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검성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여기서 약간의 각색이 필요했다.
설령 검성을 속이는 일이 될지라도, 검성에게 설아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설아에 대한 이야기를 쏙 빼놓았다.
다행히 박수찬이라는 주동자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었다.
‘기만자’는 사소한 부분에서 상당히 큰 도움이 됐다.
‘스킬이 없었다면 검성은 위화감을 눈치챘겠지.’
검성은 상당히 신중하게 고민했다.
대한민국의 보스와 앞으로 등장할 월드 보스에 대해서 들은 상황.
잠시 뜸을 들이던 검성이 내게 확인했다.
“확실한가? 저번에는 허탕 아니었나.”
“예. 확실합니다. 에르제베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 마법사의 말이라면…… 맞겠군.”
검성은 에르제베트를 꽤 신뢰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서 둘이 마주했을 때도, 구면인 것 같았다.
“실례지만 에르제베트와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숨길 것도 없지. 첫 번째 균열에서 만났다네.”
“첫 번째 균열이라면…… 미국이겠군요.”
“그래. 그때는 마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지.”
검성은 과거를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봤다.
“나 혼자였다면 죽었을 걸세. 하지만, 그 마법사 덕분에 마나를 쓰는 법을 깨달았고, 이길 수 있었지.”
“에르제베트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까?”
“그래. 신기한 일이야.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하나도 늙지 않았으니.”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10년이라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대로라니.
마법이라도 쓰고 있는 걸까.
“수색은 돕겠네.”
“감사합니다.”
“무얼. 모두를 위한 일 아닌가.”
검성은 대의를 우선시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미래의 설아를 앞장서서 공략하려 하긴 했지만.
열약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신념은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할아버지.”
“어허.”
“힝.”
고희연은 벌을 서고 있었다.
물론 그 벌의 강도가 상당했다.
평범하게 두 손만 들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손 위에 무게가 상당한 쇳덩어리가 올라가 있다.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멋대로 가출한 벌이었다.
‘저거 힘들지.’
해 보면 알겠지만, 팔을 장시간 위로 쭉 펴고 있는 것만 해도 꽤 힘들다.
처음에는 괜찮겠지만 갈수록 팔이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거기에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쇳덩어리를 들고 있으니.
팔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희연이는 저희를 도우려고 한 겁니다.”
“그래도 멋대로 사라진 건 어쩔 수 없네.”
“희연이 덕분에 구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희연은 나를 공격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고 나를 도왔다.
만약 고희연이 가세하지 않았다면, 설아가 다쳤을 수도 있다.
박수빈도 고희연이 없었더라면 더 크게 다치거나 죽었겠지.
“인의를 중요시하는 고려검가의 가르침에 따라, 이번 한 번만 너그럽게 넘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네는 말을 참 잘하는군.”
“과찬이십니다.”
검성 앞에서 입 한 번 벙긋 못 하던 나다.
새삼스러웠지만, 검성은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내리거라.”
검성의 지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희연이 쇳덩어리를 내려놓았다.
쇳덩어리가 지면에 떨어졌다.
쿵!
흙바닥이 살짝 파였다.
무게감이 상당했다.
회귀 전에 내가 든 건 아마 가벼운 거였던 모양이다.
고희연은 팔뚝을 잡고 울상을 지었다.
“아야야.”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해라.”
“……네에.”
고희연은 조금 삐진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설아가 삐지면 저러는데, 애 같은 면모가 있었다.
고희연의 입장을 생각하면 억울할 만도 했다.
미래를 보고 고민 끝에 성북으로 향한 것일 텐데.
졸지에 혼나기까지 했으니까.
“참. 혹시, 강철이 어르신은 어디 계십니까?”
* * *
깡! 깡! 깡!
고려검가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산지에는 집 한 채가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지나가니,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주변의 눈이 녹아 있는 상태였다.
나는 소음과 열기를 뚫고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정중한 질문에도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강철이는 모루에 붉게 달궈진 쇳덩어리를 올리고 망치로 그것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겨울임에도 소매를 걷고 있었는데, 팔뚝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내 기척을 느낀 것 같았지만, 강철이의 눈동자는 흐트러짐 없이 쇳덩어리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치이이익!
한참 후.
땀으로 흠뻑 젖은 강철이는 쇳덩이를 물에 담금질했다.
한 번 담금질하고 나니 그 형태가 두드러지게 보였는데, 검날이었다.
아직 완성된 것 같진 않았지만,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철이가 그제야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누군가 했더니만, 자네였나?”
“간만에 인사드립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성북의 대표라면서?”
“이름만 대표일 뿐입니다.”
“막 무기 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겸손하기는.”
천으로 땀을 훔친 강철이가 자신의 도구를 정리했다.
나는 강철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간파]이름 : 강철이
직업 : 명장
직업 스킬 : 명장의 눈
고유 스킬 : 야금술
미래와 똑같이, 강철이는 개인 시스템을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강철이의 개인 시스템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었다.
애초에 강철이는 당시에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내가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가 작업하는 걸 구경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확실한 건.
‘역시 일반 대장장이는 아니네.’ 강철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뛰어난 대장장이였다.
하지만 개인 시스템을 얻은 지금은, 세계 최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니, 아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훗날 그렇게 되는 건 확실한 부분이다.
“대호 형이 안부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쯧. 직접 오지는 못할망정.”
