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불타고 얼어붙기를 반복하며 담금질된 대지 위.
태양의 신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뚝 서 있었다.
그 발치에는 은발의 여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죽음과 저주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달의 신이었다.
온 세상을 검게 물들였던 저주는 축복에 지워져 옅어졌다.
대지를 뒤덮었던 눈과 얼음은 불에 녹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아. 재밌었다.”
태양의 신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이라는 존재는 힘을 쓸 일이 좀처럼 없었다.
이렇게 탈진할 정도로 힘을 쏟아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널브러져 있던 달의 신이 조금 몸을 움찔거렸다.
“쿨럭.”
“어이쿠. 무리하지 마. 곧 죽을 텐데.”
“겨우, 재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게냐.”
달의 신은 고개를 들어 태양의 신을 올려다봤다.
태양의 신은 달의 신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같은 선상에 있어야 할 신이었으나, 그 상하가 정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자신이 노력해서 싸운 결과니, 이보다 값지고 달콤한 과실이 또 있을까.
태양의 신은 승리한 기분을 만끽하며 대답했다.
“많이들 우리를 전능하다고 착각하지만, 이거 봐. 제아무리 신이라도, 죽잖아?”
전능 역설(Omnipotence Paradox).
신은 신조차 들 수 없는 바위를 창조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신은 그 바위를 들 수 없으니 전능하지 않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위를 창조할 수 없으니 전능하지 않다.
말장난 같은 모순이었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었다.
“시작이 있으면.”
태양의 신을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쓰러진 채 고개만 들고 있는 달의 신에게 손가락을 돌렸다.
“끝이 있겠지. 나도 언젠가 저 아래 필멸자들처럼 죽을 거야.”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적어도, 너 이외의 존재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태양의 신은 생명.
달의 신은 죽음이다.
“그래. 죽음이 두려웠더냐.”
그리고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태양의 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두려웠어.”
“어째 나를 보는 눈이 이상하더라니.”
“내가 죽는다면, 네 손에 죽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다가 생각했지.”
태양의 신은 달의 신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에는 순수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여야겠다.”
달의 신은 가만히 태양의 신을 올려다봤다.
태양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신은 나랑 너밖에 없거든. 신을 죽일 수 있는 건 세계의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나 신 정도밖에 없을 거고. 그럼 너를 죽이면? 나는 죽지 않게 되는 거잖아! 맞지?”
태양의 신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말했다.
그리고 때론, 순수하기에 악(惡)한 것도 있었다.
태양의 신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거나, 죄를 지었다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논리대로라면 달의 신을 죽여야 죽지 않을 수 있었기에, 죽였을 뿐이다.
달의 신은 말했다.
“내가 죽음의 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터.”
“그래. 그래서 안 죽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죽긴 죽네.”
“네 말마따나, 나는 곧 죽음일지니.”
달의 신은 태양의 신을 올려다봤다.
그 눈빛을 마주한 태양의 신은 무심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극단적으로 감정이 없는 달의 신이 저런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볼 줄은 몰랐다.
달의 신은 저주를 씹어 뱉었다.
“죽어도 죽지 않아, 너를 찾아내 죽이러 갈 것이다.”
“쓸데없는 유언이 길구나. 기분 나쁘게.”
태양의 신은 검을 불러냈다.
찬란한 태양을 머금은 검을 거꾸로 쥐고, 발치에 널브러져 있던 달의 신을 찔러 죽였다.
푸확!
태양의 검은 달의 심장을 관통했고, 이내 달의 신은 움직임을 멈췄다.
태양의 신은 달의 신을 죽여 죽음이라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안해.”
하지만 이제는 달의 신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저주가 불안이 되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망각은 필멸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태양의 신은 달의 신이 내린 저주를 잊지 못한 채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 몸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 흩뿌린 후에도 불안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태양의 신은 하계, 미드하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
작고 유약한 어린아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저주의 숭배를 받았으며, 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기에는 너무 과분한 힘.
달의 신은 에르제베트라는 이름의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곧 죽음일지니. 죽어도 죽지 않아, 너를 찾아내 죽이러 갈 것이다.
차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태양의 신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안 돼. 저건 살아 있어선 안 되는 존재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죽음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
태양의 신은 혼란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죽이려 했다.
하지만, 유언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죽여 봤자 저런 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운이 좋았어.’
태양의 신이 에르제베트를 발견한 건, 에르제베트가 태어나고 5년이 지난 후였다.
만약 발견하지 못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괜히 죽였다가, 찾아낼 수 없는 차원으로 가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게 더 문제였다.
‘부숴야 한다.’
태양의 신은 생각했다.
저것을 부숴 망가트려야 한다.
