하지 못한 듯 침묵했다.
그리고, 고려검가가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