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2)
22화
허만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이서준의 창날은 허만수의 목울대 앞에서 멈춰 있었다.
아마 1센티미터만 더 깊게 찔렀어도, 그대로 목을 관통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돌발 상황에, 강대호는 물론이고 감독관까지 당황했다.
‘반응하지 못했다.’
감독관이 반응할 수 없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는 것이다.
복부를 걷어차서 벽에 몰아붙이고, 창을 내지르는 일련의 동작.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연계였다.
‘도대체 뭐 하던 놈이지?’
감독관의 역할은 단순히 평가와 안전 책임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쟁을 저지하는 것도 감독관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서준이 허만수를 제압하는 과정은 너무 빠르게 끝나 버렸다.
‘창을 하루 이틀 잡은 솜씨가 아닌데.’
감독관은 일찍이 이서준의 실기 시험도 관전한 바 있다.
거기서도 두각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때 감독관은 집중하지 못했다.
응시생들의 전투는 지루했고, 솔직히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창을 짧게 잡고 찔렀다. 거리를 정확히 계산했다는 거야.’
실질적인 전투 시간만 따지면, 거의 최단 시간 안에 실기 시험을 끝냈다.
이미 그 시점에서 많은 에이전트의 주목을 받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고려검가의 검성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물건이 들어왔군.’
공략을 시작하기 전에도 주도적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아는 지식도 상당히 많았고, 공략법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유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강단 있는 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에이전트였다면 당장 계약서를 들이밀었겠어.’
감독관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만수의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에 반해, 이서준의 대응은 사실 적절했다.
말로 하는 경고가 먹히지 않으면, 행동으로 보여 주는 편이 낫다.
한 사람의 부정적인 태도로 팀 전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차라리 저런 식으로 기를 눌러 놓는 것도 방법이었다.
“허만수 씨.”
“예, 옙.”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장신구 전부 두고 오세요.”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가 귓전에 내려앉았다.
허만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압도된 모습이었다.
웬만한 사냥꾼도 크게 당황할 만한 상황.
응시생이라면 오죽할까.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됐다.
* * *
허만수가 고분고분해진 후로, 공략은 순조로웠다.
관악산 개미굴은 끝자락에 괴물이 밀집한 던전.
복잡한 길을 찾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쳐도, 경비를 서는 개미도 없는 건 생각 못 했네. 쉬는 시간인가?’
주식인 발광 이끼가 그대로 남아 있고, 순찰하는 개미도 없는 건 의외였지만.
여왕개미의 산란기에는 뒤에 몰려 있을 때도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회귀 전에 몇 번이고 공략한 경험이 있었기에,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감독관인데.’
사냥꾼 라이선스 최종 시험에는 숨겨진 규칙이 하나 있었다.
사냥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갑작스러운 변수에 얼마나 침착하게 대처하는가.
그 위기 대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감독관은 인위적으로 돌발 상황을 만든다.
감독관은 줄곧 기척을 죽인 채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신경 쓰이네.’
실기 시험에서 적당히 주목을 받았을 터.
어떤 돌발 상황을 연출할지는 알 수 없다.
“잠깐. 앞에 이상한 게 있습니다.”
선두에 서 있던 강대호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앞쪽을 보니, 이상한 구덩이가 보였다.
‘저게 뭐지?’
여태껏 개미굴을 공략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아래로 파인 원뿔 형태의 구덩이였는데, 척 봐도 ‘나 함정이오.’ 하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구조였는데,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호기심이 들었는지, 뒤에 있던 허만수가 고개를 내밀어 그것을 살폈다.
강대호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내 의견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함정 같네요.”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돌파해야 합니다.”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아마 밑으로 떨어지는 종류의 함정이겠죠. 지면에 닿지만 않으면 될 겁니다.”
구덩이는 부서진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단해 보여도, 아마 밟으면 쑥 빠질 것이다.
‘이게 돌발 상황이라니. 시시한데.’
돌발 상황은 조금 더 긴급한 시국에 주어질 줄 알았다.
이건 비교적 간단한 돌발 상황이었다.
그때 허만수가 가까이서 구덩이를 살피다가 발을 헛디뎠다.
“어?”
“저, 저!”
미처 잡을 틈도 없이, 허만수가 구덩이로 떨어졌다.
무너지는 자갈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진 허만수는 그대로 구덩이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으어억!”
“허만수 씨! 움직이지 마세요!”
허만수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발버둥을 쳤다.
다행히 구덩이 안쪽으로 빠지진 않았다.
대신 갯벌에 서서히 빠지듯, 발버둥을 칠 때마다 허만수의 발이 자갈 속에 잠겼다.
보다 못한 강대호가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있으라니까요!”
“히익! 뭐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끌어당긴다니, 뭐가…….”
그리고, 허만수의 뒤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사슴벌레와 비슷하게 집게가 달린, 몸뚱이가 유독 큰 괴물.
개미잡이(Ant Eater)였다.
키이익!
개미잡이는 집게로 허만수의 몸을 잡았다.
날이나 가시가 달리지 않은 만큼 다치지는 않겠지만.