에르제베트가 태어난 미드하임에는 태양의 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종종 태양의 신이 가지고 놀던, 예언가도 있었다.
‘예언가여.’
태양의 신은 예언이라는 이름의 저주를 내렸다.
에르제베트라는 이름의 마녀가 미드하임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
미드하임은 발칵 뒤집혔고, 머지않아 에르제베트는 쫓기는 신세가 됐다.
작은 어린아이가 세상에 삼켜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에르제베트는 정신이 무너진 채 목이 잘려 죽었고, 태양의 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
에르제베트.
한때 달의 신이었던 마녀는 태양의 신을 보고 그렇게 물었다.
태양의 신은 웃으며 그 영혼을 옭아맬 제안을 했다.
이 끔찍한 죽음의 불안에서 벗어날 방법은 하나였다.
“그렇게도 부르더군.”
죽어 다시 태어나지도, 살아가지도 못하도록.
망가트려 제 손에 쥐고 있는 것이었다.
* * *
분명 태양의 신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달의 신은 시스템이 되어 태양의 신에게 얽매인 상태였다.
공격은 불가능했고, 닥치라고 하면 말조차 할 수 없다.
‘설마 영혼을 나눠 놓았을 줄은 몰랐어.’
에르제베트는 태양의 신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일부에 불과하긴 하나, 달의 힘을 지닌 존재.
어쩌면 태양의 신을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태양의 신은 지구에 내려오자마자 에르제베트를 죽였다.
‘죽여 버린다, 라.’
태양의 신은 이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서준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미래의 설아는 달에 비견할 만한 힘을 지녔지만, 그 존재가 몹시 불안정했다.
게다가 시스템의 말마따나 달의 신 본인이 아니었기에, 신격이 없었다.
즉, 태양의 신을 죽일 수는 없었다.
‘인과가 얼마나 남았지?’
태양의 신은 원래 세계에 직접 현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세계라는 것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만약 태양의 신이 마음대로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면, 이런 차원은 진즉에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제베트가 그랬듯, 일정한 조건 아래 태양의 신은 내려올 수 있었다.
이서준은 시스템을 통해 회귀했고, 미래를 바꿨다.
정해진 미래를 바꾸는 데에는 커다란 여파가 따른다.
그 덕에 태양의 신은 나눠 놓은 영혼, 에르제베트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직접 현현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래를 크게 바꿨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너무 즐기면 또 안 되겠지.’
태양의 신이 행사할 수 있는 힘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요컨대 태양의 신은 인과를 연료로 태우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인과가 다하면 더 이상 세계에 간섭할 수 없었다.
달의 신과 싸운 이후 처음 힘을 쓴 탓에 즐겁긴 했지만.
이제 슬슬 모든 걸 마무리해야 했다.
후욱!
분리된 공간에 몰아치던 한기와 열기가 순식간에 신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서준과 미래의 설아, 검성과 강대호가 보였다.
태양의 신은 생각보다 즐겁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저들이 무엇을 한들, 자신은 죽지 않는다.
패배할 가능성이 없는 싸움은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되지 못했다.
미래의 설아가 가진 힘은 재밌긴 했지만.
지직.
미래의 설아는 몸이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안정했는데, 마나를 많이 소모한 탓에 툭 치면 부서질 듯한 상태가 됐다.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건 상당한 부담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안정되어 있었더라도 별로 다를 건 없을 것 같았다.
태양의 신은 손을 들어 올렸다.
투둑, 툭.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대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미래의 설아는 불안정한 와중에도 일대의 온도를 낮춰 버텨 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와중에,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 위에는, 거대한 불덩어리.
태양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 * *
‘끝인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나는 후회만 하다 가는 것 같았다.
태양의 신은 내 욕심이 이런 결과를 불러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이미 기회를 한 번 받았고, 다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래의 설아도.’
아까 공격으로 남아 있던 힘을 거의 다 소모한 것 같았다.
미래의 설아는 몹시 불안정해져, 그 존재가 흐릿해질 지경이었다.
검성에게 또 한 번의 ‘별 떨어트리기’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결말은 죽음뿐.
‘안 되는데.’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설아에게, 은혜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나는 허벅지를 붙잡고, 땅을 디디고 일어섰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죽여 버린다고 했던가.”
태양의 신은 그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태양을 떨어트렸다.
“건방진 놈.”
거대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우리 아빠……!”
작은 등이 보였다.
에르제베트의 모자를 뒤집어쓴 설아였다.
미래의 설아가 아니라, 현재의 어린 설아.
설아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화를 냈다.
“괴롭히지 마!”
귀엽지만 어딘가 간절한 외침.
나는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강렬한 마나를 느꼈고.
쩌어어어억!
태양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