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미래의 설아는 피로 물든 눈밭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인류의 희망이라고 불렸던 결사대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녀를 죽임으로써 이 영원한 겨울을 어떻게든 끝내 보려고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미래의 설아를 죽일 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나마 마법과 저주를 모두 베어 내는 검성의 칼끝은 미래의 설아에게 닿았을지언정.
쩌억.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미래의 설아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베인 목덜미를 얼렸다.
인제 와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의 설아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내렸다.
‘허무해.’
복수 끝에 남은 게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었다.
이서준을 죽이면, 자신을 죽이려던 모든 사람이 죽으면.
어떤 느낌이라도 들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얼어붙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괴물이라도 된 걸까.’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끝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미래의 설아는 한동안 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지구에 남은 사람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얼어 죽을 것이다.
결사대가 전부 쓰러진 이상 미래의 설아를 죽이려 드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휘오오오.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새하얀 눈밭에, 미래의 설아는 혼자 있었다.
한동안 눈을 구경하던 미래의 설아는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영원한 겨울의 발에 묻힌 시체는 금방 얼어붙었다.
미래의 설아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이서준의 앞이었다.
‘이서준.’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의 아버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느낌이 드는 건 아니었다.
주변에 널브러져 얼어 가는 시체들과 똑같았다.
단지, 마지막에 했던 행동이 의문스러웠을 뿐이다.
끝까지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를 탓했다.
하지만 왜, 마지막에 가서는 검성을 향해 창을 겨눴을까.
‘이미 죽었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왜일까.
이서준이 죽었을 때, 미래의 설아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옅게나마 느끼고 있던 혐오나 증오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안 죽었어.”
미래의 설아는 곧바로 뒤를 돌아 손을 뻗었다.
그 앞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자가 있었다.
어떤 특징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인상이 흐릿했다.
미래의 설아는 남자를 경계했다.
‘언제?’
마나는 어디에나 있다.
즉 사람을 비롯한 무언가 움직이면, 마나도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미래의 설아는 마나가 움직이는 걸 한참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마나를 가라앉혀 기척을 감춘다고 한들, 대기 중의 마나가 흔들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래의 설아는 남자가 말을 걸 때까지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방심한 건가.’
사냥꾼은 전부 죽었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설아는 남자에게 팔을 뻗은 채, 인상을 찡그렸다.
남자에게서는 마나도, 어떤 힘도, 심지어 적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기이했다.
‘어째서?’
민간인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이, 미래의 설아 모르게 뒤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가운 마나가 손가락 끝에 모여들었다.
“누구냐.”
“까칠하네. 아주 똑 닮았어.”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어.”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서준이 죽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지.”
미래의 설아는 남자의 말을 듣고 이서준을 내려다봤다.
숨은 끊어진 지 오래였고, 심장박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가 흩어진 걸 보면, 확실히 죽었다.
“헛소리.”
“헛소리가 아니야. 나도 늦게 알긴 했지만.”
남자는 자책하듯 탄식했다.
이서준이 죽은 건 결사대와의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채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늦었다니.
“이서준은 과거로 돌아갔어.”
“그게 무슨 말이지?”
“회귀(回歸)라고 하지. 너도 시도해 본 적 있잖아?”
미래의 설아는 회귀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다.
에르제베트가 죽었을 때, 시도해 본 적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서준이 어떻게?”
미래의 설아는 법칙을 거스를 만큼 강대한 마나를 지니고 있다.
그런 미래의 설아조차 실패한 것이 회귀다.
결사대에서도 약한 축에 속하는 이서준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남자는 설명했다.
“내 앙큼한 노예가 나 몰래 수를 쓴 것 같아. 내 관리 소홀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
남자는 여유로워 보였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래의 설아 몰래 뒤를 잡은 것도 그렇고.
이서준을 알고 있는 것까지.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정 의심되면 보여 줄게.”
남자는 미래의 설아에게 손을 뻗었다.
미래의 설아가 반사적으로 남자에게 마법을 사용하기 직전.
미래의 설아는 봤다.
-알아.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오래전 기억이었다.
다섯 살 무렵, 유은혜와 손을 잡고 이서준을 찾았을 때.
이서준은 분명 둘을 보자마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험담을 쏟아 냈다.
-이 아이, 우리 설아, 정말로 서준이 네 딸이야.
확신에 차서 말하면서도, 유은혜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이서준은 어린 설아를 빤히 내려다봤다.
분명 이 뒤에는, 친자 확인을 요구하며 날뛰었던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데려왔다며 막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서준은 그러지 않았다.
-딸?
-……네.
이서준은, 설아를 받아들였다.
유은혜와 설아는 발을 들이지 못했던 이서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에도 빠른 속도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설아를 위해 싸우는 이서준이 보였다.
분명 상대는 마탑의 마법사였다.
유은혜와 설아를 데리고 놀러 가기도 했다.
모두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꿈같은 풍경이 사라졌다.
후욱.
