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간이 떨리는 탓에 쉽사리 볼 수가 없었다.
설아의 개인 시스템은 분명 업데이트됐을 거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직업이다.
‘찾아온 불행은, 일단 전부 막았는데.’
마탑도, 은혜의 죽음도 막아 냈다.
비록 세 번째 불행은 진행 중이고, 아직 찾아오지 않은 불행도 둘이나 있었지만.
설아는 아직 직접적으로 불행을 겪은 적이 없다.
나비효과로 인해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과연 설아의 개인 시스템에도 영향이 갔을까.
직업이, 바뀌었을까.
“아빠?”
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에르제베트는 설아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했다.
마녀이기 때문에 설아가 불행했던 것이라면.
다른 직업을 받을 경우, 불행이 더는 찾아오지 않는 것 아닐까.
‘개인 시스템은 바뀐다.’
내 개인 시스템만 해도 완전히 갈아엎어진 수준이다.
이외에도 개인 시스템이 없었던 은혜가 개인 시스템을 얻는 등, 내 행동에 따라, 타인의 개인 시스템에 영향이 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설아도 마녀 이외의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옅은 기대를 품고, 천천히 눈을 떴다.
이름 : 이설아
윗부분이 얼핏 보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시선을 약간 내렸다.
설아의 직업은.
직업 : 마녀
마녀였다.
그것을 본 순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고, 절망감이 숨통을 조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아.”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 설아의 불행을 막았다.
모든 불행을 막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안 되는데.’
설아의 불행은 결국, 설아가 마녀였기에 일어난 일이 맞았다.
그런데 개인 시스템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튜토리얼 타워에서 어떻게든 시스템을 설득해야 했던 걸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러면 안 되는데.’
운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설아는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고유 퀘스트에도 그 보상은 쓰여 있지 않았다.
막연히 설아의 모든 불행을 막으면, 설아가 마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던 걸까?
“아빠. 왜 그래요?”
설아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이 작디작은 아이가 기어코 가시밭길 앞에 선 것이다.
나는 설아를 끌어안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게 아닐까.
미치도록 두려웠다.
설아는 내 등을 토닥이며, 도리어 나를 위로했다.
“설아 괜찮아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았는데.
내 감정을 느끼고 그에 따라 저도 모르게 감화된 것 같았다.
나는 품에 설아를 안은 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마녀가 됐다고, 전부 끝난 게 아니야.’
그때와는 달리,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뭐라도 해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아, 다친 데 없지?”
“으응. 괜찮아요. 킁, 훌쩍.”
“미안해.”
어째 내가 울린 것 같았다.
설아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집은 이미 무너지기 직전이었지만, 얼음이 기둥처럼 천장을 받쳐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으읍!”
하피가 보였다.
인형들이 강제로 입을 틀어막고, 저지하고 있었다.
마나 총을 든 여우 인형이 하피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곰 아빠와 같은 느낌으로, 설아의 의지에 반응한 것 같았다.
말을 걸어온 건 아니지만, 뭘 묻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하피의 처우를 어떻게 할까, 내게 결정하라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우 인형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와 함께, 하피가 침묵했다.
인형들은 그제야 하피를 놓아주고는 풀썩 쓰러졌다.
다시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굳이 설아에게 죽은 하피를 보여 주고 싶진 않았기에, 그대로 끌어안은 채 아래로 내려갔다.
“설아야!”
“엄마!”
“괜찮아? 다친 데는?”
설아를 받아 든 은혜는 곧바로 다친 곳이 없나 살폈다.
하이람은 총 한 정을 든 채 집을 올려다봤다.
“괴물은 어떻게 됐어?”
“하이람 씨가 처리하셨습니다.”
“내가?”
“아. 하이람 씨 인형이요.”
하이람은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이람은 신경 쓰인다는 듯 알버트의 동태를 살폈다.
알버트는 무엇에 당한 건지, 주차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빨리 뜨자. 저건 위험해.”
“알버트라면 괜찮습니다. 잠깐 은혜랑 설아 좀 부탁드려요.”
“뭐. 어디 가려고?”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설아의 세 번째 불행은 에르제베트의 구출이다.
구출(救出)이란 위험한 상태에서 구한다는 뜻.
즉 에르제베트가 위험에 처한 것은 확실한데.
‘어쩌면 건물에 깔렸을지도.’
행방이 묘연한 게 문제였다.
에르제베트는 별다른 연락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필요할 때면 직접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다수.
내가 에르제베트를 부를 방법은, 서랍을 두드리는 게 전부다.
건물에 깔린 게 아니더라도, 서랍은 확인해 봐야 했다.
* * *
유은혜는 김형민과 아이들을 아파트 단지 내의 대피소로 보냈다.
아자누스 사건 이후로 급히 시공된 대피소였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 있었지만, 공간이 커 아이들과 김형민을 수용할 정도는 됐다.
“여기 있으시면 당분간 괜찮으실 거예요.”
“이후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기다리시면 군대에서 대피소를 찾아올 거예요.”
“……같이 가는 건 안 되겠죠?”
유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하이람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바깥이 더 위험하다.
더불어 이 많은 아이까지 전부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바깥은 더 위험할 거예요.”
“아니. 이보세요.”
한 중년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김형민이 인솔해 데려온 아이의 엄마로 보였다.
목소리도 다소 앙칼진 데다가, 화장이 매우 강해 드세 보였다.
여자는 유은혜에게 안겨 있는 설아를 보며 따졌다.
“그 애는 데리고 갈 거 아니에요?”
“아. 네. 그런데요.”
“그러면 우리 애도 데리고 갈 수 있겠네. 몇 명 정도는 괜찮잖아요?”
“바깥에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여기가 더 안전할 거예요.”
