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의식이 차츰 흐려지고, 약간의 매스꺼움이 올라온다.
두통이 머리를 찔렀다가 금세 사그라진다.
눈을 깜빡이자, 공간이 바뀌었다.
‘여긴.’
풀 내음이 섞인 나무 냄새가 났다.
원목을 적절히 섞어서 만든, 적당한 크기의 오두막 내부.
전등 대신 창문에 부딪혀 부서진 빛이 안쪽을 비추고 있었다.
한쪽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언어나 문화에 관련된 책들이었다.
책상에는 괴물의 소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와 반대로 침대는 가지런히 정돈됐다.
에르제베트의 기억 속에서 설아가 누웠던 것과 똑같은 침대다.
‘다른 세계?’
튜토리얼 타워를 통해 한 번 간 적 있는 미드하임일까 의심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이다.
에르제베트는 분명 차원을 넘나드는 데에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도 아자누스의 코어 조각으로 추정되는 것을 활용해 무언가를 만들지 않았던가.
이렇게 간단하게 차원을 넘나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냥 재현한 건가?’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오두막 어디에도 에르제베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서랍이 열리더니 무언가 튀어나왔다.
애옹.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캐시가 나를 올려다봤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문 쪽으로 향한다.
나는 꿈속 공간에 들어온 듯한 어색함을 느끼며 캐시를 따라갔다.
‘아. 밖은 다르네.’
역시 미드하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억 속 숲의 나무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는데.
여기는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본 익숙한 나무들이 보였다.
그래도 어쩐지 한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옹.
어느새 저만치 앞서간 캐시가 뒤를 돌아보고 울었다.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하는 듯한 모양새에, 걸음을 빨리했다.
캐시는 집을 한 바퀴 돌아, 뒷마당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에르제베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왔어?”
“오긴 했는데, 이건 뭐야?”
“뭐긴 뭐야. 내 집이지.”
“그거 말고.”
에르제베트 앞에는 무언가 묶여 있었다.
마법사가 아닌 내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마법이 둘러싸고 있다.
아무래도 에르제베트가 직접 잡아 묶은 듯한데, 테러범에게 잡힌 인질 같았다.
“이거? 보면 알 거야.”
“뭐길래…… 응?”
조금 생소한 상황 탓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익숙한 로브 자락이 보였다.
“주차장?”
“응? 뭔 주차장?”
에르제베트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나는 사냥꾼협회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루크 싱클레어를 찾아갔다가, 사냥꾼협회가 던전화됐던 것.
괴물의 모습을 한 루크 싱클레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주차장에 있던 마법사가 그것을 주도한 것 같다는 것까지.
“루크 싱클레어를 처리했다고? 이게?”
“내가 추정한 바에 의하면 그래.”
에르제베트도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한 가지 이야기를 풀었다.
마법사가 괴물을 소환, 설아를 노렸다.
정황뿐이었지만, 나는 이미 창을 들고 있었다.
“그냥 죽이면 안 돼?”
“아직. 즐거운 참교육 시간이라고 했잖아.”
에르제베트는 잠깐 기다려 보라는 듯 나를 제지했다.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그래, 아직 정황뿐이지 확실한 건 없지 않은가.
“아마 이놈이 그런 건 맞을 거야. 루크 싱클레어와 설아의 암살을 사주받은 것 같으니까.”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애초에, 설아의 존재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 그래서 심문해 보고 있었는데, 잘 안 통하더라고.”
“저주나 마법 같은 걸로 안 돼?”
“안 돼. 방어 마법이 정신을 지키고 있어.”
“해제 못하나.”
“힘들어. 내가 지금 회복 중이라.”
그런 것치고는 완벽하게 생포한 것 같은데.
에르제베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봤다.
“더 클래식한 방법이 있어.”
“무슨 방법?”
“고문.”
“……그런 걸 클래식이라고 하던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심문 방법인걸.”
“설마, 그것 때문에 날 부른 거야?”
나는 고문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다.
회귀 전, 마탑에게 설아를 빼앗기고 설아를 찾아다녔을 당시.
관련된 사람을 찾아가서 설아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고 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탑 측 인물은 순순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 고문이었다.
의외로 고문 방법에 관련된 책 같은 게 있어서,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질문하는 것보단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당시에는 상대의 약점을 잡거나 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무식한 방법이었으나.
그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걸.”
에르제베트는 놈이 머리를 둘러싸고 있던 천을 벗겼다.
비록 인간이 아닌 듯 기괴하게 변해 있었지만.
나는 놈의 적의로 가득한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성수현.”
지긋지긋한 악연이 그곳에 있었다.
* * *
이서준과 에르제베트는 성수현을 앞에 두고 서로 가진 정보를 교환했다.
던전화, 루크 싱클레어의 괴물화, 거기에 더하여, 균열을 연 것까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이놈도 반 정도는 괴물이 된 것 같은데, 연관이 있는 건가?”
“그건 내가 한 거야.”
“네가? 마법?”
“아니. 저주. 폴리모프랑 비슷한 개념인데, 설명하긴 어려워.”
