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설아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심심했다.
그러던 도중.
“으응?”
설아는 무언가를 느꼈다.
문 너머에 사람이 있었다.
마나에 민감한 설아라서 알아차린 사실이다.
마나를 지녔으니, 사냥꾼이 당연했는데.
기척을 숨기고 마나를 가라앉히고 있는 탓에 누군지는 특정할 수 없었다.
“설아 왜?”
“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희연이 설아를 봤지만, 고희연마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설아는 문 너머에 누군가에 대해 말하려다가, 분위기를 보고 말을 얼버무렸다.
한창 심각한 이야기였고, 문 너머의 사람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에 있던 사람은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 * *
사람들이 괴물로 변했다.
괴물로 변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지를 잃어버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제 안의 괴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한때 가족이고, 친구였으며, 연인이었던 이들이 서로 죽이고 먹기 시작했다.
땅에서 피 냄새가 지워질 틈도 없었다.
“폐하!”
정신이 온전한 이들도 혼란에 빠졌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죽는 것을 택했다.
어떤 이는 아무도 없는 늪 속으로 은거했다.
“예의 건은 어찌 되었는가?”
하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었다.
적어도 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왕좌 아래 꿇어앉은 것은, 로브를 뒤집어쓴 그림자.
한때 마탑주였던 괴물은 명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어찌 고개를 숙이는 겐가?”
“송구합니다.”
이 대륙에는 마녀의 마지막 저주가 내려앉은 상태였다.
왕은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저주는 마법으로도, 주술로도, 신성한 힘으로도 풀 수 없었다.
마탑주는 그런 왕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이런 저주를 내릴 수 있는 건 종말의 마녀, 에르제베트뿐이었다.
그러니 거둬들일 수 있는 것 역시 마녀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술의 결과는?”
“실패했습니다.”
“재료가 부족한 것인가?”
“대가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마탑주는 주술 의식을 통해 마녀의 영혼을 불러오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왕은 이 방법을 쓰는 데 동의했다.
주술의 제물로, 10만에 달하는 괴물의 목숨이 쓰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실패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마녀의 영혼이 미드하임을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렇군. 예언은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는 건가.”
예언이란 절대적이었다.
바꾼다고 하여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예언을 막기 위해 움직인 것이 화가 됐다.
마녀의 죽음으로, 미드하임은 멸망했다.
생기 없는 땅에는 죽음밖에 없었다.
“영혼은 어디에 있지?”
“예측하건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마탑주는 긴장했다.
이미 마탑주는 실패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었다.
남은 건 왕의 선택뿐이었다.
“하면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폐하. 송구하오나 차원을 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옵니다.”
“하나 그대는 방금 마녀의 영혼이 차원을 넘었다 하지 않았더냐.”
“그렇사오나, 그것은 영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육체를 지니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건 불가능하단 말인가?”
마탑주는 고민했다.
차원 이동.
이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균열을 만든다면, 가능할지 모르옵니다.”
“균열이라. 들어 보니 어디에 있는 것 같진 않군. 그것은 어찌하면 만들 수 있는 겐가?”
“차원 사이의 벽을 허물면 되옵니다. 하지만.”
마탑주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차원을 넘는 건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테면 종말의 마녀가 사용한 마지막 저주 정도의 힘.
그런 힘을 지닌 이는, 미드하임 전체를 통틀어도 없었다.
“드래곤도 실패한 일이옵니다. 막대한 힘이 필요할 겁니다.”
“짐이 하겠다.”
단 한 명, 왕을 제외하면 말이다.
* * *
에르제베트는 유심히 눈앞에 있는 그것을 살폈다.
그것은, 생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영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그것을 몇 차례 느낀 적 있다.
성기사가 사용하던 힘.
“신?”
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목이 잘린 것은 에르제베트의 환영이 아니었다.
에르제베트는 분명 처형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새하얀 공간에서 그것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부르더군.”
그것, 신은 순순히 인정했다.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네. 위엄 같은 것도 없고.”
에르제베트는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쭉 쫓겨 왔다.
만나 온 모든 사람은 에르제베트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 불합리한 세계에 신이 있다면.
“원래 신이 그렇게 무능한가?”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에르제베트에겐 세계를 멸망시킬 생각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쫓기며 결국 미드하임에 저주를 내려 버렸다.
“그 예언만 없었으면, 당신이 빌어먹을 신자들에게 말이라도 했으면.”
에르제베트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증오스러운 건 미드하임의 괴물들뿐만이 아니었다.
에르제베트는 신을 저주했다.
“이럴 일 없었잖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신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 점이 에르제베트를 더 화나게 했지만.
