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무너진 건물의 옥상.
균열이 생기듯 허공이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에서 빠져나온 것은 한 손으로 설아를 안아 든 에르제베트였다.
주위를 살핀 에르제베트는 어깨에 있던 캐시를 나지막이 불렀다.
“캐시.”
훌쩍 어깨에서 뛰어내린 캐시가 옥상 난간을 타고 주변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에르제베트는 발끝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
원은 푸른 빛을 내며 커졌고, 옥상 전체를 둘러쌌다.
간단한 방어 마법이지만, 없는 것보단 도움이 된다.
“설아야. 이제 찾아볼래?”
“네에.”
에르제베트의 품에서 내려온 설아는 옥상 중앙에 오도카니 섰다.
화려한 마법도, 집중하는 기색도 없었다.
멀뚱멀뚱 서서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금방 말했다.
“없어요!”
“큰 마나 반응은?”
“으응, 저기, 그리고 저어기랑 저기 있어요!”
에르제베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눈동자가 순간 푸른색으로 빛났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짧은 순간 설아가 가리킨 방향을 살핀 것이었다.
‘무리 짓고 있어서 두드러진 거고, 저기는 그냥 좀 큰 놈이고. 저건…… 아니네.’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설아와 함께 마구엘 수색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설아의 색적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덕분에 넓은 범위를 한 번에 수색할 수 있었다.
몇 차례 공간 이동한 것이 전부였지만, 벌써 수서 주변 지역은 전부 확인을 마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구엘은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간 거지?’
죽었다면, 대한민국의 던전화가 풀렸을 것이다.
도망쳤다고 하기에는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마구엘은 그다지 발이 빠른 괴물이 아니었다.
‘미래의 설아가 확보한 뒤, 어딘가로 이동시켰다? 아니야.’
에르제베트는 자신이 세웠던 가설을 금방 부정했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괴물들을 이용하고 있지만, 미래의 설아는 괴물을 혐오한다.
이용할지언정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돕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마구엘은 에르제베트를 죽이려고 하는 만큼, 더욱 그랬다.
‘그사이에 마나의 성질이 바뀌었을 리는 없고.’
마나에 깃든 고유의 성질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설아가 마나를 느끼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집중만 한다면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작은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는 수준이었다.
큰 마나 반응은 따로 확인하고 있어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어디로 간 거지?”
에르제베트는 불안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구엘은 분명 에르제베트를 마주했다.
미드하임에서 에르제베트를 죽이고자 기도까지 하던 마구엘이다.
당연히 죽이려고 들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어디로 간 거지!”
설아가 혼잣말을 따라 했다.
에르제베트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턱에 손을 얹은 채 작은 아랫입술을 깨문다.
픽 웃은 에르제베트는 설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설아는 그 괴물이 어디로 갔을 것 같아?”
상황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마구엘은 어디 있는지 종잡을 수조차 없었다.
월드 보스들이 풀려나고 혼란이 도래하면, 미래의 설아가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설아를 보면 온갖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설아는 에르제베트를 따라 하며 고민하다가, 질문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꼭꼭 숨었나?”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고려조차 하지 않은 부분이다.
도망쳤다기엔 너무 빨랐고, 찾아낼 수도 없다면.
확실히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숨어 있다. 숨었다. 어디에?’
* * *
고려검가의 공기는 평소와 달리 얼어붙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잡담을 나누던 길드원들은 입을 열지도 못했다.
안전지대 고려검산은 현재 성북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였던 외벽 강화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다름 아닌 검성 때문이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훈련장에 있던 한 수련생이 화장실을 핑계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다른 수련생이 그를 따라나섰다.
수련생들은 화장실로 가면서 흘긋 훈련장을 돌아봤다.
훈련장 정면에는 검성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눈치를 살핀 한 수련생이 조용히 질문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문제 있으시대?”
“……아가씨가 가출하신 것 같다더라.”
“뭐?”
수련생은 기겁했다.
고려검가에서 아가씨라고 불리는 건 한 명뿐이었다.
검성의 외손녀, 고희연.
고려검가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알 수밖에 없었다.
“왜?”
“몰라. 저번에 회담에 다녀오시더니, 방 안에 틀어박히셨다고 하더라고.”
“청와대에서 있었던 그거 말하는 거지? 무슨 일 있었나?”
“모르지. 말씀이 없으셨으니까. 하여튼 그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데.”
고희연은 고려검가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땀 냄새에 절어 사는 수련생들의 활력소이자, 일종의 검성 억제제였다.
검성의 훈련 방식은 지옥이라고 불릴 정도로 끔찍한 난도를 자랑한다.
원래 검성은 이따금 수련생들의 훈련에 난입해, 직접 훈련을 시키곤 했다.
그러나 고희연이 검을 잡은 후로는 고희연의 훈련을 봐주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 덕분에 수련생들은 지옥 훈련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희연은 특이하게도 지옥 훈련을 좋아해, 수련생과 상부상조하고 있었다.
“아마 그거 시킬 기세신데.”
“나는 말로만 들어 봤는데. 어느 정도야?”
그러나 고희연이 사라진 지금.
지옥 훈련은 수련생들의 몫이었다.
지옥 훈련을 겪은 수련생은 몸서리를 쳤다.
고희연이 잠깐 부산에 갔을 당시 겪은 검성의 훈련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철혈 사범님 알지? 김철현.”
“알지.”
김철현은 고려검가의 사범이다.
덩치가 꽤 크고 얼굴이 상당히 사납게 생겼다.
