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시스템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어느 날 길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면, 그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필 그 돌이 그곳에 박혀 있었으며, 넘어진 사람이 부주의했던 탓이다.
복권에 당첨되는 건 복권을 샀기 때문이며, 그 번호를 찍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거창한 일에도 어떤 인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하물며 시공간을 거스르는 일이 우연히 발생하진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왜 서준이를 회귀시킨 거죠?”
“이서준을 과거로 돌려보내, 미래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직접 바꾸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사람을 과거로 되돌려 보낼 정도의 능력.
하물며 모든 사냥꾼에게 퀘스트를 주기도 한다.
전투 능력도 뛰어나며, 판단이 빠르고 계산적이다.
시스템이 직접 미래를 바꿀 수도 있었던 일이다.
“저는 시스템(System). 이 세계의 구성 요소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직접 운명에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준이를 시켜서 대신 운명을 바꾸셨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유은혜는 시스템의 말을 듣고 고민했다.
요컨대 시스템은 직접 손을 쓸 수 없어, 이서준을 대신 보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두 가지가 있었다.
“시스템…… 씨의 목적은 뭐죠? 미래, 운명을 바꿔서 무슨 이득이 있죠?”
“저한테는 어떠한 이득도 없습니다. 유은혜.”
“그렇다면 왜 서준이를 도와준 거죠?”
회귀는 이서준의 바람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후회한 일들을 바꿨다.
시스템에게 어떠한 이득도 없다면, 이서준을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질문하겠습니다. 유은혜, 당신은 어떤 이유로 이서준을 돕습니까?”
“그야…….”
역으로 질문이 들어오자, 유은혜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서준이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설아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유은혜는 이서준을 도울 것이다.
“……제 가족이니까요.”
유은혜는 차마 ‘이서준이 좋아서’라고는 말하지는 못했다.
시스템은 유은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어떤 이득이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있다면, 자기만족에 가깝겠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모르겠네요.”
유은혜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스템이 진실을 숨기고 있는 한,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유은혜는 시스템을 의심하기 싫었다.
어쨌든 간에 많은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악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진실을 감추는 이유도 모르겠어요.”
“유은혜, 진실을 감추는 건,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럼 이렇게 모른 채 살라고요?”
“그편을 권장합니다. 굳이 불편한 진실을 감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스템에게서 악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어쨌든 이서준을 회귀시키고, 몇 번이나 유은혜를 도왔던 시스템이다.
아까 말했듯이, 진실을 감출 뿐 거짓을 말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시스템은 진심으로 유은혜를 위해 이런 권고를 한 것이리라.
유은혜는 입술을 씹으며 고민했다.
“이미 운명은 충분히 바뀌었습니다. 더는 위험하다고 판단됩니다.”
“위험하다니, 뭐가요? 제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게요?”
“그렇습니다. 정보가 가져오는 나비효과는 상당하니까요.”
“나비효과요? 저만 알고 있는다면……!”
유은혜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유은혜의 말을 끊었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은혜. 필요하다면 제 쪽에서 ‘양도’를 요청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유은혜는 당황했다.
여태껏 무의식에서 오고 가는 건 유은혜의 의지였지만.
처음으로 시스템 측에서 축객령을 내린 것이었다.
무의식에서 빠져나온 유은혜는 눈을 떴다.
* * *
하이람과 고희연은 눈밭을 걷고 있었다.
스펙터의 다른 인원들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흩날리던 눈보라가 잦아들고, 일대를 잠식했던 저주도 사라졌다.
맑게 갠 시야에는 얼어붙은 도시가 드러났다.
“예쁘네요. 그렇죠?”
“나는 PTSD 오는 것 같은데.”
하이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거의 기억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영원한 겨울이 계속되던 그 세계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서준처럼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기억만 엿봤을 뿐이지만.
실제로 그 상황이었다면 상당히 절망적이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인 하이람의 생각이었다.
“서준 오빠가 회귀하기 전 세계의 저는 풍경 같은 건 안 봤어요.”
“그럼 뭘 봤는데?”
“설아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었겠죠.”
“너 설아한테 악의 가지고 있는 거 아니지?”
“조금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고희연은 회귀 전 고희연과 타협했다.
기억을 넘겨주는 것을 대가로, 공존하기로.
회귀 전 고희연이 미래의 설아를 노리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을 본 고희연은 그런 회귀 전 고희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이람은 미심쩍은 듯 고희연을 봤지만, 고희연은 활짝 웃었다.
“지금은 없어요!”
“뭐,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그보다 언니. 미래의 설아가 죽은 걸까요?”
“글쎄다. 이서준이 그랬을 것 같진 않은데.”
“그럼요?”
“몰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는 예상이 안 돼.”
하이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 일을 벌이는 게 이서준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하나도 예상이 가지 않았다.
고희연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잘 풀렸으면 좋겠다. 그쵸?”