에르제베트는 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그것은, 죽이거나 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위의 존재가 되면, 저런 작은 세계에 간섭하기가 힘들거든.”
“그래서 마구엘 같은 것들이 있는 거 아니야?”
“마구엘은 내 말을 듣지 못한단다. 그저 나를 믿을 뿐이지.”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신이란 작자가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은 그런 에르제베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어 나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다. 왕이 차원 사이에 구멍을 뚫었다는 거지.”
“그러고 뒈졌지만.”
“엄밀히 말하면 죽은 건 아니란다.”
에르제베트는 이 공간에서 미드하임의 일을 볼 수 있었다.
왕은 결국 자신을 희생해 균열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육체와 영혼은 산산이 부서졌다.
저런 희생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가.
에르제베트는 혼란스러웠다.
“이제 저 괴물들은 지구에 들어서겠지.”
왕은 차원과 차원의 벽을 부수려 했다.
벽은 부서지지 않았으나, 작은 틈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지구가 뭔진 모르겠지만, 내 알 바 아니야.”
“이서준.”
에르제베트는 굳었다.
만난 뒤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잊어버린 적 없는 이름이다.
이서준.
유일하게 에르제베트를 믿어 주고 대가 없이 도와준 사람.
“이제 좀 들어 볼 생각이 드는 것 같구나.”
“이서준이 저기 있어?”
“그래. 그렇지. 비록 아직 너를 만나진 못했지만 말이다.”
이름이 특이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다른 차원의 사람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거였다.
죽은 게 아니었다.
에르제베트는 지구를 내려다봤다.
‘저건.’
그리고, 이서준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어려웠지만.
분명 그것은 이서준이었다.
적어도 에르제베트는 그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 어려진 거지?”
“시간 축이 다르거든.”
에르제베트는 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차원과 차원 사이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이야기였다.
이를테면 정령계에서의 1시간은, 미드하임에서의 하루와 같다.
그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리라.
아직 지구의 이서준은, 에르제베트를 만난 적 없는 것이었다.
“아마 그는 머지않아 죽겠지.”
“뭐?”
“지구의 기술력은 우수하나, 마나가 없다는 점은 큰 결점이거든. 미드하임의 괴물들이 지구를 장악하는 건 순식간.”
에르제베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드하임의 괴물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에르제베트 본인이었다.
그런데 그 탓에 이서준이 죽는다니.
“그 사실을 나한테 알려 주는 이유가 뭐지?”
“너라면 바꿀 수 있기 때문이지.”
“뭐를?”
“네 힘을 사용하면, 저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에르제베트는 그것의 말을 듣고 갈등했다.
이미 죽은 몸이다.
되살아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살아가면서 행복했던 기억은, 단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행복했던 기억을 준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에르제베트가 미드하임의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은혜를 갚아야 해.’
에르제베트는 결정을 내렸다.
이서준 덕분에, 에르제베트의 인생에는 아주 작은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없었다면 에르제베트는 진즉에 무너졌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에르제베트는 신을 봤다.
신에게는 입도 형체도 없었지만.
에르제베트는 왠지 신이 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늦은 밤.
눈을 뜬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꾼 탓이었다.
꿈은 기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서준은 물론이고, 유은혜나 설아도 꿈을 통해 기억을 접한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마저 그런 꿈을 꾸게 될 줄은 몰랐다.
‘기분 나빠.’
신을 생각하니 속이 매스꺼워질 지경이었다.
에르제베트는 머리를 짚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공기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응?’
그런데, 뒤뜰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르제베트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이서준.
정확히는 이서윤의 모습을 한 이서준이 그곳에 있었다.
“후우.”
한참 창을 휘두르던 이서윤이 한숨 돌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훈련한 걸까.
아래에 있는 잔디는 짓눌려 있었고,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잠을 줄여 가면서,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은 미래의 설아를 만난 뒤로 더 심해졌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아. 에르제베트.”
“진짜 적응 안 되네.”
“뭐가?”
“여자 모습.”
“이상해?”
“응.”
에르제베트는 뒤뜰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이서윤은 조금 풀이 죽었다.
“어쩔 수 없잖아. 이 모습이 신뢰가 간다는데.”
“취향은 존중해.”
“그런 취향 없거든.”
이서윤이 투덜대는 걸 본 에르제베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쉴 목적인지, 이서윤은 창을 세워 두고 앉았다.
에르제베트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응?”
“만약 내가…….”
에르제베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이서윤은 놀란 듯 에르제베트의 입을 막았다.
덩달아 놀란 에르제베트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모든 사냥꾼에게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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