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
침대에는 고치처럼 말린 이불이 놓여 있었다.
설아가 그 위로 올라가서, 빼꼼 이불 속을 들여다봤다.
“엄마, 괜찮아요?”
“아니요……. 안 괜찮아요…….”
나는 은혜가 늘 그렇게 하듯이 커튼을 걷었다.
햇볕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채광 한번 좋다.
“아으, 으으, 으아아…….”
은혜는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며 이불을 끌어 올렸다.
햇볕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뭉그적뭉그적 몸을 돌린다.
아무래도 숙취가 상당히 강한 모양이었다.
나는 숙취 해소제를 내밀었다.
“마셔.”
“으, 고마워.”
은혜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어 숙취 해소제를 잡았다.
겨우겨우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한입에 털어 넣는다.
눈살을 찡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엑, 맛없어.”
“그럼 맛있겠어?”
“나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기억 안 나?”
“응.”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돌아오는 대답.
태연한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은혜는 어젯밤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많이는 안 마셨는데.”
“으, 내가 다시 마시나 봐라, 맛도 없는 거.”
은혜는 인상을 쓴 채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설아는 그런 은혜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엄마, 많이 아파요?”
“아니에요. 휴, 약 먹었더니 괜찮아졌어요.”
“그래요? 다행이다!”
은혜는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눈썹을 찡그리는 걸 보면 아직 머리가 아프긴 한 모양이었다.
맥주 몇 캔 마셨다고 필름이 끊기고, 저 정도로 숙취를 느끼다니.
어지간히 술에 약한 것 같았다.
“서준아.”
“응.”
“혹시, 나 어제 무슨 실수 안 했지?”
“어어…….”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조금 당황했다.
은혜는 눈을 깜빡였다.
“나 뭐 했어?”
“……주정을 좀 부리긴 했지.”
“내, 내가? 어, 그래도 심하진 않았지?”
“거의 진상이었는데.”
“지, 지, 진상?”
진상이라는 말에 은혜는 울상이 됐다.
아무래도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진짜인 것 같았다.
“뻥이야.”
“뭐?”
“사실 그냥 엎어져서 잤어.”
“이익! 진짜!”
베개가 날아왔다.
* * *
사냥꾼 라이선스 최종 시험의 내용은 이렇다.
지정된 초보자용 던전을 공략할 것.
물론 초보자용 던전이더라도, 혼자서 던전을 공략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무작위로 선정된 응시생 둘과 함께 공략한다는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
요컨대 조별 과제였다.
‘문제는 운이 안 좋았을 때인데.’
팀을 이룰 사냥꾼 지망생은 완전히 무작위로 선정된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 두 명이 루터처럼 뒤에서 따라다니기만 해도, 공략할 자신이 있었다.
초보자용 던전에 나오는 괴물들은 그라운드 스파이더, 땅거미보다 약한 것들이 대부분.
그다지 위협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은혜가 좀 걱정이네.’
반면 은혜는 조금 걱정됐다.
저번에 무너진 백화점을 공략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 탓이었다.
활약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던전 공략 자체가 익숙지 않으니.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응시생이 그럴 것이다.
오히려 은혜가 정상이고,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도 은혜의 실력이면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을 잡았다면 모를까, 활까지 잡고 있으니까.
나는 관악산 인근에서 감독관을 만났다.
실기 시험을 치렀을 때 봤던, 딱딱한 말투의 감독관이었다.
“이서준 응시생?”
“네.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무래도 내가 제일 일찍 온 모양이었다.
팀원이 될 다른 두 응시생은 보이지 않았다.
감독관이 시계를 확인하고 있는데, 앞에서 차가 멈춰 섰다.
앳된 얼굴의 청년이 차에서 내렸다.
‘이건 뭐야?’
이제 막 스무 살쯤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 몸에 걸친 것들이 이상했다.
화려한 시계나 목걸이는 물론이고,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다.
참신하게 미친놈이다.
“허만수 응시생?”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감독관은 원서와 허만수의 얼굴을 대조해 보더니, 내 뒤로 오게 했다.
허만수는 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선글라스를 살짝 밑으로 내리고 나를 봤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서준입니다.”
“허만수.”
묘하게 누구랑 닮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일단 척 봐도 꽝인 건 확실했다.
이어서, 또 다른 응시생이 도착했다.
서른 살 정도 된 듯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였다.
키가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였고, 운동을 한 듯 몸도 다부졌다.
감독관이 그를 올려다보더니 물었다.
“강대호 응시생?”
“예, 그렇습니다!”
강대호는 몸 크기만큼이나 목청도 컸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강대호라고?’
내가 생각도 못 했던 인물이 여기서 등장했다.
강대호라면 나도 익히 들어 본 이름이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강대호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꾸벅 인사했다.
“강대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서준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허만수다. 걸림돌만 되지 마라.”
어째 상당히 콩가루일 듯한 조합이었다.
감독관은 우리를 이끌고 던전의 입구로 갔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바위굴처럼 생긴 곳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통제되고 있는 걸 보면, 던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략은 3시간 이내에 하셔야 합니다.”
사냥꾼은 던전에 진입하면 퀘스트를 받게 된다.
