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아.”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격리된 차원의 공략에서 핵심은 하나였다.
왕이 우리를 인식하지 못할 것.
설령 인식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근접한 상태여야 한다.
왕이 우리를 인식하는 순간 성공 가능성이 대폭 낮아진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텐데.’
총소리가 크긴 했지만, 들릴 거리는 아니다.
왕의 몸이 워낙 큰 탓에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왕은 어떻게 우리를 인식했는가.
나는 왕과 눈이 마주쳤다.
그냥 이쪽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잠깐.’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정확히 나를 바라본 왕이 몸을 돌렸다.
쿠구구구구……!
그것만으로도,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사냥꾼들도 더러 있었다.
“어억!”
“다들! 뭐라도 붙들어!”
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상사태였다.
왕은 거대한 손을 반쯤 들고, 뒤로 젖혔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희연아!”
내가 고희연을 부를 순간.
왕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손바닥 바깥쪽이 도시를 긁었다.
엄청난 풍압과 함께, 부서진 건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콰가가가가가!
아까 전 들었던 격발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말 그대로 자연재해,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거대한 그림자가 길드 연합을 집어삼켰다.
날아온 건물 잔해들이 밀려왔다.
“으아아아아!”
베거나,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건물들이 쏟아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공포에 질린 한 사냥꾼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아?”
아무리 힘껏, 길게 비명을 질러도, 건물은 우리를 덮치지 않았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건물이 하늘에 부유한 채, 멈춰 있었다.
측면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던 건물들도 연합에 닿지 않고 멈춰 있었다.
설아의 마법이 아니었다.
“된 거죠?”
고희연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고희연은 괴물들의 왕이 있던 곳으로 검을 겨누고 있었다.
나는 고희연의 개인 시스템을 확인했다.
[개인 시스템]이름 : 고희연
직업 : 검귀
직업 스킬 : 흔들리지 않는 칼끝
고유 스킬 : 칼의 맹세
고유 스킬, 칼의 맹세.
고희연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고유 스킬이었다.
스킬의 효과는 조금 복잡했다.
흔들리지 않는 칼끝으로 지정한 상대.
그 상대는 ‘고희연 이외의 대상을 공격할 수 없게 된다’.
“이것도 공격으로 생각해 주나 보네.”
“이 정도면 공격이 아니라 공습인데요.”
“방어는 아니니까. 응.”
고희연 이외의 대상을 향한 공격은 무효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스킬인 만큼 리스크 역시 존재한다.
상대와 마찬가지로, 고희연 역시 어떤 방법을 써도 상대 이외의 대상을 공격할 수 없다.
즉 고희연은 괴물들의 왕에게 다다르기 전까지, 전투 불능 상태나 다름없었다.
더하여.
“으.”
고희연은 심장 쪽을 손으로 눌렀다.
두 번째 부작용이었다.
스킬을 한 번 발동한 순간.
고희연 혹은 고희연이 지정한 상대.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한, 스킬이 해제되지 않는다.
더하여 스킬이 소모하는 건 마나가 아니라 생명력.
다시 말해 고희연은 실시간으로 수명을 빼앗기고 있었다.
“희연아. 왜 그러느냐?”
“괜찮아요. 할아버지.”
“서준 군.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건가?”
검성은 내게 설명을 요구했다.
흘긋 고희연을 봤지만, 고희연은 애써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걱정할 게 빤했기 때문에, 스킬에 대해서 숨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전멸을 막은 공적이니만큼 알려지는 게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본인의 의사는 존중해야 했다.
“마법입니다. 얼마 못 버팁니다.”
에르제베트가 마법을 쓴 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검성은 에르제베트를 보더니 납득했다.
이유 모를 제약을 지니고 있는 것 같진 했지만.
에르제베트의 마법은 다른 마법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그러려니 생각할 수도 있었다.
“흠. 그래.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겠군.”
검성은 고희연의 상태가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희연은 바로 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안색은 조금 좋지 않았지만, 웬만해선 알아차리기 어려운 수준.
존경스러울 정도의 정신력이었다.
고희연의 생명력이 전부 떨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공략을 끝내야 했다.
“그럼, 돌파하겠습니다.”
* * *
길드 연합은 본격적인 돌파를 시작했다.
세타가야 내부에는 괴물로 들어차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외곽에 괴물이 몰려 있던 이유는, 왕이 괴물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몇 차례 교전이 있었다.
하지만.
“뚫을 수 있습니다!”
“돌격!”
입구에서 봤던 것처럼 대규모의 괴물들도 아니었다.
소피아 람비두의 ‘기사단장’이 정말 크게 작용했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괴물들은 수와 무력으로 돌파해 냈다.
괴물들을 때려눕히던 강대호가 소리쳤다.
“수가 너무 많은데!”
“하이람 씨!”
“그만 좀 불러!”
돌파 때는 직접 전투에 나서는 대신, 고희연을 지키며 마나를 비축한다.
그러다가 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때는 하이람이 나섰다.
하이람은 그야말로 전쟁 여왕, 일인 군단이라고 불릴 때의 위상을 보였다.
기억을 찾았다고는 하나, 회귀 전과 버금갈 정도로 강해질 줄은 몰랐다.
돌파의 반 정도는 하이람의 지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한 시간 : 8 : 19 : 36]어느덧 던전 내부로 들어선 지 2시간이라는 시간이 경과 했다.
