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이보게. 서준 군.”
“예. 어르신.”
“자네가 저번에 했던 제안 말이지.”
“부산으로 가는 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거 말일세.”
검성의 호출을 받은 나는 이서윤의 모습으로 한번 찾았던 안채에서 검성과 마주했다.
검성은 내가 기다렸던 화두를 던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됐다 생각했다.
예상대로 검성은 고려검가 때문에 내 제안을 거절했던 것이었다.
“자네 활약상은 익히 들었네. 덕분에 고려검가가 조금이나마 안정됐어.”
“아직 안정됐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안정시킬 시간을 확보했지. 성북에서 지원해 준 건축가도 있으니.”
“날씨 문제가 있지만, 곽두팔 건축가라면 금방 외벽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자네 의도는 알겠네. 나를 포섭하고자 하는 거지?”
이유 없는 호의는 아니었다.
검성도 그것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부산행에 동참시키기 위해, 내가 고려검가를 전전한 것이라는 걸.
실제로 난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일정은 있나?”
“계획은 세우고 있다 들었습니다.”
“일정이 정해지면 내게 말하게. 내 시간을 내 봄세.”
“정말입니까? 어르신?”
“덕분에 아이들도 좋은 영향을 받았고, 내 보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하이람이 말한 조건 중 하나.
검성의 포섭에 성공했다.
고희연도 수락했으니, 남은 건 강대호뿐.
에르제베트를 구해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들떴다.
“구할 사람이 있다지?”
“예? 그렇습니다.”
“혹, 그 사람이 자네 동생인가?”
나는 동생이 없다.
설정상 동생이 있긴 하다.
이서윤, 내 또 다른 모습이다.
에르제베트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없으니.
나는 대답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검성은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오해였지만, 이서윤을 구한다는 게 검성의 부산행 동참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일단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자네 동생은 내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날세.”
“그, 그렇습니까?”
“자네랑 참 닮은 것 같더군.”
“동생이니까요.”
검성의 눈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항상 나를 지켜본 것은 아니기에.
설마 동일 인물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하긴 쉽게 의심하기 어렵긴 하다.
“자네를 처음 본 건 라이선스 시험 때였지.”
“그때 관전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희연이가 추천해서 말이네. 참 난놈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난놈은 검성이 재능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회귀 전에, 나는 검성이 저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강대호가 저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그런 평가를 받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성북을 이끌었다는 소리도 들었네. 단순히 능력만 탁월한 사람이 아닌 것 같군.”
“성북은, 주변 사람들이 다 했지, 전 한 게 없습니다.”
“주변에 사람을 모으는 것도 자네 인덕이라네.”
검성은 내가 마음에 든 듯, 상당히 흡족해 보였다.
첫 만남이나, 예전에 고려검산에서 봤을 때는 그냥 눈여겨보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는 눈치였다.
검성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려검가의 고길동이라고 하네. 검성이라고 불리고 있네.”
“……성북의 이서준입니다. 스펙터의 길드 마스터를 맡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훅 들어온 통성명.
나는 혀를 씹는 고통을 감내하며,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검성은 이름을 듣고도 웃지 않는 나를 보며, 더욱 기특하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 * *
“으아아앙!”
이른 새벽.
책을 읽다가 깜빡 책상에서 잠들었던 유은혜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설아의 울음소리에 기겁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책상 모서리에 발가락을 찍혔다.
한 번 넘어지기까지 했지만, 놀란 마음에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유은혜는 허겁지겁 설아가 잠들어 있던 방으로 달려갔다.
“설아야!”
벌컥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어두운 방, 침대 한가운데에서 잘 자고 있던 설아가 몸을 일으키고 울고 있었다.
괴물이 쳐들어오거나 자신에게 적의를 내비쳐도, 웬만해선 울지 않는 설아다.
그런 설아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으니, 유은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딱딱.
침실 창문을 확인하고 있는 미니 알버트도 보였다.
검을 들고 휙휙 창문 바깥을 보고 있었는데, 아마 누가 습격한 건 아닌가 확인하는 듯했다.
유은혜는 침대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설아를 끌어안았다.
설아는 유은혜의 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아아…… 흐윽, 흑.”
“괜찮아요. 괜찮아.”
유은혜는 설아를 안아 주고 안심시키듯 등을 쓰다듬었다.
놀라서 요란하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누군가 설아를 습격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알버트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유은혜에게 전달했다.
설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안심됐는지 울음을 멈췄다.
입으로 힘겹게 이어 나가던 호흡도 천천히 진정됐다.
“흥, 하세요.”
“훌쩍, 흥!”
유은혜는 손가락으로 설아의 눈물을 닦아 줬다.
커튼을 친 알버트는 설아를 맡긴다는 듯, 유은혜에게 경례하고 방 밖으로 빠졌다.
알버트는 설아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자발적으로 경계를 서곤 했다.
아마 지금도 문밖에서 경비병처럼 서 있을 것이다.
“왜 갑자기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갇혀 있는 건 싫은데, 무서운데.”
설아는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갇혀 있다니, 누가 갇혀 있다는 걸까.
유은혜는 설아의 등을 쓸어내렸다.
