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
3화
버스에 탄 유은혜는 계약서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생각할수록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설아의 아빠이자, 은혜의 전 남자 친구인 이서준 때문이었다.
“휴.”
복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고 창문을 바라봤다.
풍경이 빠르게 지나치며, 이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전트를 믿지 마.
이서준은 유은혜의 길드 가입을 극구 반대했다.
유은혜가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계약금만 봐도 당장 빚은 다 해결할 수 있다.
이름 있는 길드라서 그런지, 연봉은 신출내기 사냥꾼이 받을 만한 수준이 아니다.
당장 계약만 하면 이 돈이 전부 들어오는데, 이서준은 그게 개손해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냥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보이며 사례까지 제시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어어, 친한 친구 중에 그렇게 당한 놈이 있어.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일단 전부 기억했다.
유은혜의 지인 중에 사냥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서준이 어느 정도 그것을 채워 준 것이다.
대체로 부정적인 부분이었지만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했다.
‘애가 바뀌었어.’
유은혜는 이서준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6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뀔 줄은 몰랐다.
‘그때는 완전 철부지였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은혜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런 반응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친자 검사를 받아 오라고 날뛰거나, 내 애가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설아를 자신의 아이라고 받아들인 데다가, 그 눈에서는 애정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아빠는 아빠라는 건가?’
유은혜는 설아를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맡기지 않는다.
소중한 딸아이를 선뜻 맡길 만큼 사람을 쉽게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은혜는 지금 설아를 이서준에게 맡기고 오는 길이었다.
설아를 대하는 이서준의 태도를 보면 어쩐지 믿음이 갔다.
‘그래도 친자 확인은 해 줘야겠지만……. 여기다.’
버스에서 내려 걷다 보니, 높은 빌딩이 보였다.
강남 한복판에 이 정도 건물이라니.
사냥꾼이 돈을 잘 벌긴 하는 모양이었다.
로비로 들어서자 깔끔한 옷차림의 안내원이 유은혜에게 붙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허만덕 에이전트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유은혜 님 되십니까?”
“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미 전화로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약속을 잡은 상태.
유은혜는 안내원을 따라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검을 찬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아마 길드 소속 사냥꾼일 것이다.
“아. 어서 와요. 에이전트 허만덕입니다.”
“유은혜입니다.”
허만덕의 명함을 받은 유은혜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이서준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허만덕? 계약서에 백 퍼센트 이상한 거 있네. 이것 봐.
-뭐가 이상한데?
-일단 작은 것부터. 여기 보면……
풍채가 좋은 중년인, 허만덕은 옅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도저히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커피를 가져온 허만덕은 유은혜의 맞은편에 앉았다.
“계약서는 읽어 보셨습니까?”
“네. 읽어 봤습니다.”
“저희 ‘기사단’만큼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는 길드는 거의 없을 겁니다.”
기사단.
스타 사냥꾼 성수현을 필두로, 검을 쓰는 사냥꾼이 주를 이루는 길드였다.
비교적 최근 인지도가 높아진 길드로, 유은혜도 익히 들어 본 바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유은혜는 섣불리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루터 계약은 어떻게 되나요?”
“활동하시게 되면, 기사단 소속 루터를 배정해 드릴 겁니다.”
“계약서를 보니 그 항목은 없더라고요. 루팅한 소재는 어떻게 나누죠?”
“정해진 비율대로 사냥꾼과 길드, 루터가 나눠 갖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그 정해진 비율을 묻고 있는 건데요.”
허만덕은 내심 당황했다.
단순히 마나를 받아들였다고 진짜 사냥꾼이 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최소 조건을 만족했을 뿐이기에, 라이선스를 따기 전까지는 위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그것도 신출내기가 찾기 어려운 맹점을 짚어 내다니.
‘다른 길드에서 오퍼라도 들어온 건가?’
라이선스도 따지 못한 후보생에게 공을 들이는 길드는 드물었다.
그게 보석인지 돌멩이인지는 라이선스 시험을 거쳐 봐야 알기 때문이다.
아깝게 탈락한 유망주라면 모를까, 유은혜는 아직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점이 있는 건 확실했다.
‘쯧. 하긴, 탐날 법도 하지.’
바로 상업성.
유은혜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길드 소속의 사냥꾼은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방송을 병행하기도 한다.
유명한 예능이나 토크쇼에서 활약하는 사냥꾼도 종종 있었다.
성수현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사냥 쪽은 양보해도 뭐.’
어차피 유은혜는 사냥꾼보다 연예인에 가깝게 키울 것이다.
허만덕은 가식적으로 웃으며 계약서를 수정했다.
“원하신다면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궁금했던 것 좀 다 물어보고 시작할게요.”
기회를 놓치지 않은 유은혜가 조목조목 계약서를 따지기 시작했다.
애매하게 쓰인 부분부터, 은근슬쩍 빠진 조항까지.
거의 십 분을 쉬지 않고 따져 묻는다.
“어, 그 부분도 고치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도…….”
“이 정도로 허점이 많은 계약서는 처음 받아 보네요.”
“으음.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옛날 양식이라.”
유은혜는 이서준의 조언대로 말을 이었다.
처음이라고 했지만, 사실 계약서를 받은 길드는 기사단이 유일했다.
일부러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처럼 은근슬쩍 허세를 부린 것이다.