“그러게.”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이람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자신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하이람은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고희연이 어느 순간부터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희연은 우뚝 멈춰 서서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해?”
“아니요. 태양이 조금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아요?”
하이람은 선글라스를 방출해 썼다.
본래 무기가 아니기에 ‘수납’할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선글라스 끝에 작은 마취제를 삽입, 무기 기능을 넣어 수납해 둔 것이다.
선글라스를 쓴 하이람은 고희연처럼 고개를 들고 태양을 바라봤다.
“모르겠는데.”
“이상하다. 기분 탓일까요?”
“여긴 던전 안이야. 시야의 왜곡 정도는 종종 있는 일이고.”
“그런가?”
고희연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면서도 태양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던 하이람은 잠깐 고민했다.
강대호와 더불어, 고희연은 이상하리만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냥 헛소리로 생각하고 넘어가긴 어려웠다.
“아니면 지표면 온도가 내려간 탓에 역전층이라도 형성됐나 보지.”
“진지하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언니, 이과죠?”
“이과 맞아. 쉽게 말하면, 굴절률이 변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는 거야.”
“으음! 그렇구나! 하나도 모르겠어요!”
고희연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이람의 말대로라면 그냥 자연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이람은 태양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별일 아니겠지?’
* * *
미래의 설아는 걸음을 멈춰 섰다.
설아와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래의 설아의 눈에 띈 건 역시 둘이었다.
“설아야!”
에르제베트가 반색했다.
여태껏 미래의 설아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미래의 설아는 에르제베트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가갔다.
철컥.
검성은 검을 들고 미래의 설아를 경계했다.
설아는 유은혜의 옷자락을 잡고 뒤에 숨었다.
조금 떨어져서 다가온 이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을 거예요.”
“아빠다!”
“서준아.”
유은혜와 설아는 이서준을 반겼다.
검성은 이서준의 말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미래의 설아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 알기 때문이다.
에르제베트는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갈게.”
미래의 설아가 가까이 오는 건 경계당하고 있으니, 자신이 갈 생각이었다.
이서준이 두르고 있던 로브가 스르륵 에르제베트에게 날아왔다.
로브가 몸을 받쳐 주자,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에르제베트는 비척비척 미래의 설아를 향해 걸어갔다.
“설아야.”
에르제베트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미래의 설아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네.”
“다행이다. 다행이야.”
에르제베트는 안도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보다, 미래의 설아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안도됐다.
에르제베트는 어느 면에서 보면 이서준과 같았다.
미래의 설아, 현재의 설아 둘 다 소중했다.
에르제베트는 미래의 설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미래의 설아는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정말 다행…….”
에르제베트가 말을 마치기 직전.
유은혜는 머릿속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시스템이었다.
[양도를 요청합니다. 지금 당장!]유은혜는 깜짝 놀랐다.
시스템이 양도를 요청한 적은 한 번 있었다.
축객령을 내리기 직전에도, 자신 쪽에서 양도를 요청하겠다고 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요청할 줄도 몰랐다.
더불어, 언제나 책 읽듯 평이했던 어조가 어지간히 다급해 보였다.
[양도]당분간 시스템과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유은혜였지만.
이렇게 다급해 보이니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은혜가 양도를 사용한 그 순간.
스릉!
무언가 꿰뚫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르제베트는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뜨거운 검날이 심장을 관통하고 밖으로 나와 있었다.
“에르제베트!”
이서준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에르제베트는 검이 제 몸을 다시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푸확!
검이 뽑히며, 가까스로 서 있던 에르제베트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그 뒤에는, 어느새 웬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
미래의 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쓰러진 에르제베트를 내려다봤다.
“스승님?”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에르제베트의 귓가에 닿았다.
남은 힘을 끌어모은 이서준이 땅을 박차고 달렸다.
부웅!
용의 최후를 양손으로 잡고, 그대로 내지른다.
그 찰나의 순간 판단한 것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르제베트를 공격했다면 적이다.
그리고 이서준은 자신의 딸이 아니라면, 적을 공격하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찌르기 (극한)]이서준이 창을 내질렀다.
창끝이 남자의 목에 닿기 직전, 마나가 폭발했다.
콰가가가가가!
마나로 이루어진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이서준은 무언가에 고정된 듯한 느낌에, 더 창을 뻗을 수 없었다.
왕의 반지로 끌어온 힘을 짜내도, 좀처럼 창은 나아가지 않았다.
“아. 세상일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야.”
미래의 설아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모호한 인상에, 능글거리는 듯한 말투.
분명 이서준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 남자였다.
남자는 이서준의 창을 맨손으로 잡고 태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남자는 쓰러진 에르제베트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유은혜의 몸을 양도받은 시스템과 눈이 마주쳤다.
“깜찍한 일을 꾸몄더구나. 에르제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