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폐하!”
마녀의 처형식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미드하임 왕성의 알현실.
왕좌에 가만히 앉아 있던 왕은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괴물이 있었다.
네 개의 눈에, 아래턱이 없어 흉측하게도 혓바닥이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거대한 검을 등에 멘 괴물의 정체는 기사단장 설리번이었다.
왕은 왕좌에 앉아 설리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으로 추악한 모습이 아닐 수 없구나.’
설리번의 검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왕성 밖에서는 비명과 괴성이 끊이질 않았다.
마녀의 마지막 저주가 내린 땅에는 대혼란이 찾아왔다.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유약한 이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잡아먹었다.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이들도, 모든 책임을 왕에게 전가했다.
“무슨 일인가?”
“역도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서둘러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설리번은 고개를 숙이고 충언했다.
괴물의 모습이 됐으나, 끝까지 충성을 맹세한 자였다.
왕은 설리번을 가만히 보며 기시감에 빠졌다.
“설리번 경. 기억하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내가 즉위하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전 국왕의 서거와 동시에 이루어진 공격.
유약한 왕을 밀어내고 왕위를 노린 것이었다.
그때, 왕은 도망쳐야만 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왕을 굳이 죽이려 들다니, 참 아둔한 놈들이었어.”
“폐하.”
설리번은 탄식하듯 왕을 불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왕.
왕의 등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전 국왕의 병을 그대로 이어받은 왕은 검 한 자루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
“나는 늘 경이 부러웠다네.”
“예?”
“경뿐만 아니라, 마녀도 부러웠어. 그리 강대한 힘을 지닌 건 어떤 느낌일지.”
복도에서 어수선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설리번이 검을 빼 들었다.
문이 부서졌다.
쾅!
그곳으로 몰려든 것은, 추악한 모습의 괴물 무리였다.
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나, 얼굴이 수십 개 달린 놈도 있었다.
설리번은 검을 든 채 호통쳤다.
“이놈들! 이곳이 어디라고 기어들어 오느냐!”
“웃기는군.”
선두에 있던 괴물이 가래침 끓는 듯한 목소리로 설리번을 비웃었다.
다른 괴물들 역시 움츠러들기는커녕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왕이여! 정녕 네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왕은 침묵했다.
설리번은 흘끔 왕을 돌아봤다.
왕은 왕좌에 앉아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세계가 멸망했다! 진즉 마녀를 죽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터!”
“양심이 있다면 책임을 지고 내려와 목을 내밀어라!”
“무엄하다!”
“아니.”
설리번이 왕 대신 호통을 쳤을 때.
왕이 설리번을 만류하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왕좌가 있던 드높은 단상에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왔다.
“설리번 경. 비키게.”
“폐하! 아니 되옵니다!”
설리번에게 있어서 왕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존재였다.
그렇기에, 어명이었지만 따를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설리번은 역도들을 향해 검을 치켜세웠다.
그때였다.
후욱!
뒤에서 무언가 뛰쳐나왔다.
왕이었다.
왕은 가장 앞에서 설리번을 비웃던 괴물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악!”
“죽여!”
“우어어어!”
전투가 시작됐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설리번은 왕의 힘을 목도하고 전율했다.
아무런 힘 없던 자들도 괴물이 되며 힘을 얻었다.
그러나 왕이 얻은 힘은,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퍽! 콰득!
알현실 창문에 피가 튀었다.
수십에 달하는 괴물들이 죽음을 맞이한 건 한순간이었다.
소란이 잦아들고, 피를 흠뻑 머금은 레드 카펫 위로 붉은 피 웅덩이가 생겼다.
그 모습을 본 설리번은 자신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무릎을 꿇었다.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 선 왕은 역도의 사체를 뜯어먹었다.
까득, 까드득.
왕은 피 묻은 입꼬리를 올렸다.
왕에게 있어서 이 저주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 * *
[끄아아아악!]왕은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느껴졌다.
몸에 내려앉았던 마녀의 저주가 사라지고 있었다.
강대했던 힘이, 수천의 괴물을 먹어 치워 얻은 힘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떻게!]그 어떤 사람도 풀지 못했던 마녀의 마지막 저주였다.
심지어 멸망의 마녀조차 풀지 못했던 저주를 어떻게 풀 수 있었는가.
왕은 문득 설아를 보고, 깨달았다.
이토록 강대한 힘을 지닌 어린아이는 없었다.
아니, 전해 듣기로, 딱 한 명이 있었다.
[너도, 마녀였구나!]저주를 제 몸처럼 다루고, 강대한 마나를 지닌 여자.
마녀였다.
하지만 왕은 쉽사리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녀는 죽은 달의 신의 환생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녀가 둘이나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이대로는 힘을 전부 잃는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왕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걸 알고 후방으로 빠져 있었다.
왕은 에르제베트에게 손을 뻗었다가, 풀썩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힘이 급속도로 빠져나가, 저곳까지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을 흡수하면 된다!’
만약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가 정말 마녀라면.
왕은 그것을 흡수하는 것으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저주가 풀리기 전에, 어서 이 아이를 흡수해야만 했다.
왕관이 떨어지고, 갈비뼈가 쩍 벌어졌다.
왕은 설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쩌엉!
그러나, 그 손은 설아에게 닿지 못했다.
