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설아의 불행은 누구한테 들은 걸까.
상식적으로 이에 대해 아는 건 나와 에르제베트 둘뿐.
잠꼬대한 게 아닌 이상 내가 말했을 리는 없고, 은혜는 에르제베트와 연결된 상태라고 하니.
에르제베트가 은혜에게 설아의 불행을 알린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첫 번째로 생긴 의문은 왜.
은혜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이에 대해 알릴 필요는 없다.
굳이 설아의 불행에 대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은혜는 합류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은혜에게 설아를 데리고 오라고 설득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에르제베트가 설아를 위험한 부산에 불러들일 것 같진 않았다.
자신이 구출되지 않으면 설아가 불행해지는 불가피한 상황.
그렇기에 설아의 힘을 빌리면서라도 불행을 막으려는 걸까.
에르제베트와 대면하지 않는 이상 그 진의는 불확실했다.
두 번째로.
‘어디까지 들은 거지?’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은혜가 진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에르제베트는, 은혜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한 걸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에르제베트는 회귀의 사실을 숨기라 했지만.’
아자누스 사냥을 기점으로, 에르제베트는 많은 일에 대해 제약이 풀렸다고 했다.
원래 소극적으로만 움직이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내 회귀에 대해서도 말한 것 아닐까.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였다.
나는 지금과는 달리 은혜를 도와주지 않았고, 설아를 방치했다.
결국 어느 쪽도 구하지 못했다.
‘만약 은혜가 전부 알게 됐다면?’
어쩌면 위선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식을 데리고 와도 버렸던 놈.
결국 설아를 지키지 못하고 파멸로 몰아넣은 건 나다.
은혜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면, 나를 혐오하진 않을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힘겹게 질문을 꺼냈다.
은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목을 조여 오는 기분이었다.
“에르제베트 씨. 구하지 못하면 설아가 위험할 수도 있다면서. 맞아?”
“누가 그래?”
“내 말에 먼저 대답해 줘. 너, 이거 알고 있었어?”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설아의 불행에 대한 사실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회귀한 이후로, 쭉 그것을 막기 위해서 움직여 왔으니까.
은혜도 내가 설아의 불행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기만자의 효과를 사용하면 속여 넘길 수는 있겠지만.
에르제베트가 말했다면, 발뺌할 수도 없는 노릇.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나한테 말 안 한 거야?”
“내가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어.”
“설아 일인데, 왜 네가 혼자 해결해? 나는 못 믿겠어?”
“그게 아니라.”
섣불리 뭐라 변명할 수도 없었다.
은혜가 뭘 얼마나 알고 있을지 가늠도 안 됐으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미안.”
“……아니야. 몰아세우려는 게 아니었어. 미안해.”
은혜는 감정에 휩쓸렸다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감정을 추스르듯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잘해 보려고 한 거겠지. 그래도 혼자서 부담 떠안는 건 싫어.”
“그래도, 그게 설아가 같이 갈 이유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에르제베트 씨를 구하려면, 설아의 힘이 필요해.”
이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옆에 있던 하이람이 거들었다.
“설아가 없으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그랬지?”
“네.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설아랑 붙어 있어야 제대로 느껴져요.”
은혜는 설아와 붙어 있어야, 에르제베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은혜는 매개일 뿐이고, 마녀 간의 어떤 감각을 공유하는 걸까.
어쩌면 에르제베트가 설아에게 마법을 걸어 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위험한데.”
설아를 데려가기엔, 부산은 너무 위험했다.
생존자 하나 찾을 수 없는 상황.
한 번도 클리어되지 않은 부산은 몬스터 소굴이었다.
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설아가 없다면 에르제베트 씨를 못 찾아. 그게 오히려 설아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잖아.”
“설아 없이도 찾을 수 있어. 수색에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보호하는 건 좋지만, 과보호야. 부산 앞에서,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면 되잖아.”
설아를 너무 감싸고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아가 엇나가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나는 봤다.
“설아도 가고 싶어 해.”
“애가 가고 싶어 한다고, 그런 곳에 섣불리 들일 수는.”
“네가 지켜.”
은혜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럴 힘, 있잖아.”
* * *
결국 나는 은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묻지 못했다.
조금 찌질한 이유였지만,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이람은 빠르게 구상해 둔 작전을 브리핑했다.
나는 오더였기에, 먼저 작전을 익혀 둘 필요가 있었다.
의외인 점은, 검성이 내게 오더를 맡겼다는 것이었다.
‘참, 특이하신 분이야.’
최강이라는 지위.
고려검가를 이끄는 통솔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 오더를 내게 맡겼다.
아마 나를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거고.
자신을 포섭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감을 안고 가라는 압박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검성은 오더가 아니더라도 최강의 패다.
차라리 내가 오더를 맡는 편이, 전력을 발휘하기 좋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수는 불리하다고 판단, 인원은 최소한으로 줄였어.”
“몇 명입니까?”