“그렇다면 루크 싱클레어가 괴물로 변한 건?”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 저주겠지.”
“저주는, 평범한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건가?”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부인했다.
이서준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저주라는 건 상당히 희귀한 힘이다.
“짐작 가는 데는?”
“……단순히 환상을 보여 주는 저주가 아니야. 원념이 모인 것으로는 만들 수 없는 구체적인 저주라는 뜻이지. 저주를 사용하는 괴물이라고 해도, 이런 저주를 사용하진 못해.”
“메두사 같은 괴물의 저주도 있잖아.”
“메두사의 저주는 확실히 강하지. 하지만 이런 저주는 본질적으로 궤가 달라.”
“그럼, 너 말고 이런 저주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사람은 없어. 아마 절대적으로, 괴물일 거야. 저주에 능통한 괴물은.”
에르제베트는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있긴 한데, 문제는 이놈이 괴물과도 척졌다는 거거든.”
“루크 싱클레어가 괴물과 연루되었다고 했지.”
“그래. 솔직히 말하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성수현에게 이 일을 사주한 누군가, 성수현이 마법과 저주를 다룰 수 있도록 했다.
에르제베트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었다.
“제3자일 수도 있다는 거지?”
“설아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해.”
“자세한 내막을 알아봐야 된다는 얘기네.”
설아가 겪을 불행은 다섯 가지.
그중 해결된 것이 둘이며, 예견된 것은 하나.
나머지 둘은 미지였다.
어쩌면 이서준이 모르는 또 다른 설아의 불행과 엮여 있을 수도 있었다.
“연결된 게 이것밖에 없거든.”
“그럼 죽이면 안 되겠네.”
이서준은 에르제베트가 성수현을 생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눈을 감고 말했다.
“부탁할게. 저주나 마법으로는 속박하고 있는 게 한계야. 나는 힘 조절 못하고 죽여 버릴 것 같고.”
“그래. 뭐.”
성수현은 지금 실종 상태로 알고 있다.
사람의 눈을 피해 다니는 에르제베트의 행적을 생각하면.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사실도 명료했다.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가더라도, 들키지 않으면 된다.
설아나 유은혜도 근처에 없었다.
“짐을 떠넘기는 것 같은데. 괜찮겠어?”
“짐? 설마.”
이서준은 의연하게 대꾸했다.
“내가 이놈 얼굴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성수현.
이서준은 이 얼굴을 볼 때마다 진절머리가 났다.
유은혜의 죽음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서준은 모르고 있었지만, 설아의 납치에도 일조했다.
지금까지는 참아야만 했다.
“만날 때마다 죽이고 싶었는데, 죽일 수가 없었거든.”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겨우 지키고 있는 평화가 무너진다.
더불어, 회귀한 후의 성수현은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인성은 그대로였고, 미래에 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은 악인을 심판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서준은 그 답을 내놓지 못했기에, 성수현을 처리하지 못했다.
“근데, 상황이 이렇게 되네.”
이서준은 인간성을 잃어버렸을 때의 일을 기억한다.
성수현이 아자누스에게 유은혜를 떠밀었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성수현이 유은혜의 죽음에 일조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미래를 바꾸는 데 성공했고, 유은혜는 살았으나, 그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이서준은 기꺼이 성수현을 심판하고자 했다.
조금 불안해졌는지, 에르제베트가 충고했다.
“죽이면 안 돼.”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지?”
“마음대로.”
* * *
나는 에르제베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에 다녀왔다.
챙겨 올 물건도 있었고, 설아와 은혜에게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얘기도 해야 했다.
은혜는 이 밤중에 어디 가냐고 물어봤지만, 나를 잠깐 보더니 다녀오라고 얘기해 줬다.
최대한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은연중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스킬인 만큼, 기만자는 의식하지 않으면 발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왔어?”
“잠깐 다른 데 다녀와.”
“왜?”
“별로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닐 거거든.”
에르제베트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산전수전 다 겪어 왔다는 건 대강 알고 있었지만.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 같아,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성수현은 공간을 던전화하고, 균열을 열어 괴물을 데려올 수 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대비책으로 에르제베트가 있어 준다면 든든하다.
당장 성수현을 속박하고 있는 마법도 에르제베트의 것이니까.
“이거 풀어도 상관없지?”
“재갈은 그냥 시끄러워서 물려 놓은 거야. 상관없어.”
나는 성수현이 물고 있던 재갈을 풀었다.
성수현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숨을 내쉬었다.
“이서준.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는 줄 알고 있나?”
“참교육 아니면 정의 구현. 시원한 사이다 한 모금 마실 준비?”
“이건 범죄다. 당장 풀어.”
“범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한 건 범죄가 아니냐?”
“그렇다고 해서 네게 심판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
나는 준비해 온 장갑을 꼈다.
이놈의 피로 손이 더러워지는 건 조금 그랬다.
“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누가 설아를 해치라고 사주했어?”
“난 모른다. 안다고 해도, 말할 수 없다.”
성수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나다.
고문이라고 해 봤자 때리기밖에 더 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다시 성수현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공구 상자를 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애초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