“설아 안 갇혀 있어요. 꿈꿨나 보다.”
“꿈?”
설아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막 울어 버린 탓에 눈이 조금 부어, 힘겹게 두리번거리는 모습.
“여기 어디예요?”
“집이에요.”
“집? 으응.”
설아는 조금 안심한 듯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코를 훌쩍였지만, 그래도 많이 진정된 것 같았다.
유은혜는 조금 두려워졌다.
항상 꾸던 악몽이 어느 날을 기점으로 뚝 끊겼다.
그런데 이제는 설아가 악몽을 꾸기 시작하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유전 같은 건 아니겠지.
“아빠는요?”
“아빠는 일하러 나갔어요.”
“언제 와요?”
“글쎄. 모르겠네.”
“아빠 보고 싶은데.”
설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유은혜는 이서준이 무엇을 위해 고려검가로 갔는지 알고 있었다.
당장 돌아오라고 종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설아를 달래 주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요.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아빠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할게요.”
“으응, 자기 싫어요.”
유은혜는 설아를 조심스레 눕히려 했지만, 설아는 이를 거부했다.
안 그래도 평소에 잠이 많은 설아였고, 평소대로 잤으니 아직 졸릴 텐데.
악몽에 놀라서 잠이 달아나 버린 걸까.
“너무 오래 잤어요. 스승님이 깨워 줄 때까지, 자기만 한 것 같은데.”
설아는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유은혜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엄마. 스승님은 어딨어요?”
* * *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식사는 골렘을 통해 주기적으로 전달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불편했지만.
이서준이 올 것이라는 믿음 아래,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창문이 없어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가진 않았지만.
식사는 6시간을 주기로 아침, 점심, 저녁이 제공됐다.
대략 여태껏 받은 식사로 시간을 가늠할 때, 두 달이 지난 것 같았다.
이미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은 전부 다 읽은 지 오래였다.
불안이 에르제베트를 좀먹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이서준이 알까?’
캐시와의 연결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급선무는 어떻게든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연락은 고사하고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마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공간의 마나만 동결시켰어. 이런 게 가능하다고?’
수많은 시도와 실험 끝에 알아낸 사실은 하나.
이곳에서는 어떻게 해도 마법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뿐이었다.
어떤 종류의 마법도, 심지어는 아주 간단한 마법조차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에르제베트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저주를 사용할 수는 있었으나, 그 저주를 쓸 대상이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생물. 벌레라도 들어온다면.’
저주를 어떻게든 사용해,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벌레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에르제베트는 무력하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때쯤부터, 불안은 두려움과 공포로 바뀌었다.
‘갇혀 있는 건 거북한데.’
마법 사용은 불가능하고, 저주도 사용할 수 없다.
폐쇄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처형 전, 지하 감옥에 갇혀 보낸 지옥 같은 시간.
그때보다는 환경도 여건도 확연히 나았지만.
에르제베트는 그때와 지금이 묘하게 겹친다고 생각했다.
무력하게 폐쇄된 공간에서, 처우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래도 그때보단 나아.’
수갑을 차고 있던 때를 떠올린 건지, 에르제베트는 손목을 긁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 에르제베트에게는 이서준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또한, 살아야 할 이유 또한 있었다.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하고 또 두 달이 지났다.
에르제베트는 습관적으로 손목을 긁었다.
수갑은 발목에 달린 게 전부였지만.
그때와 상황이 너무 비슷해, 수갑을 차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철컥.
문이 열리고, 골렘이 식사를 가져왔다.
저걸 부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매번 괜찮은 맛의 한 끼 식사가 제공되지만, 도통 입맛이 없었다.
애초에 에르제베트를 이곳에 감금해 두고 있는 인물이 준비하는 식사다.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 했다.
억지로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맛없어.’
또 두 달이 지났다.
손목을 너무 긁은 탓에 상처가 생겼다.
대신 이제 목이 간지러웠다.
에르제베트는 이따금 마탑주가 보여 줬던 기억을 꿈으로 꾼다.
포대를 얼굴에 쓰고, 처형장으로 끌려 나가던 기억.
금방이라도 목이 잘려 나갈 것 같았다.
바깥은 언제나처럼 조용했고, 이서준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에르제베트는 부정적인 가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서준이 죽을 때까지 자신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아예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에르제베트는 안중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에르제베트는 자신이 이서준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서준에게는 유은혜와 이설아라는 가족이 먼저일 테니까.
하지만, 설아마저 에르제베트를 단순한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 지금.
에르제베트가 의지할 사람은 이서준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서준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시간에 점점 침식되는 것 같았다.
‘또, 그렇게 죽는 걸까.’
싫다.
무섭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잃을 게 너무 많았다.
에르제베트의 호흡이 점점 흐트러질 때쯤.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어?’
분명 식사를 가져다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골렘이 식기를 가져가는 건, 다음 식사를 내올 때다.
즉, 이건 골렘이 아니다.
‘설마, 이서준?’
빛을 잃어 가던 에르제베트의 눈동자에 옅은 생기가 돌았다.
이서준이 아니라 박수찬이라고 해도, 제압할 여지가 생기는 셈 아닌가.
끼익.
그런데 들어온 인물은, 에르제베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