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나는 자신을 박수찬이라 소개한 청년을 천천히 뜯어봤다.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은데, 왠지 낯이 익은 듯한 느낌이었다.
악수하며 박수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서준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근데, 혹시 제가 뭐 잘못했나요?”
너무 지그시 봤던 모양이다.
나는 손을 떼고 둘러댔다.
“아니요. 어디서 뵌 것 같아서.”
“제가 이서윤 씨 팬이라서요.”
“아?”
“이서준 씨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같은 길드 마스터에, 오빠시죠? 실제로 뵙는 건 처음입니다만, 오가다 봤을 수도 있습니다.”
“아. 네, 그렇죠.”
당황했다.
설마 이서윤의 팬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낯이 익은 것도 이해가 됐다.
언젠가 사인을 요청하거나, 구경하던 사람 중 하나였던 걸까.
가만히 은혜에게 안겨 있던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바람?”
“설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은혜는 설아에게 주의를 줬으나, 정작 본인도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남자한테는 관심 없는데, 억울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은혜와 하이람도 박수찬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은혜는 무난하게 넘어갔지만, 하이람은 박수찬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이테크 직원은 아니시죠?”
“아, 네. 그냥 방문객인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본사 직원들 얼굴이랑 이름 정도는 대충 외우고 있거든요.”
듣고 잠깐 두 귀를 의심했다.
하이테크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대충이나마 외우고 있다니.
역시 회장 딸이라 뭐가 다르다 싶었다.
‘아니. 그냥 하이람이 그런 성격인 건가.’
회귀 전에도 자신의 길드에 있는 모두를 세세하게 챙겨 줬다.
사람 수가 많아서 대충이지, 적으면 가족 관계까지 외울 사람이다.
“무슨 연유로?”
“아. 제가 사냥꾼이라서요. 하이테크의 무기가 궁금해서.”
“사냥꾼이요? 소속은요?”
“없습니다. 갓 데뷔한 풋내기라서.”
하이람은 박수찬의 안색을 살폈다.
박수찬은 눈을 피했다.
얼굴이 붉어진 걸 보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디서 보셨죠?”
“네, 네. 따라오시죠.”
박수찬은 우리를 3층으로 데리고 갔다.
3층은 숙직실과 휴게실이 있어서, 사람들이 난민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디선가 구해 온 담요를 덮고 잠든 사람도 있었고, 울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나는 사냥꾼이라 대형 던전에 들어온 기분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여긴데요.”
박수찬이 안내한 곳은 3층 복도 끝자락에 있던 여자 화장실이었다.
하이람은 단박에 인상을 찡그렸다.
“여자 화장실? 여기서 봤다고?”
“아. 오해입니다. 저는 남자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들어가는 걸 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오지 않았다는 거지?”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 목격자 같으니까요.”
박수찬은 허둥지둥 둘러댔다.
하이람은 오승훈을 흘긋 살폈다.
무엇을 물어보는 건지 눈치챈 오승훈이 대답했다.
“이미 수색은 마쳤습니다. 흔적은 없었고요.”
“흐음. 화장실 창문도 전부 폐쇄되어 있지?”
“네. 그렇습니다.”
“환풍구는?”
“고정되어 있어서, 도구가 없으면 분리시킬 수 없을 겁니다. 손상의 흔적도 없고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변기통으로 들어간 건 아닐 거 아니야.”
중얼거린 하이람이 인상을 썼다.
실종자가 발생한 만큼, 화장실의 출입은 통제된 상태.
“일단 찾아보자.”
우리는 화장실을 수색하기로 했다.
위험할 수도 있는 만큼, 설아는 바깥에 있기로 했다.
설아는 이 결정이 조금 불만스러웠는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아도 다 컸는데. 하나도 안 위험한데.”
“여기 잘 기다리고 있으면, 아빠가 착하다 해 줄걸.”
“……설아는 착하니까, 기다릴게요.”
설아를 밖에 두면, 어른 한 명이 같이 남아야 할 것 같았다.
박수찬이 선뜻 지원했다.
“제가 보고 있을까요? 제가 이만한 동생이 있어서, 애는 잘 보거든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설아야. 엄마랑 있어요.”
“응? 네!”
낯선 사람에게 설아를 맡기는 게 불안했는지, 은혜가 자원해서 남았다.
결국 나와 오승훈, 하이람이 화장실을 수색하기로 했다.
* * *
유은혜는 설아의 손을 잡고 화장실 밖에서 대기했다.
다른 한쪽 손으로는 화살을 든 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기우였는지, 별다른 소란은 없었다.
“애가 예쁘네요.”
어색했던 건지, 심심했던 건지.
박수찬이 말을 붙였다.
유은헤는 원래 낯을 가리는 성향이다.
만약 유은혜의 외모를 칭찬했다면, 별다른 생각이 안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아를 칭찬하자, 유은혜는 조금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엄마 닮았나 보다. 아, 어머니 맞으시죠?”
“맞아요.”
“아버님은?”
이에 대답한 것은 설아였다.
“우리 아빠 이름은 이서준이에요.”
“아. 아까 그분이 애 아빠셨구나. 부부신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유은혜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설아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은혜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한테 말해 줘야지.”
“설아야. 비밀이에요.”
“비밀 아닌데.”
“비밀로 해 주면 다음에 비싼 아이스크림 사 줄게요.”
“외계인?”
“외계인.”
설아는 합,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러다가 앙증맞은 손을 옮겨 두 귀를 덮었다.
“설아는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그렇죠?”
“아하하.”
박수찬은 웃었다.
웃으면서, 뒷짐을 진 손으로 마나를 끌어모았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아마 거리가 있고 신경이 다른 데 쏠린 만큼, 화장실 내부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박수찬은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박수찬을 빤히 보고 있는 설아였다.
