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검성은 내게 있어서 은인이자 스승이었다.
내가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검성의 덕분이다.
그리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나를 죽인 것 역시 검성이었다.
회귀한 이후에도, 나는 검성을 이길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검성은 회귀 전, 15년이라는 격차가 있었음에도 그랬다.
‘이길 수 있을까?’
피하거나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뒤를 보인 순간 죽을 것이고, 어떻게 도망쳐도 잡혀 죽을 것이다.
결국 싸워 이겨야만 한다.
‘승산이 없는 건 아니야.’
왕의 반지로 신체와 마나를 한계까지 강화한 상태다.
지금이라면 싸워 이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검성을 똑바로 바라봤다.
‘문제는 시간.’
이미 나는 다른 악몽의 파편들에게 잡혀 시간을 끌렸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5분 남짓.
그런 와중에 검성이라는 벽을 만난 것이다.
싸움은, 생각보다 찰나의 순간 끝난다.
어느 한쪽의 전투 능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길게 끌면 안 돼.’
나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갑자기 주어진 힘을 100% 활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반면 악몽의 파편들은 회귀 전에 사용하던 힘을 대부분 사용했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고, 또 가서도 안 된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
후욱.
내가 그것을 알아차린 건, 얼굴을 스친 옅은 바람 때문이었다.
악몽의 파편, 검성이 어느샌가 내 눈앞에 와 있었다.
‘언제?’
완벽하게 가로로 누운 검이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 내 목을 베려고 한 것이다.
죽는다.
[참(斬)]검성이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나는 창을 세웠다.
아니, 창을 세우는 걸로는 모자라다.
왼손으로 창 위를 잡고, 오른팔로는 창 아래를 지지했다.
창대 중앙부와 검날이 부딪쳤다.
콰앙!
마나와 마나가 부딪치며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검성이 휘두른 검의 방향으로 쭉 밀려났다.
“크윽!”
팔과 손이 저릿했다.
이제 겨우 한 번 막았을 뿐인데.
충격의 강도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이런 공격을 몇 번이고 막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검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지?’
저주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어둠보단 안개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밤눈깨비의 암순응도 통하지 않았다.
빠르게 좌우를 살폈으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은혜가 그랬던 것처럼 기척을 아예 지워 버린 것이다.
[간파]나는 간파를 사용했다.
여태껏 몰랐지만, 간파는 비단 상대의 정보만 알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공격 경로, 거짓말, 속임수, 온갖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검성이 지금 있는 곳은.
‘뒤!’
정말 짧은 순간 놓쳤을 뿐인데.
그사이 절대 내주어선 안 되는 뒤를 잡혔다.
공격 직전에야 미세한 적의가 느껴졌다.
몸을 돌릴 틈도 없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틀어, 창으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검성이 노리고 있던 건, 아킬레스건.
쾅!
이번에도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번엔 아래쪽을 노린 탓에 아까처럼 위력이 세지도 않았다.
용의 최후에 손상 내성이 없었더라면 진작 부서졌을 것이다.
검성은 또다시 저주 속으로 숨어들었다.
‘빌어먹을. 이런 것까지 재현도가 높을 필요는 없는데.’
전투에는 생각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센스였다.
순간적인 대처, 지형지물의 활용.
이런 부분은 배워서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다.
강대호처럼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검성은 오랜 경험으로 이를 누적한 것이었다.
‘악몽의 파편에게는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
저주 속에 잠겨 몸을 숨겨도 아무렇지 않다.
반면 나는 저주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없었다.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만, 안 그래도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상태.
자칫 저주에 잠식되기라도 하면 끝이었다.
‘알고 있는 건가.’
악몽의 파편에게 어느 정도 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검성은 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내가 저주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짧은 순간에 확인, 이용한 것이다.
나는 용의 최후를 휘둘러 일대의 저주를 베어 날렸다.
부웅!
공격 이후에 생기는 그 찰나의 틈.
그 틈을 검성이 놓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흩어지는 저주 속에서 검성이 튀어나왔다.
‘먹혔어!’
검성은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다.
대놓고 틈을 보인다면, 그 틈을 포착했을지언정 오히려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성은 그러지 않았다.
[기만자]상대는 물론, 나 스스로까지 속일 수 있는 스킬.
아무리 예민한 감각을 가진 검성이라도, 기만자의 효과를 피하진 못했다.
정말 내게 틈이 생겼다고 판단해 달려든 것이다.
기회를 노리고 있었겠지만, 틈을 잡은 건 내 쪽이었다.
쩌엉!
창과 검이 부딪쳤다.
* * *
마녀의 악몽 외곽.
고희연은 한 건물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미래의 설아에게 ‘칼의 맹세’를 건 직후, 바깥쪽으로 이동됐다.
그러나, 에르제베트도 고희연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삐걱.
무언가 오래된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희연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기척을 죽였다.
