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미래의 설아는 무릎을 감싸 안고 앉아 있었다.
짙은 죽음의 저주가 미래의 설아를 위로하듯 주위를 맴돌았다.
죽음 같은 긴 정적 속에서 미래의 설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왜 그랬어. 설아야.
멸망을 목전에 둔 상황에 찾아온 이서준은 그렇게 말했다.
미래의 설아는 그가 가증스럽고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냐고, 그것을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걸까.
‘역겨워.’
유은혜가 죽고, 이서준의 손에 맡겨졌다.
이서준은 숨겼다고 생각하겠지만, 미래의 설아는 알고 있었다.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를 볼 때마다 슬프고 괴로운 눈을 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를 미래의 설아를 통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대상은 유은혜였을 것이다.
‘버려 놓고.’
이서준은 이미 유은혜와 미래의 설아를 버렸다.
유은혜가 죽은 후에야, 이서준은 유은혜를 보고 있었다.
살아가 있을 때 봐줬다면, 유은혜가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서준의 눈을 볼 때면, 미래의 설아는 자신이 남겨진 부산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놓쳐 놓고.’
미래의 설아는 노력했다.
유은혜도 원래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혼자 있는 일은 원래부터 익숙했다.
이서준이 그랬을 때도 그랬다.
-엄마 보고 싶어.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미래의 설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차마 그 말을 이서준 앞에서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다.
응석 부리기엔 미래의 설아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자신을 보기만 해도 슬픔에 빠지곤 하는 이서준이다.
분명 이 말을 들으면, 터무니없이 슬퍼하겠지.
미래의 설아는 말을 가슴속에 묻었다.
-엄마.
미래의 설아는 엄마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성숙했다.
그리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렇기에, 미래의 설아는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설아는 죽음으로부터 빼앗긴 유은혜를 되찾아 오고자 했다.
-설아야. 앞으로는 마법 쓰면 안 돼. 쓰면 나쁜 어린이야. 알았지?
집이 무너지고, 이서준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당했던 날.
미래의 설아는 유은혜와 마법을 쓰지 않기로 약속했다.
마나가 폭주한 탓에 이서준에게는 들킨 상태였지만.
미래의 설아는 의식적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설아는 나쁜 어린이예요.
미래의 설아는 창가에서 죽어 가는 화분을 발견했다.
바쁜 이서준이 관리하지 못한 탓에 거의 시들어 버린 것이었다.
미래의 설아는 그 화분이 꼭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죽었던 것을 살리는 것도 가능하다면.
미래의 설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분에 손을 뻗었다.
-됐다!
미래의 설아는 화분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마나를 대가로 한 주술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설아는 마나를 조종하는 데 있어서 많이 서툴렀다.
그 결과.
우당탕!
식물이 급속도로 생장하며, 집 안을 뒤덮어 버렸다.
식탁이 부서지고 의자가 넘어가는 와중에, 설아는 다급하게 다른 것을 챙겼다.
방 한구석에 있던 유은혜의 활이었다.
뒤늦게 들어온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에게 소리쳤다.
-이설아!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미래의 설아에게서 활을 빼앗아 부러트렸다.
그 후로 미래의 설아는 유은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게 됐다.
의지할 사람은 이서준뿐이었지만, 이서준은 자신의 슬픔도 추스르지 못했다.
‘날 싫어했으면서.’
마탑에 납치되고 몇 년이 지나도, 이서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미래의 설아를 구한 건 이서준의 친구라고 주장한 마녀, 에르제베트였다.
에르제베트는 이서준을 변호했으나,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이서준에게 있어서 미래의 설아는 눈엣가시였고, 짐이었으며, 부산물에 불과했다.
적어도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이 자신을 그렇게 여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설아는 고희연과 이서준이 나눴던 대화를 또렷이 기억했다.
-애초에 당신은 마녀, 이설아의 친부 아닌가요?
-저는 마녀, 이설아를 제 손으로 죽여서 속죄하고자 사냥 팀에 지원한 것입니다.
에르제베트가 죽고, 미래의 설아는 다시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미래의 설아를 괴물로 취급하며 쫓았다.
미래의 설아는 사람들에게 도망치면서, 결국 에르제베트의 말을 따랐다.
이서준에 대한 기대는 버렸지만, 딱 한 번 다시 믿어 보려고 했다.
‘날 배신했으면서.’
이서준은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망가트린 다음, 뒤늦게 후회했다.
그 모습이 미래의 설아에게는 가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검성과 이서준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저건 이제 자네 딸이 아니야. 괴물이지.
-아니요. 설아는 괴물이 아니라, 제 딸입니다.
역겨웠다.
모든 게 끝장난 시점에서야 제 편을 든다는 게.
그렇게 혐오했던 이서준이 죽자, 이상하리만치 화가 났던 게.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조차 혐오했다.
‘그래 놓고.’
이서준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모든 게 끝난 후였다.
결말을 납득할 수 없었던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을 쫓았다.