“설아. 왜요?”
“엄마. 엄마.”
설아는 유은혜의 옷소매를 잡고 살짝 끌어당겼다.
유은혜는 고개를 숙여 설아에게 귀를 가까이 했다.
설아는 유은혜에게 작은 목소리로 대단한 비밀이라는 듯 속삭였다.
“저 삼촌, 마법사예요.”
“응? 그래요?”
유은혜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서 박수찬은 자신이 사냥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냥꾼 중 마법사의 비율은 매우 낮지만.
그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히잉. 이상한데.’
설아는 자신의 의도를 몰라주는 유은혜에 조금 속이 상했다.
그냥 마법사라는 게 아니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한 복도에서, 박수찬은 은근히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다 들릴지도 모르는데,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좋지, 생각하고 있는 와중.
유은혜는 두통을 느꼈다.
“아.”
“엄마?”
“응. 괜찮아요.”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두통.
이따금 편두통을 앓긴 했지만, 이번 건 좀 심했다.
박수찬은 비틀거리는 유은혜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유은혜는 목소리를 들었다.
[양도를 요청합니다.]자신의 목소리.
즉, 또 다른 유은혜의 목소리였다.
아까 양도를 사용했을 때는, 이상하게 응답이 없었는데.
이상함을 느낀 유은혜는 머리를 짚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괜찮은데?’
이서준을 필두로 화장실을 수색 중이긴 하지만.
괴물도 다 처리한 지금, 큰 위험은 없는 것 같았다.
굳이 양도의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어쩌면 그때 스킬을 사용한 것에 뒤늦게 응답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먼저 양도 요청을 했던 적이 있던가?’
없었다.
양도는 유은혜의 스킬이며, 오롯이 유은혜의 의지에 달렸다.
또 다른 유은혜도 말하길, 유은혜의 허락이 없다면 몸을 양도받을 수 없다고 했다.
즉 양도의 결정권은 유은혜에게 있었다.
여태껏 유은혜가 또 다른 유은혜의 힘을 필요로 하고 스킬을 사용한 적은 몇 번 있으나.
또 다른 유은혜 쪽에서 양도를 요청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설아야.”
“응. 엄마, 많이 아파요? 설아가 호 해 줄까요?”
“엄마, 잠깐만 이상할 거예요.”
“응?”
영문을 모르는 설아를 두고, 유은혜는 눈을 감았다.
또 다른 유은혜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양도.]유은혜는 또 다른 유은혜를 믿고, 스킬을 사용했다.
* * *
‘기회다.’
박수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접근, 목표만 남기는 데 성공했다.
애는 죽이고, 여자는 데리고 간다.
비록 아이가 뭔가 눈치챈 듯 굴어서 마법을 잠깐 취소하긴 했지만.
이렇게 근거리에 있다면, 거리낄 것이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에.’
사람들의 실종은 박수찬이 벌인 자작극이었다.
하이테크에 숨어들기 위해 인원수를 헤아려 뒀던 사람 중 몇을 균열 너머로 보내 버렸다.
소란이 다소 커지긴 했지만, 덕분에 떡이 굴러들어 왔다.
‘그분께서는 모든 걸 알고 계시는구나.’
비록 박수찬에게 직접 애를 죽이라고 명령한 적은 없지만 괴물을 통해 죽이려고 했던 만큼, 죽인다면 만족하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박수찬은 균열을 열 준비를 마쳤다.
부축하고 있던 유은혜를 균열로 끌고 들어가며, 아이를 죽인다.
그것이 박수찬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응?’
유은혜의 분위기가 돌연 바뀌었다.
돌변한 유은혜는 시선을 들어 박수찬을 봤다.
박수찬은 오한을 느꼈다.
‘무슨 사람 눈이.’
감정이 결여된 듯한 눈동자.
원래의 따뜻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눈이었다.
유은혜는 화살을 짧게 쥐고, 박수찬의 목을 향해 곧장 찔렀다.
‘미친!’
박수찬은 식겁했다.
무슨 이중인격도 아니고.
어떤 근거도 없었는데, 갑자기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박수찬은 다급히 마법을 사용했다.
화살촉이 목울대를 찌르기 직전.
쩌억.
박수찬의 등 뒤로 균열이 열렸다.
균열 속으로 엉덩방아 찧은 박수찬은, 가까스로 유은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0.1초라도 늦었다면, 그대로 화살촉이 목을 관통했을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박수찬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일단 물러나야 한다.’
겨우 잡은 기회였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은 하나가 아니었다.
웬만하면 상처 없이 데려오라고 했으니, 전투도 불가능한 상황.
박수찬은 일단 물러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걸 택했다.
균열을 닫으려는 순간.
덥석.
유은혜가 균열을 붙잡았다.
박수찬은 균열이 닫히며 유은혜의 손가락이 잘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어?”
균열은 닫히지 않았다.
누군가 잡고 있는 문을 억지로 닫으려는 듯한 느낌.
심지어, 상대의 힘은 상당히 강했다.
힘이 들어간 듯 유은혜의 손은 조금씩 흔들렸으나, 분명히 균열을 강제로 잡아 두고 있었다.
유은혜는 얼어붙을 듯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전하세요. 그만두라고.”
“뭐, 뭐라고?”
유은혜는 엉덩방아를 찧어 넘어진 박수찬을 내려다보다가, 균열에서 손을 뗐다.
손을 놓음과 동시에, 균열이 순식간에 닫혔다.
힘을 받은 후로는, 괴물들 사이에 혼자 있을 때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는데.
짧은 순간, 박수찬은 유은혜에게서 아주 분명한 공포를 느꼈다.
“저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