놈의 악력을 생각하면 마법사인 허만수가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할 터.
개미잡이는 허만수를 자갈 구덩이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허만수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자갈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살려 줘어어억!”
“원호합니다!”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강대호는 망설이지 않고 구덩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도 곧바로 그 뒤를 따라 내려갔다.
구덩이 밑에 다다른 우리는 허만수처럼 그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 거긴!”
자갈이 머리 쪽에 들어찼을 때, 얼핏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서 들려온 알림음이 감독관의 목소리를 뭉개 버렸다.
[히든 던전에 최초로 입장했습니다.] [특수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히든 던전 : 개미잡이 굴을 공략하십시오.]자갈로 이루어진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가라앉던 나는 이내 그 너머의 공간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발광 이끼로 들어차 있는 동굴이었다.
먼저 떨어진 강대호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흐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동굴 안쪽에서 허만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강대호는 내가 자갈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도와줬다.
“어떡합니까?”
“구해야죠.”
“죽지 않았을까요?”
“잠깐은 괜찮을 겁니다.”
개미잡이는 먹이를 저장고에 두는 습성이 있다.
머리를 내리쳐서 기절시키는 정도가 전부일 테니, 안전할 것이다.
놈이 굶주린 상태였다면, 허만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다.
내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강대호는 안심했다.
“알림음, 들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특수 퀘스트라고 하더군요.”
“히든 던전입니다.”
“그, 돌발 상황은 아니겠습니까?”
강대호는 돌발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절대 돌발 상황이 아니었다.
돌발 상황일 수가 없었다.
“협회에서 히든 던전과 괴물을 준비했겠습니까?”
“그건, 그렇군요.”
돌발 상황은 딱 ‘응시생이 당황할 정도’다.
이건 완전히 도를 넘어섰다.
‘개미굴에는 히든 던전이 없었다.’
원래라면 없었어야 할 일이었다.
히든 던전이 그렇게 대놓고 있었다면, 분명 회귀 전에도 개방됐을 테니까.
즉, 이건 내가 불러온 나비효과일 가능성이 컸다.
크리튼 불 이후로 이렇다 할 일이 없어서,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미래를 바꿀 때마다 뭔가 일이 터지는 건 맞는 모양이었다.
“감독관은……!”
“못 쫓아온 것 같습니다.”
공략되지 않은 던전이다.
히든 던전에 최초로 입장했을 때, 일시적으로 추가적인 입장은 차단된다.
그 증거로, 머리 위의 자갈 늪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마 뒤따라 들어오려고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으리라.
“둘이서 공략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사냥꾼 지망생 두 명.
난이도가 측정되지도 않은 히든 던전을 최초 공략하기에는 불안한 전력이다.
하지만 그 응시생 중 하나는 미래의 권왕이고, 다른 하나는 회귀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관악산 개미굴은 소형 던전입니다. 2~3시간이면 공략할 수 있어요.”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던전에 붙어 있는 히든 던전은 대체로 원래 던전과 크기가 엇비슷하거든요.”
즉, 개미잡이 굴 역시 2~3시간 안에 공략할 수 있는 소형 던전일 확률이 높았다.
역시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에 직면한 탓인지, 강대호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권왕에게도 응시생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신선했다.
나는 권왕 강대호의 큰 특징 중 하나를 건드려 보기로 했다.
“허만수 씨가 위험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바로 죽이지 않은 걸 보면 저장고에 보관되겠지만, 만약 먹이가 떨어진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끔찍한 말로는 예상할 수 있었다.
강대호는 한숨을 내쉬고 결단을 내렸다.
“이서준 씨는 괜찮습니까?”
“위험하더라도, 살릴 수 있다면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허만수가 죽든 말든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어차피 저렇게 실전에 투입됐다면 얼마 못 가서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 히든 던전의 최초 공략 보상이 탐났다.
무너진 백화점에서 획득한 젤리의 효과도 제대로 보고 있었다.
‘뭣보다, 권왕은 의협심을 중시하는 사람.’
회귀 전에, 권왕 강대호는 의협심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보였다.
복싱 선수 시절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고 들었다.
예상대로 강대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망설였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동생인데요.”
강대호는 눈을 깜빡였다.
실제로 강대호는 스물아홉으로, 나보다 세 살 형이었다.
강대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다.
“서준이 너, 볼수록 마음에 드네. 그럼 너도 편하게 대호 형이라고 불러.”
“그럴게요, 대호 형.”
“좋아. 마음 같아서는 술 한 잔 꺾고 싶지만……!”
“허만수 씨를 구하는 게 먼저죠.”
“그렇지. 시험 끝나고 마시는 걸로 하고.”
강대호는 목을 한 바퀴 꺾으며 몸을 풀었다.
깊은 동굴 안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더는 서준이 네가 맡아 줘. 난 머리 쓰는 쪽은 잼병이거든.”
“네. 그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권왕은 썩 머리를 잘 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빈번하게 사기를 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더는 경험 많은 내가 맡는 쪽이 맞다.
“그럼 던전, 개미잡이 굴, 공략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