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이건 서준이 네가 해야지.”
“맞아요. 오빠, 저번에도 잘했잖아요.”
“맞는 말이다. 서준아. 오더는 네가 제격이야.”
세 명은 만장일치로 나를 오더로 뽑았다.
물론 은혜나 강대호의 경우,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
최초로 공략하는 던전의 오더를 맡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희연이 네가 맡을 수도 있잖아.”
“저는 오더 체질이 아니라니까요.”
고희연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내 시선은 당연히 의견을 내지 않은 하이람 쪽으로 옮겨 갔다.
남들 위에 서서 명령을 내리는 쪽이 익숙한 지위의 하이람이다.
성격을 생각해도, 오더를 맡고 싶어 할 것 같았다.
“하이람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찬성인데?”
“왜죠.”
“그야, 재밌을 것 같으니까.”
하이람은 순전히 내가 곤란해하는 걸 즐기는 표정이었다.
고약한 성격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나도 놀린 게 있으니까, 인과응보다.
은혜나 강대호가 오더에 자원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오더를 맡기로 했다.
“그럼 제가 맡겠습니다.”
물론 이 중에서 압도적으로 경험이 많은 건 내가 맞다.
세 명은 신출내기였고, 고희연도 경력이 많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말단 출신이었기에 오더를 내린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일전에 오더를 맡았을 때도 영 어설픈 감이 있었다.
“간략하게 포지션부터 짜겠습니다. 대호 형.”
“응.”
“헤드를 맡습니다. 하실 수 있겠어요?”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맡겠냐!”
던전 공략에서 헤드, 즉 선두에 서는 건 실력 좋은 사냥꾼이라도 기피한다.
함정, 기습 등 온갖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건 물론이요, 무너지는 순간 팀 전체의 진형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강대호는 제 손바닥에 주먹을 치며 자신감을 보였다.
“좋아요. 다음으로 희연이. 서브 헤드 맡겠습니다.”
“네. 이견 없어요.”
서브 헤드.
말 그대로 헤드를 보조하는 위치다.
헤드와 마찬가지로 선두에 서서 적과 정면으로 맞선다.
적의 진형 붕괴 등을 노리고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상황에 따라 단독으로 움직이기도 하는 만큼, 개인 역량이 뛰어나야 했다.
“은혜랑 하이람 씨는 리어입니다.”
“리어, 응. 알았어.”
“그래.”
리어는 후위를 뜻했다.
각각 총과 활이라는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은혜와 하이람이다.
이런 무기는 안전한 위치에서 공격할 때, 다른 무기들보다 뛰어난 효율을 보인다.
후방에 서서 전체적인 화력을 담당하며, 선두를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비교적 안전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오인 사격을 신경 써야 했기에 난전에서 부담이 컸다.
강대호가 질문했다.
“그럼, 동생 위치는 어디야?”
“저는 바디. 중간에서 헤드 보조와 리어 보호를 담당합니다.”
“그거 든든한데.”
창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나는 바디를 맡았다.
중앙이라는 위치에서 적을 견제하고, 리어를 보호한다.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은 역할이었기에, 보통 베테랑이 맡았다.
리어 다음으로 오더를 많이 맡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자. 그럼 질문 있는 사람?”
기다렸다는 듯이, 고희연이 손을 번쩍 들었다.
“루터는요?”
“하이람 씨가 공략권을 소유하고 있어서, 공략 후에 고용할 생각이야.”
“그렇구나. 그래도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루터의 역할은 단순히 루팅 하나가 아니었다.
움직임을 방해하는 짐을 나르고, 필요할 때마다 소모품을 던져 준다.
베테랑 루터의 경우, 요리는 물론이고 정찰이나 함정 해제까지 맡기도 했다.
“중소형이니까,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런 베테랑 루터가 필요한 건 공략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중형 던전부터.
길어도 8시간 남짓이면 공략할 수 있는 중소형 던전에서는 필수가 아니다.
그리고 잡다한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었다.
일단 사냥꾼이긴 해도, 루터 취급을 받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질문 또 없습니까?”
다들 침묵했다.
아무래도 더 질문할 건 없는 것 같았다.
무장 점검과 준비를 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전화벨 소리가 침묵을 깼다.
“누구야?”
“서준이 같은데.”
“잠시만요.”
발신인은 아버지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영상통화로 걸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아빠!
화면에 떠오른 건 설아의 얼굴이었다.
나를 봐서 마냥 좋다는 듯 해맑게 웃는다.
단순히 한마디 했을 뿐인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딸!”
-엄마다!
가장 먼저 난입한 건 은혜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서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어져 있었다.
“짠. 설아, 안녕.”
-쩰리 언니! 안녕하세요!
“어흑. 설아야. 언니를 가져.”
-으응?
기다렸다는 듯 주접을 떠는 고희연이 추가됐다.
고희연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리고 해맑게 말했다.
-주세요!
“허윽.”
심장을 강타당한 고희연이 쓰러졌다.
그 뒤로, 하이람과 강대호가 기웃거렸다.
여간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빠. 누구예요?
“엄마 아빠…… 어, 직장 동료들이야.”
“뭐야. 겁나 귀엽네.”
하이람은 의외로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강대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 속으로 둘이 들어오자, 설아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 딸, 설아예요.
“안녕. 설아야. 반갑다.”
“얘 지금 인사한 거니?”
설아 너머로 보이는 배경이 잠깐 뭉개졌다.
