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만세.”
“만세!”
설아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유은혜가 설아에게 옷을 뒤집어씌워 입혔다.
설아는 혼자서 옷을 잘 입는다.
하지만 혼자 입기 어려운 옷도 있다.
너무 두꺼워서 짧은 손이 잘 닿지 않을 때가 있었다.
작은 손으로 꼬물거리며 단추를 채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차라리 그런 옷은 유은혜가 입혀 주는 편이 속 편했다.
‘머리는 어떻게 하지?’
설아는 머리가 꽤 긴 편이었다.
추우니까 그대로 덮는 것도 괜찮겠지만.
털모자를 뒤집어쓰면 정전기 때문에 엉망이 된다.
묶을까 생각했지만, 유은혜는 땋는 걸로 마음을 바꿨다.
“앉아 보세요.”
“네!”
설아는 익숙한 듯 의자에 앉았다.
유은혜에게 머리를 맡긴 채, 땅에 닿지 않는 양발을 휘저었다.
이서준과 에르제베트가 수서로 간 동안 둘은 조민준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조민준은 성북에 사는 어린아이로, 설아와 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아이였다.
“설아, 병원에서 막 시끄럽게 하면 안 돼요.”
“알아요!”
유은혜는 내심 설아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기우였는지, 설아는 성북의 어린아이들과 곧잘 어울렸다.
심지어 꽤 인기도 많았다.
가끔 보면 설아를 좋아하는 듯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애가 귀엽고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사랑스럽긴 하니까.’
유은혜는 저도 모르게 설아에게 남자 친구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마 이서준이 내 눈엔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 된다고 펄쩍 뛸 것이다.
솔직히 유은혜도 그럴 것 같았다.
‘그건 아직 이르지.’
사소한 것까지 참견하고 싶진 않지만.
다섯 살에 연애는 아직 이르지 않은가.
유은혜는 심란한 표정으로 설아의 머리를 땋았다.
“머리 땋는 건 아빠가 더 잘하는데.”
“엄마도 잘해요.”
유은혜는 조금 자존심 상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차마 더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서준의 솜씨가 더 뛰어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유은혜는 이서준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맡겨 본 적이 있다.
-내 머리도 한번 해 줘 봐.
-응? 좋아. 어떻게 해 줄까?
-마음대로 해.
막상 머리카락을 맡기니 불안했다.
이서준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진 않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본 이서준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에 맡겨 본 건데 너무 진지해서 뭐라 말도 못 할 정도였다.
-정했다.
이서준은 뭔가 결정한 듯, 유은혜의 머리카락을 빗질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신기했던 건, 이서준의 손길이 부드러워서 졸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엉켜 있는 머리카락이 한 번쯤 걸릴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었다.
방심한 유은혜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까무룩 졸았을 때.
-됐다.
-어? 스읍.
이서준은 세팅을 완료한 후였다.
침까지 흘릴 뻔한 유은혜는 겨우 잠에서 깨고, 거울을 봤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예쁘지?
-어, 예쁘긴 한데…… 좀 과한 거 아닌가?
이서준은 유은혜를 거의 여왕님처럼 만들어 놨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살아 있는 듯한 신기한 느낌이었다.
머리를 조심스레 돌려 봤지만, 흠잡을 데는커녕 칭찬할 만한 부분만 더 보일 뿐이었다.
-여기 컬은 어떻게 준 거야?
-빗이랑 손으로.
-그게 가능한가……?
-기합이 필요해.
결국 유은혜는 이서준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아마 사냥꾼이 되지 않았다면, 이서준은 헤어 디자이너로 대성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 재능이 예술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엄마!”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멍하니 있던 유은혜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아지경으로 땋고 있던 설아의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에구. 엄마가 딴생각했어요.”
“아이 참. 다시 예쁘게 해 주세요.”
유은혜는 설아의 머리를 풀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설아는 물 묻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양옆으로 휘휘 저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떴다.
“으헤헤. 바보 같다.”
설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야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뭐지? 왜 귀엽지?’
귀여운 애는 뭘 어떻게 해도 귀엽다던가.
유은혜는 그런 설아마저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
* * *
조민준은 일곱 살 인생 두 번째로 큰 위기를 맞이했다.
성북에서 설아와 처음 마주친 날, 바보처럼 말을 더듬은 것 이래로 이런 위기는 처음이었다.
조민준은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있는 박수빈을 바라봤다.
“이름이 뭐야?”
“……박수빈.”
“몇 살이야?”
“……여섯 살.”
“뭐야. 내가 형이네.”
조민준은 박수빈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뭘 좋아하느냐, 왜 병원에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그런데, 박수빈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조민준은 당황했다.
질문 조금 했을 뿐인데 울어 버릴 줄은 몰랐다.
애초에 울 만한 질문도 없었을 텐데.
“왜 울어?”
“기억이 안 나.”
“뭐가?”
“아무것도.”
박수빈은 작은 손으로 자기 머리를 퍽퍽 때렸다.
그러나 여전히 기억나는 게 없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던 조민준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똑똑.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옆으로 밀리고, 누군가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민준 오빠?”
