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짝!
나는 방에서 나온 은혜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은혜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그런데 아주 간단하게 공략에 성공해 버렸다.
내가 보기에도 군더더기가 거의 없었다.
“은혜 너, 좀 하는데?”
“나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라니까?”
“그건 알지.”
은혜는 나 못지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화살촉이 뭉툭해질 정도로 활을 쏘며 연습했으니.
먼 거리에서 타이니 골렘의 관절부를 정확히 맞힐 수 있던 것이다.
“설아가 봤을까?”
“맞은편에 참관실이 있어. 아마 봤을걸.”
“그래? 안 보이던데.”
“취조실에서 쓰는 유리처럼 한쪽에서만 보이게 되어 있거든.”
“아하. 거긴 응시생 가족들이 참관하는 곳인가 봐?”
“아니. 보통 참관하는 건 길드의 에이전트들이지.”
물론 나와 은혜는 어떤 길드와도 계약할 생각이 없었다.
길드에 소속되면 필연적으로 길드에서 내려오는 지령을 따라야 한다.
내가 가진 미래의 정보를 생각하면, 거기서 썩고 있는 건 너무 손해였다.
“아. 설아 보고 싶다. 진짜 중독인가 봐.”
“은혜야. 우리 실험해 볼래?”
“실험? 무슨 실험?”
“동시에 양쪽에서 안기라고 팔 벌리면, 설아가 어느 쪽으로 올까?”
“참 나. 실험할 것도 없어. 나한테 올 게 뻔하지.”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 아니야?”
“어딜 감히 이서준 주제에. 좋아. 해 봐.”
우리는 다시 환복을 하고, 로비로 나왔다.
고희연과 함께 두리번거리고 있는 설아가 보였다.
우리를 발견한 설아의 입에 함박미소가 걸렸다.
“엄마, 아빠!”
나는 은혜와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인 뒤, 동시에 쪼그려 앉고 팔을 벌렸다.
“설아, 이리 오세요.”
“설아야. 아빠 안아 줘.”
이쪽으로 도도도 달려오던 설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뚝 멈춰 서서는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나와 은혜는 공평하게 더는 어필하지 않고 있었다.
설아는 안절부절 고민하다가, 은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우리 설아라니까!”
“큭, 설아야……!”
은혜는 환하게 웃으며 설아에게 손짓했다.
반대로 나는 절망해야 했다.
하긴 아직 아이스크림도 이기지 못했는데.
은혜는 너무 강적이었다.
“얼른 엄마 안아 주세요.”
“으응. 안 돼요.”
은혜는 포옹을 재촉했지만, 설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작은 손으로 은혜의 손을 잡고, 잡아끈다.
“응?”
설아는 은혜와 함께 내 옆으로 왔다.
은혜를 내 옆에 붙여 둔 뒤, 제 양팔을 벌린다.
뿌듯한 얼굴의 설아가 입을 열었다.
“엄마랑 아빠랑 가치 안아 주세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은혜도 그런 설아가 기특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하는 걸 가만히 구경하던 고희연도 웃고 있었다.
“우리가 졌네.”
“그러게.”
나와 은혜는 동시에 설아를 안았다.
그 사이에 끼게 된 설아는 마냥 좋다는 듯 히히 웃었다.
* * *
“통과하신 거 축하드려요.”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뭘.”
“에이. 언니 오빠 실력으로 합격 못하면 시험에 문제가 있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닐까?”
“전혀요. 오히려 언니가 언니랑 오빠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예요.”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은혜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응시생의 수준은 딱 오늘 본 그대로였다.
타이니 골렘을 혼자 겨우겨우 공략하는 정도.
나와 은혜는 명백히 응시생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계약이 하나도 안 들어온 건 조금 의외네.’
참관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길드의 에이전트들은 우리에게 계약서를 들이밀지 않았다.
어쩌면 고희연이 옆에 붙어 있었던 영향일지도 모른다.
“배고프시죠? 이제 밥 먹으러 가죠!”
“밥!”
“설아, 배고팠어?”
“네!”
“언니가 맛있는데 알거든. 갈 거지?”
“조아요!”
“좋아!”
고희연은 근처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갔다.
전통적인 양식의 기와집처럼 생긴 곳이었다.
차에서 내린 은혜는 조심스레 고희연에게 다가갔다.
“저, 희연아. 여긴 너무 비싸 보이는데…….”
“에이. 제가 사는 건데요. 그렇게 비싼 곳도 아니니까 부담 가지지 마세요.”
은혜는 영 부담스러운 것 같았지만, 고희연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동안 나는 설아와 함께 한정식집의 외관을 구경했다.
확실히 으리으리한 것이, 평범한 한정식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차된 외제 차만 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자. 얼른 들어가요. 설아야. 배고프지?”
“네!”
“거봐요. 설아 굶길 거예요?”
“그, 그건 아니지만…….”
“자, 자. 들어갑시다.”
우리는 한정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깔끔하게 올린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예약은 하셨나요?”
“고희연이요.”
“아.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직원은 우리를 룸으로 안내했다.
둥근 식탁을 한가운데에 두고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인실이었다.
메뉴판을 받기도 전에 고희연이 선수를 쳤다.
“A코스로 셋 주세요. 애기 앞접시도 부탁드릴게요.”
“주문받았습니다.”
메뉴판을 주려던 직원이 웃으며 방 밖으로 나갔다.
가격을 보지 못한 은혜는 영 불안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어째 고희연은 설아를 볼 때와 비슷한 눈으로 은혜를 보고 있었다.
“축하하는 의미 겸 사는 거예요.”
“그치만…….”
“언니가 사냥꾼이 된 다음, 돈 많이 벌어서 한턱내시면 되겠다. 그쵸?”
