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나는 창을 거꾸로 돌렸다.
창날이 향해야 할 곳이 틀렸다.
창끝을 내 목 아래에 집어넣었다.
날카로운 창날이 목과 턱 사이, 가장 무른 곳에 닿았다.
-방법은 두 개야.
에르제베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미래의 설아가 죽거나.
아니면, 직접 저주를 거둬들이거나.
“다 죽을 필요는 없잖아.”
미래의 설아가 이곳에 온 건, 내가 회귀했기 때문이다.
죽이지 못한 나를 죽이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설아가 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죽어도, 모든 게 끝나는 건 똑같다.
“존재를 유지하는 건, 은혜랑 에르제베트가 어떻게든 해 줄 거야.”
나는 많은 걸 되돌렸다.
은혜도 죽지 않았고, 설아도 불행해지지 않았다.
에르제베트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그 끝에 나도 행복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설아 역시 이곳에서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멸망시키지도 않았고,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미래의 설아도, 나처럼 모든 걸 되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 하나로 봐주면 안 될까?”
미래의 설아도 유은혜와 에르제베트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아 했다.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가족을 지킬 것인가.
구하지 못한 딸을 살릴 것인가.
나는 미련하게도, 끝까지 선택하지 못했다.
설아도, 미래의 설아도.
‘둘 다 내 딸이니까.’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내가 죽으면, 미래의 설아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은혜와 에르제베트까지 저주에 노출된 상황.
아마 미래의 설아는 저주를 거둬들일 것이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죽는 게 무섭진 않았는데.’
회귀 전, 검성을 막아섰을 때.
나는 검성에게 죽이고 가라 말했다.
그때는, 죽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무섭다.’
그러나 지금 와서, 나는 죽는 게 무서웠다.
그때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나.
지금은 잃을 게 너무 많이 생겨 버렸다.
‘이런 걸로 너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설아는 이미 너무 많은 불행을 겪었다.
내가 죽는다고 그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진 않을 것이다.
죄란, 본디 벌이나 죽음 따위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속죄나 용서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고, 바라서도 안 됐다.
그렇지만.
‘차라리 나를 원망하면서라도.’
살아 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못난 아빠라서, 미안해.”
자루를 쥔 두 손에 힘을 줬다.
나는 창을 내 목에 박아 넣었다.
* * *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을 죽일 여력조차 없었다.
이미 이 세상은 미래의 설아를 악역으로 점찍어 둔 것 같았다.
아마 이서준이 죽는다면, 유은혜와 에르제베트는 슬퍼할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누가 슬퍼해 주기나 할까?’
죽어도 슬퍼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사람.
그리고 죽으면 모두가 슬퍼할 사람.
과연 둘 중에 누가 죽는 게 옳은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이서준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세상을 멸망시켰을 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미래의 설아는 피투성이가 돼서 찾아온 이서준을 가만히 바라봤다.
위태롭다.
‘부서질 것 같네.’
이서준은 제 분수에 맞지 않은 영혼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작은 유리그릇에 폭포를 담으려고 한 꼴.
그릇이 부서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서준의 마나는 엉망진창이었다.
진즉 한계에 다다른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여기까지 걸어온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가족이 소중한가?’
우스운 일이었다.
가족을 제 손으로 내팽개친 남자다.
그런데, 지금은 제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듯 가족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만약 회귀하기 전에도 이랬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서준이란 사람은 항상 늦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해 놓고.’
미래의 설아는 알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이서준은 지금 미래의 설아를 마주한 것이다.
‘허무해.’
복수란 끝나고 보면 허무한 것이었다.
미래의 설아는 세상을 멸망시킨 후 죽으려고 했다.
살아 있는 것이 없는 공허하고 추운 세상에서 혼자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서준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죽었겠지.
“미안해. 아빠가, 내가, 미안해.”
이서준은 눈물을 흘렸다.
유은혜가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남자다.
저 남자가 울 수 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에게 창을 겨누고 있었다.
미래의 설아는 그런 이서준을 보고 실망감을 느꼈다.
‘기대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서준에게 있어서 미래의 설아는 눈엣가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 왔다.
“이서준. 너는 끝까지 내게 창을 겨누는구나.”
미래의 설아는 제 심장이 다시 얼어붙는 걸 느꼈다.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힘겨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딘 끝에, 창이 닿을 거리에 섰다.
목 끝에 창이 닿았다.
‘어떻게 할까.’
이서준은 슬퍼 보였다.
꼴에 감정이라도 있는 건지, 손과 함께 창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싸우기는커녕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의 이서준이다.
비록 고희연의 스킬, ‘칼의 맹세’ 때문에 죽일 수는 없겠지만.
