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나는 고희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것은, 검은 로브 차림의 마녀.
미래의 설아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목 뒤에 서늘한 냉기가 스쳤다.
그토록 만나길 고대했던 미래의 설아였지만.
미래의 설아는 나와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느껴지는 건 차가운 적의뿐.
미래의 설아 너머로 찬란한 별 무리가 나타났다.
‘아니, 저건 별이 아니라.’
얼음.
족히 3미터는 가볍게 넘을 듯한 얼음 창 수백 자루가 날을 세우고 있었다.
창끝이 향하는 곳은, 길드 연합이 있는 방향이었다.
‘미친.’
어떤 동작도 없이, 간단하게 사용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저 마법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전멸은 피할 수 없었다.
저건 공격이 아니라 폭격에 가까웠다.
“에르제베트!”
“봤어!”
에르제베트는 이를 악물고 마나를 끌어모았다.
이미 무리할 대로 무리한 에르제베트였지만.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설아에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손끝으로 바닥에 기다란 선을 그리는 시늉을 했다.
뜨거운 마나가 몸을 쭉 늘어트린 뱀처럼 길게 새겨졌다.
에르제베트가 양손으로 무언가를 끌어 올리자, 마나가 올라왔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나 방어막이 머리 위를 뒤덮었다.
“온다!”
얼음 창이 바람에 휩쓸린 비처럼 사선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얼음 창이었다면 당연히 막아 낼 수 있었겠지만.
치이이익!
얼음 창은 모두 영원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불로 이루어진 방어막이라도, 창을 막아 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창이 불꽃을 뚫고 들어와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한 저항에 부딪힌 듯 그 속도는 현저하게 느렸지만.
마나로 쏜 창인 만큼, 불꽃을 빠져나오면 그대로 꽂힐 것이다.
에르제베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못 막겠는데!”
그때였다.
유심히 에르제베트를 보고 있던 설아가, 에르제베트를 따라 했다.
앙증맞은 손으로 기다란 선을 그리더니, 끌어 올린다.
그러자.
쿠구구구구!
거대한 얼음벽이 올라왔다.
영원한 얼음과 영원한 얼음이 격돌했다.
콰아아앙!
설아는 미래의 설아에 비해 마법이 미숙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미래의 설아가 사용한 마법은 에르제베트의 마법에 의해 화력이 약해진 상황.
힘의 크기가 완전히 같았던 건지, 부딪친 마법이 부서졌다.
쨍그랑!
불똥이 낸 빛을 반사한 얼음 조각이 빛났다.
하지만 그것에 정신 팔릴 겨를은 없었다.
우리가 공격을 방어하는 사이.
미래의 설아가 새로운 마법을 준비하는 게 보였다.
우웅.
이곳까지 마나가 느껴졌다.
발치에 마나로 이루어진 선이 나타났다.
거대한 곡선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언뜻 다른 곡선이 교차하는 것도 보였다.
‘설마.’
나는 문득 떠올렸다.
부산에서 드래곤을 상대할 때도 있었던 일이다.
강한 마법에는 그 전조처럼 마법진이 나타난다.
하지만, 마법진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
그 크기가 너무 컸다.
길드 연합이 위치한 광장 전체를 통틀어, 선 몇 개가 보일 정도.
세타가야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으로 추측됐다.
어떤 마법인지도 모르기에, 대응할 방법조차 없었다.
화악!
그 순간.
흩날리며 떨어지던 얼음 조각들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빛이 사그라들고, 팔을 내렸을 때.
“어?”
나는 익숙한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대한민국, 서울.
최후의 전투가 있었던 그때의 그 장소였다.
[던전 ; 마녀의 악몽에 입장했습니다.]“설아야?”
등 뒤에 있던 설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설아뿐만이 아니었다.
에르제베트, 은혜, 하이람, 고희연, 검성, 강대호, 다른 사람들까지.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제 이동? 아니.’
시스템은 분명 이곳을 두고 던전이라고 했다.
애초에, 서울은 현재 이런 상태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건물을 오래전에 부서져 방치된 듯 보였다.
우리가 격리된 차원을 공략하는 사이 던전화 됐다.
즉 이곳은 진짜 서울이 아니라, 미래의 설아가 만들어 낸 공간.
‘던전을 만든다니.’
던전은 균열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아공간이다.
일종의 자연현상이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법으로 던전을 만든다니, 그런 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었지만.
‘설아라면.’
설아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만 이동된 건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만 이동됐다는 가능성도 있었다.
그랬다면 최악이었겠지만, 아마도.
‘아니겠지.’
마법진의 크기로 볼 때, 세타가야에 있던 전원이 이동됐을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어떻게, 왜.
‘미래의 설아는 존재가 불안정한 상태 아니었던가?’
미래의 설아는 차원을 이동하며 힘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물론 그럼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지금 사용한 마법은 확실히 궤를 달리하는 마법이었다.
왕은 풀려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존재를 안정시킨 걸까.
‘만약 미래의 설아가 존재를 안정시키고 완전히 힘을 되찾았다면.’
대항할 방법은 있는가.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회귀 전, 지금보다 몇 배는 강했던 사냥꾼들도 이기지 못했던 게 미래의 설아다.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그랬다면 굳이 지금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
회귀 전 최후의 전투 때의 결사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격리된 차원에는 꽤 많은 수의 정예 사냥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래의 설아가 공격하길 꺼리는 두 명.
