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미드하임 서부, 죽은 자들의 늪지.
그곳에는 스스로 죽음이라 칭하는 괴물이 있었다.
그 괴물이 발을 디딘 곳에는 살아 있는 것이 남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꼽추처럼 휜 허리를 가진 괴물은 해골이 장식품처럼 달린 지팡이를 짚었다.
누더기 같은 로브 너머로 언뜻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이 보였다.
늪지에서 겨우 몸을 움츠린 채 살아남은 풀과 나무가 순식간에 시들었다.
“데오드릭 렐른.”
데오드릭은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앞에는, 마녀의 모자를 뒤집어쓴 여자가 있었다.
얼핏 보기엔 아주 오래전 봤던 종말의 마녀를 닮았다.
하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데오드릭은 감격에 젖어 중얼거렸다.
“오…… 이 얼마 만에 듣는 산 자의 목소리인지.”
데오드릭은 한때 종말의 마녀를 이용해 심연을 탐구하고자 했던 학자였다.
하지만 미드하임에 종말의 저주가 내린 이후로, 이런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그 근처에 다가온 생명은 순식간에 시들어 버렸기에, 그는 홀로 인적 없는 늪지를 방황했다.
언데드만이 그의 근처에 있을 수 있었지만, 언데드는 이미 죽은 자.
말이 통하기는커녕 지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데오드릭은 끔찍한 고독에 시달려야 했다.
“반갑군. 그래. 내가 데오드릭 렐른이라네.”
“같이 가 줘야겠어.”
마녀, 미래의 설아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냈다.
데오드릭은 미래의 설아의 의중을 살피듯 빤히 바라봤다.
그 눈구멍 안에는 눈알이 없었으나, 시선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나는 이 늪지를 벗어날 수 없다네.”
“난 네 의중을 물어본 적 없는데.”
“아무리 오랜만에 생긴 말 상대라고 해도.”
데오드릭은 미래의 설아를 향하던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일대에 있던 모든 나무가 썩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늪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죽은 벌레나 물고기 따위가 떠올랐다.
짙은 죽음이 늪지에 도래했다.
“무례하군.”
낮은 목소리로 경고한 순간.
늪지와 함께, 죽음이 얼어붙었다.
쾅!
만약 데오드릭이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무력화된 상태인 만큼 사실상 패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항하거나, 공격할 틈조차 없었다.
‘어억.’
데오드릭은 힘겹게 뒤쪽을 살폈다.
데오드릭을 시작으로, 뒤쪽 늪지 전체가 얼어붙어 있었다.
얼음의 냉기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관절 속으로 얼음이 천천히 파고들고 있었다.
‘죽이고자 하면…….’
데오드릭은 아주 오랜만에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미 죽은 몸, 죽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데오드릭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이 부서져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달랐다.
죽음을 넘어서, 데오드릭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는 무언가였다.
데오드릭은 얼음 속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냥 얼음이 아니다.’
만약 평범한 얼음이었다면, 데오드릭이 간단하게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얼음은 달랐다.
무척이나 유약해 보이는 투명한 얼음 안에는, 순도 높은 마나가 가득 차 있었다.
이토록 거대한 얼음에 마나가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 마나가 다하지 않는 한, 영원히 녹지도 부서지지도 않을 것이다.
‘신인가.’
얼음의 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미래의 설아는 냉담한 눈으로 데오드릭을 봤다.
“가기 싫으면 말해.”
데오드릭이 만약 육신을 지니고 있었다면, 침을 꿀꺽 삼켰을 것이다.
죽은 자의 늪을 넘어, 미드하임에서 죽음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된 데오드릭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데오드릭을 지나가는 벌레나, 그 이하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상대하기도 싫고,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데오드릭은 설아가 자신과 말을 섞은 것 자체가 자비라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언데드인 데오드릭은 온몸이 얼어붙어도 말할 수 있었다.
“따……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순간, 얼음이 부서졌다.
데오드릭은 얼어붙은 늪지에 풀썩 주저앉았다.
언데드가 되면서 감각이 옅어진 탓에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힘을 몸으로 느낀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데오드릭은 덜덜 떨리는 몸을 바짝 땅에 붙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죽음이시여.”
* * *
[던전 : 대한민국이 공략됐습니다.]던전, 대한민국의 공략은 월드 퀘스트.
이 시스템 알람은 모든 사냥꾼과 비전투 직업이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환호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우린 살았어!”
“다 끝이다!”
“만세!”
언제 괴물이 안전지대를 습격할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여태껏 몇몇 사냥꾼은 위험을 감수하고 물자를 얻기 위해 바깥은 수색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물자마저도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었다.
겨울이 찾아온 탓에, 얼어 죽는 사람까지 생기고 있던 최악의 상황.
몇몇 안전지대는 무너지기 직전 수준까지 갔으나, 가까스로 던전화가 해제됐다.
“이제 괴물들은 리젠되지 않아요! 다른 안전지대로 이동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열악한 환경의 안전지대는 다른 안전지대로의 이동을 준비했다.
그리고 고려검산처럼 안정된 안전지대는, 필드에 남은 괴물들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검성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고려검가의 길드원들을 이끌고 필드로 나섰다.
고려검가를 지키기 위해, 검성은 고려검산 근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괴물들의 리젠도 되지 않고, 외벽도 견고하게 건설된 지금.
검성은 마음 놓고 필드를 돌아다니며 괴물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근데 있잖아.”
“응?”
“누가 처치한 거지?”
해방됐다는 환희가 천천히 가라앉을 무렵.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의문 하나가 생겼다.
대한민국의 던전화가 풀렸다는 것은, 보스를 처치했다는 뜻.