벽 너머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처음에는, 길드 연합의 생존자인 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가간 고희연은 볼 수 있었다.
새 부리 가면을 쓴,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을.
삐걱.
악몽의 파편은 고희연을 찾고 있었다.
고희연의 스킬, ‘칼의 맹세’에는 리스크가 있다.
칼의 맹세에 걸린 상대는, 고희연만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희연 역시, 칼의 맹세를 건 상대만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제발.’
즉, 현재 고희연은 악몽의 파편과 전투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
방어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악몽의 파편은 상당히 강했다.
칼의 맹세로 생명력을 소모하고 있는 상태에서 싸울 만한 괴물이 아니었다.
고희연이 할 수 있는 건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끼익.
그때, 어디선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고희연을 향해 다가오던 그림자가 멈추더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어갔다.
고희연은 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쓰러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졌다.
고희연은 솔직히, 저것들이 무서웠다.
사람인 것 같으면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꺼림칙한 감각.
감각이 예민한 고희연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아주 소름 돋게 느껴졌다.
아주 깊은 불쾌한 골짜기를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응?’
무언가,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고희연은 검은색 안개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주.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고희연은 뛰어올랐다.
끼익!
멀찍이 착지한 고희연은 아차 싶었다.
악몽의 파편이 천천히 걸어올 때도 소리가 들렸을 정도로 오래되어 부식된 바닥.
의식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나고 말았다.
고희연은 그 자리에서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콰앙!
돌연, 고희연의 옆에 있던 건물의 벽이 부서졌다.
고희연은 그 순간에 땅을 박차고 뛰어 공격을 피해 냈다.
건물의 잔해 사이로 악몽의 파편과 고희연의 눈이 마주쳤다.
‘아. 일 났네.’
잔해 너머로 보인 악몽의 파편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 * *
에르제베트는 먼 옛날을 생각했다.
이서준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짧은 그날이 있었기에, 에르제베트는 구원받았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이서준을 구원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에르제베트에게는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엄, 마.”
“응. 응. 엄마 여깄어. 설아야. 정신이 들어? 괜찮아?”
그 와중에, 설아가 미약한 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설아의 손을 잡고 걱정을 한가득 안은 채 있던 유은혜는 다급히 반응했다.
미래의 설아에게 반응한 저주는, 본래 설아에게 내려졌다.
지금 마녀의 악몽에 깔린 저주는 설아가 받은 저주의 잔여물일 뿐이었다.
그만큼, 설아는 저주에 가장 많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노출된 상태.
저주를 다루는 마녀였기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을 수 있지만.
“엄마.”
“응. 설아, 왜?”
설아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이서준을 만나기 전까지 유은혜 혼자 키운 탓에,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렸다.
그렇기에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일도 없었고, 좀처럼 떼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닌 모양이었다.
“으아아앙. 엄마아아아……. 설아, 히끅, 아파. 아파아아…….”
설아는 작은 손으로 유은혜의 손을 잡고 울었다.
저주는 마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설아를 죽이고자 하는 미래의 설아.
그리고 살고자 하는 설아의 무의식.
두 가지 힘이 충돌하며, 설아의 몸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덕분에 즉사는 면했지만, 힘의 충돌에 따른 고통이 따라왔다.
“아으, 아. 어떡하지?”
유은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설아의 몸에 손을 얹고 해주를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에르제베트도 좀처럼 해주하지 못하고 있는 저주였다.
딱 한 번 해주 경험이 있는 유은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에르제베트의 예상보다 악화 속도는 빨랐다.
설아가 의식을 찾으며, 저주 간의 충돌이 강해진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이서준에게 얘기했던 10분, 그 전에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몸 상태를 확인했다.
‘마나는, 이제 못 쓰겠네.’
방금 이서준을 들여보낸 것으로, 마나는 전부 떨어졌다.
하지만 마녀에게는 다룰 수 있는 힘이 하나 더 있었다.
저주.
에르제베트는 잠깐 눈을 감고 고민했다.
“엄마아아…… 우아앙…….”
설아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점에서, 에르제베트는 마음을 굳혔다.
이서준은 이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에르제베트의 역할은 이서준을 돕는 것.
지금 이서준을 도와주는 방법은, 시간을 벌어 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에르제베트는 설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유은혜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리를 비켜 줬다.
에르제베트라면 무언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승님……. 설아, 너무 아파, 아파요…….”
설아의 작은 손이 에르제베트의 옷자락을 잡았다.
에르제베트는 잠깐 설아의 손을 내려다봤다.
안심시키기 위해 쓰다듬은 머리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괜찮을 거야.”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말을 삼킨 에르제베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저주는 에르제베트가 해주할 수 없다.
하지만, 나눠 받을 수는 있다.
에르제베트가 설아의 몸에 손을 얹었다.
설아의 몸에서 새어 나온 검은 안개가 하얗고 가느다란 팔 위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