주도권은 완전히 유은혜에게 넘어왔다.
‘서준이 말이 다 맞았어.’
다 따져 묻고 보니, 알 수 있었다.
이서준은 완벽하게 기사단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냥꾼 관련 법률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허점을 이용한 사기 계약.
하마터면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계약할 뻔했다.
허만덕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계약서를 갈아엎는 동안, 유은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 * *
“아빠.”
“아빠.”
“잘생겼어요.”
“잘생겼어요!”
“옳지. 잘했어.”
“히히.”
“아 하세요.”
내가 작은 알사탕을 까자, 설아는 먹이를 보채는 아기 새처럼 냉큼 입을 벌렸다.
작은 입술 사이로 사탕을 쏙 넣어 주니, 좋다고 웃는다.
사탕이 말랑한 볼 안쪽에서 데굴데굴 굴러간다.
아주 옳게 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갔어요?”
“엄마는 일 보러 갔어. 금방 오신대.”
은혜는 길드 에이전트와 대화를 나누러 갔다.
보통 사람들은 길드 에이전트의 말에 사로잡히기 쉽다.
하지만 은혜는 똑 부러진 성격을 가졌고, 내 조언도 받았다.
아마 내 말을 흘려 넘기지만 않았다면 계약을 미뤄 두고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나는 설아와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떻게 친해진담.’
장난도 치고 친근하게 굴고 있긴 했다.
그러나 나는 설아와 친해져 본 경험이 없다.
매운 걸 못 먹는다는 것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맞다. 아이스크림.’
예로부터 먹을 거만큼 호감 사기에 좋은 방법은 없다.
떡볶이로 경계를 풀어놨으니 아이스크림으로 화룡점정.
완벽한 계획이었다.
“설아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아슈크림?”
“응, 아슈크림.”
“네!”
은혜가 돌아오면 단 걸 너무 먹였다고 뭐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중요한 건 설아와 친해지는 것이었다.
“갈 땐 가더라도, 아이스크림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으응? 아빠 이상해요.”
나는 설아와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걸어서, 역 근처에 있는 큰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솔직히 아이스크림은 할인점에 가서 사는 게 이득이다.
맛있기야 맛있지만, 국밥 한 그릇 값을 아이스크림에 태우는 건 손해였다.
하지만 내 딸을 위해서 이 정도 희생은 불사할 수 있었다.
‘회귀하면서 정신도 조금 어려진 건가. 아니면 주머니 사정 때문이려나?’
빈털터리까지는 아니었지만, 많이 있지도 않은 돈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절약하는 게 맞겠지만 나도 어느 정도 생각해 둔 계획이 있다.
은혜가 돌아오면 상의해 볼 문제였다.
“우와. 우와.”
설아는 까치발로 서서 아이스크림을 살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알바생은 그런 설아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애가 좀 예쁘긴 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실이었다.
설아는 또래 애 중에서도 유별나게 예뻤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설아야. 무슨 맛이 좋아?”
“초코!”
“엄마는 외계인 싱글 레귤러, 콘에 담아 주세요.”
카드를 건네고 있는데, 아래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설아가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설아야, 왜?”
“우리 엄마, 외계인이에요……?”
눈물을 글썽이며 조심스레 묻는다.
알바생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솔직히 나도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너무 귀여운 걸 보면 웃게 되는구나.
설아를 안아 들고 아이스크림의 이름을 보여 줬다.
“아니야. 이 초코 아이스크림 이름이 엄마는 외계인인 거야.”
“그러면, 엄마 외계인 아니에요?”
“응. 엄마 외계인 아니야. 뚝.”
설아의 눈가에 몽글몽글 맺힌 눈물을 닦아 줬다.
알바생은 나와 설아를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깊이 있는 통에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퍼 담아 준다.
그런데 그 양이 제법 많았다.
“동생이신가요?”
“아. 아뇨. 딸인데요.”
“그렇구나. 따님이 귀여워서 조금 더 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설아야.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맙습니다! 이쁜 언니!”
“허윽.”
알바생의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좋아하는 걸 많이 줬으니 특별 서비스가 추가된 모양이다.
만약 비뚤어지지만 않았다면 사회생활을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아이스크림에 몰두하다가도, 설아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성격을 생각해 봐도 은혜가 애를 참 잘 가르친 것 같았다.
결국 나중에 삐뚤어진 건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맛있어?”
“네! 맛있어요! 근데.”
설아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나를 바라봤다.
“아빠는 안 먹어요?”
“응? 괜찮아.”
아빠라고 불러 주는 것에 대한 감동 때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회귀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커녕, 타인을 대하듯 성까지 붙여 이름으로 불렀는데.
하루에 불과했지만 나름 노력한 성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 갈등하던 설아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아껴 먹던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아 하세요.”
“어?”
“아 하세요!”
“……아.”
까치발로 선 설아가 내 입에 아이스크림을 넣기 위해 낑낑댔다.
허리를 숙여 주자, 그제야 아이스크림을 입에 가져다준다.
혹시나 많이 먹으면 속상해할까, 살짝 베어 물어 맛을 봤다.
“어때요?”
“엄청 맛있네!”
“그쵸!”
설아는 어째선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됐다.
초콜릿의 단맛보다, 설아의 호의가 녹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풀리는 표정을 바로잡았다.
그때였다.
위이이이이잉.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