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나와 에르제베트는 이 학교에서 하룻밤 묵어 가기로 했다.
월드 보스의 위치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 같았다.
더하여 미래의 설아가 일본에 있는 모양이니까.
마음 같아선 도쿄를 샅샅이 뒤지고 싶었다.
하지만 도쿄의 면적은 서울보다 몇 배 넓다.
고작 하루 이틀 만에 수색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것도 충분한 성과긴 하지만.’
생존자와 접촉.
안전지대 유무의 확인.
도쿄도 내부의 상황 파악.
월드 보스의 생김새 및 망자를 만든다는 특성까지 알아냈다.
스기하라 신야를 만난 건 꽤 운이 좋은 일이었다.
“쯧.”
우리는 잠깐의 휴식을 위해 한 교실에 있었다.
나도 스킬을 사용한 여파가 용의 최후에 있을까,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전투와 이동에 시간을 꽤 쓴 터라 식사도 챙겨야 했다.
비상식량은 챙겨 왔기에, 그걸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체하겠네.”
에르제베트는 도통 음식을 입에 넣지 못했다.
나는 음식을 입에 넣은 채 쓰게 웃었다.
에르제베트가 불평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교실 창문 너머에서, 웬 여자가 우리를 감시하듯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기하라 신야의 말에도 끝까지 총을 안 내리던 예의 여자였다.
“의심이 많은 것 같아.”
“뭔가 켕기는 짓을 했다는 거지.”
에르제베트는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나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스기하라 신야도 그렇고, 저 여자도 그렇고.
우리 둘을 경계해도 너무 경계하고 있었다.
‘원래 좀비 아포칼립스에서는 좀비보다 사람이 무서운 법이긴 한데.’
솔직히 무섭냐고 하면, 그다지 무섭진 않았다.
죽일 작정이라면 어떻게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경계하는 거였다.
“너도 옛날에 저랬어.”
“웃기지 마.”
“진짜라니까.”
“난 안 그랬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밤만 지나면 밖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하루 정도는 도쿄도 내부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마냥 스기하라 신야만 믿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애들이랑 협력하는 게, 맞아?”
“스기하라 신야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니까.”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야?”
“어느 정도는.”
“나는 못 해.”
에르제베트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설아와 은혜, 그 주변 인물 정도는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모르는 타인과는 기본적으로 말 한마디도 잘 섞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서로 믿겠어?”
“넌 믿잖아.”
“나도 전부 믿진 않아. 경계는 하고 있어.”
“뭐가 있는데.”
“켕기는 게 뭐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
내 목적은 이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밝혀내는 게 아니었다.
월드 보스를 사냥하고, 미래의 설아와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목적에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에르제베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이런 애들이 뒤통수를 잘 때려.”
“불안해도 좀만 참아. 밤만 지내고 나갈 거니까.”
“밤을 지내는 게 문제야. 자다 일어나면 감옥에 있을 줄 누가 알아?”
“학교에 감옥이 어딨어…….”
* * *
밤.
에르제베트는 눈을 떴다.
이서준은 제공된 매트리스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지만, 깰 기색은 없었다.
자는 와중에도 경계는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움직이든 말든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이서준 안에서 적대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결론이 난 것이다.
‘이서준은 그냥 넘어갈 셈인 것 같지만.’
에르제베트는 뭔가 숨기고 있는 자들과 손을 잡는다는 게 불안했다.
그렇기에, 홀로 수색할 작정이었다.
로브를 챙기고, 간단한 마법을 사용했다.
에르제베트의 눈동자가 고양이와 비슷하게 변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며,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드륵.
에르제베트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종일 둘을 감시하던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
에르제베트는 처음 생존자 무리와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그 움직임.’
무의식적인 움직임은 사람의 심리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에르제베트와 이서준에게 총을 겨눴다.
동시에, 은근히 발을 움직여 어딘가를 가로막았다.
에르제베트는 복도를 지나, 계단을 찾았다.
휘오오.
계단 안에는 어둠이 들어차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에르제베트는 조금 주저했다.
이서준을 깨워 올까.
‘아니. 무슨 아빠 찾는 애도 아니고.’
지구에서 지내다 보니, 사람이 무르게 변했다.
에르제베트는 계단 아래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또각, 또각.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라 그런지, 발소리가 울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간 후에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산처럼 쌓인 물건들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는 자제나 물품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데.’
인위적이다.
먼지가 쌓여 있지도 않았고, 최근에 드나든 흔적도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물건을 쌓아 막아 놓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면 스기하라 신야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희미하게 물건 끄는 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마법 몇 번은 괜찮으니까.’
에르제베트는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볍게 왼쪽으로 움직이자, 쌓여 있던 물건들이 전부 왼쪽으로 이동됐다.
