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머리를 식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생각한다.
상황은 언제나 최악이었으니, 할 수 있다.
저 군세를 상대로 수비하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니다.
몇 번이고 죽인다면 되살아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소모전으로 들어갈 때, 불리한 건 성북이었다.
‘이게 정말 맞는 판단일까?’
후회해 봤자 늦는다.
결정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작 이것들을 상대로 겁먹을 수는 없었다.
쿵.
나는 성북 외벽 아래로 떨어졌다.
발바닥을 타고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외벽 정면에 있던 수서의 군세와 마주쳤다.
그르륵. 그륵.
광신도의 시체 하나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괴물들도 설아를 보더니, 선명한 적의를 드러냈다.
언데드가 된 놈들도 정확히 설아를 노리고 있었다.
즉, 이것들은 무언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이런 능력이라면.’
성북에 있는 게 도리어 위험했다.
강대호 때처럼, 성북의 사람들을 조종하기라도 한다면.
성북의 사망자가 저렇게 언데드가 되어 군세에 합류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위험한 건 바깥이 아니라 안전지대 내부다.
그렇기에, 나는 성북에서 나왔다.
그게 설아도 성북의 사람들도 지키는 길이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다.’
도망.
어차피 이것들의 목적은 설아다.
도망치면 성북이 아니라 나를 쫓아올 것이다.
나는 설아를 품에 안고 외벽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등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괴물들이 달려들었으나.
“엄호 사격해!”
하이람의 지령이 들려왔다.
이윽고 위쪽에서 총알의 비가 쏟아지며, 괴물들을 저지했다.
그 덕분에 괴물들의 주목을 확실히 모은 뒤, 정면에서 측면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성북으로 진격하던 전군이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빠. 이제 어떡해요?”
“도망칠 거야.”
“으응?”
내 몸을 꽉 붙든 설아는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예상 못 한 답변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기에 있어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간다!”
나는 설아와 함께 도망쳤다.
* * *
“저 바보 멍청이가.”
하이람은 혀를 찼다.
이서준이 저런 행동을 한 이유는 예상할 수 있었다.
잦은 습격을 받는 성북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성북이 수서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
그렇기에 수서의 전군을 이끌고 도망치는 걸 선택했다.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건가.’
성공한다면 최선의 판단이 된다.
성북의 피해도 최소화되고, 설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최악의 판단이 된다.
애초에 목표는 설아를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 텐데.’
설아를 아끼는 이서준이다.
위험을 감수한다면, 생각이 있을 것이다.
“엄청나게 빠르군요.”
오승훈은 멍하니 도망치는 이서준을 바라봤다.
설아를 안아 든 이서준은 날아다닌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 와중에 확실히 성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수서의 군대는 공격 방향을 틀어 이서준을 쫓았다.
“이긴…… 건 아닌데.”
하이람은 확 인상을 찡그렸다.
맞부딪혔다면 졌겠지만, 이서준의 판단 덕분에 직전에 전투를 피했다.
애초에 싸우지 않았기에 이겼다고 볼 수도 없었고, 졌다고 볼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고 저렇게 도망칠 수는 없을 거야.’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상대는 죽지도 않고, 수도 많다.
도망만 쳐서 회피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이서준은 설아를 데리고 도망치는 걸 선택했는가.
‘설마.’
이서준의 성격을 아는 하이람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만약 이서준이 결단을 내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하나 있었다.
낮게 깔린 먹구름 때문인지, 하이람은 갑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람 언니!”
유은혜였다.
예상대로, 유은혜는 에르제베트와 함께였다.
뛰어온 듯 숨을 고른 유은혜는 하이람의 앞에 다다라서, 외벽 너머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 서준이는요?”
* * *
나는 달렸다.
괴물들에게 닿지 않음과 동시에, 나를 놓치는 괴물도 없도록 거리를 조절한다.
회귀 전에 고기 방패 역할로 괴물을 모아 본 경험이 있어서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광신도들은 이제 전부 언데드가 됐다.
일전의 엄호사격에 당해 죽거나, 다른 괴물들에게 깔려 죽었다.
“후우, 후우.”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 몸 상태로 저것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까.
금방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저주 혹은 해주의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은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찌르기(극한) 한 번 사용하는 게 한계였다.
‘왕의 반지를 사용한다면?’
사냥할 수는 있으나, 너무 위험했다.
전과 달리 나는 지금 대량의 영혼을 소모해야 원 상태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정도 영혼을 소모하면 분명 인간성에 영향이 갈 것이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나는 설아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안 돼. 그건 마지막 수야.’
성북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거리를 더 벌린 다음, 완전히 따돌린다.
안전한 장소에서 체력을 비축하고 다시 사냥을 시작한다.
그게 최선의 수 같았다.
그때, 품에 안겨 있던 설아가 말했다.
“아빠.”
“응?”
“설아가 혼내 줄까요?”
설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
‘설아는.’
자신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설아는 괴물을 마주하고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살의에 조금 움츠러들었을지언정, 평범한 아이처럼 울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자신이 저 괴물들보다 현저하게 강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설아에게 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설아도 되도록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설아는 이미 허락을 받을 정도로, 자신이 지닌 힘의 위험성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틀렸던 건가?’
