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에르제베트는 늘 궁지에 몰렸다.
들키고, 쫓기고, 배신당하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에르제베트는 자기 자신 말고는 믿는 게 없었다.
그래서 에르제베트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빠져나갈 구멍, 일종의 두 번째 계획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사용할 조커 카드.
에르제베트는 시스템이 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나눴다.
[에르제베트]죽음 전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또 하나의 자신.
인격과 감정을 잃어버린 후에도, 그대로일 자신의 백업.
머지않아 에르제베트는 신의 눈을 피해 지상으로 내려갔다.
이서준과 설아를 돕기 위해서.
* * *
나는 눈을 깜빡였다.
짧은 순간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영혼을 과다하게 소모한 탓에 환영이 보인 건지.
아니면 시스템이 내게 무언가를 보여 준 건지 분간이 안 갔다.
만약 내가 봤던 게 사실이라면.
[회생시킬 수 있습니다. 달의 영혼에는 저주가 새겨져 있거든요. 에르제베트는 죽었으나, 죽지 않습니다.]나는 시스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시스템이 곧 에르제베트였으니, 신뢰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더불어 시스템은 에르제베트의 회생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건 에르제베트와 시스템의 연관성이 아니다.
[미래의 설아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미래의 설아는 지금 신과 교전 중이었다.
나뉜 공간 너머에서 느껴지는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미래의 설아가 힘을 쓰는 모습은 종종 봐 왔다.
가히 압도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마법이었다.
쿠구구구……!
미래의 설아는 설아, 그러니까 자신을 상대할 때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십수 개의 얼음 운석이 하늘 저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 힘은 분명히 재해라기보다는 종말에 가까웠다.
유성우가 신을 향해 떨어졌다.
쿠우우웅!
운석이 부딪치고, 땅이 밀려나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됐다.
마치 폭격처럼, 운석들이 연달아 땅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
분명 던전처럼 공간이 분리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여실히 느껴졌다.
시스템이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여파만으로 이곳에 있던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미래의 설아는,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설아는 현재 왕이 사용하던 영혼을 흡수한 상태입니다.]시스템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내가 왕의 반지를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비슷한 리스크도 감수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버티고 있을지 모르나, 존재가 불안정해지는 순간 끝날 겁니다.]신은 운석을 손으로 받아 냈다.
딛고 있던 땅이 움푹 파이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지언정.
신은 그 거대한 운석을 한 손으로 막고 서 있었다.
도시 하나를 궤멸시킬 수 있는 공격을 그렇게 막아 낸 것이다.
운석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콰아앙!
산산이 부서진 운석 조각이 떨어졌다.
그것은 인간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들의 왕은 신이 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했다.
왕이 스스로를 실패작이라 말한 게 체감될 정도로, 그것은 강했다.
부웅!
신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가벼웠지만 그 속도는 무척 빨랐다.
미래의 설아를 향해 던진 것은, 작열하는 공이었다.
아니, 태양이었다.
후욱. 콰아아아아아!
순간적으로 일대의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작은 태양이 폭발했다.
하얀 섬광이 일며, 일대의 모든 것이 빛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직시했다간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분리되었던 공간이 일그러졌다.
시스템이 곧바로 양손을 맞대고 비튼 다음, 악수하듯 움켜쥐었다.
쩌억! 쩌적!
분리되었던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한 마음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공간이 다시 합쳐진다면, 아마 죽을 것이다.
시스템도 그 사실을 아는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고오오오.
이내 섬광이 잦아들고 폭음이 멀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머의 공간에 있던 모든 게 지워져 있었다.
십수 개나 떨어졌던 운석도, 눈과 얼음에 뒤덮인 도시도 보이지 않았다.
지직.
도시 하나를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린 공격.
미래의 설아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힘을 많이 쓴 탓인지 몸의 일부가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영혼을 흡수해 일시적으로 안정시켰던 존재가 다시 불안정해진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비등해 보이지만, 열세.
도와야 했다.
한편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내가 저기서 뭘 할 수 있지?’
회귀 전에, 자주 느꼈던 감각이다.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듯한 느낌.
무력감.
힘에 압도당한 것이다.
착!
그때였다.
양쪽 뺨에서 얼얼한 느낌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 양쪽 뺨을 잡고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은혜와 눈이 마주쳤다.
[정신 차리세요. 이서준.]아니, 은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몸을 빌렸다고 그것까지 착각하면 안 됐다.
평소처럼 평탄한 어조가 아니라, 어딘가 단호함이 느껴져서 착각했다.
화났을 때의 은혜가 딱 이런데.
[당신이 회귀한 이유가 무엇인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나는 시스템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차렸다.
이 목숨은 설아를 위해서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가능성이 없다는 게, 내가 설아를 돕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는다.
[당신의 퀘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
미래의 설아는 흘긋 아래를 내려다봤다.