그렇다면 그 보스를 처치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영웅이라 불러 마땅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성북에서 처치됐다는데?”
“성북?”
“그래. 거기 있잖아. 전에 거기 사는 애가 보스라고…….”
“아? 그 대표네 애? 근데 내가 듣기로는 애는 멀쩡히 살아 있다던데.”
“그래? 역시 헛소문이었나 보구만.”
“사람이 어떻게 보스가 되나. 난 진즉 헛소문인 줄 알았어.”
발 없는 소문이 천 리를 가는 법이다.
성북의 어느 생존자로부터 시작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박수찬이 주장한 ‘설아 보스설’은 다른 안전지대에서 꽤 알려졌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구엘이 죽고, 대한민국의 던전화가 풀리면서, 이 이야기는 헛소문 정도로 취급됐다.
한편, 성북에서는.
* * *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세 개야.”
상석에 앉은 하이람이 입을 열었다.
좌우에는 각각 나와 강대호가.
맞은편에는 에르제베트가 있었다.
에르제베트와 하이람은 약간 충돌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선 에르제베트의 힘이 필요했다.
회의에서 제외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
더불어 하이람은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칠 사람이 아니었다.
“첫 번째. 대한민국의 복구. 이건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어. 인력이 부족해도, 비전투 직업들이 있는 만큼 서울은 어떻게든 안정될 거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에도 각국은 조금씩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설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더 최악의 상황까지 갔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월드 보스를 찾는 건데. 장소를 특정할 수 있어?”
하이람의 눈은 나와 에르제베트를 향했다.
당연히 이 중에서 정보가 많은 건 나와 에르제베트가 맞았다.
하지만, 다음 월드 보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아는 월드 퀘스트들은 던전화된 국가의 공략이다.
“아자누스 이후의 월드 보스가 언제, 어디서 출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쯧.”
미리 대응책을 갖춘다면, 해당 국가의 사냥꾼들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도 최소화하고, 최종적으로 혼란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정보가 없다.
대신.
“출현한 뒤라면 알 수 있습니다.”
“뭐? 어떻게?”
강대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자누스가 출현했을 때의 시스템 메시지. 기억하십니까?”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 반년이 넘게 지났는데.”
“대한민국, 서울에 월드 보스가 출현했습니다.”
하이람은 기억하고 있었다.
월드 보스가 등장할 때는, 그 위치까지 표기된다.
에르제베트가 곧바로 이동을 준비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든 해당 국가로 이동한 후, 월드 보스를 사냥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네. 너 기억력 좋다?”
“그때는 제가 월드 보스를 사냥해야 한다고 생각했던지라.”
설아는 은혜와 에르제베트의 죽음에 분노해 모든 월드 보스를 사냥했다.
하지만 그 미래가 꼬인 지금, 월드 보스를 죽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월드 보스가 출현하는 것도 예견된 일.
그때는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지극정성이네.”
나는 쓰게 웃었다.
하이람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출현한 뒤에 이동해야 한다면, 지금 대책을 강구할 수도 없었다.
즉, 미래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럼 마지막 문젠데.”
하이람의 눈이 에르제베트 쪽으로 향했다.
“미래의 설아는,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다고 했지?”
“맞아. 확실해.”
“이유는?”
에르제베트는 하이람과 눈을 마주쳤다.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나는 에르제베트의 눈에 내려앉은 짙은 어둠을 봤다.
그 눈은 내가 회귀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설아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에르제베트는 그것을 감추듯 눈을 감았다.
“그건 겪어 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들어. 어쨌든, 확실해.”
“쯧. 죽일 거면 이서준만 죽일 것이지.”
“아니. 참. 너무하시네…….”
나는 차마 하이람의 중얼거림에 반박하지 못했다.
미래의 설아가 나를 죽인다고 한다면, 죽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란을 막으면 다행이지만,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해.”
미래의 설아는 강하다.
앞으로 14년 후 기준으로, 살아남은 모든 사냥꾼이 덤벼도 이길 수 없었다.
제힘을 찾는다면 아마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뭔가 방법이 있어?”
“있습니다.”
“뭔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교훈을 얻었다.
설아를 수서에 내주고 주장한 성북의 의료팀장, 조유현.
“잘못했다고 하고, 모든 사정을 설명할 겁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할 겁니다.”
“……그건 미래의 설아를 막는 게 아니잖아. 네 개인적인 용서지.”
“그리고, 부탁할 겁니다. 그만해 달라고.”
나는 잘못했다.
설아를 만났을 때, 왜 그랬냐고 책망했다.
그러면 안 됐다.
일단 용서부터 구해야 했던 거다.
아빠의 역할을 못 한 잘못에 대한 용서.
“너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은데…… 너도 생각해야 해.”
“뭘 말입니까?”
“나는 현시점에서 네가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강자라고 생각하거든.”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대마법사도, 검성도, 내가 아는 강자들은 회귀 전과 비교하면 약하다.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 반해 급속도로 강해진 나는 지금 그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었다.
“그러면, 최악에 상황에서는, 미래의 설아와 싸울…….”
그때였다.
하이람이 말을 마치기 전.
벌컥.
문이 열렸다.
당연히 미래의 설아에 대한 사실은 공표되지 않았다.
타인이 들어올 수도 있었기에, 모두 대화를 멈추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은혜가 있었다.
“은혜?”
“은혜야!”
은혜가 무사히 일어난 것이다.
기뻐서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그런데 은혜는 나 대신, 에르제베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은혜는 나지막이, 하지만 강한 어조로 에르제베트에게 말했다.
“에르제베트 씨. 우리 얘기 좀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