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강대호와 고희연이 식탁 앞에 앉았다.
은혜가 잠이 덜 깬 설아와 박수빈을 데려왔다.
의자에 앉은 설아는 멍하니 허공을 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으헤헤. 아빠 머리가 이상해요.”
나는 거울로 내 머리를 확인했다.
부스스하게 솟아 까치집이 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샤워를 못 했다.
부스스한 건 설아와 박수빈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러니까 되게 글러 먹은 어른 같네.’
은혜는 평소처럼 차분한 모습이다.
씻고 나오기도 했지만, 편하게 있어도 어째 나와는 느낌이 달랐다.
나는 식기를 가져와 각각 사람들 앞에 배치했다.
음식을 내온 은혜까지 자리에 앉았다.
고희연이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이제 먹어도 돼요?”
“눈치 볼 거 없는데. 당연하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으암…….”
설아는 고희연의 말을 따라 하다가 작은 입을 한껏 벌리고 하품했다.
세수까지 했는데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식사를 시작했다.
신기한 건, 다들 하나같이 먹을 때 성격이 보인다는 것이다.
“설아야. 뭐 묻히고 먹으면 안 돼요.”
“으급.”
은혜는 먹을 때도 설아를 살폈다.
볼에 묻은 밥풀을 떼어 주며, 입가도 한번 닦아 준다.
그런 와중에도 식사는 제대로 하는 게 참 존경스럽다.
고희연은 굉장히 깔끔하게 식사했다.
흘리거나 급하지도 않은데, 그 양만큼은 상당했다.
입이 그다지 큰 것 같진 않은데, 한 번에 어지간한 성인 남자보다 많이 집어넣는다.
“음! 이거 맛있다! 언니가 하신 거죠?”
“은혜가 요리를 좀 잘하긴 하지.”
“왜 네가 으스대는 거야……?”
은혜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봤다.
한편 강대호는 허겁지겁 밥을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저게 밥을 먹는 건지 흡수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긴 훈련하고 오면 배고프긴 하다.
강대호의 눈에는 어째 물기가 가득했다.
“대호 형. 울어요?”
“아니. 내가 집밥을 먹은 지가 오래돼서.”
“태어날 때도 안 우셨다면서요.”
“안 울어. 울 뻔한 거지.”
조금 과한 반응인가 싶었지만, 강대호는 여태 안전지대 밖에서 생활했다.
매일 건조된 보존식 같은 거나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집밥을 먹으면 감격스러울 만도 했다.
“서준 오빠는 좋으시겠어요. 언니가 요리 잘해서.”
고희연은 음식을 꿀꺽 삼키곤, 빙글빙글 눈웃음을 지으며 나와 은혜를 번갈아 봤다.
명백히 놀리는 투였다.
은혜는 난처한 듯 대꾸했다.
“오해야.”
“오해가 아니라 오예 아니에요?”
“희연이 너.”
“아이, 맛나다.”
고희연은 능청스레 모른 척하며 밥을 먹었다.
밥을 워낙 맛있게 먹는 터라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대신 은혜는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하여튼 내 잘못은 아닌 것 같다.
* * *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고희연은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강대호와 이서준은 대련한다고 잠깐 나갔기 때문에, 조용한 공간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거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고희연은 천천히 고르게 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머리를 비우고, 짧은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어섰다.
‘응?’
몇 분간 그 자세 그대로 있던 고희연은 천천히 명상에서 깨어났다.
다리에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고희연은 슬쩍 눈을 떴다.
어느샌가 다리 위로 올라온 설아가 고희연을 따라 하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는데, 어째 머리가 뒤로 넘어간다.
인제 보니 명상을 하는 게 아니라 졸고 있는 것 같았다.
“설아야. 여기서 뭐 해?”
“……설아 안 잤어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잠깐 잠들었던 게 확실했다.
고희연은 물끄러미 설아를 내려다봤다.
