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설아라니, 설마 미래의 설아요?”
“그렇습니다.”
“하.”
고희연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유은혜가 이러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언니네 딸은 따로 있잖아요.”
미래의 설아는, 엄연히 말하면 유은혜 입장에서 가족보단 타인에 가까웠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유은혜에게는 미래의 설아를 낳고 기른 기억이 없다.
돌연 자신과 비슷한 나이를 가진 미래의 딸이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라.
선뜻 받아들이기도 힘들 텐데, 이렇게까지 위해 주는 건 말이 안 됐다.
“둘 다 제 딸입니다.”
“현재의 설아는 몰라도, 미래의 설아는 아니에요.”
고희연은 몸을 비틀었다.
팔이 뒤틀린 탓에 탈골될 가능성도 있었다.
잡아 누르는 힘을 볼 때, 힘 쪽에서는 고희연이 우위.
힘을 써 탈출하려 했으나, 유은혜는 저항하는 고희연을 억지로 잡아 두지 않고 풀어 줬다.
몇 걸음 물러난 유은혜는 일어나 자신을 보는 고희연과 눈을 마주쳤다.
“당신. 은혜 언니가 아니라 기억이죠? 나 같은.”
고희연은 유은혜의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를 짐작했다.
자신과 똑같이 회귀 전 기억이 몸의 주도권을 잡은 것이리라.
말투부터 원래의 유은혜와 달랐고, 그 성격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확신이 아니라 추측에 불과했다.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혜 언니는 일찍 죽었어.’
회귀 전 유은혜가 죽은 건 아자누스 사태 당시다.
미래의 설아를 사냥하기 위해 온갖 정보를 수집했기에 알고 있었다.
아자누스 사태 시점에서 죽은 유은혜는 슈퍼 루키라 불리며 주목을 모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나는 괴물들은 점점 강해졌다.
그에 맞춰 장기간 경험을 쌓고 더 좋은 보상을 획득하게 된 사냥꾼도 강해졌다.
상향 평준화.
이서준이 현시점에서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회귀 전 고희연 역시 현재 다른 사냥꾼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력을 지녔다.
그러나, 유은혜는 이에 해당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기엔 너무 일찍 죽었다.
‘뭐든 간에.’
고희연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유은혜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은혜는 활을 무기로 사용하는 리어다.
근접전에서는 약할 거라고 생각하고 방심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전력을 다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흔들리지 않는 칼끝]고희연은 유은혜에게 검을 겨누는 것으로, 스킬의 대상을 지정했다.
이제 유은혜의 공격 궤적은 고희연의 눈에 훤히 보인다.
일대일에서 있어서만큼은 검성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은 고희연이다.
귀신처럼 상대의 모든 공격을 읽고 허점을 꿰뚫는다 하여 검귀(劍鬼).
‘앞길을 막으면 벤다.’
회귀 전 고희연은 그런 성격이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검귀라는 별칭에 더불어 복수귀라 불리기도 한 것이다.
고희연의 발이 소복이 쌓여 있던 눈을 뭉갰다.
펑!
눈이 폭발한 듯 뒤로 밀려나며 고희연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미 한 번 당한 적 있으니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쏟아 낸 것이다.
반응하지 못한 건지 유은혜의 공격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고희연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후욱!
그러나, 검이 지나간 자리에 유은혜는 없었다.
고희연은 일순간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칼끝’은 적의 공격만 볼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고희연은 스킬의 대상이 된 상대의 모든 움직임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일대일에서만큼은 검성을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유은혜의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눈 부스러지는 소리.
‘아래?’
고희연은 뒤늦게 다시 오감에 의존해야 했다.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니, 자세를 낮춘 유은혜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낮춰 검을 피하는 동시에 도리어 앞으로 파고든 것이다.
시선이 교차했다.
‘쯧!’
어떻게 스킬을 무효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희연은 초인적인 반사 속도로 검을 회수했다.
카앙!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을 보호하지 못했다면 찔렸을 것이다.
고희연은 흘끔 검에 부딪친 유은혜의 무기를 확인했다.
‘화살?’
유은혜는 화살촉 근처를 잡고, 화살을 찔러 넣었다.
화살을 근접전 무기로 쓴다니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화살대를 잡는다면 부러질 수도 있다지만, 이렇게 쓰면 사정거리가 터무니없이 짧다.
애초에 화살은 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지, 휘두르라고 만든 무기가 아니다.
하지만 유은혜는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다뤘다.
챙! 캉!
고희연은 유은혜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지만, 유은혜는 고희연을 쉽게 놔주지 않았다.
화살촉과 검이 연달아 부딪쳤다.
검은 창에 비하면 그다지 긴 무기가 아니다.
그러나 화살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긴 무기다.
보통 서로 싸울 때, 긴 무기를 든 쪽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밀착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가까이 붙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 불리한 쪽은 무기가 긴 고희연이었다.
의도적인 초근접전.
‘강해!’
고희연은 뒤로 밀려났다.
아니, 뒤로 물러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유은혜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한 번 쳐 내고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유은혜는 애초에 쳐 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무기를 길게 부딪치지 않고, 회피하고 흘리며 싸운다.
