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여기가 안전지대라고?”
에르제베트는 의문을 표했다.
말 그대로, 그곳은 안전지대라고 부를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넓은 운동장에,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위인의 동상.
그냥 평범한 학교였다.
문과 창문은 책상 따위를 쌓아 막아 놓긴 했지만.
열악해도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안전지대는 아니야. 일종의 임시 거점이지.”
“혹시 안전지대의 위치는 모르십니까?”
“알긴 아는데, 여기선 조금 멀어서.”
스기하라 신야는 익숙한 듯 교문을 넘어, 학교 뒤편으로 갔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막혀 있는 문을 열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일단 들어와. 이 안은 안전하니까.”
나는 스기하라 신야를 따라 학교 내부로 들어갔다.
비록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방비는 조금 허술한 편이었지만.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발전기가 있는지 전기도 들어왔다.
철컥.
그때였다.
누군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눴다.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섞여 있었다.
사냥꾼도 섞여 있긴 했는데, 대부분 총을 든 걸 보니 민간인이었다.
“신야. 누구야?”
“총 내려. 괜찮으니까.”
아무래도 이곳의 생존자들인 모양이었다.
스기하라 신야가 그들을 이끄는 입장인 건지, 그들은 순순히 총을 내렸다.
하지만 끝까지 나와 에르제베트를 번갈아 가며 겨누는 여자도 있었다.
“누군데? 신주쿠 쪽 녀석들 아니야?”
“아니야. 다른 나라 사람들이야.”
“다른 나라? 어떻게?”
“거기에 대해서 들으려고 데려온 거니까, 총 내려.”
여자는 조금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결국 총을 내렸다.
스기하라 신야는 나와 에르제베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안. 우리 애들이 의심이 좀 많아서.”
“아닙니다.”
총원은 일곱.
학교 내부에 있지만, 이 자리에는 없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많아도 열댓 명이다.
극소수의 생존자 그룹.
던전화가 길게 지속될수록, 자원을 두고 사람끼리 싸우는 경우도 잦아진다.
경계하는 것도 그럴 수 있겠거니, 넘겼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듣게 됐다.
‘신주쿠라. 거기에도 안전지대가 있는 건가.’
여자는 신주쿠에 적대적인 것 같았지만.
일단 세 개의 안전지대 중 한 곳의 위치는 파악했다.
물론, 신주쿠도 상당히 넓기에, 정확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별일 없었지?”
“응. 망자 몇 마리가 기웃거리긴 했는데, 다 이동했어.”
“좋아. 잠깐 얘기 좀 할 테니까, 자리 좀 마련해 줄래?”
“중요한 사람들이야?”
“중요해.”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순순히 물러났다.
스기하라 신야는 우리를 이끌고 2층의 어느 교실로 향했다.
들어와 보니, 교실이 아니라 교무실인 것 같았다.
회의용 책상이 있었는데, 스기하라 신야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
나는 스기하라 신야의 맞은편에 앉았고, 에르제베트는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스기하라 신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앉고 보니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네.”
“얘기부터 마저 하시죠.”
“좋아. 대한민국은 조금 여유가 있지?”
스기하라 신야의 눈은 우리의 옷차림을 향하고 있었다.
스기하라 신야도, 생존자들도 행색이 그다지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반면 나와 에르제베트는 옷도, 피부도 깨끗했다.
눈그늘이 짙게 내려앉고 볼이 움푹 파인 그들과 달리, 몸 상태도 건강하다.
‘눈치가 빠르네.’
단순히 외관만 보고 대한민국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 상태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사실을 스기하라 신야에게 알리면 안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이쪽은 대한민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원해.”
“저희도 사정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좋아. 그럼 그쪽도 목적을 말해 줘. 목적이 있으니까, 굳이 도쿄로 온 거잖아?”
스기하라 신야는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갔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내 목적을 말했다.
“월드 보스의 위치. 그리고 월드 보스 사냥에 동참할 사냥꾼들이 있을 만한 안전지대.”
스기하라 신야의 입장에서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일본이 이 꼴이 된 것은 아마 스기하라 신야가 봤다는 괴물, 월드 보스가 이유일 것이다.
마침 스기하라 신야 또한 월드 보스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거래 대신 협력으로 국면을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설마.”
“월드 보스를 사냥하려고 합니다.”
“하. 미쳤군.”
스기하라 신야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경고했다.
“당신은 그 괴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몰라도 돼. 그 괴물의 위치를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겨우 둘이서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불가능하죠. 그래서 협력할 만한 사냥꾼들의 위치도 물어봤지 않습니까?”
“개죽음이야. 전부 죽는다고.”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당신은 그 괴물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한테는…….”
스기하라 신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는가 싶더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조건이 있어.”
“뭡니까?”
