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코를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호흡을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불편해서일까, 의식이 깨어났다.
몽롱한 가운데, 희미한 소음이 들려왔다.
“설아야. 아빠 일어났어요?”
“아직이요.”
“그래? 이상하다. 원래 금방 일어나는 편인데…… 풋. 장난치지 말고, 얼른 깨우세요.”
“네!”
코를 막고 있던 무언가 풀렸다.
그제야 편하게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설아가 나를 깨우기 위해 내 코를 잡고 있던 것 같다.
이윽고 설아의 기척이 귓전에 가까워지더니, 장난스러운 속삭임이 들려왔다.
“아빠, 아빠. 안 일어나면 설아가 뽀뽀할 거예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마터면 덩달아 눈까지 뜰 뻔했다.
‘이거, 안 일어나야 좋은 거잖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대신 코를 고는 척을 했다.
“커어어.”
“아빠! 안 자잖아요. 그렇죠?”
“커어어어어.”
“이익. 얼른 일어나세요!”
설아는 나를 마구 흔들었다.
아무래도 뽀뽀는 그냥 해 본 말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조금 풀이 죽어 눈을 떴다.
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일어났다!”
배시시 웃는 설아가 눈앞에 있었다.
어째선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괘씸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건방진 녀석!”
“꺄! 으헤헤!”
이불을 홱 들어 올린 뒤, 설아를 끌어당겼다.
설아는 몸이 작은 탓에 이불 속에 쏙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설아를 안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어째 맨날 똑같냐? 일어나자마자 장난부터 치고.”
“설아가 귀여운 게 잘못, 내 이불!”
“설아는 잘못 없거든!”
“맞아요!”
평소처럼 은혜에게 이불을 빼앗겨 버렸다.
나는 애써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떴다.
“정말. 오늘은 훈련도 안 다녀왔지?”
“어? 지금 몇 신데?”
“8시야.”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나는 5시에 일어나 훈련에 간다.
약 1시간 반의 새벽 훈련을 끝내고, 은혜와 교대.
설아와 함께 자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그냥 쭉 잤다고? 내가?”
“응. 별일이다 싶어서, 안 깨우고 있었지.”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이라도 훈련에 가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앞치마를 두른 은혜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은혜는 내 양어깨를 잡고 눌러 다시 침대에 앉혔다.
“오늘은 쉬어.”
“쉬라니?”
막 그런 다짐을 한 다음 날이었다.
더욱 쉴 수는 없었기에, 다시 일어나려는데.
“얍.”
설아가 냉큼 무릎 위로 착석했다.
들어 올리면 그만이었지만, 뭔가 앉아 있으라는 의미 같았다.
은혜는 잘했다는 듯이 설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어제 가위눌렸어. 너.”
“가위? 내가?”
“응. 식은땀을 얼마나 흘리던지. 요즘 무리한 거 아니야?”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은혜의 말대로, 분명 뭔가 꿈을 꾼 것 같긴 했는데.
꿈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이, 안개에 감춰진 듯 흐릿하게만 떠오를 뿐이었다.
‘뭐였지?’
하지만 생각하려고 할수록, 더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은혜가 내 이마에 손을 얹어 놓았다.
자신의 이마에도 손을 올리고 체온을 비교한다.
“열은 없는데. 어제 일 때문이려나.”
“어제 일?”
나는 무릎에 앉은 설아를 내려다봤다.
일단 급한 대로 윌리엄 테일러를 악당이라고 했지만.
괜히 설아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양손으로 설아의 귀를 막고 대답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응. 이건 내가 경솔했네.”
설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설아에게는 일단 악당이 물러갔다고 얼버무린 상태였다.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이 화제는 피하는 게 좋았다.
은혜는 팔을 뻗어 설아를 안아 들었다.
“얼른 세수하고 와. 밥 먹자.”
* * *
“윌리엄 테일러의 동향을 살필 수 있으면 좋은데.”
“그 사람, 유명한 사람이야?”
“응. 마탑 영국 지부장. 마법사 중에서도 꽤 권위 있는 사람이야.”
“그랬구나.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나는 뉴스 기사를 살폈다.
마탑의 마법사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아쉽게도 자세한 일정까진 쓰여 있지 않았지만.
일단 조사에 진전이 없는 것 같았으니, 당분간은 머무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퀘스트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건데.’
고유 퀘스트, 첫 번째 불행은 애매했다.
윌리엄 테일러로부터 설아의 신변을 보호하라.
신변을 보호하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윌리엄이 설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걸까?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을 좀처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윌리엄 테일러가 죽어야 퀘스트는 완료되는 건가?’
나는 분명 지금 윌리엄 테일러로부터 설아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윌리엄 테일러는 설아에 대해서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퀘스트는 달성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건 무린데.’
윌리엄 테일러를 죽이면 마탑이 움직일 거다.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는 하나하나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대부분이 포함된 단체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은 내 힘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렇다면 다른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아니면, 윌리엄 테일러는 설아를 용의 선상에 두고 있다?’
윌리엄 테일러는 분명 암석 지대에서의 비상식적인 마나를 관측했다.
그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겉으로는 좋은 척해도, 온갖 것을 의심하고 있을 터.
그 눈에 설아가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려검가에서 설아를 목격한 사람은 몇 명 있으니까.
