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휘오오오오오.
스산한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남자와 고양이가 얼어붙은 눈을 밟고 섰다.
강대호는 캐시의 안내에 따라 한 얼음 동굴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동굴 앞에 선 강대호는 깊은 어둠을 보며 생각했다.
‘위험한데.’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차가운 죽음이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감각.
짐승보다 날카로운 강대호의 감이 비명을 질러 대며 경고하고 있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
죽는다.
애옹.
캐시가 울었다.
강대호를 이끌었던 것처럼, 먼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다.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강대호는 쉽사리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아오. 미치겠네!’
강대호는 머리를 긁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시간만 버린다.
위험하지만, 결국에는 가야 한다.
“가자. 그래. 까짓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
강대호는 캐시를 따라 얼음 동굴 내부로 들어섰다.
도시 한복판인 만큼, 처음부터 동굴이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원래는 건물이었는데, 부서진 후 얼어붙으며 동굴 같은 모양새를 띤 것 같았다.
수직형으로 이루어진 얼음 동굴 안쪽에는 강대호의 예상과 달리 별다를 위험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괴물 한 번 못 봤지. 던전 안인데.’
강대호는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자 거대한 홀이었던 것 같은 공동이 나왔다.
내부는 어두웠지만, 강대호는 이서준과 마찬가지로 밤눈이 밝았다.
어둠에 적응한 눈에 흐릿하게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어둠 속에 낮게 깔려 있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그것은 분명 짙은 검은색의 연기였다.
강대호는 이 연기를 이미 본 적 있다.
튜토리얼 타워 마지막 층의 보스가 내뿜던, 죽음의 저주.
“어?”
한순간이었다.
위험을 느낀 강대호가 본능적으로 뒤로 뛰었고.
어둠 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낸 알버트가 강대호가 있던 곳을 내리쳤다.
일 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공격과 회피가 교차했다.
콰아아앙!
충격에 동굴이 흔들리며 얼음 조각들이 떨어졌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디딘 강대호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그 짧은 사이에 캐시까지 챙겨 안아 든 강대호는 중얼거렸다.
“왜 이게 여기 있어?”
튜토리얼 타워의 보스.
죽음의 저주를 온몸에 두른 알버트가 그곳에 있었다.
딱딱.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강대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어지간한 괴물이 아니라면, 공포는커녕 두렵다는 감정도 느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강대호에게도 예외는 존재했다.
“저건 못 잡는데.”
때릴 수 없는 것.
이를테면 죽음의 저주를 온몸에 두른 스켈레톤 같은 것들.
그런 경우에는, 검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권왕 강대호도 무력해진다.
“하필 왜 나냐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유은혜나 하이람.
하다못해 무기를 사용하는 이서준이나 고희연이었더라면.
저런 괴물을 상대로도 선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대호의 무기는 주먹.
닿을 수 없다면, 공격할 수도 없다.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해야.’
웬만하면 일단 돌진하는 강대호여도, 생각은 있었다.
상성, 즉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돌진하는 건 단순한 게 아니라 멍청한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들어왔던 좁은 복도 쪽으로만 가면, 거대한 괴물이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점.
강대호는 복도 쪽을 확인하고, 냅다 그곳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애오옹!
강대호의 품에 있던 캐시가 몸부림을 쳤다.
캐시를 놓친 강대호는 일순간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알버트 너머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에르제베트?’
백은발의 마녀, 에르제베트가 그곳에 있었다.
순간적으로 강대호의 머릿속에 하이람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이서준을 찾는 게 최선이다.
차선책으로 은혜나 에르제베트.
우선순위는 공간 이동을 쓸 수 있고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는 에르제베트가 높다.
‘내 감은 틀리는 일이 없다니깐.’
강대호는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결국엔 캐시를 따라가는 게 정답이었다.
문제는.
쿠우우웅!
알버트였다.
미래의 설아에게서 알버트가 받은 명령은, ‘에르제베트를 지킬 것’.
그런데 강대호는 도망치려다가 에르제베트를 보고 방향을 틀었다.
즉, 에르제베트를 노리고 있었다.
그냥 도망쳤더라면 캐시처럼 놓아줬겠지만.
딱딱.
에르제베트를 노리는 게 확인된 이상, 그럴 수도 없게 됐다.
강대호는 긴장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에르제베트!”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에르제베트는 스펙터의 사람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매번 어디론가 사라지는 데다가, 에르제베트 쪽에서 사람과 거리를 뒀기 때문이다.