“대한민국에는 일찍이 월드 보스를 사냥한 사냥꾼이 있다고 들었는데.”
왠지 어디서 들어 본 얘기다.
일찍이 등장한 월드 보스라면, 분명 아자누스일 테고.
그 아자누스를 사냥했다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냥꾼은.
“유성. 그 여자를 데리고 온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그때 알려 주지.”
“흡.”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휙 돌렸다.
모자에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어깨를 들썩이는 걸로 보아 분명 웃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으로 갈 방법이 굳이 필요한 이유는요?”
“이대로라면 도쿄는 빠른 시일 내에 무너질 거야. 대피 목적이다.”
“저희 쪽에서 유성을 데리고 와, 일본에 출현한 월드 보스를 사냥한다면요?”
“……그러면.”
스기하라 신야는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만약 실현만 된다면, 이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스기하라 신야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실패할 가능성도 생각한다. 유성을 데려올 것, 그리고 경로를 알려 줄 것. 이게 조건이야.”
“그렇군요.”
스기하라 신야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눈치가 꽤 빠르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스기하라 신야는 지금 너무 안전을 지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 여자가 신주쿠에 대해서 언급한 것으로 볼 때.
‘무슨 이유에서든, 신주쿠와 사이가 안 좋군.’
동시에, 신주쿠가 내가 물어본 ‘사냥꾼들이 있는 안전지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월드 보스를 사냥해 준다는 건 이들의 입장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만약 성공하면 위험이 사라져서 좋은 거고, 실패해도 손해는 없다.
더불어 내가 스기하라 신야에게 요구한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약간의 정보 제공.
선뜻 알려 주는 대신 이득을 취하려고 거래를 제안한다는 건.
‘저쪽에도 리스크가 있다는 뜻인데.’
스기하라 신야의 성향을 생각해야 했다.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지만, 일단 교환 조건은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전부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한국에 공간 이동을 시킬 수 있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에르제베트가 공간 이동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는 사실은 숨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도쿄의 상황을 생각하면, 누구도 이곳에 있기 싫을 것이다.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에르제베트를 노린다면, 귀찮아진다.
“공간 이동, 그런 게 가능한 건가?”
“가능합니다.”
“그 통로를 통하면 이동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동할 수 있지만,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몇 명이나 갈 수 있지?”
“정찰 겸 선발대로 파견된 저희의 인원수만 상정해 뒀기에, 두 명입니다.”
“흠. 범상치 않다 싶었더니, 선발대였군.”
“돌아가서 다섯 명을 추가로 데리고 올 겁니다. 유성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거고요.”
“잠깐. 어떻게 확신하지? 유성과 연이 있나?”
응, 내가 걔야.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씰룩이는 게 보였다.
웃겨 죽겠다는 눈치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성이 소속된 길드명을 아십니까?”
“알지. 스펙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제가 거기 길드 마스터입니다. 유성, 이서윤은 제 동생이고요.”
이서윤이라는 가짜 신분을 쓸 일이 없어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설정인데, 쓸모가 있긴 했다.
스기하라 신야는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어째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으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약속한 시간이 있거든요.”
정확히는 에르제베트의 마법이 준비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었지만.
에르제베트가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숨기고 있는 판국이니.
‘기만자’의 효과가 상시 발동 중이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더라도 거짓말이라는 건 모를 거다.
‘전부 공간 이동하려고 들면 곤란해.’
우리 쪽에는 싸울 인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게 알려진다면.
너도나도 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일본의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으니까.
자칫하면 에르제베트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월드 보스 사냥을 나도 돕겠어.”
“괜찮으시겠습니까?”
“나한테는 이유가 있다고.”
스기하라 신야는 천궁이라 불리는 사냥꾼이다.
비록 지금은 그 정도 실력도 아닌 것 같았고, 위명도 떨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실력 있는 사냥꾼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포텐셜을 생각하면 데려가는 편이 이득이겠지.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 * *
이서준과의 교섭을 마친 스기하라 신야는 문을 닫았다.
에르제베트와 이서준은 그 방에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했다.
스기하라 신야는 문에 등을 기대더니, 주르륵 미끄러졌다.
‘무섭잖아!’
그는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이서준과 에르제베트, 둘 모두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서준은 부드러웠고, 한발 물러서 주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아니었다.
‘무슨 도깨비냐고.’
사람에 대한 깊은 의심.
잠시 이서준이 뭘 한 건지 풀어진 듯 웃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숨통이 조여드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이로써 활로는 생겼다.
만약 저 둘의 말이 사실이라면.
‘둘이 지원을 요청하러 간 사이, 신주쿠로 가야겠어.’
규모상 언젠가 망자에게 들킬 수밖에 없는 신주쿠다.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해도 잡으려고 하겠지.
교섭을 시도한다.
만약 예상과 달리 일이 틀어진다면.
‘내가 죽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