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던전화에 맞춰 개인 시스템이 업데이트됐다.
이 업데이트는 비단 기존의 사냥꾼들에게 직업과 스킬을 부여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업데이트 이후 사냥꾼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비전투 직업의 활성화다.
‘개인 시스템의 직업은 전투에 관련된 것만 있는 게 아니야.’
기존의 사냥꾼들도, 적성에 맞다면 비전투 직업을 받기도 했다.
비전투 직업은 말 그대로 전투가 아닌 생산 및 보조 활동에 관련된 직업이다.
대장장이, 재단사, 연금술사, 길잡이, 감정사, 무두질 전문가 등.
직접 괴물을 사냥하는 대신, 사냥꾼을 돕는 직업을 통틀어 비전투 직업이라 한다.
건축가도 그중 하나였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라.’
비전투 직업은 오히려 일반 사냥꾼보다 희귀하다.
그 영역에 있어서 상위 0.01%, 그 이상의 재능을 지니고 있어야 직업을 받기 때문이다.
즉 이미 상당한 지위에 올라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건축가의 영입은 거점 구축을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건축가는 비단 빠르게 시공하는 재주를 가진 게 아니다.’
하룻밤 만에 지하철역의 출입구를 전부 봉쇄한 것.
당연히 건축가의 작품이겠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단순히 벽돌로 만든 것 같았지만, 이 벽의 강도는 정말 웬만한 괴물의 침입을 막을 정도다.
직업의 특성상,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나 구조물은 강화라도 된 듯이 견고해진다.
만약 충분한 물자가 확보해, 던전제 소재로 이런 벽을 만들어 낸다면.
말 그대로 요새를 지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지. 다른 역으로 돌아가자.”
“아니요. 여기로 들어갑니다.”
“막혀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
하이람은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그 말대로, 출입구는 모두 막혀 있었다.
뚫으려면 못 뚫을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기에 찌르기(극한)을 사용하는 건 좀 무리다.
안쪽에 있는 사람들도 다칠 거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주목을 모을 거다.
하지만.
“여기도 막았을지 봅시다.”
지하철에는 계단을 사용하지 못하는 노약자나 장애인을 배려해 설치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비상전력이 가동될 때 엘리베이터는 정지한다.
아마 출입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다.
나는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틈에 창을 박아 넣고, 지렛대처럼 사용해 문을 열어젖혔다.
우득.
억지로 문을 열자, 수직으로 이어진 검은 통로가 드러났다.
엘리베이터는 아래층에 정지해 있는 것 같았다.
지하철역은 꽤 깊이 있는지, 아래는 까마득했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서준아. 그냥 다른 역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유가 있어서 그래. 오승훈 씨.”
“아. 네.”
“로프 있죠?”
“예. 있습니다.”
* * *
지하철역 내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공간을 조성하고 있었다.
청소 도구함에서 걸레를 가져와 핏자국을 청소하는 사람도 보였다.
지하철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지만, 안전한 장소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던전화됐기 때문이다.
역내에도 괴물이 존재했고, 이 때문에 전투가 벌어졌다.
“부상자는?”
“세 명입니다.”
죽은 사람도 있었고, 부상당한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여기서 그친 것은 길드, 달그림자의 마스터, 소준영 덕분이었다.
소준영은 함께 역내로 들어온 길드원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괴물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을 전부 지키는 건 불가능한 일.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현직 의사분이 확인한 결과,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망자를 완전히 막진 못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그쳐서 다행입니다.”
소준영은 눈을 돌렸다.
이 역내를 이렇게 안정시킨 것은 비단 그 덕분만이 아니었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덩치 큰 사내, 곽두팔.
수염도 덥수룩한 데다가 문신까지 있어 조금 험상궂은 인상이었지만.
그야말로 역내를 안전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저 남자가 있어서.”
“재료와 도구가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선로까지 폐쇄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합니다.”
“출입구를 막은 걸로도 충분해. 그쪽은 간단한 바리케이드만 치고, 경비를 세운다.”
“예. 지시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힘이 있는 자의 말을 따른다.
자연히 이 역내의 사람들은 소준영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먹을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약간의 분란이 발생하긴 했지만.
지금은 모두 제압된 상태였다.
“저 사람, 달그림자로 영입할 수 없으려나.”
“시도해 봤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
소준영은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곽두팔에게 갔다.
덩치 크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
상대적으로 작고 순하게 생긴 소준영과 대비되는 모습.
그러나 소준영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실제로 강한 것은 소준영이기 때문이다.
“곽두팔 씨. 고생하셨습니다.”
“……그다지.”
“덕분에 안전이 확보됐습니다. 큰일 하신 겁니다.”
“선로 막을 자제는?”
“선로는 바리케이드만 만들어 경비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다른 역으로 이동할 통로는 트여 있는 편이 좋으니까요.”
“그렇군.”
곽두팔은 상당히 과묵한 편인 것 같았다.
그런 곽두팔이 눈을 돌린 곳은, 따로 있었다.
“저기도 막아야 하는데.”
“엘리베이터요?”
“그래.”
소준영은 엘리베이터로 괴물이 침입하는 건 조금 어렵지 생각했다.
위의 문도 막혀 있을 테고, 급한 사안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 순간.
쾅!
무언가, 엘리베이터 위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산스럽지만 그다지 큰 소리는 나지 않던 와중.