“설아야!”
그토록 기다리던 설아가 병문안을 온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이 조금 이상했다.
“훌쩍.”
울음소리에, 설아는 박수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조민준은 당황했는지 횡설수설 말했다.
“내가 울린 거 아니야.”
“누구예요?”
“어, 박수빈?”
조민준은 난처한 듯 박수빈을 불렀지만, 박수빈은 울고만 있었다.
설아는 총총 박수빈의 침대 근처로 가서 기웃거렸다.
고개를 푹 떨군 박수빈은 설아를 보지도 않았다.
설아는 박수빈의 품으로 무언가를 쑥 내밀었다.
“으응?”
그것은 미니 알버트 인형이었다.
뜬금없는 해골의 등장에, 박수빈은 당황했다.
자세히 보니 꽤 귀엽게 생겼지만, 조금 놀란 탓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안녕?”
“……안녕.”
박수빈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설아는 미니 알버트를 앞세우고 있었다.
인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인사를 나눴다.
“왜 울어?”
“무서워서.”
“뭐가 무서운데?”
“기억이 안 나.”
“무서운 게 기억이 안 나?”
“아니. 기억이 안 나서 무서워.”
박수빈의 대답은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눈을 떴는데, 낯선 공간에 있는 낯선 이들 사이에 혼자 떨어져 버렸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데다가, 병원의 약품 냄새는 박수빈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자.”
박수빈은 부드러운 털 뭉치가 품에 들어오는 걸 느꼈다.
미니 알버트 인형이 박수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꽤 귀여웠다.
“뭐야?”
“줄게.”
“인형?”
“알버트야.”
“알버트?”
“응. 내 친군데, 엄청 세.”
박수빈은 멍하니 미니 알버트 인형을 바라봤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래전에도 이런 적이 있던 것 같다.
병원에 혼자 있던 박수빈에게 나라고 생각하라며 인형을 건넨 누군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제 안 무섭지?”
박수빈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설아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낯설고 차가웠던 공기가 부드럽고 따뜻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박수빈은 인형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아는 다행이라는 듯 밝게 웃다가, 흠칫 놀라 옆을 봤다.
“헉. 이거 원래 민준 오빠 병문안 선물인데.”
조민준의 시선은 미니 알버트 인형에 고정되어 있었다.
해골을 유난히 좋아하는 조민준이다.
설아와 친해진 계기도 해골이었다.
알버트를 소환수로 둔 설아는 해골에 꽤 우호적이었다.
그만큼 조민준은 해골에 있어서 진심이었다.
“나는 어른이라 인형 같은 거 가지고 안 놀아.”
“으응? 설아랑 인형 놀이 했잖아.”
“그건……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그래? 그러면 수빈이 줘도 돼?”
“으그극.”
조민준은 끙끙 앓았다.
해골 인형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설아의 병문안 선물이라는 점이 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 나는 형이니까.’
조민준은 철회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
설아는 그런 조민준을 유심히 바라봤다.
“민준 오빠는 어른이네.”
“그럼. 당연하지.”
조민준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설아는 조민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착하다. 착하다.”
“에헴! ……어? 이게 아닌데.”
조민준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라고 추켜세워 줬으면서 동시에 아이 취급을 받는, 묘한 기분이었다.
박수빈은 그런 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야.”
“응?”
조민준의 머리를 쓰다듬던 설아가 고개를 돌렸다.
흠칫 놀란 박수빈은 미니 알버트 인형 뒤로 살짝 숨었다.
“왜?”
“나, 너 좋아.”
“쿨럭.”
사레들린 조민준이 헛기침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이 처음 만난 걸 텐데.
다짜고짜 고백부터 할 줄은 몰랐다.
“고마워?”
“넌 나 좋아?”
“몰라! 처음 봤으니까!”
조민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북에서 설아는 이미 인기인이었다.
구김살 없이 밝은 성격인데, 의젓한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예쁘고 귀여워서 설아를 남몰래 좋아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그렇구나.”
“응.”
“그럼 나중에 나 좋아지면, 나랑 결혼할래?”
“으엥?”
“쿨럭, 커헉! 켁!”
조민준이 요란하게 기침했다.
기억을 잃어버린 탓일까.
박수빈에게는 수치심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해진 조민준은 설아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설아는 처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설아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충격적인 발언에 조민준은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가?’
설아랑 결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설아가 좋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조민준은 속으로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시며 기대했다.
하지만 차마 그 다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 그것보다, 너희들, 여기에 낙서 안 할래?”
조민준은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다른 이름이 나오면 충격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아는 잠깐 관심을 보였다.
깁스한 다리에 그림을 그리는 건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랑?”
그러나, 박수빈은 화제가 넘어가게 두지 않았다.
심지어 박수빈의 눈은 꽤 진지했다.
조민준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 녀석, 진심이야.’
마냥 울보인 줄 알았더니, 꽤 남자다운 면모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민준의 신경은 온통 설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커서 누구랑 결혼할 건데?”
설아는 일 초의 고민도 없이, 시원할 정도로 맑게 대답했다.
“아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