“아, 사정이 있습니다.”
나는 강대호의 사정을 설명했다.
무너진 안전지대에서 아이를 주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했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강철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건 잘했군.”
“전해 드릴까요?”
“괜한 말 말게.”
강철이는 손사래를 쳤다.
부끄러운 건지, 솔직하지 못한 건지.
우리 아버지랑 조금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무기 제작 의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그게 내 일이지.”
강철이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일을 받아들였다.
안전지대 고려검산은 전투가 많이 벌어지는 위치에 있다.
성북처럼 허점도 아닐뿐더러,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빈번하게 습격이 발생한다.
외벽 건설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는 그래도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겠지만.
무구와 방어구의 수요는 넘쳐 날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걸리긴 할 거라네. 주문 제작이겠지?”
“맞습니다. 혹시 값은 어떻게 치르면 될지…….”
던전화와 함께 화폐 개념은 붕괴된 지 오래였다.
현재 대부분의 안전지대에서는 물물교환이 성행하고 있었다.
물론 교환하는 물건의 값어치가 완벽히 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조율이 필요했는데, 강철이는 이를 거절했다.
“됐네. 자네한테는 빚진 것도 있으니.”
무슨 말인가 생각하니, 불카누스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플리른 소재로 만든 무기를 강철이에게 의뢰한 적 있다.
강철이는 플리른을 찾던 도중 불카누스의 백상명과 조우.
죽을 뻔했지만, 어떻게든 구출했었다.
“제가 빚을 졌죠. 저 때문에 위험해지셨던 거 아닙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만. 하여튼, 이번엔 무슨 무기를 의뢰할 생각인가?”
강철이는 내 무기 의뢰에 흥미를 보였다.
아마 첫 번째 무기 의뢰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 가방을 열었다.
“소재를 가져왔습니다. 이 소재로 창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음. 그렇다면 일이 한결 수월하지. 따로 구할 필요가 없으니…….”
강철이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내가 가져온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강철이는 내 가방에서 나온 것을 받아 들고, 손으로 한번 쓸어 봤다.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듯 나를 보며 질문했다.
“이게…… 무엇인가?”
“드래곤의 이빨입니다.”
* * *
강철이는 이서준이 두고 떠난 소재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것은 명백히 금속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뼛조각처럼 보이긴 했다.
그런데 드래곤의 이빨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소재였다.
‘괴물의 소재를 다룬 적은 있긴 하지만.’
강철이는 금속을 주로 다루는 대장장이다.
하지만 때때로 특이한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괴물의 소재를 이용해 만드는 무기와 방어구가 그것이다.
실제로 괴물의 뼈를 가공해 무기를 만든 적도 몇 번 있었다.
‘뭐, 일단 해 봐야겠군.’
강철이는 우선 투박한 모양의 이빨 조각을 창날 모양으로 만들기로 했다.
금속이 아닌 만큼 깎거나 잘라 내야 했는데, 이빨 조각은 꽤 커서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강철이는 기계장치에 이빨 조각을 가져다 댔으나.
캉!
금속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의 날 부분이 부서졌다.
강철이는 허망한 표정으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날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기계가 부서질 정도의 강도.
아무리 드래곤의 것이어도 그냥 이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강철이는 정신을 차리고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그라인더로 갈아 보기도 하고, 꽉 눌러 보기도 했다.
아예 부수기 위해 망치로 내려쳤음에도, 드래곤의 이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허허.”
강철이는 생각을 바꿨다.
금속을 대하듯이 가열해 보기로 한 것이다.
열을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충분히 가열된다면 금속처럼 형태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아아아악!
아무리 뜨거운 불로 장시간 이빨을 지져도, 이빨은 그대로였다.
강철이는 문득 드래곤이 불을 뿜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만약 정말 드래곤이 입으로 불을 뿜었다면, 불은 이빨을 수도 없이 스쳤을 것이다.
당연히 이빨은 불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불도 안 통하는 건가.’
강철이는 여태껏 처음 보는 소재를 많이 다뤄 왔다.
던전제 금속이나 합금, 괴물의 소재는 여태껏 없던 새로운 물질이었다.
강철이도 그에 맞춰 새로운 물질을 다루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열에 약한 플리른은 아주 약한 불로 조심스럽게 가열한 뒤, 차가운 소금물로 담금질한다.
이렇게 가공 방법이 알려진 소재도 있었지만, 드래곤의 이빨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불카누스에서도 드래곤의 이빨을 다뤘다는 대장장이는 없었다.
“재밌군.”
강철이는 만면에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다루기 힘든 소재라니.
분명 무기로 만들기만 하면 엄청난 물건이 될 것이다.
‘금속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는데.’
어쭙잖은 괴물의 소재로 만든 무기는, 던전제 금속으로 만든 것만 못하다.
하이테크 같은 기업에서 합금까지 만들어 낸 상황에서, 그 강도는 천지 차이였다.
그렇기에 강철이는 처음 이서준이 이것을 가져왔을 때 조금 난색을 표했다.
그냥 금속으로 만드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지만, 이서준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소재를 다룰 수 있는 건 강철이 어르신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철이는 이서준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장장이로서 가지고 있던 자부심을 세워 주면서, 적당한 부담을 실어 준 것이다.
강철이는 결코 이 소재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고놈 참.’
강철이는 생각했다.
이걸 만약 노렸다면, 꽤 약은 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