갑작스러운 충돌음에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곽두팔도 벌떡 일어났고, 소준영은 다급히 길드원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안쪽으로 대피시키고, 전투 가능한 인원 전부 끌어모아서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겁먹은 사람들이 우르르 안쪽으로 도망쳤다.
소준영은 단검을 뽑아 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들려온 소리로 볼 때, 그다지 크지 않은 놈이다.
하물며 엘리베이터 위로 내려앉았으니 여유 시간이 있었다.
덕분에 길드원들도 각각 무장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였다.
꿀꺽.
어찌나 조용한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이윽고, 무언가가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튀어나왔다.
놀란 리어 하나가 공격하려 했지만, 소준영이 손을 들어 저지시켰다.
꽈드득.
그것은 억지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상당한 괴력이었다.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무기를 들이밀었다.
문을 열어젖힌 장본인을 마주한 사람들은 허탈한 듯 무기를 내렸다.
“……사람?”
이서준이 걸어 나왔다.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 양손을 살짝 들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 * *
“스펙터의 이서준입니다.”
“달그림자의 소준영입니다.”
나는 소준영과 인사를 나눴다.
대련 대회에서 몇 번 마주한 얼굴이었다.
물론 그때 나는 이서윤이었어서, 소준영은 나를 모르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내 신경은 온통 다른 데 가 있었다.
확보해야 하는 건 건축가다.
“이서준, 유성의 오빠 되시는 분이시군요.”
“네…… 그렇죠.”
“제가 대련 대회에서 동생분한테 참패했습니다. 두 번씩이나요.”
“아, 그렇군요.”
참패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소준영은 이서윤에 대한 기억이 긍정적인지, 나를 살갑게 대했다.
설아, 즉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만큼 모질게 내치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보 공유를 겸해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질문했다.
“혹시, 출입구에 벽을 세우신 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은 왜 찾으시는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흐음.”
소준영은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마 건축가의 중요도를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다.
자제만 있다면 하루 만에 안전지대를 구성할 수 있는 전력.
당연히 손에 쥐고 싶을 거다.
“저도 이서준 씨한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뭔가요?”
“혹시 동생분은 어디 계신지.”
“아. 아마 안전할 겁니다. 원체 애가 세기도 하고.”
네 앞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대충 둘러댔는데, 그래도 가족이라는 설정 때문일까.
소준영은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왜 이서윤의 안부를 묻는 걸까.
“아. 뜬금없었나요. 제가 이서윤 씨 팬이라.”
내 팬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눈을 감았다.
“연락처라도 드릴까요?”
“저, 정말입니까?”
“지금은 전파가 안 통하긴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전화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렇지만, 사생팬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죠.”
“제가 잘 말해 놓겠습니다.”
“허어……. 저, 저는 이렇게 성덕이…….”
“대신, 저걸 만든 분을 뵐 수 있겠습니까?”
동생 팔아먹는 간악한 오빠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팔리는 건 나였다.
뒤에서 은혜와 하이람이 숙덕거리는 게 들렸다.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요. 이상한 취향에 눈뜨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힘들겠네. 괜찮아? 내가 한 소리 해 줄까?”
“아니에요. 어쩌겠어요. 에휴.”
어째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아와 하이람이 은혜를 토닥이며 독려하는 게 보였다.
억울해 죽겠다.
* * *
나는 건축가 곽두팔을 마주했다.
하이람과의 대화는 끝내 놓은 상태였다.
“저 사람이라고? 벽 쌓은 게?”
“예. 혼자서, 한나절 만에 이렇게 해 놓은 겁니다.”
“미쳤네. 근데, 어떻게 알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영입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개인 벙커는 이미 다 구성되어 있긴 한데, 보수할 인원이 있으면 유리하지.”
하이람의 허락도 받았겠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곽두팔에게 성북으로 이동하는 걸 제안했다.
하이테크에서 안전을 보장한 개인 벙커.
이동에는 한나절이 채 안 걸린다.
식량을 비롯한 각종 필수품은 물론, 거처까지 보장해 준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안 갈 거요.”
곽두팔은 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사를 마쳤는데, 또 고생할 생각도 없고.”
곽두팔은 내 너머에 있던 하이람을 봤다.
옅은 감정이었지만, 부정적인 눈빛이었다.
“나는 부자들 노예가 아니거든.”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일용직이었다고 해도, 자존심이 있지. 안 간다면 그런 줄 아쇼.”
아무래도 설득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하이테크의 개인 벙커라는 말에 거부감이 든 모양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자에 대한 적의가 있는 듯 보였다.
적어도 하이람은 그런 부류의 부자가 아닌데, 이를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곽두팔을 올려다봤다.
‘자기 혼자 이득을 챙길 수도 있었는데, 굳이 대피소로 왔다.’
진짜 살고자 했으면, 자기 집을 요새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마트 같은 곳을 폐쇄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곽두팔은 굳이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선택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신념 있는 사람.
그렇다면.
‘설득할 방법이 있지.’
나는 곽두팔에게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앞으로의 계획 일부를 꺼내기로 했다.
에르제베트 구출이라는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긴 했지만.
단서가 없는 지금은 계획을 진행하면서, 박수찬이 찾아오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계획이란 간단하게 축약할 수 있었다.
“곽두팔 씨. 저랑 일 하나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