분리된 공간 너머에, 이서준과 그 일행이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여전히 쓰러져 있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무사해 보였다.
“쯧.”
미래의 설아는 혀를 찼다.
당장 눈앞에 있는 괴물이 문제다.
만약 남자, 태양의 신이 쉴 새 없이 미래의 설아를 몰아붙였다면.
아마 저쪽을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재밌다. 그렇지?”
신은 미래의 설아를 보고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순수하게 싸우는 걸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도 그 힘을 전부 쏟아 낼 일, 없었을 거 아니야?”
“말 걸지 마. 기분 나빠.”
미래의 설아는 신을 내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그러쥐듯,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준다.
그러자 신이 서 있던 일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득!
공간이 분리된 것을 보고 떠올린 것이다.
비록 미래의 설아는 불안정할지언정, 강했다.
시공간을 찢고 뭉갤 수 있을 정도로.
“어?”
신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몸이 서서히 안쪽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온몸이 덜덜 떨리더니, 서서히 공간과 함께 그 형체가 일그러졌다.
미래의 설아는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까드득! 까득!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신은 작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작아졌다.
이윽고 미래의 설아가 손에 힘을 풀었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의 설아는 손에 힘을 풀자마자 입을 가리고 기침했다.
“콜록.”
붉은 피가 하얀 손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존재가 불안정한 와중에 너무 힘을 많이 소모한 탓이었다.
일순간 손끝이 흐려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미래의 설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힘을 좀 과다하게 쓰긴 했지만, 해치웠으니 됐다.
에르제베트를 살피려고 가는 순간.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의 힘이라.”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설아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나를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신은 갑자기 나타나 에르제베트를 죽였을 때처럼, 어떠한 기척도 없었다.
“하지만 그 육신은 이리 약하다니. 안타까운 일이구나.”
무언가 뒤에서 미래의 설아의 목을 감싸 쥐었다.
미래의 설아는 잠깐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악마에게 숨을 빼앗긴 듯한 느낌.
“무엇이 그리 억울해 세상을 무너트렸더냐.”
신은 목숨을 쥐고 있을 뿐,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손만 제대로 움켜쥐면 목이 틀어질 것이다.
미래의 설아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신은 미래의 설아가 불쌍하다는 듯이 읊조렸다.
미래의 설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그런 힘을 타고났는지 궁금하지 않더냐?”
설아는 힘을 타고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나를 볼 수 있었고, 다룰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만지지도 못하는 저주는 제 의지에 반응해 움직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래의 설아는 자신의 재능을 저주했다.
‘힘만 없었더라면.’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평범하게 태어났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은혜가 협박당해 사지로 몰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납치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괴물에게 몰리지도.
집이 무너져 이서준을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신은 정확히 미래의 설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미래의 설아는 고민했다.
에르제베트, 스승님을 죽인 것과 대화할 의지는 없었지만.
만약 이런 힘을 타고난 데에 이유가 있다면, 알아야 했다.
“이리 약한 육신에 그리 강한 힘을 품은 건, 전부 네 애미 탓이다.”
미래의 설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끝자락에는, 유은혜가 있었다.
“애미가 마녀니, 그 자식도 저주받은 피를 이어받아 불행해진 것이지.”
“헛소리를.”
미래의 설아가 알기로 마녀는 둘뿐.
미드하임에서 종말의 마녀라 불렸던 에르제베트.
그리고 설아밖에 없었다.
유은혜는, 마녀가 아니다.
태양의 신은 동요하는 미래의 설아를 비웃었다.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더니.”
쩌적.
미래의 설아의 목을 감싸 쥐고 있던 손이 얼어붙었다.
급속도로 빠르게 얼어붙은 마나가 손을 얼린 것이다.
얼어붙은 상태에서 흔들리는 마나를 버티지 못한 손이 깨졌다.
신에게서 벗어난 미래의 설아는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파악할 수 없다면, 전부 얼려 버리면 된다.
미래의 설아가 손을 휘두르려는 그 순간.
지직.
몸이 흩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미래의 설아는 휘청거렸다.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기는 듯한 감각.
마나를 소모한 탓에 존재가 빠른 속도로 불안정해져 가고 있었다.
태양의 신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 죽는 편이 편할 텐데?”
미래의 설아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였기에 이토록 불안정한 것이다.
미래의 설아가 없다면, 다들 평범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서준이 창을 들었을 때, 미래의 설아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을 살리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때.
카앙!
어디선가 날아온 창 한 자루가, 미래의 설아를 향해 손을 뻗는 태양의 신을 방해했다.
태양의 신은 얼음 창을 쳐 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서준이 분리된 공간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손 치우지 않으면.”
이서준은 용의 최후를 들었다.
태양의 신은 흥미를 느꼈다.
격차는 느꼈을 텐데.
이서준은 말을 이어 나갔다.
“죽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