설아도 고개를 들어 고희연을 올려다봤다.
아직도 졸린지,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리다가 배시시 웃는다.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가까이 오라고 한다.
귀를 가까이 하니, 중대한 비밀이라는 것처럼 속삭인다.
“사실 잤어요.”
“으그극. 귀여워.”
고희연은 어쩔 줄 모르다가, 설아를 끌어안았다.
볼을 조물조물 주물러도,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도 싫은 기색이 없다.
설아는 아주 자연스럽게 응석을 부릴 줄 알았다.
오히려 더 하라는 듯 엉겨 붙어 오기까지 했다.
아마 그만큼 사랑받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리라.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이서준과 유은혜가 어떻게 설아를 키웠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런 애가 어쩌다가.’
문득 미래의 설아가 떠올랐다.
고희연은 언뜻 미래의 설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정확히는 미래에서 가족을 잃고, 맹목적으로 설아를 쫓던 미래의 자신이었다.
고희연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설아를 쓰다듬었다.
“너도 설아 테라피 받는 거야?”
“설아 테라피요?”
“서준이가 그렇게 부르더라고.”
“테라피……. 확실히 치유되긴 해요. 효과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유은혜는 찬장을 열었다.
“뭐 마실래?”
“혹시 차 있어요?”
“있어. 서준이가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주워 왔거든.”
“주워 왔다고 하니까 되게 이상하네요. 수색팀이 물자를 챙겨 온 거죠?”
유은혜는 금방 차를 내왔다.
기성품이었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행여나 쏟진 않을까, 조심조심 차를 마신 고희연이 찻잔을 멀찍이 내려놓았다.
훈련하고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에 하는 설아 테라피.
가만히 있으면 따뜻한 차까지 나온다.
“언니. 저 여기 살아도 돼요?”
“……안 돼.”
“왜요. 사랑의 보금자리라?”
“윽. 희연이 너까지 그러면 어떡해?”
“이게 오빠가 괜히 놀리는 게 아니었네요.”
고희연은 흡족한 미소를 띠고 유은혜를 봤다.
평소엔 차분한 유은혜가 당황하며 허둥지둥하는 건 꽤 귀여웠다.
지금이라면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놀리는 남자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집 밖에서 들리는 게 아니라, 방에서 들렸다.
안방 문을 열고 누군가 걸어 나왔다.
“스승님!”
설아가 벌떡 일어났다.
조금 아쉬워하는 고희연을 뒤로하고, 에르제베트에게 간다.
고깔모자를 쓰고 어깨에 고양이까지 얹어 둔 에르제베트는 영락없는 마녀의 모습이었다.
“지금 가려고 하는데. 이서준은?”
“아. 잠깐 나갔어요. 혹시 에르제베트 씨…….”
“그래? 그럼 다녀올게. 설아야. 가자.”
“응? 네!”
에르제베트의 마법이 발동했다.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듯한 일종의 포탈이 생겼다.
포탈은 에르제베트와 설아를 집어삼켰고, 둘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어제도 했던 마구엘 수색이었다.
고희연은 입을 달싹이는 유은혜를 봤다.
“언니. 에르제베트 언니랑 싸웠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고희연은 꽤 눈치가 좋은 편이다.
어쩐지 에르제베트가 유은혜를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은혜는 씁쓸하게 웃으며 부인했지만.
둘 사이에 뭔가 있었던 건 맞는 것 같다.
고희연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뭐지? 사랑싸움?’
* * *
“전 내일 따로 갈게요.”
“가는 김에 그냥 와.”
“대호 오빠는 왜 안 가요?”
“나는 수빈이 봐줘야 하잖냐.”
강대호는 박수빈에게 책임감을 보였다.
육아를 해 본 적 없는 만큼, 조금 서툴러 보이긴 했다.
어쨌든 제 아버지, 강철이를 보러 가는 대신 박수빈을 돌보는 걸 택했다.