여러 차례의 전투를 거치며 이동했기 때문에, 시간 대비 이동한 거리는 길지 않았다.
이제 왕의 크기가 체감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왕의 그림자 때문에 유난히 흐린 날처럼 어두웠다.
“결국엔, 저놈을 어찌 죽일 생각인가?”
“내부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내부로? 설마, 몸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겐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괴물이라도, 코어를 부수면 죽는다.
이는 언데드나 도플갱어처럼 잘 죽지 않는 괴물들에게도 통용되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크더라도, 괴물이라면 코어가 있을 겁니다.”
문제는 코어의 위치였다.
몸집이 크고 강한 만큼 코어 역시 거대하겠지만.
저 큰 몸뚱이 어디에 코어가 있을지는 불명이었다.
외부에서의 공격이 코어가 있을 위치까지 닿을지도 의문인 상태.
애초에 저 왕에게 유효할 정도로 큰 공격이 가능한 횟수는 몇 번 없었다.
“큰 공격을 가한다면 코어에 직접 하거나, 위치를 특정 짓고 하는 게 맞습니다.”
왕은 다른 괴물을 먹음으로 힘을 회복했다.
유효타를 적중시키더라도, 금방 힘을 되찾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코어를 부숴 끝내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괴물 내부로 들어간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은.”
“가능할 겁니다.”
이는 이미 회귀 전 입증된 일이다.
검성의 공략대는 아자누스를 사냥할 때, 괴물의 내부로 들어갔다.
웬만해서는 뚫을 수 없는 강한 외부 대신, 상대적으로 취약한 내부를 노린 것이었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네만.”
역시 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무모하다고는 보여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전부 들어갈 수는 없네. 리스크가 너무 높아.”
“위력이 강한 공격이 가능하고, 생존 능력이 높은 사냥꾼을 추릴 겁니다.”
소피아 람비두나 하이람처럼 대규모 전투에서 활약하는 사냥꾼이 들어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외부에서도 공격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가 컸다.
그렇기에, 내부로 들어갈 사냥꾼을 미리 선별해 뒀다.
괴물의 몸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여차할 때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냥꾼.
“검성 어르신.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나, 그리고 검성.
검성은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적임자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그러겠네. 또 있는가?”
“제가 갈 겁니다.”
강대호가 나섰다.
생존력, 공격력.
강대호 역시 조건에 부합하는 사냥꾼이었다.
검성 역시 강대호를 알고 있었다.
“철이의 아들, 분명 대호랬나?”
“예. 그렇습니다.”
“실력이 괜찮더군.”
검성은 선뜻 강대호를 인정했다.
강대호는 돌파 내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무기 없이 주먹으로 괴물을 쳐 죽이는 모습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 강대호가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를 잊지 못한다.
그건 컬처 쇼크였다.
“감사합니다.”
“어어, 저거 또 움직입니다!”
그때였다.
한 사냥꾼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괴물들의 왕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희연의 스킬이 적용됐다는 걸 모르는 건가?’
공격이 무효화된 걸 봤을 것이다.
단순히 막았다고 생각하고 힘을 빼면 이쪽이 이득이다.
아수라장이 되긴 하겠지만, 어쨌든 왕은 우리를 공격할 수 없으니까.
왕은 몸을 일으키더니,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강한 풍압에, 모두 주춤거리며 물러났지만.
그래도 사냥꾼들인 만큼 날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알버트 쪽이 걱정되긴 했다.
다행히 알버트와 설아는 잠깐 건물 뒤로 숨은 것 같았다.
“뭐 하는 거지?”
“감사의 정권 지르기?”
“그런 거 하는 사람은 대호 형밖에 없거든요.”
“희연이도 하던데.”
뭔가 이상했다.
힘을 비축하고 있을 텐데, 의미 없는 동작을 보일 리 없다.
눈을 게슴츠레 뜬 에르제베트가 말했다.
“부수고 있는 거야.”
“뭐를?”
나는 에르제베트의 시선을 따라 유심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왕이 주먹으로 가격한 허공에, 얼핏 생긴 금이 보였다.
균열.
“차원의 벽을.”
괴물들의 왕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분명 허공을 쳤을 텐데,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균열 특유의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
쩌어억!
두 번째 공격에서, 균열은 순식간에 눈에 보일 정도로 커졌다.
보통의 균열처럼 선 하나로 이루어진 금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퍼져 있는, 거대한 균열이었다.
“괴물들을 부를 셈이야!”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접근합니다!”
만약 에르제베트의 말대로 차원의 벽이 부서진다면.
균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직접 공격할 수 없으니, 괴물을 불러들여 막겠다는 것이다.
“괴물들은 공격한 걸로 취급 안 되겠지?”
“명령에 따르는 거면 모르겠는데, 지성 없는 괴물은 원래 본능적으로 인간을 공격해.”
“그럼 안 되겠네!”
우리는 달렸다.
조금이라도 왕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왕은 거대한 균열을 향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고.
콰아아아앙!
차원의 벽이 깨졌다.
공간이 부서지며,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에는 끝없는 어둠이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은 구멍 너머에 있는 어둠을 주시했다.
돌연 수백, 수천 개의 팔과 머리가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아아아!
늪에서 빠져나오듯 천천히 몸을 뻗은 괴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태어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검성이 중얼거렸다.
“지옥문이 열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