에르제베트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이서준 일가 정도뿐이었다.
“나 좀 도와줘!”
“못 도와줘! 묶여 있거든!”
“뭐?”
강대호는 에르제베트를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마나가 몸을 옭아매고 있는 게 보였다.
마법에 당한 모양이었다.
“내가 몸 쓰는 건 잘해도 머리 쓰는 건 약하거든?”
“그래서?”
“저거 말이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강대호는 에르제베트가 설아의 마법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따금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짜거나 실행하는 모습도 봤다.
그렇기에, 협력을 요청했다.
비록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더라도.
여기에 붙잡혀 있었다면, 저 괴물의 약점을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못 이겨.”
“너무 단호해서 깜짝 놀랐네. 도와줄 수 없어?”
“이 마법을 풀어 주면 돼. 이것 때문에 마나도 막혔거든.”
“힘으로 풀 수 있는 거야?”
“마법으로 풀어야지. 얽힌 마나를 반대로 풀어내기만 하면 돼.”
“난 마법 못 쓰는데.”
강대호는 난감하다는 듯 대꾸했다.
에르제베트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흘끔 캐시를 봤다.
“캐시가 있으니까 빠져나올 수는 있어. 시간을 좀 끌어 줘야 하는데.”
“얼마나?”
“몇 분 정도.”
“죽을 것 같은데. 난 공격도 못 한다고.”
“흐음.”
에르제베트는 고민했다.
도와주러 온 것 같긴 했지만, 강대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닿으면 죽음에 이르는 저주를 피해 알버트를 이길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강대호의 무기는 주먹이니까.
“그럼, 이렇게 해.”
“어떻게?”
“저주, 그냥 맞아. 나중에 해주해 줄 테니까.”
“난 그거 마음에 안 드는데!”
“방법이 없어!”
강대호는 앞으로 내달렸다.
이 방법이 통하려면, 강대호가 알버트를 이겨야 했다.
에르제베트는 강대호를 믿었다.
‘알버트는 타격에 취약해.’
간단하게 두개골이 빠질 정도로, 알버트의 뼈는 생각보다 약하다.
온몸을 감싼 죽음의 저주를 무시한다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강대호 쪽이었다.
내달린 강대호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도약 능력.
뻐억!
주먹이 두개골에 꽂혔다.
설마 공격당할 줄 몰랐던 건지, 알버트의 거체가 그대로 나자빠졌다.
알버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죽음의 저주가 강대호의 주먹에 엉겨 붙었다.
강대호는 찝찝한 듯 인상을 찡그렸지만, 다시 알버트를 공격했다.
“캐시. 이리 온.”
에르제베트가 캐시를 불렀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캐시는 귀를 쫑긋 세우곤 쪼르르 달려왔다.
에르제베트의 마나가 제한된 탓에 제 모습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캐시는 마법을 먹고 사는 밤 고양이였다.
앵웅.
앙증맞은 입으로 에르제베트를 묶고 있는 마나 밧줄을 물어뜯었다.
드래곤 브레스조차 집어삼킬 수 있는 게 밤 고양이다.
하지만 본체가 아닌 데다가, 설아의 마나가 강력한 만큼 시간이 꽤 소모될 것 같았다.
딱딱!
캐시를 본 알버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령을 수행하는 소환수는 주인의 마나를 받아 한층 더 강해진다.
그 증거로, 일방적으로 알버트를 공격하던 강대호가 수세에 몰렸다.
콰앙!
강대호는 팔을 교차해 알버트의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호라도 크기 앞에는 장사 없는 법.
팔뚝이 저릿한 느낌과 함께, 저주의 영향인지 점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빡세구만!”
강대호는 이를 악물었다.
위험하다는 건 동굴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캐시를 따라온 것도, 동굴에 들어온 것도 강대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강대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한 3분 정도만 버텨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강대호는 알버트를 쓰러트릴 필요가 없다.
에르제베트만 마법에서 벗어난다면, 바로 전세는 역전된다.
곧바로 에르제베트라는 전력이 강대호 측에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거면 되는 거지?”
숨을 내쉰 강대호는 발로 단단히 땅을 디뎠다.
가드를 올리고, 눈은 상대를 향한다.
괴물을 상대로 복싱을 하는 듯한 자세였다.
[파이널 라운드]* * *
마녀의 소환수, 스켈레톤 알버트.
미드하임에서는 알버트를 두고 죽음을 담은 해골이라 불렸다.