눈에 띄는 만큼,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설아를 윌리엄의 눈 밖으로 벗어나도록 하면 되는 걸까?’
어찌 보면 설아의 신변을 보호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다.
아직 나는 힘이 부족하고, 설아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가끔은 직접 맞서 싸우는 것보다 회피가 더 나은 선택지일 때도 있는 법이다.
‘설아를 평범한 아이로 위장시키고.’
이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답안이었다.
만에 하나 퀘스트의 달성 조건이 ‘설아가 윌리엄의 눈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라면.
아예 평범한 아이 행세를 시키는 것이 제일이었다.
설아가 마나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기초적인 건 가르쳐야겠지만 말이다.
‘그사이에 나는 힘을 키운다.’
모든 변수는 상정해 둬야 한다.
어젯밤에 뼈저리게 느끼고, 다짐한 바였다.
설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강해져야 했다.
‘은혜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한없이 오만했다는 것을.
은혜와 나를 동시에 성장시키는 건 무리였다.
‘애초에, 내가 은혜를 신경 쓴다니.’
은혜는 자력으로 최전선에 합류한 일류 사냥꾼이었다.
마지막까지도 무력했던 나와는 재능부터 달랐다.
당장 조금 앞서 있었기에 이것저것 챙겨 주려 한 것이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은혜는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냥꾼이었다.
‘내가 먼저 강해져야 해.’
다른 누구보다 우선 내가 강해진다.
설아를 지킬 힘과, 은혜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지위.
손에 넣어야 할 것이 수도 없이 많은 내게, 주변을 살필 여력은 없었다.
은혜에게 혼자 싸우는 법을 가르칠 필요도 있었다.
‘일단, 그 사람부터 찾자.’
* * *
서울, 홍대입구역은 거대한 장벽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한때 멀쩡히 역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아예 폐쇄된 상태였다.
이유인즉슨 붕괴 당시 모습을 드러냈던 영구성 균열로 필드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이 필드는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기가 좋지 않았다.
사냥터에서 나오는 괴물이 강한 데에 비해 소재의 수익성이 안 좋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수도권에 있고, 예약을 안 해도 된다는 이점이 있어 사냥꾼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냥꾼님. 혹시, 혼자 오셨습니까?”
필드 외곽에 들어서기 무섭게,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등에는 큼직한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허리춤에는 칼이나 톱을 비롯한 온갖 연장들을 차고 있었다.
‘루터네.’
혼자서 따로 활동하는 루터였다.
공략 난이도가 낮은 필드나 던전에는 이런 루터가 많다.
따로 개인 루터를 고용하지 않은 사냥꾼에게 빌붙어 하루하루 일을 하는 사람들.
실력도 안 좋은 초보자인 경우가 많은 데다가, 멋모르는 초보를 상대로 돈을 떼어 간다.
“아니요. 개인 루터가 있어서요.”
나는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사실 개인 루터는 없지만, 이곳에 온 목적은 돈이 아니다.
모처럼 사냥꾼을 선점했었는지, 루터는 불만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떠나갔다.
나는 필드 입구에서 무기를 점검하는 행세를 하며 사람을 기다렸다.
‘분명 내 기억대로라면 여기에 올 건데.’
나는 여태껏 큰 미래를 바꾸지 않았다.
아무리 연쇄 작용이 일어나더라도, 관련 없는 부분까지 바뀌진 않았을 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필드 입구에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춰 섰다.
“뭐야?”
“와, 저거 한 몇억 하지 않나?”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등장했기에, 이목이 쏠렸다.
차 문이 무려 위로 열렸고, 거기에서 내린 건 한 여자였다.
나이는 20대 초반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20대 후반일 것이다.
사냥꾼이라고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하이람이다.”
“누군데?”
“그, 하이테크 회장 딸. 몰라?”
하이테크(Hi-Tech)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무기 제조 회사다.
사냥꾼의 무기와 방어구, 소모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대기업.
그 회장의 딸이니, 한마디로 재벌 2세라는 얘기였다.
“근데 그런 사람이 왜 여깄어?”
하이람은 그 의문에 대답하듯, 차 트렁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드럽게 열린 트렁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하이람이 꺼낸 것은…….
“저거, 진짜야?”
“미친.”
바로 다량의 화기였다.
소총, 권총, 심지어는 중화기까지 있었다.
하이람은 무슨 액션 영화 주인공처럼 제 몸을 화기로 무장했다.
자세히 보니, 옷 안쪽에는 착 달라붙는 슈트를 입고 있었다.
‘저래 보여도 사냥꾼이니까.’
하이람은 재벌 2세이기도 한 동시에 사냥꾼이었다.
그녀가 직접 전선에 나타나는 건 조금 이후의 일이다.
지금 이 사냥터를 찾은 이유는 두 가지.
‘무기의 홍보와, 테스트.’
아직 계발 단계인 무기를 테스트하고, 동시에 홍보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야 재벌 2세가 필드에 직접 무장하고 나타났으니 꽤 주목을 얻을 게 분명했다.
지금만 해도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하이람을 찍고 있었으니까.
“흐흥.”
그러거나 말거나, 하이람은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필드 앞에 섰다.
나는 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던전에 은혜를 데려오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내 사냥감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