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알버트, 너 진짜 이럴래?”
푸른 얼음으로 이루어진 동굴.
주저앉은 에르제베트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알버트를 질책했다.
알버트는 이빨을 딱딱거렸다.
“말로 해. 말로.”
알버트와 에르제베트 사이의 주종 관계는 끊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에르제베트는 알버트의 말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성대나 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알버트는 억울하다는 듯 제 목뼈를 가리켰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알버트와의 오랜 생활로 그 감정을 어설프게 읽을 수 있었다.
“억울하다고?”
알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알버트는 지금 에르제베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몸을 옭아맨 마나의 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억울하면 이거 풀어.”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에게 제압당했다.
수를 읽고 공간 이동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미래의 설아가 한 수 위였다.
마나의 줄에 무엇을 한 건지, 마나가 언 탓에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미래의 설아는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급박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너 두고 봐.”
에르제베트는 알버트를 보며 이를 갈았다.
보통 이러면 알버트도 겁먹고 풀어 주는데.
알버트는 조금 움츠러들었을지언정, 에르제베트를 풀어 주진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알버트는 미래의 설아가 소환한 소환수다.
다른 무엇보다 미래의 설아가 내린 명령을 우선시한다.
미래의 설아는 알버트에게 에르제베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이곳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다.
딱딱딱.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소환수가 주인의 명령을 우선시한다는 건, 에르제베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주인의 말에 위배만 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뜻이기도 했다.
명령의 빈틈을 찾아낸다면, 알버트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데로 가고 싶은데. 여긴 너무 추워.”
알버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래의 설아도 그것을 알고, 꽤 꼼꼼하게 명령을 내린 모양이었다.
풀어 줄 수도 없고, 에르제베트는 이동할 수도 없는 상태다.
‘내가 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해라. 그런 명령이었나 보네.’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가 내린 명령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명령에 존재하는 빈틈을 찾는 게 문제였다.
에르제베트는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가, 자신의 그림자를 봤다.
“캐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비록 마나를 사용하진 못하고 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먼저 소환, 마나를 주고 대기시키고 있었다.
캐시는 붙잡힌 에르제베트가 걱정되는 듯 ‘애옹’ 하고 울었다.
캐시를 본 알버트가 경계 태세를 취했다.
“가.”
에르제베트는 다급하게 명령했다.
캐시는 알버트를 지나 얼음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알버트는 멀어진 캐시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냥 간 거야. 날 풀어 주려면, 이 마나를 갉아먹었겠지.”
캐시는 마나를 먹을 수 있다.
도망치고자 했다면 마나의 줄을 갉아먹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알버트는 두개골을 갸우뚱 기울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르제베트의 계산은 달랐다.
‘캐시와 알버트가 싸우면, 분명 캐시가 진다.’
저렇게 조금 어리바리하고 미숙한 모습이 있어도, 알버트는 정말 강하다.
본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마나가 부족한 상태인 캐시에게는 승산이 없다.
그렇기에 에르제베트는 우선 캐시를 내보내는 걸 선택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하다면 지원군을 불러올 것이다.
‘제발. 내가 풀려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에르제베트는 기도했다.
신은 정말 싫어했지만.
* * *
나는 달렸다.
설아가 있을 법한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머지않아 나는 거대한 얼음 결정을 볼 수 있었다.
운석처럼 떨어진 얼음이 건물 한쪽에 박혀 있었다.
‘방금 떨어진 건데.’
건물의 상태나 쌓인 눈이 흐트러진 걸로 볼 때.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얼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건 내 딸밖에 없다.
미래의 설아일지, 설아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디지?’
마법의 흔적이 있다는 건 교전 중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아갈수록 눈발이 거세지는 탓에 도통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던 도중, 사람으로 추정되는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요!”
뭐라도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다급히 그를 불렀다.
형체는 내 말을 들었는지, 어디론가 가다가 멈춰 섰다.
나는 높이 쌓인 눈을 헤치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쩌면 은혜나 에르제베트일지도 모른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나는 여태껏 사람을 보지 못했다.
미래의 설아가 나를 의도적으로 외진 곳에 떨어트린 것 같았다.
혼자 달린 지 몇 분 만에 만나는 사람이라 조금 반갑기도 했다.
이내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일 때쯤.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닌가,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진짜였다.
“오승훈 씨?”
하이람의 심복, 오승훈.
이번 공략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인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니, 뭔가 이상했다.
오승훈은 평소 입는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사냥꾼이 입을 법한 잘 만든 슈트를 안에 받쳤다.
입고 있는 옷은 불 도마뱀 샐러맨더의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회귀 전 극저온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오승훈은, 머리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저건.’
새 부리 모양의 가면.
마녀 사냥꾼의 상징이다.
순간적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미래의 설아가 박수찬을 선동시켜, 마녀 사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수서의 광신도들은 마녀 사냥꾼처럼 새 부리 모양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나.
‘저 가면은, 어설프게 따라 만든 게 아닌데.’
그것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어딘가 어설픈 모조품이었다.
하지만 지금 오승훈의 머리에 있는 가면은 달랐다.
내가 마녀 사냥꾼의 일원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저건 어딜 보나 진품이었다.