그리고 이서준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유은혜와 함께 살며, 설아를 아껴 주며.
‘왜 내가.’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을 죽이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잘못한 건 이서준일 텐데.
어째선지 악당은 미래의 설아가 되어 있었다.
다섯 살부터 이해받는 걸 포기한 미래의 설아는, 지금까지 이해받지 못했다.
‘왜 내가 나쁜 것처럼 된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는 이서준이 미웠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모두 가진 설아가 미웠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서준 앞에 설 때면 자신이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잘못된 건 이서준이었음에도,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듯한 불쾌한 감각.
‘다 싫다.’
그냥, 전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조차도 죽어 버렸으면.
터벅.
그때였다.
긴 정적을 깨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주에 모두가 죽길 기다리던 미래의 설아는 눈을 떴다.
그곳에는.
“설아야.”
미래의 설아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
피투성이가 되어 창을 지팡이 삼아 짚고 선 이서준이 있었다.
* * *
“허억. 헉.”
악몽의 파편, 검성을 쓰러트린 뒤, 나는 걸었다.
저주가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하염없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창으로 지탱했다.
왕의 반지 효과가 떨어지면 아마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뱉어 낸 피가 하얀 눈을 녹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바깥에 있는 설아는 무사할까.
은혜는 어떻게 됐을까.
에르제베트는.
알 수 없었다.
어지러웠고, 몸이 무거웠다.
찢어진 근육들이 미친 듯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걸었다.
그 끝에, 나는 미래의 설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설아야.”
미래의 설아는 나를 쳐다봤다.
옅은 증오와 경멸 이외에, 느껴지는 감정은 없었다.
나는 잠깐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분명 미래의 설아를 만나면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말이 많았다.
오해였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다.
나도 너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게 변명처럼 느껴졌다.
“미안해.”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건 짧은 사과였다.
두서없이 겨우 꺼낸 말에, 목구멍이 시큰거렸다.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문득 회귀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미래의 설아와 독대했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었더라.
‘왜 그랬어, 라고 했지.’
마치 미래의 설아를 책망하는 듯한 말이었다.
잘못한 건 미래의 설아가 아니라 나였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끝까지 멍청했다.
미래의 설아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어떤 반응을 바라진 않았다.
이 말 한마디로 끝날 거였다면, 애초에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창을 움켜쥐었다.
미래의 설아를 죽이지 않으면, 설아가 죽는다.
설아뿐만이 아니라 은혜도, 에르제베트도, 나를 도와줬던 모든 사람이 죽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나는 무력했고, 약했다.
“미안해. 아빠가, 내가, 미안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흘렀다.
후회하고 사과하는 것.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나는 창을 들어 올렸다.
시간이 얼마 남았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너를 구하고 싶었던 건데.’
창을 들고, 미래의 설아를 향해 겨눴다.
미래의 설아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미래의 설아를 구하기 위해서 회귀했다고 생각했다.
‘왜 너만 구하지 못하는 걸까.’
모든 걸 끝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미래의 설아를 죽여야 한다.
내가 구하지 못한, 내가 구하려고 했던 내 딸을.
내 손으로.
까득.
깨문 이빨이 부서질 것 같았다.
심장을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모든 걸 바꾼 건데.
왜 나는 창을 미래의 설아에게 겨누고 있는 걸까.
“이서준.”
미래의 설아가 입을 열었다.
차갑게 느껴질 만큼 담담한 어조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미래의 설아를 똑바로 마주했다.
“너는 끝까지 내게 창을 겨누는구나.”
증오와 경멸이 담긴 눈동자.
그 눈동자 안쪽에서는, 어째선지 보이지 않던 슬픔이 보였다.
미래의 설아는 울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미래의 설아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눈물조차 얼어 버린 건지, 순전히 내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오래전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분명 그 꿈속에서도 설아는 울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비참한데.
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몸을 뒤덮은 얼음들이, 전부 상처였다는 건 기억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곧잘 해맑은 웃음을 짓던 표정이 얼어 버린 건, 어린 설아를 보고 알았다.
나는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너무 늦게 알았다.
창끝이 떨렸다.
‘설아를 위해서.’
설아를 구하기 위해, 설아를 죽이는 게 옳은가.
아니, 저쪽에는 설아 말고도 많은 사람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도 죽음의 저주가 설아를 좀먹어 가고 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아니. 이것도 결국 정당화고, 자기합리화야.’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지금의 가족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내가 구하지 못한 딸을 살릴 것인지.
나는 짙은 죽음의 저주 속에 있는 미래의 설아를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몇 초에 불과했지만, 내겐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미래의 설아는 내가 그 앞에 설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미래의 설아의 목 앞에 창끝을 가져다 댔다.
‘칼의 맹세’에 걸렸다고 한들, 방어는 할 수 있을 텐데.
미래의 설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자신을 죽이라는 듯, 미래의 설아는 창이 목 끝에 닿을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