은혜와 에르제베트가 있었다.
온갖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타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일시적인 건가?’
만약 미래의 설아가 힘을 되찾은 게,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라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모습을 드러낸 게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
우리도 격리된 차원 공략에 시간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모을 수 있는 정예 전력만 모아 급하게 공략에 나서지 않았는가.
‘그럼 문제는 왜인데. 아마도.’
앞서 말했듯, 에르제베트와 은혜가 있었다.
그 둘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던전에 끌어들였다.
그 뒤, 사람들을 모두 뿔뿔이 흩어 놓았다면 말이 됐다.
그렇다면 미래의 설아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설아, 아니면 나겠지.’
미래의 설아는 인간을 혐오한다.
가능하다면 에르제베트와 은혜를 제외한 모두를 죽이고 싶겠지만.
우선순위가 있다면, 아마 나 아니면 설아일 확률이 높았다.
미래의 설아는 나를 원망하는 듯 보였고.
설아를 죽여야 존재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으니까.
‘일단 설아부터 찾아야 한다.’
설아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다.
나는 용의 최후를 움켜잡고 주위를 살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서울이라고 해도 낯선 장소였다.
더불어 설아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첩첩산중이라고 해야 하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생각하느라 의식이 느렸지만.
‘추워.’
추웠다.
얼어붙을 것 같은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이따금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아플 정도였다.
차가운 눈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발끝이 시렸다.
회귀 전, 설아가 영원한 겨울을 사용했을 때와 같았다.
‘빙하기네. 완전.’
살아 있는 식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식물은커녕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살아남기에는 너무 척박한 환경이었다.
영원한 겨울의 영향으로 생존력이 뛰어난 사냥꾼도 여럿 죽었다.
‘은혜는 괜찮으려나.’
나는 ‘잔류하는 용의 숨결’을 통해 불을 피울 수 있다.
물론 마나를 소모하는 행위긴 했지만,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에르제베트나 설아라면 몰라도.
은혜가 걱정됐다.
‘일단 움직여야지.’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우선 높은 곳을 찾아서 일대를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방향은 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설아를 찾으면 제일이고, 에르제베트를 찾아도 괜찮다.’
에르제베트는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다.
찾기만 한다면 수색 시간이 단축될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우우우웅!
멀리서, 고래 울음소리 같은 높은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나는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먼 하늘.
거센 눈발을 헤치고, 무언가 날아왔다.
투명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가 빛을 반사해 빛났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그것이 내려앉았다.
쿵!
얼음용, 프레아였다.
프레아는 내가 가는 길을 막아섰다.
‘어? 잠깐만.’
얼음용 프레아는 설아의 소환수다.
회귀 전, 프레아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도 본능적으로 도망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 왕은 프레아를 제압했었다.
‘그 프레아는 미래의 설아가 아니라, 설아가 소환한 거잖아?’
미래의 설아가 프레아를 소환했다면, 에르제베트가 내게 알렸을 것이다.
즉 눈앞에 있는 프레아는 미래의 설아가 아닌, 설아의 소환수일 수도 있었다.
문득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매끄러운 표면에 난 온갖 상처들.
오랜 싸움으로 생긴 상처들이었다.
우우우우웅!
프레아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내게 이빨을 드러냈다.
맹렬할 정도로 느껴지는 적의는 미래의 설아가 가진 감정과 비슷했다.
‘빌어먹을. 아닌가 보네.’
프레아는 거대한 날개를 펼치곤, 내게 날아들었다.
나는 용의 최후를 움켜쥐고, 프레아를 향해 돌진했다.
* * *
고희연은 생각했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게 잘된 일이라고.
가면이 없었고, 몸이 굳은 듯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미래의 설아 쪽도 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처음의 그 공격.’
얼음 창을 쏟아부었던 그 마법은, 고희연이 알던 미래의 설아의 마법과 달랐다.
언뜻 망설임까지 느껴지는, 위협성 없는 공격.
그런 공격을 한다면, 아무리 최종 보스라고 한들 죽일 자신이 있었다.
고희연은 검을 뽑아 들고 확인했다.
‘이 시점에서 이런 무기를?’
조금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든 검이었다.
이 정도라면 영원한 얼음도 베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의 상태를 확인한 고희연은 검을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여기에 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래의 설아는 이곳에 있다.
검귀, 회귀 전 고희연은 복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텁.
하늘에서 내려온 누군가 눈을 밟고 섰다.
마치 고희연의 길을 가로막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희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비키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은혜였다.
회귀 전 고희연은 말 한마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이 다르다.
고희연은 검 자루에 손을 올리고 경계했다.
“너, 누구야?”
“답할 수 없습니다.”
고희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유은혜가 어떤 사람인지는 얼핏 알고 있었다.
미래의 설아가 그렇게 된 건 유은혜의 잘못이 아니었다.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제압하는 수밖에.’
기절시킬 요량으로, 고희연은 유은혜를 향해 뛰었다.
검의 손잡이 끝으로 머리를 친다.
기절시켰다고 생각한 그 순간.
쿵!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때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강한 충격과 함께 얼굴을 뒤덮는 차가운 감각.
찰나의 순간, 제압당한 고희연은 땅에 엎드려 있었다.
쌓여 있던 눈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어?”
고희연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보이지도 않았고,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또 다른 유은혜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아를 해칠 생각이라면, 보내지 않겠습니다. 고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