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8)
28화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아가 산타 할아버지라고 부른 노인.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젊긴 했으나, 알아볼 수 있었다.
‘검성!’
이곳은 고려검가.
검성의 거주지에 검성이 있는 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검성은 설아와 서로 아는 것 같았다.
“누군가 했더니, 그때 그 꼬마로구나.”
“꼬마가 아니라, 설아예요!”
“그래. 설아야. 이리 오너라.”
검성의 부름에, 설아는 뒤를 돌아봤다.
가도 괜찮냐고 나와 은혜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검성이 누구인가.
마녀, 이설아를 사냥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
그리고 회귀하기 전의 나를 죽인 장본인 아닌가.
하지만 성수현처럼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 인물이 아니었다.
“저분, 혹시 검성……?”
“맞아.”
은헤는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검성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1세대, 처음으로 괴물을 사냥했던 최초의 사냥꾼 중 하나.
그 무력은 대한민국 사냥꾼 전체를 통틀어도 정점에 가까웠다.
“설아랑은 어떻게 면식이 있는 거지?”
“저희 할아버지께서 라이선스 실기 시험에 참관하셨거든요.”
“실기 시험에?”
그제야 몇 가지 의문이 풀렸다.
고희연의 말에 따르면, 나는 슈퍼 루키라고 불리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다른 길드에서 계약서를 들이밀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참관실에 검성이 있었다면 이해가 갔다.
‘나를 고려검가 쪽 사람으로 착각한 모양이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나는 설아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타 할아부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설아는 그제야 검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설아의 앞까지 다가온 검성이 설아에게 손을 뻗었다.
무심코 벤치 옆에 세워 뒀던 창 쪽으로 손이 갔다.
다행히, 검성은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직 설아는 마녀가 아니니까.’
과거의 기억이 겹쳐 괜히 긴장됐다.
설아는 눈을 감고 있다가, 양팔을 벌렸다.
“응?”
“안아 달라고 하는 겁니다.”
“허허. 고놈 참.”
검성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설아를 안아 들었다.
설아는 히히 웃으며 검성의 하얀 수염을 가지고 놀았다.
세상에 검성의 수염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검성은 설아를 제대로 받쳐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반갑네.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지?”
“안녕하십니까. 이서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은혜라고 합니다.”
“그래. 실기 시험은 인상 깊게 봤다네. 젊은 부부 사냥꾼이라…….”
나와 은혜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 가서는 이제 그냥 부부라고 말하고 다닌다.
괜히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인식이 썩 좋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검성에게는 어쩐지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뭐랄까, 간파당할 것 같았다.
“얍!”
“쿨럭.”
설아가 대뜸 검성의 수염을 위로 들어 올렸다.
수염이 입에 붙은 검성은 헛기침하며 고개를 털었다.
설아는 마냥 재밌다는 듯 웃었다.
“으히히!”
“이 녀석, 제법 장난기가 있구나.”
평소에는 얌전한 편인 설아지만, 그래도 애는 애다.
가끔 저렇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주로 초면인 사람에게 그랬다.
아마 어색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한데, 덕분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젊은 부부 사냥꾼이라는 대목도 얼버무릴 수 있었다.
검성은 고희연 쪽으로 눈을 돌렸다.
“희연이 네가 초대한 게냐?”
“네. 혹시, 문제 있나요?”
“아니. 새삼스러워서 말이다. 네가 친구를 초대한 적은 없으니까.”
“있긴 있어요. 다 여기까지 못 올라왔던 거지…….”
고희연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여기에 살았을 테니.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으리라.
“어쨌든, 재밌게 놀다 가려무나. 우리 손녀가 영 친구가 없어서.”
“아! 할아버지! 있다니까요! 얼른 가세요!”
“허허. 그래. 어차피 갈 셈이었다. 일정이 있거든.”
가족이 옆에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직 큰 고난을 겪지 않아서 그런 걸까.
검성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물렀다.
“다음에 보자꾸나. 설아야.”
“크리스마스 때요?”
“뭐. 어쩌면 그날이 될 수도 있겠구나.”
“빠빠이.”
“으허허. 오냐.”
설아를 내려 준 검성은 유유히 떠나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고희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보통 밖에 계시니까, 안에 계실 줄 몰랐어요.”
“아니야. 만나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
“후우. 필드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가요.”
* * *
“필드 보스는?”
“한 달 주기로 나오는데, 저번 주에 사냥했으니까 나올 일은 없어요.”
“그래? 일단 알았어.”
고려검산 중턱의 필드, 암석 지대 입구.
거대한 암석들이 박혀 있는 이곳은 특이한 필드였다.
산지인 만큼 경사가 가파르고, 울창한 나무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나오는 괴물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지형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두 분 실력이면 클리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거예요.”
“그치만, 수련생들이 쓰는 필드라고 하지 않았어?”
“수련생들은 딱 사냥꾼 지망생 수준이라고요.”
“나랑 서준이도 며칠 전까지는 지망생이었는데?”
고희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필드는 초보자용 던전보다 어려운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나와 은혜의 실력이라면 클리어하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희연아. 그러면 설아 좀 맡아 줄 수 있어?”
“네? 제게 그런 분에 넘치는 영광을 자꾸 주셔도 괜찮은 거예요?”
“애 봐준다는데 오히려 내가 고맙지. 필드 클리어 끝나고 보자.”
“알겠어요.”
필드에 나온 괴물은 일정한 주기로 사냥해야 한다.
그 수가 많아져 포화 상태가 되면, 괴물이 필드를 벗어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급발성 균열처럼 예측도 불가능하기에, 필드를 이탈한 괴물은 인명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은혜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사방이 트여 있으니까 조금 불안하다.”