핸드폰을 든 채 배꼽 인사를 한 모양이었다.
웬만해선 잘 안 웃는 하이람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여기는 대호 삼촌이야.”
-대오 삼촌?
“헉.”
고희연에 이어서 2차 피해자가 발생했다.
강대호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나는 이어서 하이람을 소개했다.
“이쪽은 이람 이모…….”
“언니야. 이람 언니.”
하이람이 내 말을 끊어 버렸다.
이모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설아는 이름을 기억하듯 입으로 되뇌었다.
-이람 언니?
“응. 맞아.”
-예뻐요!
하이람은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물러났다.
“애가 뭘 좀 아네. 마음에 들어.”
“사실 우리 설아가 아부를 좀 잘합니다.”
“설아 아부한 적 없거든!”
농담을 던졌다가, 은혜한테 등짝을 맞았다.
내가 방심한 사이, 은혜가 냉큼 핸드폰을 가져갔다.
“설아, 왜 전화했어요?”
-으응. 보고 싶어서요. 엄마 아빠, 많이 바빠요?
“쓰읍. 얼른 끝내고 설아 데리러 갈게요.”
-알았어요. 빨리 와야 해요. 아 참.
“왜?”
-화이팅이에요!
“서준아. 우, 우리 딸이 너무 기특해. 어떡하지?”
* * *
[공략되지 않은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특수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던전 : 잊힌 자의 고분을 공략하십시오.]?각자 무장을 점검한 우리는 던전에 입장했다.
던전 공략 경험이 몇 번 없는 사냥꾼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 긴장하는 것도 좋지 않았는데, 설아 테라피 덕분에 적당히 풀렸다.
“뭐야? 여기가 아까 거기라고?”
“예상이랑은 다르긴 하네요.”
던전 입구는 분명 허름한 지하실이었다.
그러나 문을 통과하자마자,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천장과 바닥, 양쪽 벽이 석재로 이루어진 복도였다.
오래된 벽면에 달린 횃불에는 불이 들어와 있다.
석재로 이루어진 바닥에는 이끼가 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도 군데군데 보였다.
“침식형 균열은 공간 자체를 바꾸기도 하거든요.”
대부분의 소형 던전은 그 공간 그대로 던전화된다.
그러나 중소형 던전부터는, 아예 이렇게 공간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던전제 금속이나 식물 등은 주로 이런 던전에서 수급하는 것이었다.
“사주경계 해 주시고, 전진합니다.”
미리 정한 포지션대로 섰다.
강대호와 고희연이 선두에.
나는 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후방에는 은혜와 하이람이 따라붙었다.
‘새삼스럽지만, 이 사람들도 초보 때가 있었구나.’
조금 긴장한 표정의 은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강대호는 선두에 선 만큼 신경이 곤두선 것 같았다.
하이람은 둘에 비하면 비교적 나았지만, 역시 긴장하긴 했다.
그나마 여유를 보이는 건 고희연 정도였다.
‘이게 맞는 반응이지만.’
던전 안에서는 뭐가 나올지 모른다.
특히 이렇게 공략 정보가 없는 던전은 더욱 그랬다.
고블린처럼 간교한 놈들은 기습 같은 전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주 잠깐의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걸, 나는 너무 많이 지켜본 바 있다.
“조금 어둡네요.”
“그런가?”
군데군데 횃불이 박혀 있긴 하지만, 확실히 어둡다.
그러나 강대호는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저번에 먹은 밤눈깨비의 효능 덕분이었다.
나만큼 어둠 깊은 곳까지 보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야를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강대호를 서브 헤드가 아닌 헤드에 세운 이유이기도 했다.
“잠깐.”
“왜요. 대호 형?”
“무슨 소리 안 들려?”
“소리?”
강대호의 정지신호에,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복도 끝 쪽에 자리한 어둠을 응시한다.
고오오오.
낮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무언가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지만.
“그냥 바람 소리 아니에요?”
“아니야. 잘 들어 봐.”
고희연의 말에도, 강대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검지를 입술에 대고 귀 기울이라는 시늉을 한다.
하이람은 영 미심쩍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강대호를 믿었다.
‘이 사람의 오감은 거의 짐승 수준이니까.’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따닥, 따닥, 따닥.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소리가 겹치고 있었다.
“전투준비.”
모두 무기를 들었다.
진형을 유지하고,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린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이었다.
“드라우그(Draugr)! 옵니다!”
심한 악취와 함께 나타난 그것들의 이름은 드라우그.
검게 변색되어 피골이 상접한 언데드 무리였다.
모두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마치 군대의 병사 같은 행색이었다.
캬아아아악!
그 수는 얼핏 봐도 수십이 넘었다.
뒤에서 은혜가 쏜 화살이 선두에 선 놈의 머리에 적중했다.
퍽!
한 마리가 쓰러졌지만, 놈들은 그 사체를 밟고 달려왔다.
무슨 좀비 떼를 보는 것 같았다.
“부딪친다!”
드라우그 무리와 정면으로 부딪치기 전.
강대호가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드라우그의 머리를 박살 냈다.
하지만 전부를 막기에는 역부족.
고희연이 가세했고, 이어 나도 창을 찔렀다.
콰작!
강대호의 뒤를 노리고 있던 놈의 머리가 부서졌다.
그리고, 낯선 알림음이 귓속에 울렸다.
[드라우그를 처치했습니다.] [왕의 반지가 괴물의 영혼을 흡수했습니다.] [현재 누적된 영혼의 수 : 1]