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4)
4화
“균열? 지금?”
사이렌은 인근에서 균열이 열린다는 경고였다.
균열은 나타나기 전 레이더를 통해 예측된다.
예측된 균열 지점은 근처 길드나 개인 사냥꾼에게 통보된다.
원래대로라면 균열이 열리기 전에 사냥꾼들이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사이렌은, 비상사태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설마, 미전조 균열?’
때때로, 전조 없이 나타나는 균열이 있다.
레이더로도 포착 불가능한 종류의 균열.
그 발생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런데 갑자기 미전조 균열이 나타나다니.
당황한 나는 주변을 살폈다.
인적이 드문 길거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빠?”
“괜찮아. 괜찮아.”
설아가 다리를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설아의 머리에 손을 올려 안심시켰다.
일단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담장에 비스듬히 세워진 빗자루 하나가 전부였다.
까득.
빗자루 끝부분을 부러트렸다.
날카로운 부분을 창끝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한쪽 팔로 설아를 안아 들고, 다른 팔에는 임시 창을 들었다.
“설아야. 꽉 잡아.”
“으응.”
설아는 사이렌 소리가 무서웠는지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나는 곧바로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지금 미전조 균열이 발생했다고? 왜?’
이런 일은 없었다.
미전조 균열은 애초에 발생 확률이 매우 낮다.
대한민국에서도 관측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
집 근처에서 나타났다면 분명 난리가 났을 거고, 나도 기억할 거다.
‘이거 설마.’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폭풍우를 일으킨다.
지금 뒤바뀐 게 있다면 딱 하나, 나였다.
즉 내가 미래를 바꿨기 때문에, 뭔가 뒤틀린 거다.
하지만.
‘미전조 균열이 발생할 만한 일은 안 했잖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냅다 뛰었다.
지금 내 몸은 수련도 거치지 않은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괴물과 마주치면 아무래도 좋게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더욱이 내 품에 안겨 있는 설아가 신경 쓰였다.
아이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강하지 않았다.
쩌적.
하늘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히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누가 허공을 부순 것처럼, 거대한 금이 가 있었다.
‘젠장!’
운도 더럽게 없다.
곧장 몸을 틀었다.
균열은 급속도로 넓어졌다.
무언가 균열 사이를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쿵!
그것은 바로 내 앞에 떨어졌다.
아스팔트 바닥이 뭉개질 정도의 무게.
놈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크리튼 불(Cretan Bull).’
아래로 향하는 큰 뿔을 지닌 새까만 소와 같은 외관.
그 모습이 크레타의 황소와 같다 하여, 크리튼 불이라는 명칭이 붙은 괴물이었다.
몸 크기가 거의 경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실제로 저놈이 들이받으면 교통사고나 다름없다.
크리튼 불은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주변을 살피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큭.’
도망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크리튼 불의 순간 최대속력은 시속 90킬로미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만큼이나 빠른 괴물이었다.
일단 설아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어디 숨을 만한 곳이…….’
나는 벽면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작은 틈을 찾아냈다.
몸이 작은 아이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틈.
크리튼 불을 주시하며 설아를 천천히 내려 뒀다.
“설아야. 내 말, 아빠 말 잘 들어.”
설아는 크리튼 불을 본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눈에 물기가 가득했다.
무서운지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안아 줄 틈은 없었다.
설아에게 보이지 않도록 몸으로 크리튼 불을 가린 채,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 길 안쪽으로 들어가. 아빠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설아는 대답도 못 하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등을 밀어주자, 내 말대로 건물 틈으로 쏙 들어갔다.
내가 걱정됐는지 자꾸 내 쪽을 살핀다.
“후우.”
나는 숨을 골랐다.
사이렌이 울렸다는 건 균열관리본부 측에서 균열을 감지했다는 뜻.
근처에 있는 길드나 개인 사냥꾼에게 곧바로 연락이 갔을 것이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5분가량.
‘잘못하면 죽겠는데?’
크리튼 불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앞발로 땅을 긁었다.
머리를 살짝 숙이고 뿔을 앞세운 모습이 영락없이 돌진할 기색이다.
놈의 이목을 사로잡고, 동시에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끈다.
자칫하면 설아에게 피해가 갈 수 있었다.
급하게 만든 나무창을 앞세웠다.
푸르릉!
크리튼 불이 콧김을 내뿜더니, 땅을 박찼다.
1,500kg에 육박하는 괴물이 빠른 속도로 내게 쇄도해 왔다.
거기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버텨야 했다.
“아빠…….”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설아가 보였다.
애가 또 불행을 겪게 할 수는 없었다.
쿵! 쿵! 쿵! 쿵!
크리튼 불은 지면을 부술 기세로 달려왔다.
본능이 경종을 치며 도망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크리튼 불을 향해 뛰었다.
콰앙!
크리튼 불이 그대로 나를 들이받았다.
폐에 있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며, 순간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끄억……!”
일반인이었다면 즉사했을 충격이었으나, 나는 어쨌든 간에 사냥꾼.
마나로 온몸을 감싼 만큼, 한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엄청난 격통에 정신 차리기가 어려웠으나.
‘이 정도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억지로 숨을 들이쉬고, 참았다.
크리튼 불은 나를 들이받은 채 그대로 돌진했다.
놈들은 뿔로 고정한 사냥감을 벽에 짓눌러 죽이는 습성이 있었다.
