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
눈을 깜빡이니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한국, 스펙터의 길드 하우스였다.
나는 곧바로 사람 수를 헤아렸다.
한 명이 비었다.
“스기하라 신야는?”
“이탈해서 못 데려왔어.”
마지막에 얼핏 도망가는 스기하라 신야를 본 것 같았다.
도시가 뒤집히던 찰나, 혼란을 틈타 도주한 것이었다.
화가 나서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차피 데려오고 싶지도 않았어.”
“스기하라 신야가 뭘 했길래?”
“미래의 설아를 쐈어요.”
은혜의 대답에, 뒤늦게 와서 상황을 못 본 일행이 침묵했다.
일이 틀어져도 아주 제대로 틀어진 것이었다.
평화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버렸으니.
심지어 에르제베트마저 미래의 설아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하아. 골이야.”
하이람은 풀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진짜 두통이 오는지, 머리를 붙잡고 꾹 누르는 모습이었다.
“미래의 설아 설득에도 실패했고, 왕은 부활했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그게 왕이었죠?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왕의 부활이었다.
얼핏 고개를 든 것만 봤을 뿐이었지만.
그건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괴물이 아니었다.
강대호도 동의했다.
“그건 못 죽여.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야.”
“대호 오빠가 힘으로 못하면 진짜 심각한 건데.”
“그치. 되게 심각한 거지.”
고희연과 강대호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좀처럼 풀릴 생각이 없었다.
설아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봤다.
나는 가까스로 한숨을 삼켰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모두 설아를 위한 일이었다.
허무하긴 했지만, 화낸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가만히 고개를 들고 위를 보던 에르제베트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아직 찬스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때였다.
귓가에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림음.
[월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제한 시간 안에, 던전 : 격리된 차원을 공략하십시오.] [제한 시간 안에 공략 실패 시, 월드 보스 : 괴물들의 왕이 지구에 출현합니다.] [남은 제한 시간 : 23 : 53 : 07]남은 제한 시간은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초 단위로 떨어지고 있는 시간은 총 23시간 53분.
대략 하루가량의 유예가 주어진 것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군가 세타가야를 일시적으로 분리시킨 모양이야.”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해.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
에르제베트는 아마 나와 같은 사람을 생각했을 것이다.
시부야의 무녀.
‘지금 시점에는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괴물들의 왕은 차원의 벽을 부술 수 있다.
미드하임의 괴물들과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
세타가야를 따로 분리했다는 건, 에르제베트의 말대로 찬스였다.
“이서준. 마지막 기회야.”
“나도 알아.”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든 제한 시간 안에 공략해야만 했다.
“에르제베트.”
“응.”
“넌 괴물들의 왕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에르제베트는 괴물들의 왕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었다.
애초에 같은 미드하임 출신이니만큼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 전력이라면.”
나는 흘긋 왕의 반지를 내려다봤다.
내 모든 걸 쏟아붓는다고 가정했을 때.
“객관적으로 공략 가능성은 얼마나 돼?”
“설아가 없었더라면, 괴물들의 왕이 최종 보스였을 거야. 지금 전력으로 공략할 확률은.”
에르제베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단언컨대 괴물 중에서는 최강이라는 얘기였다.
미래의 설아 정도가 아니라면 필적할 만한 게 아닌 존재.
에르제베트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제로. 불가능해.”
“허.”
“흠.”
어느 정도 이런 답변이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들으니까 조금 느낌이 달랐다.
아예 공략 자체가 불가능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고희연은 더듬더듬 말했다.
“아, 아예 불가능한 거예요? 어떻게 해도?”
“응. 그걸 죽음에 이르게 할 공격력 자체가 없어.”
“그런.”
심각했다.
하긴 최종 보스급이라면, 10년, 15년 후에나 나올 괴물이었다.
현시점의 사냥꾼들은 내가 회귀하기 전의 시점보다 훨씬 약하다.
이는 스펙터의 사냥꾼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가능성을 끌어올릴 방법은? 없어?”
하이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에르제베트는 그런 하이람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있어.”
“뭔데?”
“전력을 상승시키는 거지.”
간단한 이야기였다.
전력이 부족하다면 전력을 상승시키면 된다.
하지만.
“하지만 에르제베트 씨. 이제 하루도 안 남았는데.”
“맞아요. 그렇게 쉽게 강해지는 건 서준 오빠 정도라고요.”
“나도 쉽게 강해지진 않았거든?”
문제는 역시 제한 시간이었다.
하루라도 훈련한다면 강해지긴 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전진 정도일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공략 가능성 0%였던 괴물을 사냥할 정도로 강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했다.
“기억을 되찾으면 돼.”
* * *
에르제베트의 이론은 간단했다.
짧은 시간,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회귀 전의 기억을 되찾는다면, 스킬의 숙련도 등을 높일 수 있다.
확실히 전력 상승을 도모하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솔직히 강요하고 싶진 않아. 리스크가 있거든.”
“리스크가 뭔데요?”
“그냥, 자아를 잃어버릴 수 있어.”
“되게 세네요…….”
“기억을 찾는 순간, 두 가지 자아가 충돌할 거야.”
에르제베트는 주먹을 부딪쳐 보였다.
“회귀 전의 자아, 지금의 자아. 잘못하면 잡아먹힐 수도 있어.”