“아, 응. 알았어. 꼭 그럴게!”
고희연은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이윽고 나온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내 예상과 달리, 고희연은 영입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해 캐묻지도 않았고, 평범한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배가 빵빵해요.”
설아는 의자 등받이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배를 통통 두드리는데, 나도 한번 두드려 보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저, 오빠.”
“응?”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고희연은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물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희연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 혹시, 언니랑 오빠 무기는 어디서 제작하셨어요?”
“응?”
* * *
나는 고희연에게 강철이를 소개해 줬다.
좋은 눈은 비단 사람을 보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았다.
무기를 보는 눈도 있었던 고희연은 우리 무기의 제작자가 궁금했다고 한다.
‘하긴. 아직은 어릴 때니까.’
어쩌면 내가 너무 고희연을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악의를 가지고 접근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좋은 애야. 그치?”
“그러게.”
은혜의 말마따나 고희연은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알던 산전수전 다 겪은 고희연과는 달랐다.
고희연은 우리를 향해 순수한 호의를 보일 뿐이었다.
‘믿어도 될 것 같다.’
아버지 이외에도 믿을 만한 사람이 생겼다.
충분히 대화를 나눠 보고,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피곤했는지 곤히 잠든 설아를 안아 든 은혜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설아, 집 왔어요. 일어나세요.”
“우응, 네에. 하암.”
은혜는 설아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내가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
5년 짬밥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역시 달랐다.
그동안 나는 시험 일정을 확인했다.
최종 시험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앗, 차거!”
컴퓨터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차가운 무언가 목에 닿았다.
뒤를 돌아보니, 은혜가 차가운 맥주 두 캔을 들고 있었다.
“놀라기는. 한 캔 할래?”
“좋지. 근데 은혜 너, 술 안 마시잖아.”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아.”
은혜는 술을 안 마시는 타입이었다.
술자리에서도 안주만 먹거나, 탄산음료만 마셨다.
회귀 전을 통틀어서, 난 은혜가 취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좋아.”
나는 맥주를 받아 들었다.
치익.
캔을 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나와 은혜는 가볍게 캔을 부딪쳤다.
* * *
약 30분 뒤.
한 손에 맥주 캔을 쥔 은혜가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가 보였다.
나는 맞은편에서 맥주를 홀짝였다.
‘나도 강한 편은 아니지만.’
얘는 술을 너무 못 마시는 것 같았다.
한입 마신 다음, 못 먹을 걸 먹었다는 듯 인상을 찡그릴 때 알아봤다.
맥주 한 캔 마셨다고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르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
많이 마신 것도 아니고, 두 캔 반 정도가 전부였다.
스윽.
은혜는 고개를 들었다.
턱을 식탁에 올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대뜸 웃는다.
“으헤헤.”
“으헤헤는 무슨. 너 취했어.”
“하나도 안 취했거드은?”
“원래 취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해.”
나는 은혜가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뺏었다.
은혜는 아이스크림을 빼앗긴 설아처럼 칭얼거렸다.
“으앙. 내 맥주! 왜 뺏어 가냐…….”
“발 닦고 자, 내일 후회하지 말고.”
“잇씨, 어이없네……? 이서준 주제에!”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솔직히 흥미로웠다.
웃기기도 했고, 뭣보다 퍽 깜찍했다.
말투에 애교가 섞여 있다고 해야 할까.
평소의 은혜를 생각하면 상상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서준 주제에, 왜……냐고오.”
“뭐라고?”
“으응?”
“아까 뭐라고 했어?”
“몰라! 내가 뭐라고 했어?”
은혜는 방싯방싯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입에 술을 잘 대지 않는 만큼 금방 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설아가 더 어른스럽겠다.
“야. 이리 와 봐.”
“왜?”
“짜샤! 누님이 말씀하시는데에. 이리 오라면 올 것이지. 어? 말이 많아.”
나는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가, 그냥 맞춰 주기로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옆으로 다가갔다.
몸을 흐느적거리던 은혜가 내 목에 손을 걸었다.
엉덩이를 옆으로 움직이더니, 의자에 자리를 만들어 나를 앉힌다.
“야!”
“아, 왜.”
“고맙다?”
“고마워? 뭐가?”
내 질문에, 은혜는 아까처럼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몰라!”
“뭐 다 몰라. 아는 게 뭐야?”
“하여튼 고맙다고! 땡큐! 사 딸라!”
“그래그래.”
뭘 고맙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재우려고 대충 맞춰 주니, 은헤는 불만스럽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다.
“너, 이씨. 반응이 그게 뭐야?”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맘에 안 들어!”
은혜는 휘청거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은혜의 양손이 뺨을 철썩 붙잡았다.
잡으려고 했던 모양인데, 술에 취해선지 힘 조절이 안 됐다.
뺨이 화끈거렸다.
“놔라.”
“으헤헤, 바보 같아.”
은혜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아무리 봐도 설아가 웃는 건 은혜를 닮았다.
‘어?’
그런데 무언가 부드럽게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은혜의 가느다란 손이 허벅지 안쪽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순수했던 웃음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입가에 요사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서준아…… 나 더워.”
간드러진 목소리가 귓속에 스며들었다.
뱀처럼 몸을 타고 올라온 손이 가슴을 짚는다.
살갗을 간지럽히듯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린다.
‘어, 어어.’
홍조를 띤 은혜의 얼굴이 천천히 가까워졌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더운 숨이 입가에 닿았다.
입술과 입술이 마주치기 직전.
쿵.
은혜는 그대로 식탁에 엎어졌다.
식탁에 볼이 눌린 은혜는 기분 좋은 듯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자냐?”
눈을 감고 새근새근 숨을 쉬는 걸 보니, 완전히 잠들었다.
긴장으로 굳었던 몸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하아.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