물론 최초 공략이 아니기에 일반 퀘스트였고 보상도 적었지만, 그 보상을 받는 것이 합격의 기준이었다.
던전 공략에 너무 적게 기여하면,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 감독관이 따라온다고 한다.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무기는 한 종류에 한하여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소모품은요?”
“소모품 같은 경우에는 주어진 것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공략에 필요한 소모품은 따로 주어졌다.
응급처치용 응급키트, 랜턴, 조명탄, 심지어는 지도까지 준다.
‘이건 그냥 성공하라고 주는 거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지도를 주는 건 제발 좀 공략하라는 얘기다.
이래도 합격률은 채 일 할이 안 되지만 말이다.
“그럼 자유롭게 회의를 시작해 주십시오.”
공략에 앞서, 3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포지션을 정하고, 공략 방법을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허만수와 강대호는 어리둥절하게 눈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진하게 느껴지는 조장의 예감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각자 무기부터 설명해 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창입니다.”
“평범하군.”
허만수는 코웃음을 치더니,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마석이 박혀 있는 지팡이, 마법사들이 쓰는 완드였다.
허만수는 완드를 괜히 허공에서 한 바퀴 돌리며 허세를 부렸다.
“난 마법사다.”
“오.”
강대호는 감탄했다.
그야 마법사는 희귀하니까,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마법사라면 보통 유명하기 마련인데.
‘허만수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데.’
어중이떠중이일 확률이 높았다.
마지막 남은 강대호는 조금 머뭇거렸다.
내가 아는 강대호가 맞다면, 여기서 조금 특이한 것이 나올 거다.
“제 무기는…….”
“무기는?”
“그, 주먹입니다.”
“주먹?”
허만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강대호를 쳐다봤다.
강대호는 진짜라는 듯 가드를 올리고 자세를 잡아 보였다.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확실히 던전제 소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장난치지 말고, 무기 꺼내지?”
“진짜입니다.”
“하.”
허만수는 기가 찬 듯 웃었다.
강대호는 억울해 보였다.
역시, 내가 알던 강대호가 맞았다.
나는 강대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왜요. 멋지기만 한데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훗날 권왕이라고 불리게 될 남자와 만났다.
* * *
회의 끝에, 포지션이 정해졌다.
가장 사거리가 짧은 강대호가 선두.
나는 바로 뒤에서 오더 및 견제를 맡는다.
마법사인 허만수는 최후방이었다.
정석과 같은 포지션이었다.
던전 입구에 발을 들이자, 알림음이 들려왔다.
[공략된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일반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던전 : 관악산 개미굴을 공략하십시오.]관악산 개미굴.
강대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더니,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 던전에 온 거라면 어두컴컴한 내부에 겁먹을 만도 한데.
“자, 잠깐.”
이렇게 말이다.
겁을 집어먹은 허만수는 던전 안쪽을 보며 주저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벌써 미래가 보였다.
“허만수 씨, 얼른 들어오세요.”
“너, 너희. 나를 지킬 수 있는 거 맞나?”
“하아, 같이 싸워야죠. 무슨 소립니까, 도대체?”
“그럼, 먼저 들어가 봐라.”
나는 얘가 어떻게 실기 시험에 통과했는지 알 수 없었다.
고구마를 한입에 삼킨 듯 목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오기 싫으면 마세요. 먼저 갑니다.”
“먼저 갑니까?”
“네. 초입부는 둘로 충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강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그런 강대호를 따라 던전으로 들어섰다.
얼핏 붕괴한 백화점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달랐다.
거기는 나무뿌리가 철골 따위가 튀어나와 있었는데, 여긴 완전 동굴이었다.
굴 자체의 크기도 꽤 넓어, 창을 휘두르기에 용이할 것 같았다.
“가, 같이 좀 가!”
허만수가 뒤늦게 따라왔다.
허겁지겁 쫓아오는데, 절그럭절그럭 소리가 들려왔다.
몸에 걸친 장신구들 때문이었다.
나는 합류한 허만수를 봤다.
“허만수 씨.”
“이, 가란다고 진짜 먼저 가면 어떡하냐고!”
“허만수 씨.”
“왜 자꾸 불러. 짜증 나게!”
허만수는 도리어 내게 신경질을 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장신구는 전부 벗어서 입구에 보관해 두세요.”
“왜?”
“소리가 울립니다. 괴물에게 우리 위치를 드러내는 꼴이에요.”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네가 보상할 거야?”
“감독관님께 맡기면 되지 않습니까.”
“걔가 슬쩍할 수도 있잖아.”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특권 의식에 절여진 어린애다.
화낼 마음도 들지 않았다.
“공략 중 오더의 말은 절대적입니다. 어서 두고 오세요.”
“너, 혹시 저거랑 혹시 한패는 아니겠지? 짜고 한탕 해 보겠다 이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패라니, 설마 보석을 훔치려고 짜기라도 했단 말인가.
허만수는 인상을 찡그렸고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어어? 대답 못 하네. 설마 진짜냐?”
나는 창을 짧게 잡았다.
뒤를 돌아보고, 허만수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허만수는 숨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벽으로 물러섰다.
“커헉!”
나는 창을 짧게 잡고, 허만수의 목을 향해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