어지간한 일로는 표정 변화가 없기까지 한 탓에 철혈(鐵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고려검가의 수련생 중에는 철현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건 고희연이나 검성 정도였다.
“그 사범님이 엄마 찾으면서 울었다잖아.”
“에이. 그건 좀 오바다.”
“나는 중간에 기절했었는데, 솔직히 그때 기절하길 잘했다, 생각하고 있어.”
지옥 훈련을 겪은 수련생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장난으로 받아들인 수련생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훈련장으로 돌아온 둘을 확인한 검성이 선언했다.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할 테니. 위치로 가도록.”
* * *
뼈 빠지게 노력해 본 적 있는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쭉 검을 휘두르던 수련생 하나가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검은 움켜쥐고 있었지만, 수련생은 고통을 호소했다.
훈련을 봐주던 사범이 수련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탈구된 것 같습니다.”
“정지.”
정말 뼈가 빠진 것이었다.
정면에서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검성은 수련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태를 살피더니, 팔과 어깨를 잡았다.
“조금 아플 걸세.”
“허억, 예? 아아악!”
검성은 수련생의 팔과 어깨를 잡고, 그대로 끼워 맞췄다.
수련생은 짧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내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가시는 걸 느꼈다.
정말 간단하게도 뼈를 끼워 맞춘 것이었다.
“김 사범. 옮기게.”
“예. 알겠습니다.”
김철현 사범은 수련생을 짊어지고 이동했다.
다른 수련생들은 실려 가는 수련생을 부러움 섞인 눈으로 봤다.
차라리 실려 가는 게 낫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후욱, 후욱.”
“케윽, 쿨럭.”
심장이 산소를 갈구했다.
차가운 공기가 스쳐 지나간 목구멍이 아팠다.
다리는 갓 태어난 짐승의 새끼처럼 후들후들 떨렸다.
팔에서 힘이 빠지면서 검이 무거운 금속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춥기는커녕 덥게만 느껴졌다.
땀이 겨울바람에 식을 찰나의 틈조차 없었다.
“그럼, 다시 휘두르시게들.”
그러나 고려검가에서 검성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모두가 검성을 존경했고, 그를 따랐다.
그렇기에 검을 휘둘렀다.
“할아버지!”
그때, 명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생들은 뒤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고희연이었다.
고희연을 보자마자 검성의 표정이 바뀌었다.
온갖 근심 걱정이 내려앉아 있던 굳은 얼굴이 서서히 풀린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다 잡은 검성이 고희연에게 다가갔다.
“이눔아. 어딜 그렇게 쏘다녀, 쏘다니기를.”
“아야!”
꿀밤 맞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익숙한 듯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 오랜만은 아닌 것 같네만. 그래. 희연이가 여태 성북에 있었나?”
“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자네가 직접 왔다면 뭔가 용건이 있는 거겠지. 따라오게.”
검성은 남자와 고희연을 데리고 안채로 들어가려 했다.
그제야 수련생들은 남자가 성북의 대표, 이서준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서준은 조금 아련한 눈으로 수련생을 봤다.
“훈련 봐주고 계신 걸 방해한 걸까요?”
“아닐세.”
“주제넘은 얘기 같지만, 이만 마치는 게 어떻습니까?”
“흐음. 아직 한 명밖에 안 떨어져 나갔네만.”
“그래도, 검성께서 직접 봐주셔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닙니까?”
검성은 수련생들을 봤다.
검성의 훈련 강도는 상당하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혹사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 검성은 모든 수련생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혼자서 수백 명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교정하며,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탈구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이놈이 그걸 어찌 아는 건지.’
검성은 내심 흡족한 듯 속으로 웃었다.
이서준은 그냥 난놈이 아니라, 난놈 중에 난놈이었다.
“그러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네. 모두 쉬게나.”
“수고하셨습니다!”
수련생들은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서 우렁차게 인사했다.
검성이 돌아서자, 수련생들 대다수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과 안도감, 달성감.
그리고 단순히 힘이 빠진 것이 겹쳐서, 모두 쓰러진 것이었다.
“허억, 허억.”
수련생들은 검성과 함께 떠나는 이서준을 봤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만큼은 이서준이 생명의 은인이었다.
물론 이서준은 그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검성을 따라가던 이서준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널브러진 수련생들을 본 이서준은 수고했다는 듯 가볍게 묵례했다.
“헤엑, 컥, 방금, 혹시.”
“어, 후우, 일부러, 한 것 같은데?”
차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서준의 훈련 중단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마지막에 존경과 수고했다는 의미가 담긴 듯한 인사까지 생각하면.
‘이서준, 그는 신인가?’
이서준은 아마 수련생들을 살려 준 것 같았다.
* * *
“미래의 설아에 대한 건 비밀이야.”
고려검가에 도착하기 전.
나는 고희연에게 당부했다.
조금 생각하던 고희연은 금방 납득했다.
검성은 미래의 설아를 가장 선두에 서서 죽이려 한 인물이다.
그 확고한 신념을 생각하면, 미래의 설아에 대해서 밝히는 건 위험했다.
“알았어요. 근데, 오빠.”
“응?”
“오빠 스킬은 엄청 세잖아요. 창이 박살 날 정도로.”
“뭐. 그렇지?”
“그럼 스킬에 버틸 소재로 창을 만들어야 할 텐데. 도대체 뭐로 만들 거예요?”
“아, 소재? 보여 줄까?”
나는 가방을 열어 에르제베트에게서 받은 소재를 꺼냈다.
소재를 두 눈으로 확인한 고희연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이건…… 금속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