“너, 나, 은혜, 희연이, 검성, 설아, 오승훈, 백재현까지. 여덟.”
“설아는.”
“알아. 전력에서 제외지. 하지만, 히든카드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야.”
하이람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은혜와 하이람이 있더라도, 헬기의 격추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아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법사, 그중에서도 궤를 달리하는 힘을 지닌 설아라면.
여차할 상황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긴 했다.
‘내키진 않지만.’
가능하다면 괴물이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살생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피하고 싶었던 일이다.
평범한 애처럼 살아 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운명인 모양이었다.
나도 이제는 타협해야 할 것 같았다.
나라가 던전화됐는데, 평범한 애처럼 키우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최근에 설아는 친구가 생겼다.
알버트가 아니라, 진짜 또래의 아이.
조민준이라는 아이였는데, 괴조가 습격했던 집 근처에 살았던 애라고 한다.
유난히 해골을 좋아하는 게 특이하긴 했지만, 아직 설아의 힘을 모른다.
그래도 노는 걸 보면 평범한 애 같아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긴 했다.
“그래요. 인원수는 여덟. 오승훈 씨는 헬기 조종입니까?”
“응. 부산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설아랑 대기시킬 거야.”
“오승훈 씨라면 안심되긴 하는데, 인원수를 더 줄일 수는 없을까요?”
“나도 헬기 조종은 할 수 있긴 한데, 오토바이 몰듯이 몰아서.”
“오승훈 씨 꼭 데려가죠.”
하이람이 어떻게 운전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미친 광란의 질주를 가족과 함께 즐기고 싶진 않았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뭡니까?”
“하이테크 탈환. 헬기가 멀쩡한지부터 확인해야 해.”
“……확인된 게 아니었습니까?”
“말했잖아.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 * *
강대호는 박수찬과 함께 수서로 향했다.
중간중간 괴물이 나타나긴 했지만, 강대호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대체로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고, 강하다 싶으면 스킬을 동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등장하는 괴물이 차츰 강해지고 있다지만.
아직 강대호는 벅찰 정도로 강한 괴물을 만난 적은 없었다.
“수서는 어떻게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겁니까?”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색하신 것 같은데.”
“아. 큼. 그러면 그렇게 할게.”
“수서가 안전한 이유는 한 분 덕분입니다.”
“한 분?”
“그래요. 제가 따르는 분이요.”
강대호는 강한 사람에게 특히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은 대체로 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른 안전지대의 대표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명성이 있었음에도 지금 행방이 묘연한 강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흐음. 누구지? 차유현?”
“차유현이요? 대한민국의 마탑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아닙니다. 그 사람은 죽었어요.”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요.”
아무래도 박수찬은 차유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강대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차유현이 아니라면, 달리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개인 시스템을 부여받은 뒤에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세력을 구축한 걸까.
“이름이 뭔진 알고 싶은데.”
“직접 보시면 될 겁니다.”
“흐음. 그래. 뭐.”
강대호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 안전지대를 구축하는 데 드는 노력은 엄청나다.
이서준이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며 성북을 구축하는지, 직접 봤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길래, 성북보다 완벽한 안전지대를 구축했다는 걸까.
‘내가 수서를 들렀을 때는.’
조금 오래된 일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안전지대 같은 건 없었다.
그때가 약 3개월 전이니, 근 3개월 만에 안전지대를 구축했다는 얘기다.
그것도 낙원이라고 찬양할 만큼, 안전한 곳을 말이다.
쉽사리 믿음이 가진 않는 게 사실이었다.
“참. 강대호 씨는 성북의 대표와 친하시죠?”
“내가 그런 얘기까지 했던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어서요. 스펙터의 길드원이셨잖습니까.”
“지금도 길드원이야.”
“협회가 유명무실하게 된 지금, 길드라는 공동체에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군요.”
“그러면?”
“지금은 안전지대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게 추세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지대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이서준만 해도 성북에서 새로운 팀을 구성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안 하나 드리겠습니다.”
“무슨 제안?”
“수서에 소속되라는 제안입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안전지대 하나에 머무를 생각이 없는데.”
강대호는 일단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수서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박수찬의 말이 맞다면 강대호는 자신의 힘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했고, 굳이 그곳에 소속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이었다면 잠깐 머무르면서 도와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머무를 생각이 없다고 해도, 머무르시는 걸 권고드립니다.”
“도움이 필요한가?”
“아니요. 아닙니다. 이건 구원입니다. 강대호 씨는 저를 살려 주셨지요. 그렇기에, 저도 그 대가로 강대호 씨를 구하고자 하는 겁니다.”
“구원이라니. 아까부터 말이 조금 거창한데.”
“아니요. 조금의 과장도 없습니다. 이건 구원이니까요.”
강대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박수찬을 봤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좀 정도가 심했다.
설명해 보라는 듯 대답하지 않고 있자, 박수찬이 말을 이었다.
“머지않아, 수서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안전지대는 멸망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