그러자, 어두운 복도가 드러났다.
역시 물건은 지하를 봉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쌓아 둔 것이었다.
에르제베트는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륵.
문 너머에서 무언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린 에르제베트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은 신문지나 찢어진 교과서 따위로 전부 가로막혀 있었다.
유일하게 문에 있는 작은 창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당황한 에르제베트가 물러나려는 순간.
철컥.
뒤통수에서 묵직한 철 덩어리를 느꼈다.
에르제베트는 그것이 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 불안했는데.”
이서준과 에르제베트를 예의 주시하던 여자였다.
여자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머리에 닿은 총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봤구나?”
에르제베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불안한 나머지 이 근처에서 불침번을 선 모양이었다.
이 정도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머리에 총이 겨눠진 순간, 그럴 수 없게 됐다.
탕!
* * *
나는 총성을 듣자마자 눈을 떴다.
에르제베트가 나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화장실이라도 가는 거겠거니, 해서 가만히 뒀는데.
기어코 사달이 난 모양이었다.
벽에 세워 뒀던 용의 최후를 손에 쥐고, 교실을 뛰어나갔다.
“무슨 소리야!”
“습격인가?”
다른 교실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총성이 들린 방향은 외부가 아니다.
아래.
학교의 지하 쪽이었다.
‘계단은 입구 앞쪽에 있었지.’
서둘러 계단으로 향하던 도중.
교실에서 황급히 나온 스기하라 신야가 나를 저지하려 했다.
“아! 거기는!”
하지만 나는 스기하라 신야를 무시했다.
에르제베트가 사라졌고, 총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에르제베트가 총을 쏜 건 아니었다.
시종일관 총을 겨누고 있던 건, 스기하라 신야 일행.
‘안일했어. 만약 에르제베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에르제베트는 월드 보스 사냥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다른 국가로 공간 이동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설아 위치 파악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에르제베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정말 허무하게도, 모든 게 틀어질 수도 있었다.
“컥.”
나는 지하로 들어섰다.
불이 켜지며, 복도 내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에르제베트는 총을 든 여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여자는 검은 연기에 사로잡혀, 총을 든 팔을 하늘로 들고 있었다.
다행히 다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제압하고 있는 데다가 총성까지 들린 걸로 보아, 공격의 의사는 있었던 모양이다.
“키코! 지금 뭐 하는 거야!”
불을 켠 것으로 추측되는, 스기하라 신야가 뒤에서 소리쳤다.
키코라 불린 여성은 팔을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이 여자가 봐 버렸다고!”
“뭐?”
스기하라 신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뒤에서 느껴지는 불온한 공기를.
캉!
누군가 나를 검으로 내리쳤다.
정갈한 교복 차림의 소년이었다.
그래도 기절만 시키려는 목적이었는지, 검집째로 휘둘렀지만.
일단 공격 의사가 있는 건 명백했다.
텅!
소년의 공격은 꽤 묵직했다.
하지만, 고희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제압하려면 제압할 수 있을 수준.
하지만 나는 무기를 쳐 내고 일단 상황을 살폈다.
소년이 스기하라 신야 쪽을 살폈다.
“신야 형! 일단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스기하라 신야는 쉽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싸울 준비를 한 상태였다.
각각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심지어 전투 인원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싸워야 하나?’
에르제베트가 이곳으로 온 게 계기 같았지만, 먼저 무기를 든 건 저쪽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내키지 않았으나 필요하다면 죽일 수 있다.
내가 창을 든 채 고민하고 있던 와중, 에르제베트가 낮게 경고했다.
“전부 무기 내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에르제베트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에르제베트 앞에 서 있던 여자, 키코에게로.
키코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듯 사색이 되어 있다.
“키코 누나! 뭐 해?”
“모, 몸이 내 맘대로 안 움직여.”
키코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마법은 아닌 것 같았고, 아마 저주에 당한 모양이었다.
에르제베트는 키코의 몸 뒤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무기 내리라니까.”
철컥.
키코가 리볼버의 해머 부분을 당겼다.
금방이라도 발사될 기세.
에르제베트가 키코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걸까.
사람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스기하라 신야가 결단을 내렸다.
“무기 내려.”
“하지만, 신야 형.”
“무기 내리라는 말 못 들었어?”
소년은 분한 듯 검을 떨어트렸다.
다른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무기를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에르제베트는 그들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서준.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왜?”
“봐야 할 게 있으니까.”
나는 에르제베트의 말에 따라, 키코와 에르제베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신야 일행에게 창을 겨눈 채로, 뒷걸음질 쳐서 문 앞에 다다랐다.
에르제베트는 확인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나는 지하 문 안쪽을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그곳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