쿵! 쿵!
몸이 빠르게 뒤로 밀려난다.
나는 크리튼 불에게 치인 와중에도 쥐고 있는 임시 창을 거꾸로 잡았다.
균열에서 나온 괴물은 사냥꾼과 마찬가지로, 그 가죽이 마나로 둘러싸여 있다.
기존의 화기도 통하지 않는데, 이런 빗자루를 부러트려 만든 창이라니.
크리튼 불의 질긴 가죽을 꿰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크윽!”
몸이 위아래로 속절없이 흔들렸다.
너무 시간이 지체하면, 그대로 벽에 부딪혀 압사한다.
나는 정신을 다잡았다.
창을 잡은 채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는 사냥감이 아니라…….’
모든 동물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노리는 곳은, 크리튼 불의 눈.
흔들리는 와중에 그 작은 점에 창을 정확히 꽂아 넣어야 했다.
일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냥꾼이다!’
창을 내리꽂았다.
콱!
손에 느껴지는 분명한 저항감.
제대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크리튼 불이 고개를 쳐들었다.
부웅!
내 몸은 그대로 크리튼 불의 뒤로 넘어갔다.
아스팔트 도로에 떨어진 나는 몇 바퀴 구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쿠어어어엉!
왼쪽 눈에 창이 꽂힌 크리튼 불은 제자리에서 날뛰었다.
나는 격통에 숨을 내뱉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콰앙!
차에 치인 다음,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내 몸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건 크리튼 불도 마찬가지였다.
통증이 상당한지, 애꿎은 벽에 머리를 박아 대는 모습이었다.
콰앙!
크리튼 불은 연달아 벽에 머리를 박았다.
놈의 눈에 꽂혀 있던 창대가 부러졌다.
고개를 좌우로 흔든 크리튼 불은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 투레질을 했다.
하나 남은 눈에는 적의와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또 온다고?’
몇 분 정도 시간을 끌긴 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회복하는 모습.
이번에는 무기도 없었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태였다.
‘피할 수 있나?’
어떻게 피해도, 곧바로 방향을 전환해 돌진할 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하다못해 내가 어느 정도 훈련을 했다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었다.
‘생각을……!’
크리튼 불이 땅을 차고, 내게 돌진했다.
생각이 가속했다.
놈은 왼쪽 눈을 다쳤다.
즉, 시야의 사각인 왼쪽으로 뛰어야 했다.
그 순간.
“어?”
다리에 힘이 풀리며,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아까 도로에 고꾸라지면서 어설프게 착지하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
발목을 삐었는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쿵! 쿵! 쿵!
성을 내며 달려오는 크리튼 불이 보였다.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거 죽는다.
우둑!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내가 잘못 본 걸지도 모르겠지만.
순간 크리튼 불의 앞다리가 옆으로 꺾였다.
콰가가각!
중심을 잃은 놈은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박은 크리튼 불이 정지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분명 놈에게 죽었을 거다.
‘이건…….’
내가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10년을 넘게 전선에서 구른 사냥꾼이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마법?’
이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된 마법이었다.
의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뒤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크리튼 불! 민간인이 있다!”
“보호를 최우선으로!”
도복 차림의 사냥꾼들이 일사불란하게 내 앞으로 왔다.
한국식 검을 한 손에 든 사냥꾼들은, 고려검가의 사냥꾼들이었다.
저들이라면 크리튼 불 정도는 쉽게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긴장의 끈이 뚝 끊어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허물어진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고려검가의 사냥꾼 하나가 나를 살폈다.
“이보세요. 괜찮습니까?”
“우리 애…….”
나보다 먼저 걱정됐던 건, 혼자 건물 틈에 있을 설아였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작은 누군가 내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설아가 보였다.
내 앞에서 털썩 주저앉은 설아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는지, 몸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겨우 손을 들어 설아의 등을 쓸어 줬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 * *
전화를 받은 유은혜는 처음으로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다.
로비에 있던 설아가 와락 은혜에게 안겼다.
은혜는 설아를 끌어안고 안심시키듯 등을 쓸어내렸다.
“설아야. 괜찮아?”
“네. 괜찮아요…….”
“서준이는?”
설아는 대답하지 않고 침통한 표정으로 유은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끌 듯이 복도를 지나, 병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이서준이 보였다.
“서, 서준아.”
유은혜는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팔과 다리에는 깁스를 했고, 머리와 배에는 붕대를 둘렀다.
측면에 달린 링거에서 수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죽은 듯이 잠든 이서준을 앞에 둔 유은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빠, 설아 지켜 주려다가…….”
설아는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은혜는 고려검가의 연락을 받고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미전조 균열이 발생했고, 이서준은 설아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다고 했다.
침대 옆 의자에 주저앉은 유은혜는 이서준을 침통하게 바라봤다.
그 순간, 이서준은 번쩍 눈을 떴다.
“왁!”
“꺄아아악!”
병실에 은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상반신을 일으킨 이서준은 씩 웃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은혜가 말을 더듬었다.
“너, 너, 너!”
“서프라이즈. 딸.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천연덕스러운 이서준의 반응에, 유은혜는 울컥했다.
진심으로 걱정했는데.
이서준은 설아와 작전 성공이라면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유은혜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이서준 쪽이었다.
“야, 너 울어?”
“그래! 이 나쁜 놈아!”
병실에 등짝 맞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찰진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