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 이곳까지 와서 설아를 보호할 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은 없었다.
왕의 손가락 끝은 설아의 얇고 작은 목 앞에 있었다.
그러나 왕의 공격은 설아에게 닿지 않았다.
[칼의 맹세가 발동했습니다.] [사냥꾼 : 고희연 이외의 생물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왕은 눈을 부릅떴다.
그 시선의 끝에는, 고희연이 있었다.
힘이 없는 듯 덜덜 떨리는 손으로 왕을 겨눈 채, 서 있었다.
* * *
고희연은 죽었다.
유은혜는 어떻게든 고희연을 살리려 하며, 소리쳤다.
“희연아. 죽으면 안 돼. 제발!”
죽으면 안 된다.
그리고 유은혜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스킬을 사용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외친 말은, 곧 현실로 이루어졌다.
[개입]고희연의 개인 시스템에 개입하는 데 성공.
죽음으로부터 고희연을 다시 깨운 것이었다.
그러나, 고희연의 의식은 죽음 저편에 잠긴 후.
유은혜의 바람대로 고희연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살지도 못했다’.
그때였다.
그러나, 유은혜는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콜록.”
이서준과 유은혜를 제외한 스펙터의 인원들은, 에르제베트를 통해 기억을 되찾았다.
강대호는 회귀 전 자신에게서 기억을 넘겨받았다.
하이람은 회귀 전 자신을 죽이고 기억을 빼앗았다.
그리고 고희연은, 조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희연아? 정신이 들어?”
“하아.”
가까스로 숨을 토해 낸 고희연이 눈을 떴다.
유은혜는 문득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양도를 썼을 때처럼, 분위기가 바뀐 것이었다.
“괜찮아요.”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딱딱한 어조.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죽었다 살아났음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요가 없는 모습이었다.
“……희연아. 너.”
“처음 뵙네요. 유은혜 씨.”
고희연은 회귀 전의 자신의 기억을 만났을 때, 당황했다.
회귀 전 고희연은 짙은 증오와 복수심에 들어차 있었다.
고희연이 더욱 당황스러웠던 점은, 그 감정이 이해됐다는 것이었다.
-미안. 기억은 줄 수 없어.
회귀 전 고희연은 회귀 전 하이람이 그랬던 것처럼, 고희연을 죽이려 들었다.
회귀 전 고희연은 이 세계에 미래의 설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몸을 탈환해, 복수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 고희연을 죽이려고 했다.
-잠깐만요!
그러나 고희연은 싸우지 않았다.
고희연은 유은혜의 스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양도를 사용한 또 다른 은혜와 싸워 보기도 했고, 대화를 나눠 보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생각했다.
-공존할 수는 없을까요?
-공존?
-네. 싸우지 말고요.
회귀 전 고희연과 지금의 고희연 간의 무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요행으로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제안했다.
자신을 죽이는 게 아니라 복수가 목적이었던 회귀 전 고희연도 검을 거뒀다.
-이렇게 하죠.
고희연은 협상에 성공했다.
그렇게 깨어난 고희연은 격리된 차원 공략에 나섰다.
평소에 몸의 주도권은 고희연이 지니고 있었지만.
죽음으로 의식을 잃어버리며, 회귀 전 고희연의 의식이 주도권을 가져온 것이다.
“희연이가, 아닌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어린 설아를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고희연은 왕과 대치하고 있는 설아를 봤다.
설아는 자신의 원수였다.
하지만, 회귀 전 고희연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설아는 자신의 원수가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죄를 짓지 않은 시점의 죄인은 죄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고희연은 검을 들었다.
[칼의 맹세]* * *
[끄아아아아아악!]왕의 절규와 함께, 입 밖으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형상을 한 영체였다.
“영혼.”
에르제베트의 중얼거림에,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왕이 먹어 치웠던 영혼들이 도망치듯 왕의 밖으로 빠져나갔다.
왕의 몸을 감싸고 있던 짙은 검은색의 저주가 점점 옅어졌다.
풀썩.
왕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곳에, 괴물은 없었다.
깡마른 몸의 노인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왕관 앞에 꿇어앉은 왕은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망친 영혼들은 하늘에서 흩어졌다.
‘아름답구나.’
밤하늘에 별이 퍼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왕은 밤하늘 한가운데에 빛나는 무언가를 봤다.
힘을 잃어버리며, 왕은 그 생명을 다했다.
시야가 흐려졌다.
왕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달이었다.
아니, 달처럼 하늘에 떠 있는 사람이었다.
왕은 생각했다.
달의 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라고.
[아름답군…….]그 말을 마지막으로, 왕의 숨이 끊어졌다.
사냥꾼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던전 : 격리된 차원을 최초로 공략했습니다.] [월드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괴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냥꾼 대다수가 죽음을 각오했다.
고려검가의 사냥꾼 하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긴 거야……?”
“공략했다잖아.”
“끝난 거네?”
“이겼다!”
“우와아아아아!”
얼떨떨한 목소리의 문답 뒤로, 떠나갈 듯한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힘을 다한 하이람은 주저앉은 채 웃었다.
하지만, 웃지 못하는 사람이 셋 있었다.
이서준과 유은혜, 그리고 에르제베트였다.
그들의 시선은, 쓰러진 왕 앞에 선 설아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