“그럼 댁들은 왜 돌아다니는데?”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은혜는 난처한 듯 대답하지 못했다.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전부 데려가는 건 불가능한 일.
유은혜는 기묘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충 치워 놓고, 안전한 곳으로 가겠다는 거 아니야?”
“저희는 사냥꾼이고, 괴물이랑도 싸울 수 있고…….”
“그럼 애도 여기 두고 가지 그래? 여기가 바깥보다 안전하다면서.”
설아는 조금 불안한 듯 유은혜에게 바짝 안겼다.
물론 설아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설아에게는 자신을 지키고도 남을 힘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설아를 의도적으로 해치려고 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 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이것 봐! 대답 못 하네! 지들만 살겠다고! 아이고!”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며 대피소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그 소리를 들은 몇몇이 유은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중에는 대피소로 오면서 유은혜가 구해 주거나 도와준 사람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시선에 눌린 유은혜는 입을 우물거렸다.
그때, 하이람이 설아에게 말했다.
“꼬맹아. 귀 좀 막아 볼래?”
“네? 네.”
설아는 작은 손으로 귀를 덮었다.
하이람은 유은혜를 살짝 뒤로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인상을 찡그리고, 여자를 바라본다.
“야.”
“뭐, 뭐야?”
“불안한 거 이해는 하겠는데, 지금 이게 맞아?”
“뭐가 맞아? 그리고 너는 몇 살인데 반말……!”
“너는 몇 살인데 반말하니? 얘는 천성이 착해서 뭐라 못하는데, 나는 아니거든?”
“뭐, 뭐?”
“기껏 물에 빠진 걸 구해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거잖아. 아니야?”
하이람은 여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기가 눌린 여자는 뒤로 물러섰지만, 하이람은 여자를 놓치지 않았다.
기어코 여자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한 하이람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렇게 뒈지고 싶으면, 다시 물에 처박아 줄게. 왜 구해 줘도 지랄이야. 씨발아.”
더 입을 놀리면 괴물에게 던져 버리겠다고 돌려 말한 것이다.
여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만 뻐끔거렸다.
하이람의 손에 들린 권총이 보였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싱긋 웃은 하이람은 여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이 자리에 애도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 없었으면 일단 처박은 다음에 말했을 거니까.”
“뭐, 뭐? 처박아? 지금 사람 협박하는 거야? 뭐야!”
“너만 성깔 있는 거 아니거든, 입 닫아. 댁이 시끄럽게 소리 질러서 괴물들 오면, 책임질 거야?”
하이람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여자 쪽으로 쏠렸다.
규탄 섞인 눈빛에 당황한 여자가 중얼거렸다.
“이, 이, 썅년이, 어른한테.”
“내가 좀 썅년이지. 근데 얘는 왜 안 와?”
태연하게 욕설을 받아들인 하이람은 바깥을 살폈다.
아파트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를 마칠 때까지, 이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쓴웃음을 지은 유은혜도 조금 걱정됐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요. 무슨 일 있나?”
* * *
나는 서랍을 발굴하기 위해 무진 힘을 썼다.
서랍이 있는 안방 쪽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자칫하면 돌 하나 빼려다가 아파트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아파트로 하는 젠가라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젠가는 실패하면 벌칙이지만, 이건 실패하면 참사니까.
끝내 서랍을 찾는 데 성공했으나.
‘부서졌잖아.’
애석하게도 서랍은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위에서 떨어진 천장의 잔해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서랍 안쪽에 손을 가져가 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아무래도 부서지면서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에르제베트와의 연결점은 이것뿐이었다.
서랍 외에는 달리 만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르제베트는 어떻게 알고 매번 나를 찾아왔지만.
나는 에르제베트가 어디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일단 집 근처에 없는 건 확실했다.
‘근처에 있었다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에르제베트가 조치를 취했을 거야.’
애초에 퀘스트는 에르제베트를 구출하는 것이다.
즉, 에르제베트는 알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느냐가 문제인데.
이설아의 다섯 가지 불행을 막으십시오. (2/5)
-세 번째 불행 : 에르제베트를 구출하십시오.
나는 에르제베트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분명, 설아의 불행 중 하나는 에르제베트의 죽음이었으니까.
실제로 퀘스트의 내용은 달랐다.
‘두 번째 불행에서는 은혜의 죽음을 막으라고 했지.’
죽을 위기였다면, 죽음을 막으라 했을 것이다.
즉, 에르제베트는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죽음과 다소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에르제베트를 무엇으로부터 구출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구출은 보통, 조난됐을 때처럼 발을 묶였을 때 쓰지 않나?’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기에,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난처한 상황.
보통 구출이라는 단어는 그럴 때 쓰인다.
‘에르제베트에겐 적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단서는, 에르제베트가 적으로 두고 있는 세력, 괴물들.
왕의 부활을 목표로 두고 있는 놈들이 에르제베트를 궁지로 몰아넣은 건 아닐까.
아니, 그것들은 애당초에 에르제베트를 죽이려 들었다.
그렇다면 퀘스트 내용이 이게 아니었을 텐데.
‘머리 아프네. 이거.’
에르제베트는 어딘가에 발이 묶여 있다.
자유로웠다면 원래 그러던 것처럼 훌쩍 나타났겠지.
죽을 위기는 아니라면, 아무래도 조난이나 납치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이것도 추측일 뿐이다.
‘결국 일단 에르제베트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그 숲이 어디 있는진 모른다.
적어도 미드하임은 아니고, 그와 유사한 인적 드문 숲일 텐데.
숲이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대한민국이라는 보장도 없다.
‘얘를 어떻게 찾는담.’
서랍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그때.
애옹.
새로운 단서가, ‘야옹’ 하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