미래의 설아는 현실로 돌아왔다.
차가운 눈발이 흩날리는, 시체투성이의 설원.
미래의 설아는 남자와 그곳에 마주 서 있었다.
남자는 미래의 설아를 보고 이죽거렸다.
“어쩌나. 이서준이 행복해서. 너는 지금 이렇게 불행한데.”
“닥쳐.”
미래의 설아의 손가락 끝에서 마법이 발동됐다.
마나가 폭발하며, 남자가 터져 죽었다.
“이서준이 과거를 바꾼다고 한들 너는 바뀌지 않을 거야.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미래의 설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죽였을 텐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쳐서 환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기라도 하는 걸까.
“억울하지도 않아?”
“내가 닥치라고 했지.”
미래의 설아는 마나를 담아 귀를 막았다.
바람 소리, 눈 떨어지는 소리, 자신의 숨소리까지.
들리던 소리가 지워지고 죽음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남자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이 눈에 밟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만약 남자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이서준이 과거로 도망쳐, 모든 걸 되돌리고 있다면.
미래의 설아는 죽은 이서준을 내려다봤다.
* * *
“설아야.”
미래의 설아는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났다.
자신을 부르고 있는 건, 이서준이었다.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를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주제에.
속으로 중얼거린 미래의 설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부르지 마. 짜증 나니까.”
“미안. 그래도, 은혜랑 에르제베트…… 네 엄마랑 스승님은 봐야지.”
미래의 설아는 멈칫했다.
유은혜와 에르제베트.
미래의 설아가 유일하게 죽이고 싶지 않아 한 사람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미래의 설아를 감싸 안아 준 가족들이었다.
둘만큼은 해치고 싶지 않았기에 따로 빼 두려고 하기도 했다.
“같이 가자. 내가 설명해 줄게.”
이서준은 그렇게 말했다.
미래의 설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런 이서준을 바라봤다.
“내가 나를 죽이면 어쩌려고? 그 둘을 데려가려고 하면?”
“그럼, 말려야지.”
“찌르지도 못한 주제에.”
“내 딸을 내가 어떻게 찔러?”
미래의 설아는 기분 나쁘다는 듯 살짝 인상을 썼다.
차가운 어조로 되물었다.
“누가 네 딸이야?”
“어, 음, 아니진 않잖아?”
“역겨워.”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의 소심한 반박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하지만, 이서준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반박할 수 없다는 게 짜증 났다.
“그래. 미안.”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가 힐난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기소침해진 데다가 상처받는 중이었다.
‘기만자’를 통해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미래의 설아에게만큼은 아빠 자격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애를 해치진 말아 줘.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미래의 설아는 이서준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미래의 설아는 말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발치의 눈은 붉은 피를 머금고 있었다.
이서준이 걸어온 길이었다.
따라가다 보면, 유은혜와 에르제베트가 있을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마. 난 너를 용서한 게 아니니까.”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에게 다가가려다가, 조금 거리를 뒀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서준은 창을 지팡이 삼아 짚었다.
아직은 쓰러질 수 없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미래의 설아의 뒤를 따랐다.
* * *
이서준의 방.
아니, 이서준의 방과 똑같은 형태를 한 공간.
유은혜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유은혜와 마주 앉아 있었다.
여태껏 또 다른 유은혜를 자신의 과거, 혹은 그 인격이라고 생각한 유은혜였다.
하지만 이서준으로 인해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됨으로써, 그 자리는 뭔가 불편했다.
탁자에는 유은혜가 가장 좋아하는 캐모마일 차가 올려져 있었다.
“그래서.”
먼저 입을 연 건 유은혜였다.
불편하고 어색한 기류를 언제까지고 버티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적어도 유은혜는 그럴 때 먼저 나서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서준이가 한 말, 시스템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유은혜는 단도직입적으로 나갔다.
이서준이 제시한 가능성.
또 다른 유은혜는 시스템이다.
유은혜로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딘가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실제로 시스템과 또 다른 유은혜의 어투는 똑같았다.
“그렇습니다.”
“……이해를 못 하겠네요.”
가장 혼란스러운 건 유은혜였다.
여태껏 알고 있던 사실이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왜 여태까지 숨긴 거죠?”
“진실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위험했으니까요.”
“뭐가 진실인데요? 당신이 제가 아니라는 것?”
“아니요. 저는 진실을 숨겼으나, 거짓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저는 당신입니다. 당신은 저고요.”
또 다른 유은혜, 시스템은 잠깐 머뭇거렸다.
항상 막힘없이 말하던 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시스템이 질문했다.
“이서준이 어떻게 회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스킬? 마법?”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는 마법은 미래의 설아 정도나 가능합니다.”
“미래의 설아가 사용한 마법에 휘말려서…….”
“아니요. 이서준은 미래의 설아가 아닌 검성의 검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은혜는 잠깐 고민했다.
스스로 회귀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서준이 말하길, 자신이 회귀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제가 이서준을 회귀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