“회귀 전의 저한테요?”
“맞아. 고희연 너는 이미 한번 겪어 봤지?”
고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찬의 스킬로, 고희연은 회귀 전의 자신을 얼핏 봤다.
물론 찰나의 기억인지라 괜찮았지만, 그때도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귀여워하고 좋아했던 설아한테 증오심이 느껴졌을 정도니까.
결국 누그러지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기면 그냥 기억으로 흡수될 거야. 옛날에 있었던 일 정도로 떠오르겠지.”
“그럼 그게 제일 좋겠네요.”
“질 때가 문제지. 특히 고희연 너는.”
고희연은 움찔 떨었다.
얼핏 봤던 회귀 전의 고희연은, 복수귀였다.
그 칼끝이 향하는 곳이 설아였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람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면 되잖아.”
“이람 언니는 이길 자신 있으세요?”
“난 안 져. 나한테도.”
고희연은 하이람이 조금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이람 역시 내심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자아의 상실은 간단하게 말해, 죽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강대호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내가 먼저 할게.”
“대호 오빠.”
“괜찮겠어?”
“그럼!”
강대호는 유쾌하게 웃으며 에르제베트에게 다가갔다.
에르제베트 역시 불안하긴 매한가지인 것 같았다.
“실패할 수도 있어.”
“어차피 공략하지 못하면 지구 멸망이잖아. 죽어도 뭐라도 해 보고 죽는 게 낫지.”
“대호 형.”
이서준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자신을 잃는다는 감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서준이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강대호가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될까 봐.
“난 아마 미래에도 별생각 없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제 딴에는 농담이었을 것이다.
이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제베트. 기억은 어떻게 찾는 거야?”
“내가 저번에 말한 적이 있지?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둘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회귀 전에 봤던, 미래의 설아.
지금 내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설아.
겪은 일이 다를 뿐, 둘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모두 이서준이 겪었던 일을 겪은 상태라는 거야.”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그렇겠지. 이제부터 기억을 깨울 거야.”
에르제베트는 강대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강대호는 결의가 담긴 눈으로 심호흡했다.
“지면 자아가 사라질 거야. 죽는 거나 다름없다고. 정신 똑바로 차려.”
“스읍. 그렇게 말하니까 더 긴장되는데. 일단 알겠어.”
“그럼, 간다.”
* * *
강대호는 잠에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떠 보니, 낯선 장소였다.
고독하게 앉아 있는 남자의 등이 보였다.
‘오. 운동 좀 한 놈인가?’
소위 등빨이라고 하는, 넓은 등판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봐도 동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좋은 근육.
강대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못하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으하하!”
강대호는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살면서 자신의 뒤통수를 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곳에 온 목적이 기억났다.
“너, 나구나!”
남자.
회귀 전의 강대호가 몸을 일으켰다.
뒤를 돌아봤다.
지금의 강대호와는 사뭇 다른, 진중한 분위기였다.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믿어도 될 정도였다.
“왜 이렇게 심각해?”
“넌 행복한 것 같은데.”
“행복? 지구 멸망 직전이긴 하지만, 행복하긴 하지.”
씩 웃은 강대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 강대호는 행복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데, 항상 행복하지.”
“그럼 굳이 떠올리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몰라.”
“나 하나 행복하자고 지구 멸망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구만.”
회귀 전의 강대호는 씩 웃었다.
지금의 강대호와 똑같은 미소였다.
“나는 나네.”
“나는 나지.”
“근데, 미래의 나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뭐냐?”
강대호는 사뭇 심각한 표정이 됐다.
언젠가, 이서준에게 미래의 자신에 대해 질문한 적 있다.
“설아한테 덤볐다가 뼈도 못 추리고 죽은 게 사실이냐?”
“……알고 싶냐?”
“잠깐. 모르는 게 약일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기억을 받아들이면 다 알 텐데.”
“그러네! 아! 벌써 부끄럽다!”
“으하하!”
회귀 전의 강대호는 호탕하게 웃었다.
강대호는 미래의 설아가 가진 전력을 모른다.
그렇기에, 저렇게 부끄러워할 수 있는 것이다.
스킬 한 번 사용하는 것으로 지구를 멸망시킨 최종 보스.
그 최종 보스에게 죽은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멋있는 일은 안 했어?”
“했지. 이서준이가 말 안 해 주디?”
“안 해 주던데.”
“기억을 받아들이면 다 알 거야.”
회귀 전의 강대호는 손을 내밀었다.
강대호는 의심 없이 다가왔다.
“안 무섭냐?”
“뭐가?”
“이래 보여도, 난 너보다 세거든.”
“그건 딱 봐도 알아. 근데, 무섭진 않아.”
회귀 전의 강대호.
권왕은 정말 강했다.
강대호가 다가갈 때마다 몸이 저릿할 정도였다.
이서준이 ‘우리 중에는 제일 셌다.’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 자아가 부딪친다면, 잡아먹히는 건 분명 지금의 강대호다.
하지만 강대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 잡아먹을 거냐?”
“아니. 난 미련 같은 게 없어서.”
“역시, 나라면 그럴 것 같더라.”
“이번엔 이겨라. 쪽팔리게 죽지 말고.”
“안 져. 죽지도 않을 거고.”
강대호는 회귀 전의 강대호와 손을 맞잡았다.
두 강대호는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