알버트는 감정이나 이성, 생각과는 거리가 먼 언데드였다.
하지만 알버트는, 어느 순간부터 에르제베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십수 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환되어 에르제베트와 평생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소환수로서 알버트는 주인인 에르제베트의 감정이나 의지를 느꼈다.
그 결과, 기이하게도, 알버트는 웬만한 인간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게 됐다.
딱딱딱.
에르제베트가 우울해할 때면, 어떻게든 웃겨 주려 한다.
일부러 제 머리를 떨어트리거나,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할 때도 있었다.
이서준을 만난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괜찮았다.
하지만 에르제베트의 정신은 빠른 속도로 마모됐다.
에르제베트가 겪은 것은,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딱.
알버트는 제 머리를 떨어트렸다.
허둥지둥 굴러가는 머리를 주우러 달렸다.
에르제베트는 무릎을 감싸 안고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재밌든, 항상 너무 똑같아서 어이가 없어서든, 에르제베트는 곧잘 웃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에르제베트는 웃지 않기 시작했다.
* * *
콰앙!
알버트는 강대호의 주먹을 막아 냈다.
죽음의 저주가 뱀처럼 강대호의 주먹을 타고 엉겨 붙었다.
죽음의 저주는, 에르제베트가 죽고 소환 계약이 끊어지며 나타난 것이다.
원래 알버트는 에르제베트의 저주를 전달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살아 있지 않았기에, 저주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에 들러붙은 마녀의 저주는, 알버트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쌓여 갔다.
그리고 에르제베트가 처형당했을 때, 그 저주는 폭발했다.
쿠오오오오.
저주의 시작은 부정적인 감정.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게 원망이었다.
알버트는 에르제베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르제베트가 세상을 원망했던 것처럼, 알버트는 왕을 원망하게 됐다.
에르제베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왕 역시, 비참하게 죽어야 한다.
그래서 발현된 것이 죽음의 저주였다.
“크윽.”
강대호는 알버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죽음의 저주에 얼굴을 가렸다.
‘파이널 라운드’의 효과 덕분에, 알버트와 강대호의 전투 양상은 팽팽했다.
강대호의 경우 죽음의 저주에 꾸준하게 노출됐고, 알버트는 뼈에 손상을 입었다.
이대로 가다간 에르제베트가 풀려나기 전에 강대호가 죽거나 알버트가 무너질 것이다.
“흐읍!”
강대호는 죽음의 저주를 뚫고 알버트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이 측두부를 강하게 때리며, 알버트의 머리가 빠졌다.
쾅! 툭.
데굴데굴 굴러간 해골은 에르제베트의 앞에서 멈췄다.
알버트는 에르제베트를 바라봤다.
“알버트.”
에르제베트는 몹시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알버트는 그런 에르제베트를 빤히 올려다봤다.
에르제베트가 죽고, 사라진 왕을 기다리며 미드하임에서 수년 후.
알버트는 다른 차원의 어린아이에게 불러들여져, 새롭게 소환수가 됐다.
설아를 따르며, 알버트는 설아가 에르제베트와 같은 길을 걷는 걸 봤다.
알버트가 할 수 있는 건 명령을 따르고, 설아를 지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같았다.
딱딱.
설아는 무너졌고, 세상을 멸망시켰다.
일찍이 에르제베트가 그랬던 것처럼.
알버트가 지닌 죽음의 저주의 색도 덩달아 짙어졌다.
알버트는 소환수.
주인인 설아의 명령을 따랐다.
그 명령은, 기이하게도 에르제베트를 지키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해도 돼.”
미래의 설아는 에르제베트를 지키고자 했다.
이 싸움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알버트가 따르던 에르제베트의 의지에 반하는 일일지라도.
이것이 에르제베트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딱딱딱.
알버트도 더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됐다.
에르제베트를 위해서, 에르제베트를 지킨다.
인간이 모두 죽어야만 미래의 설아와 에르제베트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걸 원치 않는 듯 보였다.
뼈가 부서져 가며 걸었던 길이 옳지 않은 길이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쯤.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의 마나를 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어.”
에르제베트가 알버트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죽음의 저주는 알버트의 맹세였다.
에르제베트를 죽이고 핍박한 인간을 죽이겠다는 일념 아래 나타난 저주.
그 저주에 얽매여 있는 한, 알버트는 죽어도 죽지 않았다.
알버트의 머리에 손을 올린 에르제베트는 알버트의 저주를 해주했다.
텅 빈 눈구멍에서 뜨거운 무언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