나는 설아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아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아이였으니까.
‘나는 회귀 전에 설아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느꼈다.
아이는 어느샌가 부모의 손을 떠나 자립(自立)한다.
나는 언제까지고 설아를 보호할 생각만 했다.
이런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며 내가 나서려고만 했다.
어쩌면 과보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설아는 강하다.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그 힘을 언제까지고 억누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산골렘이나 괴조 때처럼 마법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설아야.”
“응.”
“공격 마법은 함부로 사용하면 안 돼요.”
“……잘못했어요.”
설아는 내가 혼낼 줄 알았는지 사과부터 했다.
조금 풀이 죽은 모양새다.
하지만, 혼낼 생각은 없다.
‘어차피 여기에는 보는 눈도 없으니까.’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설아를 노리는 사람과 괴물이 이렇게나 많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혼내는 거 아니야.”
“응?”
“나쁜 괴물들한테는 써도 돼.”
산골렘, 괴조.
이미 설아는 괴물들에게 마법을 사용한 전적이 있다.
“나쁜 괴물들, 혼내 주자.”
힘을 올바른 상황에서 제대로 쓰는 방법을 알려 줘야 한다.
설아는 조금 놀랐는지 나를 바라봤다.
“설아가 해요?”
“응. 대신, 죽이면 안 돼.”
제압하는 건 원래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다면 가능하다.
설아에게 살생의 무게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숨통을 끊는 건 내가 할 테니, 설아에게는 협력만 구한다.
“응!”
설아는 알겠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출력을 조절하는 방법부터 배운 설아다.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캬아아악!
조금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오던 괴물들이 가까워졌다.
나는 탁 트인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설아를 안아 든 채, 몸을 돌렸다.
“설아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내 아이를 믿어 주겠는가.
“해 버려.”
* * *
설아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설아에게 적의를 내뿜으며 맹목적인 공격성을 드러냈다.
설아는 에르제베트에게 배웠던 마법을 기억했다.
‘쾅 하면 죽을 것 같은데.’
이 괴물들은 괴조만큼 터프하지 않다.
약하게 하더라도, 직접 얼려 버리면 속절없이 죽어 나갈 것 같았다.
그렇다면, 괴물 한 마리 한 마리 마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아가 사용하는 마법은 대부분 규정된 마법이 아니었다.
스스로 만들어 낸 마법.
“으음!”
설아는 고민했다.
마법에는 주문이 따른다.
이는 에르제베트도 권장한 방법이다.
말에는 힘이 있어, 마나를 마법으로 바꿀 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렇기에 설아는 마법의 강도를 조절할 때 ‘약하게’를 연달아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설아가 사용할 마법의 주문은 이랬다.
“그대로 멈춰라!”
리듬감이 있는, 그대로 멈춰라.
귀여운 동요의 한마디였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쩌억.
설아의 말을 따르기라도 하듯, 모든 괴물이 행동을 정지했다.
날아다니던 괴물은 날갯짓을 멈추고 추락했다.
아가리를 연 채 멈추거나, 넘어지는 놈들도 있었다.
달려들던 군대 전체가 얼어붙은 듯 그대로 멈춰 버렸다.
“됐다!”
설아는 밝게 웃었다.
조금만 힘이 약했어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힘이 강했다면, 전부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설아는 힘 조절 끝에 괴물들을 전부 얼리는 데 성공했다.
“설아 잘했죠!”
“응. 잘했어.”
“으헤헤.”
이서준은 설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았다.
숨통을 끊는 것은 이서준의 역할이었다.
죽이지 말라 시켰지만, 죽이지 않을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설아가 살생하는 게 싫어서 제압하라 한 것일 뿐.
설아를 죽이려 한 이들을 살려 둘 정도로, 이서준은 자비롭지 않았다.
“설아야. 알버트 좀 불러 줄래?”
“네! 알버트!”
설아의 부름에, 미니 알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니 알버트는 이서준을 보고 반갑다는 듯 딱딱거렸다.
“잠깐 설아 좀 부탁할게.”
이서준의 말에, 알버트는 자신만 믿으라면서 제 가슴을 퉁퉁 쳤다.
갈비뼈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다시 주워서 맞춰야 했다.
설아는 알버트와 함께 잠깐 구석으로 갔다.
“이것들. 정말 다 살아 있네.”
이서준은 얼어붙은 괴물들의 군세를 확인했다.
부득이하게 창이 없어, 단검으로 일일이 코어를 찾아 죽여야 했다.
사람도 섞여 있었으나, 이서준은 그들을 사람이라 보지 않았다.
* * *
“찾았다.”
군대를 일일이 죽여야 해서, 시간이 조금 걸리고 말았다.
일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이서준은 뜻밖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희연이?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그곳에는 고희연이 있었다.
평소와 같은 도복 차림이라 조금 추워 보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왜 이곳에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지원하러 온 거야?”
이서준은 평소처럼 고희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고희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서준은 섬찟한 감각에 멈춰 섰다.
“어?”
검 한 자루가 목에 들어와 있었다.
검을 내민 장본인은 다름 아닌 고희연이었다.
이서준은 멈춰 서서 고희연을 바라봤다.
고희연은 질문했다.
“설아.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