뒷걸음질 치던 고희연이 발끝을 눈밭에 박았다.
팍!
그대로 눈을 걷어차며 뒤로 물러났다.
하얀 눈발이 튀어 오르며 서로의 시야가 가려졌다.
유은혜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눈을 넘어서, 고희연에게 접근한 것이다.
거리가 벌어지면 전세가 뒤바뀐다는 건 유은혜도 알고 있었다.
‘기회.’
고희연은 기다리고 있었다.
시야가 차단된 유은혜는 고희연의 검을 보지 못했다.
고희연이 유은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부웅!
그러나, 검은 유은혜에게 닿지 않았다.
유은혜가 반응해 막은 것이 아니었다.
고희연의 몸이 멈춘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 자신의 몸을 막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유은혜가 수를 썼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고희연은 알 수 있었다.
지금 고희연을 막은 건, 원래의 고희연이었다.
“어째서!”
그 의식이 사라지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고희연 역시 회귀 전 고희연의 기억을 봤고, 감정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공존이라는 길을 택한 것 아닌가.
와락.
유은혜는 고희연을 끌어안았다.
언제부터인가, 유은혜는 원래의 유은혜로 돌아와 있었다.
유은혜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희연아. 이제 돌아와.”
* * *
설아는 눈밭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하얀 입김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엄마? 아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겨울도 아닌데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고요한 도시의 빌딩 사이로 낮은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휘오오오.
몸을 부르르 떤 설아는 코를 훌쩍였다.
춥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설아 주위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저절로 모여든 마나가 설아의 체온을 높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춥지는 않았지만.
“다 어디 갔지?”
설아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무래도 미아가 된 모양이었다.
마트에서도 놀이공원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설아는 여섯 살 인생 최대의 위기감을 느꼈다.
“흐잉.”
두려움이 작은 몸을 짓눌렀다.
설아의 눈가에 조금 눈물이 고였다.
눈을 떠 보니 낯선 장소에 홀로 버려진 상황.
엄마 아빠는커녕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린 설아에게는 충분히 무서울 법한 상황이었다.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툭툭.
그때, 누군가 설아의 어깨를 살짝 쳤다.
화들짝 놀란 설아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쿠.”
다행히 눈이 소복이 쌓여 있던 탓에 아프진 않았다.
넘어진 설아는 자신의 어깨를 친 그것을 보고 활짝 웃었다.
“옷아!”
설아는 로브를 와락 끌어안았다.
조금 빛바랜 것으로 볼 때, 에르제베트의 로브였다.
마법에 휘말리기 직전 에르제베트가 설아에게 붙여 둔 것이다.
로브는 설아의 등을 토닥이며 설아를 진정시켰다.
설령 옷이라고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안심되는지.
“으응, 근데 이제 어쩌지?”
설아는 유은혜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미아가 됐을 때는, 그 자리에서 얌전히 안내 방송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도시에서 안내 방송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던 설아에게 로브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휙휙.
소매가 가리키는 방향은, 위.
위로 올라가서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좋아!”
에르제베트와 함께 마구엘을 찾을 때처럼 찾으면 될 것이다.
로브가 양탄자처럼 팡 펼쳐지자, 설아는 로브 위에 올라타서 로브의 소매 부분을 손잡이처럼 꽉 붙잡았다.
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설아를 태운 로브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후욱!
눈 덮인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얀 도시의 빛을 담은 설아의 눈이 빛났다.
“우와.”
도시 대부분이 무너져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눈과 얼음으로 덮여 반짝이고 있었다.
성북에서 봤던 풍경과 비슷했지만, 무너진 정도가 심했다.
얼어붙은 탓에 부식되진 않았으나 한눈에 봐도 더 많은 건물이 부서져 있었다.
군데군데에 박힌 커다란 얼음 결정이 눈에 띄었다.
설아는 한눈에 그것이 마법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엄마랑 아빠 중에 누구부터 찾지?”
도시의 전경을 구경하던 설아는 잊고 있던 자신의 목적을 기억해 냈다.
이서준과 유은혜의 마나는 상당히 특이했다.
“으음, 엄마가 마나가 강하긴 한데.”
둘 중 마나가 강한 것은, 단언컨대 유은혜였다.
설아는 유은혜만큼 강한 마나를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법사라 불리는 부류의 사람들도 유은혜보다 마나가 적었다.
다만 그 마나가 깊은 호수와 같았기에, 쉽게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하이람이나 강대호의 것처럼 화려한 마나가 아니었다.
설아는 일단 아빠부터 찾기로 했다.
“아빠부터!”
설아는 어렵지 않게 이서준의 마나를 찾을 수 있었다.
이서준 역시 유은혜처럼 눈에 띄는 종류의 마나는 아니었지만.
이서준의 마나에는 아주 특이한 무언가 있었다.
설아의 어휘력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적어도 설아가 아는 언어 중에선 그와 빗댈 만한 게 없었다.
‘멀리 있네.’
이서준은 설아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설아는 거리가 멀다고 낙담하지 않았다.
로브를 타고 날아가면 금방일 것이다.
“안녕.”
이서준에게 가려던 설아는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서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 때문이었다.
설아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나.”
미래의 설아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