“던전이랑은 느낌이 다르지?”
“응. 완전히.”
던전은 비교적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자형 통로나 건물 내부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괴물이 나타나는 방향도 한정되어 있다.
반면 필드는 사방에서 언제든 기습이 들어올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했다.
“괴물 특징은 기억해?”
“배드락(Bad Rock). 맞지?”
배드락.
직역하면 나쁜 바위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바위를 들고 다니는 원숭이 괴물이다.
넙데데한 돌덩이를 방패 삼고 있는 작은 괴물로,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고블린처럼 무리 지어 사냥한다는 것이었다.
슈욱!
무언가 은혜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창을 휘둘러 그것을 쳐 냈다.
퍽!
마나가 담긴 창대에 맞은 그것은 박살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아래를 살핀 은혜가 그 정체를 확인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돌?”
“온다.”
나는 창을 제대로 잡고 주변을 살폈다.
바위처럼 보였던 것들이 들썩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쪽에 넷, 위에 셋.
‘포위됐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바위 뒤에서 배드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긴 팔로 주먹만 한 돌멩이를 던졌다.
한두 개라면 모를까, 작정하고 동시에 던지는 건 막을 수 없다.
“큭!”
나와 은혜는 동시에 측면으로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우리가 있던 자리에 돌팔매가 날아왔다.
“아래 맡아!”
“알았어!”
지형적 유리함을 살려, 은혜는 아래쪽에 있는 놈들을 맡는다.
나는 창끝으로 땅을 딛고, 경사면을 따라 위로 달렸다.
한 놈이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끼끽!
방패로 들고 있는 넓적한 바위를 앞세웠다.
속도와 무게를 이용해 그대로 밀어내려는 셈이었다.
정석적인 공략법대로라면 취약한 뒤를 노려야겠지만 피하면 은혜 쪽으로 피해가 갈 거고, 무엇보다…….
‘굳이 피할 필요 없지!’
나는 창을 짧게 잡고, 숨을 들이쉬었다.
마나가 창대를 따라 날에 다다랐을 때, 힘껏 찔러 넣었다.
콰드득!
마나가 담긴 창은 바위를 관통해, 그 너머에 있던 배드락을 정확히 찔렀다.
나는 바위 방패가 꽂힌 창을 휘둘러, 위로 던졌다.
퍼억!
갑작스레 날아온 바위 방패에 맞은 배드락 한 마리가 즉사했다.
남은 한 마리를 처리하고, 아래를 살폈다.
은혜는 나무 뒤에 엄폐하고 있었다.
아래에 있던 배드락 세 마리는 어느새 미간에 화살이 꽂혀 죽어 있었다.
마지막 남은 배드락 한 마리가 돌을 던지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찰나의 순간.
팍!
나무 밖으로 나온 은혜가 쏜 화살이 미간에 적중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지만, 꽤 재빠른 축에 속하는 배드락이다.
정확히 미간에 적중시키다니, 확실히 은혜의 실력은 빠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이쪽은 됐어!”
순조롭게 괴물을 사냥한 은혜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답해 주려는 순간, 불현듯 느껴진 이상한 기척에 은혜의 머리 위를 살폈다.
은혜가 엄폐하고 있던 나무 위.
배드락 한 마리가 돌멩이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저건…….’
방패를 포기하고 나무를 오른 것이다.
은혜는 아직 놈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놈은 그대로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다.
움켜쥔 돌덩이로 내려찍을 심산이었다.
‘둘까 보냐!’
나는 창을 거꾸로 잡았다.
오른쪽 어깨를 뒤로 젖히며, 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슈욱! 콰앙!
쏘아지듯 날아간 철창은, 정확히 놈의 목을 꿰뚫고 나무에 박혔다.
충격의 여파로 나무가 흔들리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배드락이 쥐고 있던 돌덩어리가 은혜의 발치로 떨어졌다.
“휴.”
“깜짝이야. 위에도 있었구나.”
“올라갈 만한 곳이 있는 지형에서는 위도 살펴야 해.”
“미안. 내가 더 주의했어야 하는데.”
“아니야. 너 잘했어.”
객관적으로 볼 때, 은혜는 이제 막 사냥꾼이 된 초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이건 앞으로 차근차근 해결될 문제였다.
끼끽.
원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은혜는 각자 무기를 고쳐 들었다.
* * *
“설아야. 언니랑 인형 놀이 할까?”
“조아요!”
고희연은 취미로 모은 인형들을 적극 활용했다.
설아는 신중히 인형들을 살피더니, 곰 인형 셋과 토끼 인형을 골랐다.
곰 인형은 은혜가 살피고 있던 것들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제 엄마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설아는 인형들을 옹기종기 모아 놓고 설명했다.
“이거는요, 곰 엄마고. 이거는요, 곰 아빠예요.”
“그럼 얘는 아기 곰이겠네?”
“아니요. 얘는 곰 설아예요.”
“그렇구나. 그럼 토끼는?”
“토끼는 이쁜 쩰리 언니예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고희연의 입꼬리가 풀어졌다.
안 그래도 귀여운 걸 좋아하는 고희연은 설아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설아는 양손에 엄마 곰, 아빠 곰을 들고 무언가를 경계했다.
그곳에는 험상궂게 생긴 강아지 인형이 있었다.
“저기 저 강아지는 누구예요?”
“엄마 아빠랑 싸우는 나쁜 괴물이요.”
“괴물?”
고희연은 강아지 인형에 손을 가져갔다.
나쁜 괴물 행세를 해 설아와 놀아 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고희연은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
강아지 인형이 고희연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세를 낮추고 으르렁거리던 강아지 인형이 짖었다.
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