이서준을 제압하거나 막아 내는 건 미래의 설아에게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설아는 가만히 있었다.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이서준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만약 죽어서 이서준의 행복을 부술 수 있다면.
끝까지 이서준의 마음속에 후회로 남는다면.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죽는 건, 안 무서우니까.’
미래의 설아는 자신의 목숨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회귀 전의 이서준이 그랬던 것처럼 잃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컥.
이서준은 창을 돌렸다.
창날의 끝이 향한 곳은, 그 자신의 목이었다.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을 가만히 쳐다봤다.
“다 죽을 필요는 없잖아.”
이서준은 그렇게 말했다.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유은혜와 에르제베트가 존재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줄 거라느니.
나 하나로 봐 달라느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죽는 게 두려운 건지, 이서준의 목소리는 분명 떨리고 있었다.
못난 아빠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서준은 제 목을 창으로 찔렀다.
* * *
쩌억.
차갑다.
팔이 얼어붙어 있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얼음이 내 팔과 창을 붙들고 있었다.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을 쓴 사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래의 설아가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난 네가 싫어. 이서준.”
미래의 설아는 씹어 뱉듯이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느낌이었다.
“매번 잘못해 놓고 항상 후회하는 게 역겨워.”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만큼 후회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되돌아가서 좋은 아빠인 척하는 게 가증스러워.”
내가 미래의 설아라도 그랬을 것이다.
은혜를 비롯한 사람들은 나를 받아들였다.
단 한 명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미래의 설아일 것이다.
너무 잘 이해됐다.
“짜증 나. 엄마가 너랑 같이 있는 것도, 어린 내가 널 따르는 것도, 스승님이 널 변호하는 것도,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것도. 전부 다.”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나는 원래 행복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미래의 설아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분하다는 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팔뚝으로 닦고, 말을 이어 나갔다.
“넌 그럴 자격 없잖아. 행복하면, 안 되는 거잖아.”
“알아.”
그래서 죽으려고 했다.
첫 번째 삶은 멍청하게 날려 버린 나다.
두 번째 삶은, 설아를 위해서 살겠노라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설아에게 있어서 유일한 구원은 내 죽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또 죽어서 도망칠 생각 하지 마.”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
내가 어떤 발버둥을 쳐 봤자, 미래의 설아가 겪은 불행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불행을 없애기 위해 살아왔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의 설아는 원망 서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후회해. 평생. 후회 속에서 살아.”
나는 차마 미래의 설아에게 말할 수 없었다.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행복한 날을 보낸 뒤에는 항상 슬픔이 따라왔다.
미래의 설아를 구하지 못한 나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내가 너한테 내리는 저주니까.”
“……그럴게.”
미래의 설아는 내 대답에 반응하지 않았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미래의 설아를 구원하진 못했다.
결국 내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간 것이었다.
‘비참해.’
미래의 설아도 구하지 못했다.
죽어서 속죄하지도 못했다.
내가 성공한 일은 없었다.
미래의 설아는 나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죽음의 저주가 걷혔다.
* * *
“우와아앙……! 주그면, 히끅, 아 되는데……!”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물기 섞인 어린아이의 울음.
시끄럽지만 듣기 싫지는 않았다.
무언가 놓인 가슴팍이 조금 젖는 게 느껴졌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달래 줘야 하는데.’
좀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을 게슴츠레 떴다.
흐릿한 시야로 울먹거리고 있는 설아가 보였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귀여워.’
추운 탓인지, 아니면 울어서 그런지, 코도 조금 나왔다.
엉망으로 망가진 얼굴이었지만, 뭔가 귀엽고 기특했다.
에르제베트는 피식 웃으며, 겨우 팔을 들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위로 손을 툭 올렸다.
“수숭밈!”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펑펑 울다가 활짝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마음 같아선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에르제베트 씨! 괜찮으세요?”
“음. 검은 연기가 가시니 괜찮아진 모양이구만.”
걱정스러운 눈을 한 유은혜와 검성도 보였다.
검성의 말마따나, 저주가 걷혀 있었다.
정신을 차린 설아가 한 걸까.
고개를 옆으로 떨어트렸다.
‘아.’
비단 이 근방의 저주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마녀의 악몽 속에 깔렸던 죽음의 저주가 전부 사라졌다.
어린 설아 역시 저주를 자연스레 다루지만, 이런 광범위한 해주가 가능하진 않다.
그렇다는 건.
‘미래의 설아가 죽었다는 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은 그것이었다.
에르제베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모르고 있었다.
이서준은 세 번째 선택지를 고름으로써,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바꿨다는 걸.
그리고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감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