“형도 오랜만에 강철이 어르신을 찾아뵙는 거 어때요?”
“응? 왜?”
“뭐, 인사드리는 거죠.”
“됐어. 사내놈이 아무리 그래도 애를 두고 오냐면서 혼나기만 할걸.”
성북에는 우리 아버지도 계신다.
종종 설아를 데리고 찾아뵙는데, 싫은 척하면서 좋아하신다.
아마 강철이도 그럴 것 같았지만, 굳이 강대호를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여차하면 에르제베트가 공간 이동을 통해 내게 도움을 청하거나 도망친다고 했으나.
어쨌든 강대호 같은 전력이 설아 옆에 붙어 있으면 든든하긴 했다.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근데 오빠는 뭘 그렇게 많이 챙기셨어요?”
“이거? 그냥 이것저것. 소재 같은 거.”
실제로 내가 짊어진 배낭은 꽤 무거웠다.
수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
그리고 무기 제작에 필요한 소재였다.
소재의 경우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어떻게 알고 에르제베트가 미리 제공했다.
나는 마중 나온 은혜에게 당부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에르제베트 씨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알아.”
“너도 조심해. 미래의 설아는 너랑 에르제베트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 같으니까.”
“그것도 한 스무 번 정도 들은 것 같은데.”
은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건데, 이렇게 불안할지 몰랐다.
‘내가 자리만 비웠다 하면 무슨 일이 생기니까.’
고려검산에는 의뢰만 맡기고 올 생각이었다.
어차피 무기를 제작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럼, 갔다 올게.”
“빨리 와.”
고희연은 가만히 나와 은혜를 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저러고 결혼을 안 했대. 어이없어.”
“아니. 나는 설아가 보고 싶어 하니까 빨리 오라고 한 거지.”
“그럼 언니는 서준 오빠 별로 안 보고 싶을 거다?”
“어?”
은혜는 당황했다.
나는 고희연의 짓궂은 장난에 동참하기로 했다.
조금 상처받은 듯, 하지만 괜찮은 듯한 표정을 연기한다.
목소리 톤을 조금 낮추고 중얼거렸다.
“……희연아. 이상한 질문 하지 마.”
“이서준. 너 연기하는 거 알거든.”
“괜찮아. 나는 뭐…… 별로 많은 거 안 바랐어…….”
“……진짜. 아니야. 나도 너 보고 싶을 거야.”
은혜는 진짜 내가 상처받았을까 걱정스러웠는지, 마지못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도 주문할까?”
“야! 이서준, 이씨, 너 연기한 거지? 그거 진짜 알아보기 힘들다고…….”
“그러게요. 솔직히 저도 좀 놀랐어요. 서준 오빠는 연기 잘하시는구나.”
‘기만자’의 효과였지만, 고희연은 진짜 감탄했다.
나는 은혜에게 한 대 얻어맞기 전에, 빠르게 현관 밖으로 나갔다.
설아와는 아까 잠깐 수색에서 돌아왔을 때 짧은 인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때 에르제베트에게 소재도 받았고, 당부도 했다.
“잘 다녀와.”
“알았어.”
“몸조심하고, 아. 안부 좀 물어봐 주라.”
“넵.”
얼핏 강대호의 뒤로 박수빈이 보였다.
설아도 또래 아이 중에서도 차분한 편인데.
박수빈은 한술 더 떠서 조용한 수준이었다.
혼자 있을 때는 대체로 동화책 같은 걸 읽는 듯 보였다.
‘……내가 너무 신경 쓰는 건가?’
박수빈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몽유병은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박수찬의 동생이었으니까.
설아와 한집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걱정됐다.
물론 저런 어린아이한테 당할 정도로 설아는 약하지 않다.
강대호도 은혜도, 에르제베트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내가 박수빈을 죽였다는 건 모를 테니까.’
어떻게 보면 형의 원수와 같이 살게 된 것이다.
박수빈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쩌면 그냥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성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