‘회귀 전 오승훈?’
회귀 전의 오승훈은 마녀 사냥꾼의 일원이었다.
하이람이 죽은 후에 합류했기에 마지막 일원에 가깝긴 했지만.
그 실력은 마녀 사냥꾼에 적합한 수준이었기에,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여졌다.
‘왜 여기에.’
회귀 전 오승훈이 있단 말인가.
스펙터의 일원들처럼 기억을 되찾은 게 아니다.
자세히 보니 오승훈은 얼굴이 변해 있었다.
15년 이후, 즉, 정말 회귀 전 시점의 오승훈이었다.
그렇다는 건.
‘진짜가 아니라는 건가.’
회귀 전 세상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래의 설아는 어디까지나 ‘설아라서’ 가능했던 것.
애초에 회귀 전 오승훈은 설아에게 죽었을 터.
그렇다는 건.
‘마녀의 악몽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던전의 이름은 마녀의 악몽이다.
그리고 던전에는 괴물이 있기 마련이다.
미래의 설아라는 최종 보스가 있는 던전에서, 괴물을 담당하는 것은.
‘인간.’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다.
[악몽의 파편 : 오승훈]-마녀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악몽의 파편입니다.
-강한 마나가 만들어 낸 인공적인 존재입니다.
-생명체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파를 사용했다.
예상대로, 진짜 오승훈은 아니었다.
회귀 전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일종의 가짜.
마나로 형상을 빚어 만든 영체 같은 존재였다.
어쨌든 진짜가 아니라는 건 참 다행이었다.
진짜 오승훈에게 무기를 겨누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은 없나 보네.’
간파로 확인한 마지막 줄에는 생명체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일단 살아 움직이는 건 공격한다는 얘기였다.
오승훈은 무기를 들었다.
그가 든 무기는.
철컥.
진압봉이었다.
놀랍게도 저게 무기였다.
좀처럼 보이지 않는 타격계.
더불어, 사거리도 짧은 특이한 무기였다.
‘처음 봤을 때는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강대호를 논외로 치더라도, 타격계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냥꾼의 목적은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었고, 괴물 사냥의 정석은 코어의 파괴였다.
괴물의 코어는 대체로 체내에 있기 때문에, 이를 파괴하기 위해선 베거나 찔러 공격하는 게 편하다.
무식한―강대호 같은― 공격력이 아니고서야 타격으로 괴물을 잡기는 어렵다.
그러나.
‘저 사람도 어지간히 상식 밖이란 말이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오승훈이 그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였다.
물론 오승훈의 경우, 강대호처럼 육체 능력이 무식하게 강한 건 아니었다.
하이람처럼 스킬의 활용으로 수혜를 본 쪽에 해당했다.
[개인 시스템]이름 : 오승훈
직업 : 수행인
직업 스킬 : 일점제압
고유 스킬 : 원천봉쇄
직업은 수행인.
놀랍게도 저건 비전투 직업이 아닌 전투 직업에 속한다.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을 지키면서 싸울 때,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는 직업이다.
당연하게도 예전부터 하이람에게만 적용됐다.
문제는 직업 스킬과 고유 스킬.
‘PTSD 오네.’
나는 리전에 들어가자마자, 하이람을 찾아갔다.
그 당시에는 오해가 쌓여 있던 터라, 적반하장이었다.
물론 내가 하이람을 해치는 일은 없었다.
오승훈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툭!
가면을 내려 쓴 오승훈이 가볍게 눈을 찼다.
나는 용의 최후를 가로로 잡았다.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후욱!
오승훈은 내 좌측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빠른 움직임.
오승훈의 삼단봉은, 내 왼쪽 팔뚝을 때렸다.
퍽!
슈트 덕분에 맞을 만했다.
하지만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오승훈의 스킬 효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툭.
나는 용의 최후를 놓칠 뻔했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승훈의 직업 스킬, 일점제압.
그 효과는, 타격한 부위를 일시적으로 제압하는 것.
즉, 나는 지금부터 왼쪽 팔을 사용하지 못한다.
‘큰일 났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유효타를 허용한 게 실수였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한 시점에서, 이 여파는 눈덩이처럼 굴러가 커질 것이다.
오승훈의 스킬은 그런 것이었다.
오승훈은 삼단봉을 들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이제 한 손으로 싸워야 한다.’
나는 오른팔 팔뚝 아래와 등 사이에 창을 끼웠다.
용의 최후는 양손용으로 제작된 창이다.
가볍지도 않을뿐더러, 길이 또한 길어 한 손으로 쓰기에는 불편하다.
하지만 이미 왼팔을 잃은 이상 이럴 수밖에 없었다.
‘불리한데.’
내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왕과의 전투에 이어서, 프레아를 쓰러트리고 온 참이다.
문제는 그 전투에서 왕의 반지를 사용했다는 것.
해제되는 순간 몸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게 빤했다.
그렇기에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영혼을 소모해, 지속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뒤에 감당해야 할 부작용이 어마어마한데.
‘싸우려면 더 사용하는 수밖에.’
지금 내 몸 상태로는, 반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체력을 다한 마라톤 선수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억지로 뛰는 꼴.
결코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는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왕의 반지를 사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